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라는 문제에 대한 논쟁의 통상적인 핵심은, 과연 어느 시점부터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가진 존재로 인정할 것이냐, 라고 알려져 왔다. 수정된 배아단계인가, 자궁에 착상 시점인가, 신체 기관이 기초적으로 구성되는 8주로 봐야하나, 통증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신경계가 성숙된 대략 30주 즈음인가? 그 기준점을 앞쪽으로 당기느냐, 혹은 뒤로 미루느냐의 줄다리기가 마치 논쟁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 두고 통상적으로 엄격하게 낙태를 반대하는 보수주의적 종교 진영(주로 미국에서는 가톨릭으로 대표된다)과 선택권을 옹호하는 자유주의자 진영으로 나뉘며, 양진영 간에는 양보할 수 없는 신념을 건 싸움을 하는 것 같다. 

로널드 드워킨은 변호사이자 법철학자로서 미국사회를 바탕으로 이 문제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제안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양진영 간의 화해할 수 없을 것 같은 해묵은 논쟁에서, 양측 모두 존엄을 잃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해법을 찾으려는 야심찬 시도를 하고 있다.

먼저 논쟁의 전형적 이미지를 그려보자. 한 사람의 낙태에 대한 입장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어떻게 답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태아가 수정 시점부터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 낙태반대론자는 그렇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낙태를 허용하는 것은 살인을 허용하는 것이고, 낙태를 하는 것은 아이를 유기하여 죽이는 것과 같다고 보는 것이다. 낙태는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법적) 권리(드워킨의 이 텍스트에서 ‘권리’는 ‘법적 권리’를 말한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해야 맥락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에 대한 침해이므로 양심을 가졌다면 용인할 수 없는 범죄인 살인이라고 여기는 입장이다.

그래서 낙태반대론자들은 ‘낙태가 살인이다’라는 구호를 자주 사용하고, 이에 대해 반대편에서는 ‘낙태는 살인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어 마치 두 진영 사이에는 태아가 법적 권리를 가진 인간인지 여부를 두고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낙태를 사람의 가장 기본적이고 소중한 권리에 대한 침해로 여기는 경우, 노예제도나 인종차별 강간 등에 대해 타협할 수없는 것처럼, 관용이나 타협이 불가능해진다. 의견차가 극명하다면 원칙적인 타협은 힘들 것이며 불만스럽고 깨지기 쉬운 대치 상태가 있을 뿐이다. 

낙태반대론자들은, 태아는 사람이고 낙태는 살인 범죄이며 인간의 신성성에 대한 공격이라고 주장한다. 이 말에는 서로 다른 2개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하나는 태아가 처음부터 자기 이해관계와 권리를 가지는 생명체라는 주장이다. 이에 따르면 낙태는 살해당하지 않을 권리를 침해하기 때문에 나쁜 것이다. 이 주장은 모든 인간에게는 권익이 존재하고 태아도 이를 가진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이 전제로부터 파생되었기 때문에 생명체의 ‘파생적 가치’라고 부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인간생명은 내재적이고 선천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고, 그 스스로 신성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인간생명의 ‘독립적 가치’라고 부를 수 있다. 전자가 법적 테두리에서 기능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인간 개개인의 고유한 신념 내에서 기능하는 것이다.

낙태반대론자들의 신랄한 구호들은 태아가 수정 시점부터 도덕적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과 똑같이 중요한 권리와 이해관계를 갖춘 완전한 사람이라는 ‘파생적 가치’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매우 극소수만이 그런 구호의 내용을 믿을 뿐, 낙태에 반대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낙태에 대한 미국에서의 설문조사를 살펴보면, 미국 국민들의 견해가 일관성이 없다는 점에 평가자들은 놀란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예로, 미국 가톨릭 의회가 발주한 1990년 설문에서는 60%의 응답자가 “아직 태어나지 않는 생명도 보호되어야 하고 태어나지 않은 아이도 생명권이 있다는 주장에 극히 또는 매우 동감한다”고 답하였지만, 동시에 이 중 7%만이 “낙태가 모든 상황에서 금지되어야 한다”고 답하였고 14%만이 “산모의 생명에 위협이 될 때 외에는 모든 상황에서 금지되어야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위와 같은 결과가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태어나지 않은 생명을 보호하거나, 살 권리가 있다’는 말을 ‘태아가 권익을 갖는 존재’라는 파생적 가치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낙태에 대한 비난이 개인의 고유한 신념 내에서 작동하는 ‘독립적 가치’에 의한 것이라면, 사람들의 설문에 대한 답변을 일관되게 이해할 수 있다. 낙태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인간의 생명의 신성함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임신 초기에 인간생명을 종식시킬 결정은 가장 큰 이해관계를 가진 자(임신부)의 양심에 맡겨져야 한다는 견해도 동시에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드워킨은 초기 태아가 수정 시점부터 권리나 독자적인 이해관계(파괴되지 않을 이익)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으로 성장하거나 육성될 수 있다고 해서 이해관계를 갖게 되는 것도 아니라고 본다. 의사들은 수정되지 않은 난자를 처녀생식을 통해 아이로 성장시킬 수 있다. 그렇다고 월경이 난자의 이익에 어긋나지 것은 아니다. 피임을 하는 여성은 어떤 생명체의 본질적인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 

드워킨은 무엇이든 의식을 가지고 있어 육체적 뿐만 아니라 정신적 삶을 가져야 그것이 이익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고통을 느끼는 생명체는 이를 피해야 이익이 된다. 신경체계가 충분히 발육하여 감각이 있는 태아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태아의 이익에 어긋난다. 태아는 임신 후기 전에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데 이는 뇌가 충분히 발육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초신경이 흘러 들어오는 태아의 시상(thalamus)과 성장 중인 신피질(neocortex)과의 연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픔을 느끼는 것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연결의 시점이 언제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임신 중기 이후의 25주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EEG의 뇌파기록으로 측정되는 뉴런들 간의 강화된 연결성을 보여주는 것은 임신 7개월(30주) 정도는 되어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충분한 신경계가 형성된다고 본다. 

미성숙한 태아는 이익을 가질 수 없고 따라서 생존에 대해서도 (법적) 이익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은 자주 간과되다. 낙태가 태아의 이익에 반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낙태가 행하여지는 당시에 태아가 이익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달린 것이지 낙태를 하지 않았다면 태아가 장래에 이익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령 수백만 년 전 지구가 거대한 운석과 충돌하여 폭발해버리지 않은 것은 지금 살아 있는 모든 인간에게 이익이 된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과거에 지구가 폭발해 버렸다면 그것이 인류의 이익을 침해했을 것이라 할 수 없다. 수백만 년 전 지구가 폭발해 버렸다면 그로 인해 침해될 이익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그 시점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으로 낙태를 금지해야 한다고 믿는 보수주의자들도 몇몇의 예외들은 인정하고 있다. 예를 들면 모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필요한 낙태는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예외 역시 태아가 (법적으로 보호 받는) 살 권리를 가진 인간이라는 견해와는 모순된다. 이에 대해 혹자는 산모가 위험한 경우 낙태하는 것을 자기방어의 문제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낙태도 당사자가 아닌 의사의 도움에 의해 행해질 수밖에 없다. 행위의 주체가 의사라고 해도 그는 제 3자이며, 다른 이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정당화되지 않는다. 

낙태반대론자들은 또 다른 예외를 허락하기도 한다. 강간에 의한 임신의 경우에도 허용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완전하게 무죄인 태아가 성범죄의 결과이기 때문에 낙태가 가능하다는 것은, 태아가 ‘법적인 살 권리를 가진 인간’이라는 낙태반대론자들의 입장과 상충한다. ‘태아가 왜 타인의 악행에 대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며 그 죄 값을 치러야 하는가?’ 이러한 예외들이 허용될수록 낙태에 대한 보수주의적 반대가 실제로는 태아의 법적 권익을 기본으로 하는 ‘파생적 가치’에 기반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낙태에 대한 종교적인 교리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주된 요인이 태아가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갖는 사람이라는 파생적인 가치보다는, 인간생명이 고유한 신성함을 가진 독립적인 가치에 기반을 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자유주의자의 태도는 초기 단계의 태아가 권리와 이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단순한 가정만으로는 이해될 수 없다. 태아의 파생적 가치를 부정하는 가정만으로는 왜 낙태가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것인지 설명할 수 없다. 태아가 아무런 권리가 없어서 아무에게도 해가 가지 않는데 왜 낙태로 인해 도덕적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가? 왜 낙태는 편도선 제거 수술과 같지 않은 것일까? 왜 여성은 낙태를 한 이후에 어떤 식의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일까? 

사실은 보수주의적 견해와 마찬가지로 자유주의적인 의견들도 인간생명 그 자체에는 내재적인 도덕적 중요성이 있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어떤 이의 법적 권리가 위험에 처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생명을 없애는 것을 잘못된 것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자의 견해가 태아가 사람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낙태는 허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에만 기반 한 것이 아니라 인간생명의 고유한 가치를 인식하는 데에도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 속의 29명 중 많은 이들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에 대해 상당히 고통스러워했다. 그들 중 누구도 표면적으로는 태아가 살 권리를 가진 사람인지의 문제에 관한 혼란스러운 의심을 갖지 않았다. 태아의 형이상학적 지위에 대해서 걱정하기보다는 가족, 혹은 다른 이들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복잡한 책임감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연구대상자들은 아이를 제대로 보살펴 줄 수 없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결정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될 다른 가족들에 대해 걱정했다. 그들은 그들 자신에 대해 말하지만 자기의 즐거움을 염두에 두고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의미 있는 무엇인가로 만들 책임감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드워킨은 보수주의자든 자유주의자이든 사람들 대부분이 생명의 내재적인 독립적 가치를 공통적으로 믿는다고 본다. 동시에 그 믿음이 낙태에 대한 견해의 차이를 만든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공유하고 있는 믿음이 어떻게 낙태에 대한 태도의 분열을 설명할 수 있을까? 드워킨은 이 의문점에 대한 답은 우리가 내재적 가치를 공유하긴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신성한 ‘독립적 가치’를 둘러싼 양진영의 해석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 드워킨은 ‘신성성’의 개념을 먼저 고찰한다. 신성성과 불가침성에 대한 사람들의 신념은 2가지 특성이 있다고 한다. 첫째 우리 대부분에게 훌륭함에 정도가 있듯이 신성함에도 정도가 있다는 것이다. 비둘기의 죽음도 슬픈 일이지만 흰긴수염고래의 죽음보다는 정도가 덜하다는 의미이다. 둘째 신성성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선택적이라고 한다. 인간의 창조품 중에서, 클림트의 벽화는 불가침하다고 생각하지만 머그잔 하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드워킨은 보수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 모두 원칙적으로 인간생명이 내재적으로 가치가 있으며 불가침하다는 점에서 동의한다고 가정한다. 이들은 모두 낙태는 도덕적으로 항상 문제가 있고 나쁘지만 경우에 따라서 더 나쁠 수도 있고 덜 나쁠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즉 이들은 인간생명을 폐기하는 것은 나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쁨의 정도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우리는 낙태뿐만 아니라 여러 맥락에서도 어떤 사망의 경우는 다른 사망의 경우보다 더 비극적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나이의 갑작스런 죽음은 보통 천수를 누린 노인의 사망에 비해 더 안타까워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생아의 죽음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3살 아이의 죽음이 더 나쁘고 그보다는 청소년의 죽음이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죽음을 맞는 나이와 비극성의 정도 사이의 관계를 그래프로 나타낸다면 대부분 사람들의 비극에 대한 인식은 출생 시점에서 올라가기 시작해서 늦은 아동기나 이른 청소년기에 이른 후에 평평하게 진행하여 중년 초기의 어느 시점을 지난 후에는 극도로 노후한 시점을 향해 다시 내려가기 시작할 것이다. 청소년기의 죽음이 유아기의 죽음보다 더 나쁘게 느껴지는 이유는, 청소년기의 죽음은 그와 주변 사람들이 그의 인생에 투여한 집중된 노력이 좌절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가 세웠던 계획과 희망들, 그가 타인들과 나누었던 사랑, 관심사와 심정적 참여, 그리고 타인들이 그를 위해 가졌던 사랑과 심정적 참여 말이다. 비극적 죽음을 평가할 때에 과거와 미래의 고려사항들의 총합을 의미하는 것을 드워킨은 ‘좌절’이라는 말로 칭한다. 사람들은 생명의 단순한 부재를 안타까워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좌절을 안타까워한다는 것은 일상적인 경험과 잘 부합한다. 

이렇게 인생이 중단되는 비극을 정량화하는 ‘좌절’의 개념으로 보면, 임신 후기의 낙태가 초기의 낙태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이라는 데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인간 생명의 불가침성을 손상하는 것이 단순한 상실이기보다는 포괄적 개념의 ‘좌절’이라고 생각하면 사람들의 낙태관을 설명하기가 용이해진다.

태아가 유전적 결함이 있어서, 태어날 경우 매우 제한된 짧은 기간의 삶을 살게 될 것임을 알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부모들은 심각한 결함이 있는 태아가 즉시 죽는 것과 그 태아가 자궁 속에서 계속 자라나 장애로 제약된 짧은 삶을 사는 것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어떤 것이 더 나쁜 좌절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작된 생명이 좌절되는 것은 내재적으로 나쁜 것이라는 추상적 원칙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서 이른 죽음이 생명의 가장 심각한 좌절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답변이 있을 것이다. 보수적인 견해는 즉각적인 죽음이 심각한 좌절이라는 확신에 근거하고 있다. 수정시의 자연적 창조력에 훨씬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자유주의적인 견해는 반대의 확신에 근거하고 있다. 이 경우에는 이른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생명의 좌절을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본다. 투여되는 인위적 창조력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생명의 가치에 대한 인위적 기여에 상대적으로 더 큰 중요성을 부여한다면, 그 기여(보살핌)의 좌절이 더욱 심각하다고 생각할 것이고 인위적 창조력이 더욱 많이 좌절되기 전에 생명을 끝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낙태에 대한 견해차는 인간생명의 신성성을 수립하는 데에 투여된 인위적 창조력과 자연적 창조력의 상대적인 중요성에 대한 견해차를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생명에 투여된 인위적 창조력의 중요성에 더욱 비중을 두면 둘수록 사람들의 입장은 점진적으로 더욱 자유주의적이 된다. 자유주의적 관점은 인간생명은 단지 신적 자연적 힘에 의해서 창조될 뿐 아니라 개인의 선택, 교육, 책무, 결정에 의해 창조된다고 강조한다. 이 강조의 차이가 자유주의자들이 생명에 투여된 인위적 창조력을 가능한 한 좌절되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으로 보게 만든다. 그래서 이 견해에서는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인해 성인의 인생에서 중요한 교육이나 기회가 박탈되는 것이 (태아의 자연적 창조력보다) 생명의 창조력을 더욱 심하게 좌절시키는 것이 된다.

 

결국 드워킨의 주장은, 보수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은 서로 견해를 달리하는 이유는 한쪽이 다른 쪽이 최고로 생각하는 가치를 완전히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양측 모두 근본적이고 심오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의 상대적 중요성에 대해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드워킨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이 드는가?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게 되는가 아니면 자유주의자의 화려한 개념적 수사처럼 보이는가? 처음 책의 개념적 요지만 간단히 살펴봤을 때는, 드워킨이 고도의 논리로서 자유주의 반대진영을 희롱하는 것이라는 인상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글을 꼼꼼히 읽어보면, 그의 논지는 이데올로기인 동어반복적 자기주장이 아니라는 것이 점점 뚜렷하게 드러난다. 현실에서의 풍부한 예시들과 그것의 치밀한 분석을 통해서 그는 진정으로 양진영간의 화해에의 의지의 성실성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낙태반대론자의 이 책에 대한 반응을 이미 예상하고, 드워킨의 말한다. ‘내가 설명한, 낙태논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절대로 우리가 낙태의 도덕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심오하고 영원한 견해차를 종식시키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지만 ‘그러나 새로운 시각이 우리의 견해차가 궁극적으로 영적인 것임을 알도록 해주기만 하여도 우리는 화합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희망을 피력하고 있다. 

몇 걸음 더 물러서서, 이런 드워킨의 지적 성실성과 진실성이 묻어나는 말투의 설득력에서 벗어나 보자. 그가 주장한 결론의 형식적 패턴만 갖고 판단해보자. 매력적인 개념적 폭죽 뒤에 남는 것은, 결국 낙태를 개인이 선택하도록 내려놓자는 얘기이다. 결국 간섭을 싫어하는 ‘자유’주의적 견해에 대한 옹호로 귀결된다. 아마 이것은 드워킨이 말한 것처럼 인류가 근대적 민주주의를 성취하면서 이미 이뤄낸 개인의 양심과 다원주의적 태도를 생명초기의 영역에 적용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공통의 기준으로 남는 것은 아마 드워킨이 ‘파생적 근거’라고 얘기한 법적 권리뿐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초라한 것이 아니며, 다원적 민주주의 체제하에 시민들이 의지할 유일한 지침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파생적 권리’와 관련하여 그렇게 진지한 논쟁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드워킨은 이 책에서 낙태문제뿐 아니라 안락사 문제에도 여러 정밀한 개념들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 안락사 문제는 낙태문제 보다 좀 더 복잡해 보인다. 하지만 너무 큰 주제라 이 글에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의 해석은 능력 있는 자유주의자들이 그렇듯이 실존주의의 냄새를 물씬 풍기며, 결국 엘리트주의적인 색깔을 띤다.

그리고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낙태의 대법원 판례와 관련하여, 헌법의 재해석에 대한 문제를 비교적 상세하게 다룬 5장이다. 세부규칙으로서의 헌법이 아닌 원칙으로서의 헌법을 주장하면서 법실증주의자들을 논박한다. 법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일독할만한 주옥같은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