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중국에서 큰 학술적 흐름을 이루고 있지만, 한국의 중국학계에서는 아직 그 소식을 자주 접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국제한학(國際漢學)이다.(1)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하여, 최근 몇 년 사이 ‘한학붐(漢學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중국에서 붐을 이루는 연구가 한국에서 그에 합당한 비중으로 다루어지지 않는 것은 그 학문의 성격에서 기인한다. 서양에 의한 전통적인 중국연구인 한학(漢學, Sinology)(2)과 그 방법론인 문헌학(philology)은 그 주요 연구대상인 중국고전문헌과 고전중국어에 대한 장악, 그리고 그 연구들의 수행에 이용된 서양의 각 언어 - 라틴어, 프랑스어, 영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 - 에 대한 일정 수준의 이해를 요구한다. 한 사람의 연구자가 현대중국어 외에 이런 언어들을 이용하여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중국연구자들은 국제한학에 대해 소문은 들어 알고 있어도 직접 연구에 뛰어드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중국과 가장 가까운 곳 중 하나인 한국의 중국연구가 더 이상 국제한학을 외면하는 것은 가능한 일도 아니고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허니 교수의 저서 <제단의 향 - 선구적 중국학자들과 중국고전문헌학의 발전>은 한국의 중국연구자들에게 국제한학의 역사와 의의를 접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본서는 아직 번역본이 출간되지 않았기 때문에, 목차(3)를 조금 자세히 소개할 필요가 있다. 본서는 서양중국학의 역사를 소개할 때, 주요 국가들의 위대한 중국학자들에 대한 위인전의 형식을 띠고 있다. 먼저 제1부 제1장에서는 학자선교사들이 소개된다. 16세기~17세기에는 스페인의 후안 곤잘레스 데 멘도사의 중화제국사로 대표되는 이베리아 반도에서의 중국인식부터 시작해서, 필리핀의 마닐라에서 활동하던 도미니크회 선교사들, 마테오 리치를 포함한 예수회 선교사들이 소개된다. 그리고 18세기에는 프랑스 예수회 선교사들이 지배한 중국어 문헌 번역작업이 소개된다. 제2장에서는 유식한 문외한들과 최초의 전문 연구자들이 소개된다. 에티엔느 푸르몽, 테오필루스 바이어, 조제프 드 귀니에 이어, 최초의 본격적인 중국학자라고 불러야 할 장-피에르 아벨 레뮈자가 소개되고, 이어서 스타니슬라 줄리앙, 에르베이 드 생 드니 등의 연구가 이어진다.
제2부부터 제4부까지는 프랑스, 독일, 영국-미국의 중국학사가 국가별(혹은 언어별)로 서술된다. 제2부 「프랑스 문헌학과 거인 트리오」에서는 에두아르 샤반느, 폴 펠리오, 앙리 마스페로 세 사람의 업적이 소개된다. 샤반느의 스승으로서 중국학 목록작업인 「중국서지(Bibliotheca Sinica)」로 유명한 앙리 코르디에와 역사음운학을 통해 중국학을 연구한 스웨덴의 베른하르트 칼그렌, 그리고 마르셀 그라네의 사회학적 방법을 소개한다.
제3부 「독일 중국학」은 제1장에서 19세기 독일 지식인들의 사상적 배경이라 할 고대학(Altertumswissenschaft)과 인문교육을 소개하고, 초기 독일 중국학자들이 중국선교사적 전통보다 이 본토 학문에 더 큰 영향을 받았음을 이야기해준다. 율리우스 크라프로트, 칼 귀츨라프, 빌헬름 쇼트, 게오르크 폰 데어 가벨렌츠, 빌헬름 그루베, 프리드리히 히어트, 데 흐로트, 에리히 하이니시, 아우그스트 콘라디, 에두아르드 에어케스, 알프레드 포르케, 프리츠 예거, 리하르트 빌헬름의 작업이 소개된다. 제2장에서는 20세기 초반 독일 중국학의 거장인 오토 프랑케가 따로 소개되고, 제3장에서는 독일의 정치적 사정으로 인해 국외로 추방된 학자들을 다룬다. 에어빈 폰 짜흐, 아우구스트 피쯔마이어, 페르디난트 레싱, 발터 지몬, 구스타프 할로운이 소개된다. 구스타프 할로운에게서는 그의 작업을 특징짓는 비판정본작업(textual criticism)이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제4부는 영국과 미국의 중국학을 소개한다. 제1장에서는 선교사적 전통에 있는 로버트 모리슨과 알렉산더 와일리, 그리고 외교관적 전통에 있는 허버트 자일스의 작업이 서술된다. 제2장에서는 19세기 영국 중국학을 대표하는 제임스 레게의 작업이 그의 번역작업과 함께 중점적으로 서술되며, 윌리엄 에드워드 수딜도 함께 소개된다. 제3장에서는 20세기의 번역가인 아더 웨일리의 작업이 소개된다. 제4장에서는 엘리야 콜맨 브리지먼 같은 19세기 개신교 선교사들의 작업, 외교관인 윌리엄 우드빌 록힐, 독일 출신인 베르톨트 라우퍼, 루터 캐링턴 굿리치, 아더 윌리엄 험멜, 호머 해슨플러그 덥스, 조지 알렉산더 케네디가 순서대로 소개된다. 이후 문헌학적 중국학인 Sinology의 대립물로서 존 킹 페어뱅크에 의한 지역연구(area studies, regional studies)로서의 중국연구가 소개된다. 이어서 찰스 가드너, 프랜시스 우드맨 클리브스가 소개된다. 제5장과 피터 알렉시스 부드버그의 문헌학적 인문주의가 소개되는데, 특히 한자의 성질에 둘러싸고 벌어진 헐리 글레스너 크릴과의 논전이 중요하게 소개된다. 제6장은 에드워드 헤츨 쉐퍼의 당시(唐詩) 연구를 다룬다.
이렇게 본서는 서양 중국학의 역사를 제시함과 동시에, 그 중국학의 방법으로서의 문헌학을 강조한다. 이로 인해 두 가지 결과가 생긴다. 첫째, 서양 중국학의 역사가 제시됨으로써, 한국의 독자들은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외국학으로서의 중국연구가 어떻게 연구되어 왔는지 폭넓고 균형 있게 조망할 기회를 가진다. 한학은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이라는 소위 한자문화권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16세기이래 선교사적 입장에서, 그리고 19세기부터는 본격적인 학문으로서 서양에서도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19세기말 이래 성립된 일본의 동양학과 지나학, 그리고 중국의 국학(國學)이 모두 동시대 서양의 Sinology를 의식하면서 성립하고 진행되었음도 염두에 두게 된다.(4) 또한 동아시아인에 의한 중국연구가 단지 종적(種的)인(ethnic) 근거로 인해 서양인의 중국연구보다 뛰어날 것이라는 생각이 근거 없는 것임도 의식하게 된다. 중국어음운학 연구자는 칼그렌을 알고 있고, 당시 연구자는 쉐퍼를 알고 있으며, 중국사 연구자는 프랑케와 크릴의 이름을 알며, 샤반느, 펠리오, 마스페로, 레게, 웨일리의 이름은 중국연구자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직까지 통시적이고 체계적으로 서양의 중국연구를 접하기는 어려웠었다.
둘째, 방법으로서의 문헌학이 강조됨으로써, 사회과학적 중국연구를 역사적 시각에서 조망해 볼 수 있게 한다. 전통적인 중국학과 문헌학의 관계는 허니에 의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전통적으로 중국학은 씌어진 기록을 통한, 전근대 중국문명에 대한 인문주의적 연구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므로 1838년경에 만들어진 ‘중국학자(sinologist)’라는 명칭은 역사적으로 ‘문헌학자(philologist)’와 등가(等價)였다. “만약 중국학이 무언가를 의미한다면, 그것은 중국 문헌학을 의미한다”고 프레데릭 모트는 숙고 끝에 말한다. 볼프강 프랑케는 “최근까지 중국학은 대체로 중국 문헌학과 동일시되었다”는 승인을 덧붙인다. 한때 하나의 분과학문(문헌학-역자)과 하나의 연구분야(중국학-역자) 사이에서 굳게 확립되었던 이 연관은 물론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5)
문헌학과 중국학 사이의 연관이 유효하지 않게 된 것은 냉전 이후 서양의 중국연구에서 페어뱅크의 중국사 연구를 비롯한 사회과학적 관점의 득세로 인해서였다.
‘지역 연구’로서의 현대 중국에 대한 이 관심은 1959년 당대(當代) 중국에 대한 합동위원회의 창립과 함께 제도적으로 정점에 도달하였다. 미국학술단체협의회와 사회연구협의회에 의해 조직된 합동위원회는 포드재단의 재정적 지원을 받았다. 한 연구자에 따르면, “합동위원회가 교수진의 연구와 대학원생 훈련을 위해 지급한 보조금은 포드재단과 미국정부의 더 많은 제도적 보조금과 함께, 동시대 중국의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미국의 연구의 첫 세대를 자극하는 것을 도왔다.”
페어뱅크에게, 지역연구의 부상, 그리고 사회과학의 역사학에의 결합은 학문의 길에서 대안적 경로라기보다는 궁극적 종착점이다.······페어뱅크의 추종자들이 보기에는, 중국학이 누렸던 소수의 학문적 미덕은 이제 새로운 범학과적이고 또 모든 것을 포괄하는 ‘아시아 연구’ 속에 통합되었기 때문에, 중국학(Sinology)이라는 용어는 중국에 대한 퇴행적 사유와 철지난 연구법들때문에, 심지어는 현대 정치사의 분야에 있는 그것들때문에도, 많은 미국인 학자들에 의해 유보된다.(6)
미국에서 지역연구가 중국연구를 포함한 아시아연구에서 영향력을 확대한 후, 한국에서의 중국연구 현황 역시 이와 같은 변화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이는 학과제도의 변천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문과대학(혹은 인문대학) 소속의 중어중문학과들이 중국학과, 중국문화학과, 중국어중국학과 등으로 명칭을 변경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바로 중국연구의 방향전환을 반영하고 있다. 중어중문학과가 아닌 중국관련 학과들은 중국어와 중국문학을 가르치는 중어중문학자와 역사학, 경제학, 사회학, 정치학 등을 가르치는 사회과학자가 함께 교수진을 구성하고 있고, 커리큘럼 역시 중국 어문학과 중국관련 사회과학이 혼재되어 있다. 이는 한 세대 전의 중어중문학과가 가지고 있던 커리큘럼이 시의성(時宜性)을 상실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일 터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시대를 거스르는 책이다. 하지만 이제 그 시의성에 대해 되물을 계기를 가지게 되었다. 최근 중국인 연구자들이 (대륙인이건 대만인이건 혹은 해외 화교이건) 전통적인 중어중문학과에서 중시하던, 문헌학을 강조하는 서양 중국학의 성과들을 번역하고 연구하여 소개하는 것은 중국의 정체성 확립과도 관련되어 있다. 이런 정체성 확립은 중국성(Chineseness)의 추구와도 맥락이 닿아 있는데, 서양 문화·문명과의 본질적 차이의 확립이 그 중요한 내용이다. 구체적으로는 서양의 고전에 필적하는 중국 고전의 위상회복(7)과, 서양 언어·문자와 큰 차이를 보인다고 간주되는 중국어·한자가 중국성의 표상이 된다. 중국대륙에서의 이른바 ‘문화언어학’적 관점, (단어(詞)본위가 아닌) ‘자본위(字本位)’의 중국어법연구, 페놀로사-파운드 한자론(8)의 자의적(恣意的) 이용, 서양 근대 음성중심주의 대 중국의 비음성중심주의 등과 같은 언설들은 그 구체적 표현이다. 중국 언어와 문자의 특수성을 둘러싼 이런 접근태도가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려면, 중국연구자는 문헌학이라는 학문적 방법을 장악할 필요가 있다. 1차자료의 이용에 있어서, 이런 저런 입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자의적(恣意的)이고 선택적으로 사용되는 중국 고전과 언어문자론에 대한 검토가 가능해야 하는 것이다.
정밀한 번역과 텍스트 해설, 비평과 감상, 역사음운학과 역사언어학, 고문헌 판독과 금석학, 마지막으로는 저 없어서는 안 될 도구인 목록학을 포함하는 문헌학적 분석의 기술들과 대상들에 대한 확실한 기초공사가 대학원 연구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본서는 문헌학을 필요할 때마다 이용될 수 있는 일단의 기법으로서 다룬다. 내가 문헌학이라는 분과학문의 ‘대의(大義)’를 제출하는 것은 더 많은 학생들을 중어중문학과로 전과(轉科)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9)
중국연구에서 문헌학의 귀환은 단순히 중어중문학과라는 제도를 위한 것이 아니다. 문헌학적 접근은 중국연구를 지리적(지역적) 대립이라는 틀에서 바라볼 때(냉전이 그 큰 원인이다)는 볼 수 없던 중국과 서양, 그리고 세계의 나머지 지역과의 교류의 역사를 볼 수 있게 해 준다. 중국어와 서양 언어로 이루어진 교류의 흔적들은 문헌학적 기반 위에서만 접근가능하다. 서양의 텍스트가 중국어로 번역되고, 중국의 텍스트가 서양어로 번역되는 과정에 대한 검토는 문헌학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필자의 관심사와 관련하여, 본서에서 소개하는 문헌학이 특별히 빛을 발한다고 생각되는 곳 한 군데는 표의문자(ideography)론을 둘러싼 논전이다. 피터 알렉시스 부드버그와 역사학자 헐리 글레스너 크릴의 논변을 통해 진행된 이 논쟁은, 일본 학자 시라카와 시즈카의 천황제 한자학, 중국의 문화언어학, 그리고 데리다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나탄나 (비)음성중심주의 등의 언설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위해서도 중요한 것을 시사하고 있다. 허니가 인용하는 부드버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크릴의 「중국 표의문자의 성질에 관하여」라는 논문은-역자) 중국 문자의 특징인 독특한 ‘표의문자성’을 증명하고 또 고한자(古漢字)에 대한 ‘음운학적’ 탐구와 맞서 싸우려는 잘 표현되었으나 매우 헛된 시도였다. 그 논문에 부친 펠리오 교수의 논평들은 문자를 살아있는 언어로부터 이혼시키는 크릴 박사의 습관을 비난한다. 저자의 불가능한 테제와 별개로, 우리는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문자의 발전에서······인류의 나머지로부터 자신들을 분리시키는 어떤 신비하고 비의적인 원리들을 따랐다고 주장하는, 이 논문 전체에 걸쳐 분명히 보이는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대륙의 중국학연구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일반적 경향에 개탄하여야만 한다. (10)
허니는 “불행히도 몇몇 현대 중국학자들은 다른 문자체계들에 비해 중국문자체계에······독특한 지위를 부여하면서, 중국어를 하나의 ‘표의’ 문자, 즉 언어의 소리의 개입 메카니즘 없이 글 쓰는 이의 관념을 자형적으로(graphically) 재현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쪽을 택하였다”고 개탄한다. 허니는 한자의 특징을 나타내기 위해 부드버그가 ‘표어문자(表語文字, logographic)’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고 소개하며, 버클리대학에서 부드버그의 전임자인 조지 알렉산더 케네디(11)의 다음과 같은 말을 소개한다.
모든 학생은 한자(漢字)들이 항상 또 다소 무차별적으로, 다른 동음자(同音字)들로부터 ‘가차(假借)된다’는 것을 배우게 되며, 만약 이것을 생각하게만 된다면 하나의 글자에 관해 상대적으로 영원한 유일한 것은 그 글자가 상징하는 소리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결국, 적절한 정보는, 언어에서 하나의 특수한 소리에 의해 무엇이 의미되는지를 말해준다.·····근본적으로 말해, 어떤 특수한 글자가 사용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12)
한자의 (비)표의문자성을 둘러싼 논의는, 연구자에게 고전중국어 독해력뿐 아니라 음운학과 문자학에 대한 지식까지 요구한다. “어떤 유형의 전통 중국 자료들에 대한 연구의 문제든간에 너무나 만만치 않기 때문에 대학원 훈련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 평생에 걸친 헌신이 요구된다.”(13) ‘평생에 걸친 헌신’이 필요하다는 것에 수긍할 수 없을 때, 하이데거 식의 어원조작은 피하기 어려운 유혹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문헌학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사실은 이데올로기 그 자체인 것의 극단적인 예로서, 앞서 언급한 시라카와 시즈카의 한자론이 있다. 너무나 독특한 주장으로 인해 다른 한자학 연구자들에게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고 오히려 비전공자들에 의해 인용되곤 하는 시라카와는 소위 한자문화권론의 극단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보자.
대전전(大戰前)까지는 이런 같은 한자를 사용하고 있었다. 조선도 중국도 대만도 일본도, 모두 같은 한자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명대(明代)에는, 일본의 어부들이 바다를 건너 상대편 연안에 가서, 필담(筆談)으로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의 일본에 대한 문헌에는, 그러한 어부들이 듣고 이야기한 것이 매우 많다. 대역(對譯)의 사서(辭書)에도 표준어가 아니라 방언이 그대로 일본어로서 다루어지고 있다. 그들은 한자를 쓸 수 있습니다. 한자는 공통어이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시대였다. 그것이 한자문화권이었다.
여기까지는 한국인들이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한자라는 문자를 매개로 하여 필담이 가능한 세계. 많은 이들이 상식처럼 생각하고 바람직하다고까지 생각하는 모습. 그러나 시라카와에게 한자라는 공통의 문자유산에 대한 이야기는 불행히도 역사적 비약을 가져오는 실마리일 뿐이다.
그러나 아편전쟁에서 청국(淸國) 내부의 부패가 분명해지자, 그 후 약 5년 사이는, 아시아를 지목하여 자신들의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하여, 유럽과 미국이 남김없이 아시아에 쇄도하였다. 그리고 조선도 동북(東北)(14)도 이윽고 러시아에 의해 취해지게 되었다. 러시아는 동북에 들어와 있었고, 대련(大連)에 항구를 열고 있다. 조선에 대한 압력도 매우 큰 상태였다. 조선이 위험하면 일본도 위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은 부득이하게 아득히 먼 동북에 출병하여 러시아를 쫓아내었다. 이것은 아시아의 민족에 있어서는, 아시아를 구하는 성전(聖戰)이다, 이것으로 유럽과 미국의 침략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일 것이다. 일본은 그 방패가 되어 오는 것일 것이다.
이 역시 한국인들이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단지 중국학연구자가 아니라 일본 우익 정치인들에게서 들을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이 차이이긴 하지만.
그러면 로마자화된 언어와 한글화해버린 글자를 다시 한번 회복하려고 한다는 움직임이 혹 나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자문화권으로서의 동양이라는 것이 회복된다면, 거기서 유럽연합같은, 아시아 연합체라는 것이 형성될 것이다. 남으로부터 모욕을 받는 일이 없는, 하나의 지역문화라는 것이 부활할 것입니다. 아시아는 일찍이 내부에서 싸운 일은 없는 지역입니다. 아시아의 민족이 서로 미워하고 서로 싸운다는 것 같은 전쟁을 한 일은 없다. 대외전쟁이라는 것은 거의 없었던 것입니다. 이 150년 전까지 없었던 것입니다.······그 동아시아의 세계가 붕괴한 것은, 열강의 침입에 의한 바가 있긴 하지만, 스스로 한자를 방기한다는, 아시아의 민족의 자각의 부족때문이기도 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중국에서는 간체자(簡體字), 우리나라에서는 한자제한(漢字制限), 조선에서는 한글화하여, 본래 고전의 갖가지 자료는 전부 읽을 수 없는 것입니다.(15)
이와 같은 유치한 수준의 변종 동문동종론(同文同種論)은 너무나 노골적으로 대동아공영권의 재림을 주장한다. 중국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한 간체자 사용과 한국에서의 한글 사용을 비정상으로 간주하는 심태는 한자를 일본어화하고 일본식 훈독(訓讀)을 정상으로 여기는 발상 위에서 가능한 것이다. 이런 사이비 문헌학은 냉전(冷戰)과 궤(軌)를 같이 하는 미국식 지역연구보다도 더 중국학 연구자를 긴장케 한다. ‘중국 없는 중국학’(16)인 일본 간가쿠(漢學)는 그 자체가 분석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한자문화권’의 한국 중국학이 동질감을 느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서양중국학사인 허니의 책은 중국학의 방법인 문헌학을 강조함으로써, 기존의 중국연구들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는 사회과학적 모델의 객관성과 ‘진리’에 의문을 표하면서, 문헌학자의 진리를 이렇게 표현한다. “이 경우 진리는 엄격하고 또 충실하게 응용된 방법에 의해서 혹은 멋진 통찰의 순간에 파악된 계시에 의해 도달되는 어떤 ‘객관적 실제(實際)’가 아니다. 즉 진리는 정직한 방식으로 사용된 방법 자체이다.” “문헌학자들에게 진리란 문헌학적 연구법의 최고의 기법들과 방법들의 잘 통제된 객관적 적용이다.”(17) 진리에 대한 이와 같은 정의에 일정 부분이라도 동의하고, 또 문헌학적 방법을 통해 중국연구의 정당한 시각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제 아무리 “향수(鄕愁)에 찬 보수주의, 구식 연구법들, 그리고 전통주의의 강압으로 명성이 자자한 중국학”(18)이라 하더라도, 금후(今後)의 중국연구자들에게 매력을 발산할 것이다.
<주>
(1) 張西平 主編의 <國際漢學>(大象出版社)과 中國人民大學出版社에서 발행하는 <世界漢學>이 대표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정기간행물이다. 張西平 主編, <西方漢學十八講>(外語敎學與硏究出版社, 2011)과 黃長著 外編, <歐洲中國學>(社會科學文獻出版社, 2004) 등은 중국 학자가 정리한 서양 한학 통론이다. 大象出版社의 當代海外漢學名著譯叢과 學苑出版社의 列國漢學史書系는 서양 한학에 대한 국가별 정리를 보여준다.
(2) 현재 중국에서는 서양의 전통적인 중국연구인 Sinology를 한쉬에(漢學)라고 부른다. 물론 중궈쉬에(中國學)라고 불러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학자들도 여전히 존재해서 완벽한 의견일치는 보지 못했다. 이 ‘한쉬에’가 청대(淸代) 학술에서 송학(宋學)의 반대개념으로 사용된 한학(漢學)과는 다른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한학’이 한문(漢文)과 유교경전 연구를 통해 이루어지던 전통적인 학문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필자는 번역에서 ‘한학’ 대신 ‘중국학’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중국연구 커뮤니티인 ‘시놀로지’의 다른 이름이 ‘중국학센터’인 것도 이런 사정을 말해 주고 있다.
(3) 원서에서는 편집상의 문제로서 책 앞부분의 목차와 실제 본문 속의 목차에 차이가 있다. 이 글에서 제시하는 부(部)와 장(章)은 내용에 맞추어 번역자가 새로이 설정한 것이다.
(4) 이와 관련해서는 桑兵, <國學與漢學: 近代中外學界交往錄>, 中國人民大學出版社, 2010을 참조할 수 있다.
(5) David B. Honey, Incense at the Altar: Pioneering Sinologists and the Development of Classical Chinese Philology, New Haven, Connecticut: American Oriental Society, 2001, xi.
(6) David B. Honey, 위의 책, pp.276-277.
(7) 이는 80년대 이후 국학붐(國學熱)으로 나타났다.
(8) 어네스트 프란시스코 페놀로사(Ernest Francisco Fenollosa)의 원고를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가 수정한 The Chinese Written Character as a Medium for Poetry에 나타난 한자론이다.
(9) David B. Honey, 위의 책, xxii.
(10) David B. Honey, 위의 책, p.298.
(11) 조지 케네디는 앞서 언급한 페놀로사-파운드 한자론에 대한 문헌학적 입장에서의 가장 강력한 비판자이기도 하다.
(12) David B. Honey, 위의 책, pp.299-300.
(13) David B. Honey, 위의 책, xxii.
(14) 중국의 동북지방 곧 만주.
(15) 이상은 白川靜, 文字講話IV, 平凡社, 2005, 284~286면. 이와 비슷한 언설은 시라카와의 만년(晩年) 저작들 도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시라카와가 고대 유교와 도가사상을 마치 샤마니즘처럼 묘사하는 것 역시, 고대 중국 사상을 일본식 신도(神道)의 변종인 듯이 묘사하려는 것이라는 혐의를 두지 않을 수 없다.
(16) 溝口雄三, 方法としての中國, 東京大學出版會, 2000, 133면. 간가쿠를 포함한 일본 중국학에 대한 대한 더욱 최근의 비판적 접근은 孫歌, 「日本漢學的臨界點」, 主體彌散的空間, 江西敎育出版社, 2002, 참조.
(17) 이상, David B. Honey, 위의 책, pp.338-339.
(18) David B. Honey, 위의 책, pp.338-339. p.341.
* 이 글은 <제단의 향-선구적 중국학자들과 중국고전문헌학의 발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될 David Honey의 저서(글항아리, 근간)에 대한 번역자의 서평입니다. copyrights@aporia.co.kr ([서평] Aporia Review of Books, Vol.2, No.8, 2014년 8월, 최정섭, 연세대 중어중문학과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