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모든 것이 섹시해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돌 스타나 배우들은 말할 것도 없고, 거리는 성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광고로 넘쳐나고, 일반인들도 성적으로 매력적인 상대가 되기 위해 다이어트와 운동에 매달리고 성형수술도 불사한다. 아동과 청소년들도 이용하는 인터넷 매체의 광고판에는 노골적인 수위의 기사와 사진들이 민망함을 넘어 짜증날 정도로 도배되어 있다. 인터넷 게임의 그래픽과 만화에서는 비현실적으로 성적인 모습을 한 여성 캐릭터들이 유저들을 유혹한다. 영화나 드라마의 노출수위는 이제 무감각해질 만큼 높아졌고, 일상의 언어에서조차 섹시라는 단어가 너무도 친숙해져 버렸다. 지천으로 널린 성적 이미지와 성담론이 우리의 삶을 채우고 조건 지운다. 우리가 강박적일 만큼 성에 집착하는 것은 단지 상업적인 목적에 의해 자극적으로 부풀려진 것일까? 아니면 우리는 본질적으로 지극히 성적인 존재, 즉, 호모 에로티쿠스인가? 만일 그렇다면 이토록 성적 이미지와 담론으로 가득 채워진 환경 속에서 우리는 물 만난 고기처럼 자유롭고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 

문제는 “강박”에 있다. 이렇게 24시간 신체적 정신적으로 성적인 자극에 노출되어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 우리 사회는 도덕과 윤리와 순결, 나아가 가정의 가치와 부부간의 신뢰와 정절에 대해 끊임없이 강조한다. 인류가 역사상 이렇게 역설적인 상황에 처한 적이 있었을까? 이는 마치 굶주린 사람들을 산해진미로 가득한 식탁에 앉혀놓고 금식이 정신과 육체건강에 좋으니 그냥 보고만 있으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욕망과 유혹에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 훌륭한 인간이라 주장한다. 백 보 양보해서 이 모든 성적 이미지와 컨텐츠의 홍수가 상업적인 목적에 의해 과다하게 조장된 것이라 하자. 마케팅의 본질은 인간의 심리적 취약성을 파고 들어가 상품을 구매하도록 유혹하는데 있다. 그렇다면 인간 본성의 가장 취약한 부분은 “성”이라는 것, 그리고 그 성적인 것이 유형무형의 상품을 파는데 가장 효과적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결국 우리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지극히 “성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지극히 성적이면서 동시에 성적인 면을 통제하고자 갖은 노력을 다하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현재 몸담고 있는 한국 사회의 현주소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과 사랑 결혼에 대한 이율배반적인 태도와 그 모순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는 중 우연히 만난 흥미진진한 책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크리스토퍼 라이언과 카실다 제타가 공저로 펴낸 “Sex at Dawn”이라는 책이다. 직역하면 “동트는 성, 또는 발생기의 성” 정도로 해석될 것인데, 인류의 원초적 성적 특성에 관한 연구다. 저자들은 진화인류학과 진화심리학, 영장류학, 해부학 등의 전거를 들어 호모사피엔스에서 현생 인류까지 수 백 만년에 걸쳐 진화해 온 인류의 성적 특성에 대해 논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이 파격인 것은 그 동안 우리가 의심없이 믿어온 성과 결혼, 가족, 나아가 공동체와 문명에 대한 사고와 담론에 내재되어 있는 모순들을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성에 관한 우리의 허위의식의 형성을 인류가 걸어온 발자취를 되짚어 가며 한 꺼풀씩 벗겨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의 존재와 삶 자체를 다시 들여다 보고 앞으로 나갈 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다. 

2010년 처음 출간된 이후 학계와 문화계 전반에 돌풍을 일으켜 온 이 책은 2011년 <왜 결혼과 섹스는 충돌할까: 현대 성생활의 기원과 위험한 진실들>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지만, 반향은 그리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여러 요인이 있었겠지만, 일단 번역이 아쉽다. 상당히 민감한 주제인 만큼 원저자들은 단도직입적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미국독자들이 친숙한 여러 사건과 문화적 지식을 동원하여 반어법과 비유 등을 풍부하게 사용하여 가벼운 문체로 자신들의 주장이 불러올 수 있는 거부감을 최대한 줄이려 노력한다. 하지만 한국어 번역은 유머와 반어법이 어우러진 구어적 문체를 살리지 못하고 내용 전달에만 급급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어색한 표현들이 많아 가독성이 떨어지고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부분과 오역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결국 필자도 한국어판을 접고 영어 원서를 선택하게 되었다. 이 책이 가진 파급력과 주제의 깊이로 볼 때 좀 더 많은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수정된 개정판 나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인간의 성에 대한 기존의 담론을 완전히 뒤엎기 때문이다. 정말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기존 담론을 간단히 요약해 보자. 

위의 내용처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담론들을 “Sex at Dawn”은 조목조목 근거를 들어가며 문제를 제기하고 모순을 지적한다. 요약해 보면, 흔히 우리가 믿고 있는 일부일처제의 결혼과 여성의 성에 대한 통제, 태어난 아이의 부계혈통을 중시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인류가 농업정착생활을 하면서 생겨난 사회적 상황에 따른 변화일 뿐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지상에 출현한 것은 수 백 만년 전이지만, 불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140만년 전으로 추정된다. 해부학적으로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수렵채집 생활을 한 역사를 최소 20만년으로 잡더라도, 농업정착생활은 지난 1만년으로, 인류의 장구한 역사에서 볼 때 가장 최근에 발생한 사건이다. 따라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연구를 하자면 적어도 인류가 살아온 세월의 95%를 차지하는 수렵채집집단의 생활형태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그들의 주장에는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저자들이 책을 통해 주장하는 핵심은 인간의 성이 “생식”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집단의 화합과 결속을 다지기 위한 관계망을 구축하는데 효과적으로 진화했고, 그 결과 우리는 너무도 성적인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인간의 성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는 획기적인 것으로 저자들 스스로 갈릴레이의 지동설에 비유한다. 당시의 지구 중심의 우주관에 대해 갈릴레이가 주장한 지동설(revolution)이 갖는 혁신적 성격에서 영어의 혁명(revolution)이라는 단어가 유래되었듯이, 크리스토퍼 라이언과 카실다 제타가 주장하는 인간 성의 본질이 “생식”이 아니라 “사회적”이라는 것은 진정 “혁명적”인 발언이다. 이 책은 출간된 이후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크리스토퍼 라이언은 토크쇼와 강연으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유튜브에 “Sex at Dawn”이나 “Chris(topher) Ryan”을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관련 동영상만도 수 십 개를 찾을 수 있고, 구글 검색을 하면 수 백만 개의 관련항목을 볼 수 있다. 이들의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 “Sex at Dusk”(2012)라는 제목의 책이 출판되기도 했다. 

이들의 주장은 획기적일 뿐만 아니라 상당히 도발적이다. 아무리 현대 사회가 성적으로 개방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인간의 성에 대한 금기와 사랑, 결혼, 가정에 대한 도덕적 종교적 믿음과 신념을 가지고 있다. 문화와 전통은 다르더라도 인간에게 있어서 성은 사회를 유지하는 규범과 도덕성의 근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자식 사랑, 가족간의 화합, 부부간의 정절 등 전통사회의 가치들의 바탕에는 다음과 같은 기본 명제가 깔려 있다. 일부일처제(또는 일부다처제)가 가장 자연스런 결혼형태다;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정만이 정상적인 것이다; 자녀의 부계혈통의 중요성이 당연하다; 남성의 성적욕망은 절제가 어려운 반면 여성은 선천적으로 성적으로 소극적이고 무관심하다 등이 그것이다. 크리스 라이언과 카실다 제타의 “Sex at Dawn”은 우리가 당연시 해 왔던 이러한 전제들을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보다 넓은 시각으로 조망하며 얼마나 모순되고 이율배반적인지를 보여준다. 

인간의 성이 집단 구성원 간의 협력관계를 공고히 하는 “사회적”인 기능을 중심으로 진화되어 왔다는 이들의 주장도 획기적이지만, 이 책에서 더 크게 평가하고 싶은 부분은 이러한 주장을 거시적인 안목에서 일궈내는 폭넓은 시각이다. 다윈의 진화론이 인간을 만물의 영장의 자리에서 끌어내려, 동물과 연장선상에 있는 자연의 일부로 보는 혁신적인 주장이었지만, 인간을 기타 영장류와 분리해 생각하는 인간중심적 시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인류를 homo-로 원숭이류를 pan-으로 구분해왔는데 최근에는 그러한 분류가 의미 없는 것으로 비판받고 있다.) 18세기 이후 발달한 과학은 인간은 동물과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이고 도덕적이고 이성적이며 결혼을 하고 부부가 자녀를 키운다는 것을 선험적 진리로 전제 하고, 그에 맞춰 모든 것을 설명하려 했다.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원숭이의 한 종, 즉 가장 고등한 3종의 영장류 중 하나라는 것을 인정하기에는 아직도 심리적 저항선이 남아있다. 그 중 한 예가 결혼이다. 결혼을 가장 보편적인 인간사의 하나로 전제하기 때문에, (일부 사회에서 행해지는 일부다처제를 예외로 하고) 대부분의 인류사회는 일부일처제를 향해 진화해 왔다고 보고, 모든 남녀관계, 특히 남녀간의 성관계를 그에 맞추어 설명하려 했다. 심지어는 동물들의 짝짓기조차 일부일처제의 시각으로 관찰하여 “정절을 지키는” 암컷, 또는 “난잡한” 관계 등 가치평가가 포함된 언어로 묘사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상황에서 “Sex at Dawn”의 저자들은 인간의 성을 인간의 가장 가까운 영장류인 보노보와 침팬지와의 연장선 상에서 이해하려고 시도한다. 특히 성적인 행태가 인간과 더욱 비슷한 보노보 집단의 성적 메커니즘에서 농업정착 생활 이전에 작은 무리를 이루어 유랑하며 수렵채집 생활을 했을 선사인류의 성생활의 일면을 보고자 했다. 널리 행해진 침팬지 연구가 인간 사회와 본성을 이해하는데 많은 영감과 자료를 제공해 온 데 반해, 보노보는 해부학적으로 인간과 거의 흡사하지만 비교적 최근에 들어서야 연구가 시작되었다. 보노보는 섹스 원숭이라 불릴 만큼 활발한 성적 행동양식으로 주목을 끈다. 깨어있는 동안 거의 온 종일 섹스를 한다고 할 만큼 성적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무리 내의 폭력이나 위계에 따른 강제가 거의 전무하다는 점이다. 침팬지가 수컷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라면 보노보는 나이든 암컷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모계사회적 특성을 띤다고 볼 수 있다. 수컷들 사이에 암컷을 차지하려는 경쟁이 없기 때문에 보노보 사회는 평화롭고 이타적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성은 무리 내의 결속을 다지고 스트레스 지수를 낮추고 친밀감을 표시하는 중요한 사회적 행위이다. 인간과 침팬지가 성문제를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면, 보노보는 폭력을 성으로 해결하는 것 같다는 견해다. 즉 구성원 간의 끊임없는 섹스가 무리 내의 갈등과 분쟁을 방지하고 평화롭게 협력하게 만드는 주요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저자들은 침팬지나 보노보처럼 작은 무리를 지어 유랑생활을 했던 선사인류의 삶은 흔히 생각되듯이 기아와 폭력, 전쟁으로 점철된 비참한 것이 아니라, 보노보 집단처럼 고도로 발달한 성적 행동양식을 통해 서로의 결속을 다지는 이타적인 집단 생활을 영위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우리가 흔히 가지고 있는 선사인류의 생활에 대한 이미지는 헐벗고 굶주리고 질병과 전쟁(싸움)에 시달리는 생활에, 거칠고 폭력적인 남성과 그에 종속된 두려움과 추위에 떨며 웅크리고 있는 여성과 더러운 아이들이다. 이 같은 이미지는 원시인류의 상태를 “만인 대 만인의 투쟁”으로 묘사한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와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반해,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인류는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본 토마스 맬더스(Thomas Robert Malthus)의 주장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저자들은 선사 인류의 생활에 대해 널리 퍼져있는 이 같은 생각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전쟁은 얻을 것이 있어야 하는데, 사바나 지역에서 유랑하던 선사인류들에게는 뺏고 뺏길 만한 재산이나 물건이 없었디. 저장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그날 얻은 식량은 즉각적으로 소비하지 않으면 썩거나 버릴 수 밖에 없었다. 유랑하는 무리에게 지켜야 할 땅이나 집이 있었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전쟁을 했겠는가? 여자? 여자를 빼앗기 위해서라면 두 가지 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첫 째, 여자를 통해 인구를 증식시키는 것이 유리할 때에 성립한다. 하지만 유랑의 무리에게 걷지도 못하는 어린아이들은 짐이 될 수 밖에 없고, 무리의 구성원 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무리의 숫자가 커지면 이동과 상호작용의 편의성을 위해 두 개의 작은 무리로 분화되는 것이 보통이다.) 많은 자녀를 축복으로 여기는 것은 농경과 군사력을 위해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하게 되는 농업정착생활 이후에 생겨난 시각이다. 두 번째로, 여자를 가축이나 노예와 같이 가치있는 소유물로 여기는 인식인데, 농업정착 이전의 사회에서 여성은 채집을 통해 스스로 충분한 식량을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남성에 종속될 필요가 없고 여성을 소유물로 여기는 관점 역시 농업정착 생활을 하기 시작한 이후에 등장했다는 것이 반론의 근거다. 

최근 발표된 고고학적 인류학적 자료들에 근거해 저자들이 그려내는 선사 인류의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여유롭고 평화로운 모습이다. 성경의 창세기에 따르면, 인간은 원래 낙원에 살고 있었지만, 원죄로 인해 낙원에서 추방되었고, 여자는 산고의 고통을 남자는 식량을 얻기 위해 힘들여 경작을 해야 하는 벌을 받았다고 한다. 이들이 추방당한 낙원의 이름은 “garden of Eden (에덴 정원)”이다.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인류는 정원에서 추방당한 것이 아니라 정원으로 추방되어 졌다고. 왜냐하면 “정원”은 인위적인 경작행위에 의해 다듬어진 터전이다. 타락 이전의 인류는 힘들여 경작을 할 필요 없이 자연이 주는 혜택을 누리며 풍요롭게 살았다. 그리고 그들에겐 성에 대한 수치심이 없었다. 성경에 따르면 타락 이후 인류가 마주한 현실은 성적인 수치심과 땅을 경작하는 고된 노동이었다. 성경에서 묘사하는 인류의 낙원은 농업정착 이전 사바나에서의 풍요롭고 성적으로 자유로웠던 수렵채취 집단의 생활에 가까워 보인다. 

 “Sex at Dawn”의 저자들은 인류사의 가장 커다란 사건은 농업정착 생활의 시작이었고, 이로서 모든 것이 달려졌다고 주장한다. 최근까지도 우리는 인류의 농업정착과 더불어 문명이 발생하였고, 인간은 비로소 기아와 질병과 전쟁의 비참한 환경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배웠고 그렇게 믿어왔다. 하지만 “총, 균, 쇠”의 저자인 제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농업정착은 인류가 선택한 가장 치명적인 생활양식이며, 이를 통해 질병과 기아가 발생하고, 여성과 노예의 종속이 시작되었고, 집단으로서의 인류는 문명을 발전시켰지만, 개개인은 아직도 농업정착이전 선사인류의 건강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같은 연구이론에 기초하여 Sex at Dawn의 저자들은 인류의 성 또한 농업생산과 더불어 가장 심하게 통제된 영역이라고 본다. 잉여생산물과 더불어 사유재산과 사회 계급이 분화되었고, 이것을 자기 자손에게 물려주어 소유를 영속화 하기 위해 부계혈통이 중요해졌다. 그리고 그 결과 여성의 성에 대한 엄격한 통제가 나타났다는 논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저자들은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결혼과 성에 관련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난 1만년 동안 정교하게 통제되고 다듬어져 온 결혼과 성에 대한 전통적인 담론의 껍질을 벗겨내고 이데올로기적 허위의식에 가려져있는 원초적인 인류의 성 (“sex at dawn”)의 모습을 찾아보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 인류학과 진화심리학, 해부학, 영장류학 등의 최근 논의들을 망라하며 기존 담론의 모순을 짚어낸다. 

이렇게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결혼과 가정의 위기의 근본적 원인을 찾아보는 과정에서 성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과 담론들이 많은 경우 종교적 교리처럼 무조건 믿고 받아들여야 하는 선험적 진리로 주어졌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또한 저자들이 지적하듯이 사회적 문화적으로 교육되고 통제되지 않는 인간성(human nature)의 민낯을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지라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부족적 편견(tribal prejudice)”를 넘어서서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찾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당면한 문제의 진정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실마리를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당연시 해왔던 것을 새로이 보기는 쉽지 않다. 위대한 다윈조차 자신이 속했던 19세기 영국사회의 성적인 편견의 틀을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했다. 책의 저자인 크리스토퍼 라이언과 카실다 제타는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라이언이 걸어온 길은 일반적으로 학자들이 걷는 길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그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20년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다. 알래스카에서 연어를 손질하고, 방콕에서 창녀들에게 영어를 가르쳤으며, 멕시코에서는 호신술 강사로 일하기도 했다. 마침내 미국으로 돌아와 방송대학에서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간의 성에 대해 연구하면서 만난 현재 부인이자 이 책의 공저자인 카실다 제타는 남아공 출신의 의사이다. 미국 주류 학계에서 벗어나 살아온 이들의 삶의 궤적이 이들로 하여금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주제를 볼 수 있게 하는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사실 이 책을 발견하고 서평을 쓰겠다고 마음 먹은 지 2달이 지났다. 오랜 시간 동안 글을 정리하지 못한 이유는 게으른 탓도 있지만, 책이 제공하는 새로운 시각을 통해 우리 사회가 경험하는 현실을 끊임없이 되돌아 보게 되었고, 주변의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더 많은 문제와 생각들이 가지를 치다 보니, 막상 몇 쪽의 짧은 서평으로 갈무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심에 제대로 글을 맺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생각이 다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몇 편의 글로 나누어 담아 보고자 한다. Homo Eroticus 1의 후속으로 쓰려는 글은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다룰 예정이다.

1. 왜 인간은 이토록 성적인가?

2. 일부일처제가 가장 이상적인 남녀의 결합형태인가?

3. 부모와 그들이 낳은 자녀로 이루어진 가정이 인류사회의 보편현상인가?

4. 결혼, 가정, 외도, 이혼 등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