남녀간의 차이에 대한 논란은 유사이래 계속되어왔고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성적 결합에서 더 많은 쾌락을 누리는 것이 여자인지 남자인지에 관해 제우스와 헤라가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있다. 제우스는 여자가, 헤라는 남자가 더 재미를 본다고 주장하지만 결론이 나지 않자 올림포스의 신들은 예지의 신 티레시어스에게 물어보기로 한다. 티레시어스는 남자로 7년 또 여자로 7년을 살아 두 성의 삶을 모두 경험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가 이 문제에 해답을 주기에 가장 적합하다는데 모두들 동의했다. 그런데 그는 성적 결합에서 여자가 남자보다 열 배는 더 즐거움을 얻는다고 답해 제우스의 편을 들어주어 여신 헤라의 노여움을 샀고, 헤라는 그를 장님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 신화가 제시하는 상황처럼 남녀간의 차이에 대해 서로가 강한 편견을 가지고 있고 객관적인 비교 검토가 쉽지 않다. 그리고 사실 서로에 아무리 해도 모르는 부분이 더 많기 때문에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고, 무수한 실험과 연구가 계속되어 왔다.

 

인류의 영원한 숙제인 남녀간의 다름에 대한 궁금증은 우리의 생존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어떤 면에 끌리는가? 이 질문에는 사랑이라는 영원한 주제와 더불어 인류의 종족보존을 위한 본능인 성이 함께 얽혀 있다. 사춘기 이후 이성에 눈 뜬 남녀는 서로에게 매력적인 존재가 되려 애쓴다. 외모뿐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동원해 상대방의 관심을 끌고자 한다. 프로이트가 인간활동의 대부분이 성적인 동인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외모에 대한 관심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 성공이나 지적인 추구 등 겉보기엔 성과 무관해 보이는 활동들이 실은 그 깊은 뿌리에 있어서는 성적인 동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흔한 말로 여자는 외모 남자는 능력이라는 공식이 널리 통용되고 있는데, 남자는 시각적인 외모에 더 쉽게 자극되는 반면, 여자는 외모보다는 남자가 가진 다른 능력에 더 끌린다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왜 그런 현상이 벌어질까? 남자와 여자의 성적 욕망은 근본적으로 다른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가? 인간의 성적 욕망이란 단지 성본능에 기초한 것인가? 아니면 문화적으로 규정지어지는 것인가? 이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의 답을 찾으려면 다양한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고, 문화인류학, 진화생물학, 유전공학, 심리학, 철학, 뇌과학 등에 이어 이제 컴퓨터공학까지 동원되고 있다.

 

오기 오가스(Ogi Ogas)와 사이 가담(Sai Gaddam)은 이 해묵은 논란거리에 대해 야심 찬 저작을 내놓았다. <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A Billion Wicked Thoughts)>가 그것이다. 저자인 오가스와 가담은 보스턴 대학의 인지신경체계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컴퓨터 신경학 박사들이다. 이들은 인간의 뇌에서 일어나는 성적 욕망과 성적 흥분에 대해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분석하는 공학자적인 시각으로 접근한다. 이들은 “성적 욕망이나 성적흥분을 일으키는 두뇌 소프트웨어는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 걸까?”(7)라는 의문을 가지고 연구를 시작한다. 과학적 연구의 근본은 신뢰할 수 있는 객관적 데이터를 수집하고 그것을 비교 분석하는데 있다. 그런데 인간의 성적 활동에 대한 연구는 그 데이터 수집단계에서부터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저자들이 지적하듯이 리하르트 폰 크라프트에빙(Richard von Krafft-Ebing)이 창시한 “성과학”은 또 다른 과학 분과인 “전파물리학과” 같은 해(1886년) 같은 장소(독일)에서 탄생했지만, 하인리히 헤르츠(Heinrich Hertz)의 “전파물리학”이 한 세기가 지나는 동안 지구 바깥의 우주에 대한 연구 뿐만 아니라 의료와 생활에 쓰이는 각종 레이저 관련 장비들을 탄생시키는 등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반면, 성과학은 주목할 만한 연구로 <킨제이 보고서>, 즉 <남성의 성적행동>(1948)과 <여성의 성적행동>(1953) 정도가 있었을 뿐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그리고 1979년에 이르러서야 도널드 시몬스(Donald Symons)라는 생물인류학작가 <섹슈얼리티의 진화>에서 진화라는 개념을 인간의 성욕연구와 접목시키는 획기적 연구를 내놓았다. 관찰과 설문에 기초한 킨제이의 연구와 달리, 시몬스는 진화생물학이라는 이론을 바탕으로 인간의 성욕에 관한 문제를 풀어보려 했다. 이처럼 연구가 부진했던 배경에는 인간의 성에 대해 터부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데이터 수집과 연구자체에 대해 부정적 영향을 끼쳐왔기 때문이다. 우주의 천체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성능 좋은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무한정 관찰해 볼 수 있지만, 인간의 성적 활동을 연구하겠다고 남의 침실을 함부로 들여다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장애를 극복하게 해준 것은 인터넷이다.

 

 

인터넷은 익명성이 보장된 전 세계 수억의 인구가 만나는 장이다. 익명성에 그 핵심이 있다. 1973년 심리학자 케네스 거겐(Kenneth Gergen)은 익명성이 보장될 때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했다. 생면부지의 남녀들을 아무 사전 정보 없이 칠흑같이 어두운 방에 들여 보낸 후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적외선 카메라를 이용해 관찰했던 것이다. 참가자들 중 상당수는 성적인 접촉을 시도하거나 실제 접촉을 했으며, 심지어 어떤 참가자는 돈을 줄 테니 다시 실험이 진행되는 방안에 들여보내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고 한다(36-37). 이들은 익명성 뒤에 숨어서 자신의 욕구를 마음대로 표출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익명성이 보장된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활동은 무엇일까? 저자들은 인터넷 도그파일(Dogpile 구글과 같은 일종의 검색엔진)을 분석하여 인터넷에서 익명의 사람들이 어떤 활동을 하는가를 추적했다. 그 결과 전체 인터넷 활동의 13%정도가 성과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계 수억 인구가 인터넷에 접속하고 그 접속의 7분의 1정도가 성과 관련된 것이라는 사실에서 인터넷 상에 얼마나 많은 포르노물이나 성 관련 사이트들이 존재하는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4. 인터넷 세계의 법칙 34
 
“인터넷 세계의 법칙 34”라는 것이 있다. 피터 몰리 사우터(Peter Morley Souter)라는 사람이 명명한 것으로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것은 인터넷 포르노로 존재한다”는 법칙이다. 예를 들어 해리 포터와 스네이프 교수가 성적 사랑을 나눈다는 말도 안될 것 같은 내용을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실제로 그런 시나리오의 이야기가 스내리 닷넷(Snary.net)에 올라와 있다는 식이다(38-39). “염소와 섹스하는 사람”이라고 검색창에 치면 컴퓨터는 한 술 더 떠 “염소의 종류를 구체적으로 기술하시오”라는 응답을 한다는 것이다.

 

월드와이드웹(worldwide-web)이 처음 온라인으로 연결되었던 1991년 당시 미국에서 간행되는 성인잡지는 90종이 채 되지 않았고 그 중 12종 이상을 갖춘 가판대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고 한다. 불과 6년 후인 1997년 인터넷에 존재하는 포르노 사이트 숫자는 약 900개에 이르렀고, 이 책이 쓰여진 2010년 당시 인터넷 여과 소프트웨어인 사이버시터(Cybersitter)가 차단하는 성인 사이트만 250만개에 달한다고 한다. 이쯤 되면 ”인터넷은 포르노를 위해 존재한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40).

 

 

인간의 성욕과 성과 관련된 행위에 대한 연구에 가장 커다란 걸림돌이었던 성에 대한 사회 문화적 터부를 넘어서 가장 진솔한 드라마가 그대로 펼쳐지는 인터넷 세계는, 앞서 언급한 거겐의 실험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들어갔던 암흑의 방처럼, 전세계 10억이 넘는 인구가 익명으로 거리낌없이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는 사이버공간이다. 인터넷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적인 활동들을 분석해 낼 수 있다면 인터넷은 연구자들에게 무한한 연구데이터를 제공해주는 금맥이 된다. 인터넷에서는 성별과 나이 인종 종교를 넘어서 문자 그대로 지상최대의 행동주의 실험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오가스와 가담은 인터넷 도그파일이 제공해 주는 빅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분석해 인간의 성적 욕망을 들여다 보았다.

 

 

이 책에는 보통 상상도 못할 기상천외한 내용들이 들어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남자들이 즐겨 찾는 포르노 관련 주제어들을 대상연령별로 분석해 보니, 18세-20세의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포르노물이 1위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결과였던 반면, 그 뒤를 잇는 것이 40-50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는 건 의외다. 게다가 70-80대 할머니를 대상으로 하는 포르노물도 상당한 수요가 있다는 것은 기가 찰 노릇이다. 남성들은 시각적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흥분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여성보다 포르노 영화나 노출사진 등을 즐긴다. 심지어 원숭이도 돈을 내고 포르노를 본다는 재미있는 실험결과를 소개하기도 한다.

 

미국 듀크 대학 메디컬 센터에서 붉은털원숭이한테 마시던 과일쥬스를 내놓으면 암컷의 회음부를 볼 수 있게 하는 실험을 했다. 그러자 수컷 원숭이들은 그 이미지를 보기 위해 거의 모두들 마시던 주스를 내놓았다고 한다(65). 암컷의 은밀한 부분을 보기 위해 돈을 쓰는 영장류가 인간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여자들도 포르노를 보기는 하지만 보통 남자들의 4분의 1이 안되고, 유료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율을 남성의 2%정도 밖에 안 된다고 한다(67). 남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온라인 에로물에 취약한 경향을 드러내는데, 2009년 워싱턴 D.C.의 미국국립과학재단 본사 직원들이 포르노 서핑에 지나치게 근무시간을 할애하자 감사기관이 공식적 조사에 나서기까지 했다. 사무실 컴퓨터 모니터로 포르노 이미지를 보는 것이 국제뉴스 체널에 공개된 기자, 국회에서 회의중 핸드폰으로 비키니 차림 여성의 이미지를 보던 국회의원 등 남성들로 하여금 공개적인 망신이나 일자리를 잃을 위험조차 감수하며 성적인 이미지에 탐닉하게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남자들은 큰 가슴, 둥근 엉덩이, 가는 허리, 작은 발 등 여성 신체의 특정부위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인다. 남자의 뇌는 여자의 뇌보다 시각적인 성적 자극에 더 반응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즉, 남자의 뇌는 여자의 몸을 대상화하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103). 저자들은 이 같은 도그파일 분석결과를 진화생물학의 이론에 근거하여 설명한다. 도널드 시몬스에 따르면 남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는 시각적 신호가 “젊음”과 관련된 것으로 어린 여자일수록 다른 남자와 관련이 없고 더 건강하고 가임 능력이 좋으며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을 거라는 신호에 끌린다는 것이다.

 

 

반면에 여자들은 남자들이 즐기는 포르노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남자친구나 남편이 포르노를 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파트너가 포르노를 즐기는 것을 발견하면 여자들은 그것을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거나 다른 여자에게 관심이 있다는 표시로 해석하고 화를 내거나 상처받기도 한다.

 

하지만 여성들도 인터넷에서 자신들의 욕망을 탐색한다. 어떤 소원이던 들어주는 마법 램프의 지니처럼, 무엇을 상상하던 그것을 찾아 볼 수 있는 인터넷, 그 마법의 바다에서 여자들이 가장 많이 소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수십 억 건의 인터넷 검색기록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상위 10위 건이 모두 포르노 사이트이고, 남자의 경우 상위 5개의 사이트가 모두 포르노인데 반해, 여자의 경우는 5개가 모두 로맨스소설 사이트라고 한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올까? 과연 남자들이 여자보다 더 색(?)을 밝히고 동물적인가? 그리고 여자들은 좀 더 점잖아서 포르노 대신 로맨스 사이트를 찾을까? 여자들이 즐겨 찾는 로맨스사이트 또한 성적인 검색에 포함된다. 상당히 성적이다.

 

남자들이 찾는 포르노가 시각적인 성적 자극이라면 여자들이 탐닉하는 로맨스 이야기는 에로틱한 장면이 주가 아니라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진다. 남자들이 여성의 벗은 몸이나 성기, 섹스장면에 탐닉하는 반면, 여자들은 사랑 이야기에 탐닉한다. 멋진 남자 주인공이 온갖 유혹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여주인공에게서 진실된 사랑을 발견한다는 플롯의 이야기가 그 핵심이다. 이런 류의 이야기는 TV드라마나 로맨스 영화의 주된 스토리 라인이고 사춘기 소녀들이 열광하는 할리퀸 소설의 기본틀이다. 사실 이러한 로맨스 소설의 원형은 소설이라는 장르의 탄생과 더불어 생겨났다. 지금도 인기를 누리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이나 <지성과 감성> 등은 18세기 로맨스 소설의 백미다. 부유하고 잘생긴 오만한 귀족 다아시가 시골 중산층 가정의 딸인 엘리자베스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고 사회적 신분차이와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하여 행복해 진다는 이 이야기는 아직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 2000년 전후에 소설과 영화로 인기를 누렸던  <브리짓 존스의 일기> 시리즈는 <오만과 편견>을 현대 런던을 배경으로 다시 쓴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팬픽으로 인터넷 시대에 탄생한 새로운 장르다. 인기있는 드라마, 영화, 소설 등의 플롯과 주인공들을 가져다가 팬들이 이야기를 다시 쓰고 그 이야기를 서로 공유하는 팬픽사이트들이 인터넷에서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여성들이 팬픽의 주요 공급자이며 소비자들이다. 그리고 이 팬픽이 인터넷에서 여성들이 즐겨찾는 로맨스의 보고이다.

 

8. 보기/읽기
 
남자들이 포르노의 시각적 자극에 열광하는 반면, 여자들은 로맨스 소설에 열광한다. 남자들은 “보고” 여자들은 “읽는”다. 보는 것과 읽는 것, 즉 남자들은 생각하지 않고 그냥 보는 반면, 여자들을 읽고 분석한다. 이같은 남녀 사이의 본질적인 성 심리 차이에 대해 저자인 오가스와 가담은 “엘머 퍼드(Elmer Fudd)”와 “미스 마플 탐정사무소”로 명명했다. 유명한 만화 캐릭터인 엘머 퍼드는 말썽꾸러기 토끼 버니를 쫓아다니는 통통한 대머리의 사냥꾼으로 토끼가 보이기만 하면 무조건 총질을 해댄다. 생각없이 쏘기만 해대니 결국 절대로 맞히지 못하고 평생 버니를 쫓아 다니는 신세다. 반면 미스 마플은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의 탐정소설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으로 간과하기 쉬운 작은 디테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수많은 단서들을 조합하여 수수께끼 같은 살인 사건들을 해결하는 명탐정이다. 얼핏 보기에도 이 둘 간의 차이는 엄청나다.

 

이같은 차이는 진화인류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남성은 자신의 유전자를 많이 퍼뜨리는데 주안점이 있어, 적합해 보이는 상대가 나타나면 즉각적인 성적 반응을 나타내는 것이 유리했던 반면, 섹스의 결과로 임신과 육아를 담당해야 하는 여자들은 상대를 고를 때 장기적인 안목으로 상대가 자신이 아이를 낳고 키우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가를 여러 모로 따져보는 것이 유리했던 것이다. 그런 상대를 고를 줄 아는 여자들은 성공적으로 자손을 퍼트렸고, 그 후손인 우리들은 그러한 특질을 물려받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수 백 만년에 걸친 진화의 결과로 시각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남자와 온갖 정보를 분석하고 자신만을 바라보는 능력 있는 남자라는 확신이 서야 반응하는 여자, 이런 모습의 남녀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남녀의 특질은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히는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의 탄생과 그에 따른 여성용 비아그라 연구 사례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1996년 화이자 제약회사 연구진은 협심증 치료제를 만드는 과정의 부산물로 혁신적인 남성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를 탄생시켰다. 1998년 비아그라를 시판하기 시작하자 단 며칠 만에 화이자 주가가 두 배로 뛰었다(135).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파란색 비아그라의 성공에 자극받은 제약회사들은 여성용 비아그라, 즉, 핑크 비아그라 개발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여성들은 말초적인 흥분제에 성욕이 증대되지 않았다. 여자들의 성적 행동과 욕망을 작동시키는 두뇌회로는 남성의 것과 달랐던 것이다. 여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환타지였다. 소위 외모와 능력을 모두 갖춘 잘난 남자가 단 한 여자, 즉 자신에게 이성을 잃을 만큼 반해, 모든 것을 걸고 사랑을 완성해 간다는 그런 환타지 말이다.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처럼 부유한 귀족이 신분과 재산을 모두 걸만큼,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에드워드처럼 영생을 소유한 뱀파이어가 그 영원한 생명을 내던질 만큼, 그런 격정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꿈꾸는 것이다. 여자는 자신이 그런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이길 꿈꾼다. 한 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 그런 매력을 “마법의 거기”라 부른다. 남자를 사로잡는 “마법의 거기”는 반드시 육체적인 성은 아니다. 한 여자가 가진 총체적 매력이다.

 

 

이제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 서로에게 보이려는 모습이 얼마나 다른가 조금은 엿볼 수 있었을 것이다. 시각적 신호에 민감한 남자들은 여자들도 야(?)한 사진이나 영화를 자신들 처럼 즐길 것이라 기대하고, 여자들은 끊임없이 남자가 한 말과 행동을 분석 또 분석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무엇 때문에 서운해 하는지, 왜 화가 났는지 상대가 몰라준다고 하소연한다. 여자들이 보기에는 남자가 자기에게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자친구나 아내가 곁에 있어도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은 쭉쭉빵빵한 글래머가 지나가면 단체로 눈이 돌아가는 남자들을 여자들은 죽어다 깨나도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뇌의 분석을 거치지 않고 그냥 반사적으로 일어나는 반응이라는 것을.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남자가 오히려 남성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들은 토끼만 보면 무조건 총질을 해대는 엘머 퍼드가 된다는 것을.

 

 

이처럼 흥미로운 사실들을 담고 있는 <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는 사실 남녀의 성 심리 차이를 재미있게 서술한 대중적으로 읽힐 수 있는 책일 뿐만 아니라 두 가지 면에서 훌륭한 학문적 성취를 보여주는 저서다. 첫째는 킨제이 보고서 이후 가장 센세이셔널하게 인간의 성에 관한 광범위한 고찰을 했다고 할만한 연구이고, 둘째로는 지난 십 여년간 인류의 삶을 총체적으로 바꾸어 놓은 인터넷이라는 광활한 바다에 인간이 남긴 셀 수 없이 많은 흔적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연구이다. 즉, 최근 각광받고 있는 빅데이터를 활용한 연구의 탁월한 예이다.

 

이 책은 분명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 이상의 성지식을 알려준다. 예를 들면 동성애 관계에서 그들의 성적 욕망과 판타지는 어떤 것인지, 남성 역할과 여성 역할이 고정되어 있는지, 이들 사이의 권력관계는 어떻게 형성되는 지와 같은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너무 진지하지 않게 하지만 너무 가볍지도 않게 담아내고 있다. 이 같은 새로운 성지식도 흥미롭지만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우리들 자신에 대한 좀 더 진솔한 이해, 나아가 연인이나 배우자 같이 우리가 만나는 이성 파트너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사회 관계망 속에서의 자신을 추스르는 데 도움을 준다는데 있다. 저자들이 말하듯이, 우리는 모두 “다르지만 같다”는 것. 도시화된 현대 사회에서 모래알처럼 개체화 되어 떠도는 현대인들을 관계 맺기를 갈망하고 또한 두려워 한다.

 

알랭 드 보통이 지적하듯이, 누군가와 성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진정 상처받기 쉬운 자아의 가장 은밀한 부분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다. 자신의 신체에 대해 자신감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항상 옷으로 가린다. 그 가린 부분을 노출하고 가장 다치기 쉬운 벌거벗은 상태로 타자와 마주한다는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에 기반한 모험이기 때문이다. 성적으로 조화로운 관계를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성별이 다른(또는 성별이 같은) 사람들이 자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다른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자신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흔한 예로 남자들을 여자들이 자신들처럼 시각적으로 “야한” 장면들을 즐길 것이라 생각하고, 강압적인 성관계라도 “즐길” 것이라 믿는 경향이 있는 반면, 여자들은 남자들이 로맨스 소설의 남자주인공들처럼, 한 여자와의 애틋하고 영원한 사랑을 꿈꿀 것이라 믿는다. 그러다 보니 서로가 보내는 성적신호에 대해 서로 오해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서로에 대해 한탄하고 실망하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헬렌 피셔(Helen Fisher)는 6년 여에 걸쳐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 남녀 40명의 뇌를 추적 검사했다. 그가 확인한 결과는 이 책의 제목이자 오가스와 가담이  주장하는 것의 핵심인 <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 준다. 즉 남자는 시각적 자극에 열정적으로 반응하는 반면에 여자는 인간관계의 세세한 것을 기억하며 분석하는데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헬렌 피셔 <왜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가>, p.11). 그리고 이러한 특질이 인류가 현생 인류로 살아남는데 크게 기여했을 것이라는 것을. 피셔는 낭만적 사랑의 기반인 열정이야말로 인간사회 생활의 초석이라고 주장한다. “이 땅을 거쳐간 인간이면 누구나 어김없이 낭만적인 사랑의 황홀경과 절망을 느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감정의 소용돌이를 보다 명확하게 이해하게 될 경우 많은 이들이 그 명예로운 열정을 쉽게 발견하고 오래 지속시킬 수 있다”고. 오가스와 가담의 연구나, 헬렌 피셔, 알랭 드 보통의 글들은 흥미롭고 재미있을 뿐더러, 우리 자신에 대해,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이해하고 포용하게 해준다. 서로 다르지만 그 근원에 있어서는 서로 사랑하고 사랑 받고자 하는 상처받기 쉬운 존재들이라는 것을.

 

 

성에 대한 연구에는 아직도 사회 문화적으로 많은 제약이 있다. 전통적으로 여성의 성은 남성의 성보다 더 은밀한 것으로 치부되어 왔고, 가부장적 문화에서 여성의 성은 남성의 성에 종속된 것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여성의 성과 욕망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리거나 많은 경우 그 존재자체를 부정해 왔다. 심지어 20세기 말까지 여성의 오르가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일부 받아들여진다. 여성의 성교육은 순결을 강조하고 여성의 욕망을 억압하고 부정하는 것이 주였다. 금기와 비밀은 많은 경우 권력구조와 결부되어 있다. 여성의 성에 대한 억압은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억압구조와 맞물려 있다. 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신의 몸에 대한 자율성이라는 개념에 눈뜨고, 권리를 주장했던 여성들은 종종 타락한 여인으로 간주되었고 심한 경우 사회에서 추방되거나 살해되기도 했다. 현대 아랍권 여성들에 대해 자행되고 있는 여성할례나 명예살인 같은 것이 그 극단적 예들이다. 19세기 말 영국사회는 여성의 순결과 정조를 가정생활의 근본으로 추앙했다. 결과 빅토리아조 런던에는 영국사상 가장 많은 창녀들이 존재했던 시기로 기억된다. 9명의 자녀를 낳아 가정적인 여성의 본보기가 된 여왕 자신이 결혼을 앞둔 공주들에게 해준 조언—결혼 첫날밤 침대에서 남편이 네게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눈을 꼭 감고 대영제국의 영광을 생각해라—은 상당히 시사적이다.

 

오가스와 가담의 <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도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외설적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했을 것이고 한 세기 전이었다면 아마 인간을 타락시킨다고 신랄한 비판과 함께 출판되지 못했을 것이다.

 

금기시되고 가려져 왔던 인간의 성에 대해 가볍게 편하게 유머러스하게 서술해 놓은 이 책은 사실 전혀 가볍지 않다. 이러한 연구가 우리들에게 제공해 주는 것은 단지 호기심을 채워 줄 성 지식만이 아니라 우리자신과 우리가 속해 있는 문화집단, 나아가 인류전체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우리를 묶고 있는 보이지 않는 사슬들을 하나씩 풀어줄 수 있는 자유를 향한 열쇠들이기 때문이다. 로버트 단턴은 <책과 혁명>에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던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한 데에 외설적인 포르노 소설이 한 몫을 담당했다고 평가했다. 금기시되었던 성에 대한 자유로운 언급은 당시 억압적이었던 교회를 비롯한 기존질서에 대한 도전이었고, 대중들 사이에 자유사상을 전파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부수적인 효과로 문맹률이 감소했다. 이는 90년대 <O양의 비디오> 영상이 한국의 40대 이상 중년남성들을 컴맹에서 벗어나게 하는 획기적인 계기로 작용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와 맞물리는 대목이다. 포르노와 외설은 음지에서 문자해독과 인터넷 파급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것이다. 인간의 성에 대한 막을 수 없는 호기심과 욕망이 인류문명 발전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심대한 요소로 작용해 왔던 것이 사실이라면, 인간 활동의 모든 것이 성적인 동인을 가지고 있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을 극단적인 성결정론이라 폄하할 수 만은 없는 노릇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오가스와 가담의 <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는 인터넷이 일상에 자리잡은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우리 자신의 숨은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는 몰래 카메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이 책은 남녀의 성 심리의 차이를, 이성애자와 동성애자의 차이를, 그리고 같은 성과 같은 성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 간에도 얼마나 많은 차이가 존재하는 지를 보여준다. 버지니아 울프는 만년에 쓴 자서전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학교를 다녀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내가 똑똑한지 멍청한지 비교해 볼 기준이 없었다”고. <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자신의 은밀한 환상과 욕망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볼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해 준다. 정상과 변태를 구분하는 기준은 어디인가? 이 또한 정상과 광기의 기준만큼이나 종이 한 장 차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의할 점이 있다. 그 기준이 도덕과 윤리라는 미명하에 실은 특정집단을 억압하고 사회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를 거쳐 산업사회의 문턱에 이르는 19세기 초까지 서구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인 대면위를 벗어난 체위나 오럴섹스는 회개하고 용서받아야 하는 죄였고, 동성애는 아직까지도 지구상 많은 곳에서 금기다. 21세기 지구상에는 결혼한 부부가 아닌 남녀의 동침을 지옥에 떨어질 범죄 취급하는 사회와 결혼제도가 쇠퇴하여 동거가 대세가 되어 가는 사회가 공존하고 있다. 성에 대해 좀 더 열린 사고와 대화를 할 수 있는 분위기는 사회를 문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음지에 감추어진 문제들을 함께 풀어나갈 수 있게 해주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좀 더 건강하고 자유롭게 만들어 줄 것이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