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제목 그대로 100세 되는 생일날 창문으로 양로원을 탈출한 100세 노인 알란 칼손의 모험 이야기이다. 1905년에 태어난 알란은 백 년 동안의 현대사를 직접 몸으로 겪은 살아있는 역사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2005년 출간된 이후 전세계적으로 천 만부 이상이 팔린 세계적 베스트 셀러이다. 이야기는 일단 재미있다. 유쾌하다. 『100세노인』은 100세 생일날 양로원을 탈출한 노인이 특별한 목적지도 없이 길을 가다 만난 일군의 사람들과 함께 벌이는 사건사고를 엮어낸다. 그리고 탈출한 노인의 현재 행적을 이야기 틀로 삼아 그가 살아온 과거 100년의 궤적을 짚어 나간다. 

알란 칼손은 1905년 스웨덴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며 무책임하게 가족을 버리고 러시아로 떠났지만 혁명 직전 노선을 바꾸어 짜르 니콜라이를추종하는 왕당파에 가담했다가 처형당하고, 어머니와 함께 남겨진 알란은 10살의 나이에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 노동자가 되어야 했다. 니트로글리세린사 계열의 폭약제조 공장에 취직해 12살에 이미 폭약제조 전문가가 된 그는, 15세 때 유일한 혈육인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홀로 되어 다이너마이트제조 사업을 시작한다. 그를 경원시하는 동네사람들과 불편한 관계에 놓여 있던 알란은 폭파실험 중 사고로 사람이 탄 차량이 폭파하고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다. 당시 우생학 관련 연구로 유명했던 베른하르드 룬드보리 교수는 “우생학적이며 사회학적인 이유로” 알란을 거세한다. “알란은 약간 저능아일 뿐 아니라 그의 몸에는 아비의 유전자가 너무 많이 섞여 있기 때문에 국가는 칼손 집안이 더 이상 번식하게 놔 두면 안된다”는 진단에 따른 것이었다.

24세에 다시 세상에 나온 알란은 폭약 전문지식과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인생관을 가지고 나머지 76년을 살아간다. 제정 러시아의 짜르와 왕실 보석상 파베르제가 등장하고, 스페인의 프랑코 총통에서 해리 트루먼과 스탈린, 북한의 김일성 부자와 마오쩌뚱, 처칠, 드골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정치사의 거물들을 만난다. 미소 양국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에 깊이 관여하는 등, 그의 인생은 실로 20세기 현대사 전체를 아우르는 스펙터클한 규모로 펼쳐진다. 너무도 많은 우연과 운발(?)로 지난 한 세기의 세계사의 무대를 주름잡는 알란의 일생은 실제 한 인간의 삶이라기엔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며 과장되어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의 묘미는 이 같은 과장과 비현실에 있다. 

알란 칼손의 모험이야기는 프랑수와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이야기』을 연상시킨다. 중세 수도사였던 라블레는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이라는 인물을 통한 풍자와 해학으로 당시 지배계층의 이데올로기와 질서를 비판했다. 태어나면서부터 “목이 마르다”를 외치는 거인 가르강튀아는 인간의 욕구와 갈망을 대변하는 존재다. 그는 한 끼에 수십 마리의 가축과 수십 통의 술을 마시고 오줌으로 강을 이룬다. 그의 이야기는 인간의 육체성을 강조하며 중세의 신중심의 사고체계에 대해 비판을 가한다. 이 이야기의 전복성은 세라반테스의 『돈키호테』로 이어져 서양문학사의 큰 맥을 이룬다. 서양의 서사전통은 신들의 이야기에서 영웅이야기로, 그 다음 인간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등장하고, 신의 혈통을 이어받은 반신반인인 영웅들의 이야기인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아』가 그 뒤를 잇는다. 그리고 중세 이후 드디어 인간이 전면에 등장한다. 그 최초의 시도로 라블레는 보통의 인간들보다 수십 배 아니 수백 배 더 큰 거인 가르강튀아를 그려내어 신과 영웅들의 이야기를 대체하는 인간의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18세기 이후 전기문학은 “위대한” 인간 영웅들을 찬양했다. 알렉산더 대왕에서 시저, 나폴레옹에 이르는 제왕들과 뉴턴과 아인슈타인 등의 과학자들, 석가, 예수, 공자, 맹자, 간디와 마더데레사 등 성인과 종교 지도자들의 생애를 기리는 전기문학은 이들 “위인”들의 삶을 보통 사람들의 사표로 추앙하고, 이를 모범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을 교육하는 지침으로 삼으려 했다. 이제 21세기에 들어 100세를 사는 인간들에게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필요할까?

라블레는 가르강튀아라는 거인을 등장시킨 반면, 요나손은 100살 먹은 노인 알란 칼손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말이 100살이지 아직도 인간에게 100세의 나이는 쉽지 않은 꿈이다. 특히 100세가 되어서 양로원을 탈출할 만한 신체적 정신적 활력을 가졌음에랴! 동양에서는 100세가 되면 생명이 다시 재생된다고 믿어졌다. 백발이 다시 검어지고 빠진 이가 다시 나고 회춘한다고도 한다. 어쩌면 불로장생의 신선이 될 수 있는 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 속 알란도 어려서 거세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100세가 넘어 결혼하고 성행위가 가능했다고 소설 끝부분에 지나가는 말처럼 한 줄 추가되어 있기도 하다)

보통 사람들의 삶을 초월해 인간과 탈인간의 경계에 놓인 100세 노인의 삶은 범인들의 아집과 속됨을 넘어선다. 알란은 『일리아드』나 『오딧세이아』의 영웅들처럼 세상을 좌지우지할 만한 일들을 벌이고 다니지만 자가기 한 일에 연연해 하지 않고,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의식도 없다. 일에 대한 공치사나 보상을 바라지도 않는다. 일례로, 국민당 정부군의 포로가 된 마오쩌뚱의 아내 장 청을 구해줄 때도, 단지 남편이 마오쩌뚱이라는 이유만으로 한 여자가 끔찍한 유린을 당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인간적인 이유에서 나설 뿐이다. 물론 이 인연으로 알란은 동반자 헤르베르트 아인슈타인(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이복 동생)과 북한 김일성 부자를 속인 대가로 총살형에 처할 뻔한 위기에서 마오쩌뚱의 도움으로 살아나기도 하지만.  

알란에게 있어 세계적인 거물들과의 만남도 그저 여느 사람들과의 만남과 다를 바 없다. 심지어 로스 알라모에서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기라성 같은 과학자들이 풀지 못한 난제를 간단히 풀어주고 원자폭탄의 탄생에 지대한 공헌을 했음에도 그조차 그냥 지나가는 삶의 한 에피소드일 뿐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술과 맛있는 음식이다. 그렇다고 탐식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날 그날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좋은 술과 음식을 나누는 것, 그것이 그가 바라는 인생 최대의 낙이며 유일한 가치이다. 청년기에 거세 당하고 여자와 남자 그 누구에게도 집착하지 않고 욕심도 야심도 없이 초연한 모습으로 초지일관 한 세기를 살아내는 그의 모습은 초인이며, 신선이며, 인간세상에 유람 나온 현대판 사신(Thanatos)이기도 하다. 

알란 칼손이 폭약전문가라는 사실은 주목해 볼 대목이다. 그는 10살에 니트로글리세린사에 들어가 폭약제조기술을 익히고 15세에 다이너마이트 회사를 세우고, 38세에 로스알라모에서 원자폭탄 제조에 일익을 담당했다. 대규모 살상무기로서의 폭약은 20세기 전쟁과 파괴의 주요 수단이며, 특히 원자폭탄은 인류의 존망을 좌우할 수 있는 가공할 무기다. 알란은 이 모든 것을 관장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가진 현대판 사신(Thanatos)이며 파괴자이다. 하지만 알란이라는 사신은 파괴와 죽음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가 폭파시키고 인명을 살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일 뿐이다. 하지만 일단 일이 벌어지면 그에 대해 도덕적 책임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스탈린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결과 시베리아의 블라디보스톡 강제노동 수용소에 수감된다. 5년 후 탈출하는 과정에서 수용소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를 불태우게 되지만, 그는 별다른 가책을 느끼지도 않는다. 그가 보기엔 단지 수용소를 떠날 때가 되었고, 원래 계획보다 폭발에 따른 화재의 규모가 좀 커졌을 뿐이었다. 

이런 면에서 『백세노인』은 북유럽 특유의 범죄소설과 스파이소설 장르를 가벼운 코미디로 변형 시킨 형태로 볼 수 있다. 음산하고 잔인한 살인과 범죄가 난무하는 이야기에서 끔찍한 디테일을 생략하고 가벼운 농담조로 사건을 빠르게 진행시킨다. 전통적인 스파이 스릴러를 마치 영국 코미디언 미스터 빈의 실수연발의 코미디물처럼 천진한 주인공 알란 칼슨이 너무도 태연하게 처신하는 것을 보면서 독자들은 사건이 가지는 아이러니를 인식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 비유한다. 『포레스트 검프』가 지능이 조금 모자란 그래서 때묻지 않고 순순하고 현명한 바보의 시각으로 미국 현대사를 조명해 보았다면, 『100세 노인』은 담담한 태도로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100세 노인의 초연한 눈으로 바라본 20세기의 세계사라 하겠다. 

스파이 스릴러에는 갱단의 돈가방이 등장한다. 이 소설에도 5천만 크로나의 현찰이 든 트렁크가 중요한 모티프로 등장한다. 알란은 양로원을 탈출해 버스터미널에서 버르장머리 없는 젊은이가 잠시 맡아 달라 부탁한 트렁크를 별 가책없이 들고가 버린다. 혹시 그 안에 당장 필요한 모자나 신발이 들어있을까하는 기대가 반이었다면,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청년에 대한 소심한 복수이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트렁크 안에는 5천만 크로나라는 거액의 현찰이 들어있었고, 의례 그렀듯 거액의 현찰은 갱단의 마약 판매 대금이었던 것이다. 거기서부터 알란을 쫓는 갱단과 생일날 사라져버린 백세 노인을 찾는 경찰, 이 두 팀에게 모두 쫓기는 신세가 된 알란 칼손. 이제 그는 가는 곳마다 스웨덴 주류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아웃사이더들을 끌어 모아 한바탕 소동을 벌인다. 

여기에는 위인도 의인도 없다. 오히려 사회에서 소외된 주변인, 아웃사이더들이 벌이는 한바탕 소동이며 축제이다. 젊음을 숭상하는 현대문화에서는 이미 죽은 시체 냄새나는 쓸모 없는 존재인 백세노인, 평생 좀도둑질과 이웃에 대한 크고 작은 폭언과 폭력으로 동네의 골치거리인 율리우스, 대학에서 공부만 하다 반평생을 보내고 학비가 떨어지자 시골도시에서 핫도그 장사를 하는 학위만 10개쯤 딸 뻔한 베니, 동생이 공부만 하다가 유산을 거덜내자 의절하고 지내던 베니의 형 보세, 이혼 후 호수가 집에서 은둔하며 서커스에서 도망친 코끼리 소냐와 개 부스터와 함께 사는 구닐라, 그리고 “네버 어게인” 이라는 별볼일 없는 갱단의 보스 예르딘이 그들이다. 백세 노인 알란이 양로원을 탈출한 후 만나는 이 모든 사람들. 한편으로는 사회 부적응자들인 이들이 함께 빚어내는 묘한 삶의 향기와 우정이 우리에게 포복절도할 웃음과 따스함, 삶에 대한 긍정을 전해준다.

도중에 2명의 갱단 멤버가 살해되지만, 살인조차 만화적이고 그 시신을 처리하는 방식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도우심인지 모두 무혐의 처리된다. 악당이 벌을 받는다는 시나리오는 카타르시스를 주지만, 그 악당을 처리하는 정의의 사도(?)도 굳이 보통사람보다 특별히 선하다거나 훌륭한 위인이 아니라는 데에 이 이야기의 현대성이 있다. 

러시아 비평가 미하일 바흐찐은 중세 서구의 카니발이 기존 질서에 대한 전복적인 성격을 가진다고 분석했다. 축제라는 틀 안에서 모든 위계적 서열, 위세, 규범과 금기를 일시적으로 중지시키고, 해학과 풍자를 통해 지배계급을 비판하고 피지배 계층의 억압된 욕구와 불만을 분출시키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마치 증기가 가득 차 압력이 높아진 압력솥의 압력을 조절해주는 밸브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축제에서는 흔히 기존 질서의 전도현상이 일어난다. 바보가 왕이 되고, 여자가 남자가 되고, 거지가 왕자가 되는 등 일상의 질서가 멈추고 초자연적인 힘이 작용하는 신성하고 종교적인 의례라는 이름으로 전복적인 상황이 일탈이 아니라 제례 의식의 일부로 허용된다. 

중세 사육제에서 기층 민중들이 축제 한마당을 통해 기존 질서를 일시적으로나마 전복하고 걸죽한 욕설과 풍자와 웃음을 통해 지배층과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것이 가능했다. 우리네 전통 장마당의 판소리 같은 마당극과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백세노인』도 이와 유사한 기능을 한다. 작가는 20세기의 내노라하는 거물급 정치인들을 불러내어 알란 칼손이 펼치는 한 바탕 마당극에 캐리커쳐된 모습으로 등장사킨다. 이들은 왕당파와 혁명파, 파시즘과 국민정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민족주의와 식민주의 등 서로 대립되는 가치관과 정치관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이들의 갈등은 폭약과 핵폭탄으로 상징되는 분쟁과 폭력으로 표출된다. 알란은 폭력의 수단이며 꽃인 폭탄 제조 전문가로 모두들 그를 필요로 하지만 정작 알란 자신은 정치에 무관심하다.  무관심하다 못해 거의 반감까지 갖고 있어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의 필요에 의해 또는 인간적인 연민이나 공감에 따라 행동할 뿐이다. 『백세 노인』은 20세기 현대사의 가장 큰 쟁점인 정치와 이데올로기 문제로 서로 죽고 죽이는 세태와 돈과 허황된 명예에 집착하는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보여주는 한 바탕 마당극으로, 어서 와 한 판 신명나게 같이 놀아보자고 우리들을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