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학자”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는가? 혹시 좋은 대학을 나오고, 경제적 이익을 하찮게 여기고, 험한 고생은 하지 않으며, 보통 사람들이 알아듣기 어려운 이야기를, 점잖은 말만 골라서 쓰는 “논문”이란 것을 쓰며, 세상 일에 초연한 그런 사람을 떠올리는가? 한때는 이런 이미지가 통했겠지만, 이제는 이런 관념조차 낡아버린 것 같다. 21세기도 10년 이상이 지난 지금, 후기 자본주의가 극에 달해, 거의 파탄 지경에 들어섰음에도, 새로운 세대가 자꾸 태어나고, 소비는 이루어져야 하는 까닭에, 마치 산소호흡기를 장착하고 수혈을 받으며, 중환자 상태로 유지되는 것이 현 체제(體制)의 현실이라고 한다면, 너무 심한 말일까? 이런 세상에서, 사람들이 학자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어떤 지침 같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 건 분명해 보인다. 학자들 스스로도 대개 그런 사명을 포기했으며, 자기가 소속돼 있는 분야의 이권을 위해, 제도 속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은 채 살아가는 게 보통이다.
물론, 학자들이 이렇게 왜소하고 옹졸해진 데는 이유가 있다. “학자”란 간단히 말해, 생업전선에 뛰어들지 않고 배움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생업전선에 뛰어들지는 않더라도 먹고는 살아야 하겠기에, 사회에서 인정하는 직업을 갖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인구가 증가하고 고학력자가 넘쳐, 직장이 줄어들고, 본의 아니게 잠시나마 학자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이 글에서 말하는 학자 개념은 직업개념이 아니므로, 대학원생도 학자로 분류함). 학자가 가질 수 있는 직업은, 대개 교수나 강사, 교사 등 교육직이다. 교육직은 분업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과의 존속을 위한 “비빌 언덕”이 되는 까닭에, 인간과 사회에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을 성찰해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 제도가 키워낸 관행에 따라 내용을 구성하게 마련이다.
그러니 대체로 학자들은, 학자로 오랜 세월을 보낼수록, 사회가 요구하는 바가 옳은지 여부를 반성하고 질문하기보다, 그 사회의 요구에 순응하게 된다. 사회의 요구는, 학자들에게, 일정한 생활의 안정을 제공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도 받는, 제도적 일자리를 추구하게 한다. 학자들은, 강사보다는 교사, 교사보다는 교수가 되려고 한다. 누가 교수가 되는가? 좋은 대학을 나오고, 미국 유학을 다녀오고, 높은 학위를 받아 고상한 논문을 많이 쓰고, 적당히 학계를 넘어서 줄도 댈 줄 아는 사람, 혹은 그런 것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여건을 갖춘 사람이 대개 교수가 된다.
이런 사회 현실에서, 10대 후반과 20대 초의 상당 기간을 떠돌이로 보내고, 대학 졸업장 하나 없는 사람이, 미국 아니 세계 최고의 대학이라고들 사람들이 떠받드는 하버드와 예일의 교수를 지내고, 거의 칠십 문턱에서야 하버드에서 은퇴했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안 믿겨지겠지만, 그런 사람이 있었다. 프로이트의 충실한 제자였던, 아니, 프로이트의 이론뿐 아니라 그의 삶 전체를 마음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였던, 독일 출신의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1902~1994)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제1차 세계대전과 독일의 패전을 지켜보며 사춘기를 보냈고, 김나지움을 졸업한 뒤에는 떠돌이 예술가로 유럽을 떠돌며 20대 초반을 보냈다.
그랬던 그가, 1925년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서 프로이트의 딸이며 역시 정신분석학자였던 안나 프로이트(1895~1982)를 만나, 그곳 정신분석학 연구소에서 심리분석과정을 이수하게 되었고, 1933년 이후엔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 보스턴에서 최초의 아동 정신분석학자가 된다. 그 이후의 이력은, 가히 환상적이다. 하버드, 예일, 버클리 의대 교수, 저명한 정신의학 연구기관인 오스틴 릭스 센터 근무, 1970년 하버드 은퇴, 1973년 미국 인문과학 기금(The National Endowment for the Humanities)에서 최고의 강의에 수여하는 영예인 “제퍼슨 렉처러(Jefferson Lecturer)” 선정 등등. 내가 이번에 소개하려는 책은, 독일의 개신교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1483~1536)의 업적과 그 이면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한, 에릭슨의 {청년 루터}(1958)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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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학자들은, 특히 제도에 얽매어 있는 경우, “자유로운 영혼”이어서는 안된다. 사회가 학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근원적 반성이 아니라, 주어진 제도 안에서 세부적인 지식을 관행에 따라 생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에릭슨의 스승이었던 프로이트는, 젊은 시절 생리학 연구자로서 이러한 관행적 지식 생산에 기여하다가, 실존적 선택을 통해 생리학을 포기한 뒤, 관행과 관행 외부의 두꺼운 막을 뚫고 독자적 영역을 개척하여, 인간 심리의 미개척지인 무의식을 발견했다. 에릭슨은 프로이트에 대해 존경의 염을 넘어 거의 동일화되어 있다 싶을 정도로 동지적 의식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프로이트의 저작이 전체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성욕 중심주의”로 축소되어 비판받는 데 대한 극도의 감정이입적 연민을 보여주는 데서 잘 나타난다.(1)
그런데, 왜 루터인가? 사실 루터와 프로이트는 시간적 간격도 너무 클 뿐만 아니라, 얼핏 보면 둘 사이엔 별 공통점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독일어로 주로 저술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사실 이것은 우연에 가깝다. 루터는 중세 기독교의 조직 형태인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벗어나 개신교라는 새로운 기독교 형태를 수립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고, 프로이트는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인간 심리에서 성욕에 지배되는 무의식의 영역을 발견하고, 인간의 삶은 유아기의 환경이 그의 무의식에 영향을 미침에 따라 크게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낸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에릭슨은, 아마도 제도권의 학자로 시작했더라면 결코 발견하지 못했을 두 사람의 공통점을, 인간의 성장 과정에 대한 깊은 고민과 천재적인 통찰로, 발견해버리고 말았다. 그 공통점이란 무엇인가?
에릭슨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면, 두 사람의 공통점은, “각자의 시대에 가장 더러운 직무를 기꺼이 떠맡겠다는 암울한 의지(a grim willingness to do the dirty work of their respective ages, p.9)”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의아하게 여길 독자들이 꽤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일단 아주 전형적인 고루한 학자의 반응: 하버드대 교수까지 지냈다는 사람이 책에서 루터와 프로이트의 과업을 표현할 때 “더러운(dirty)”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하다니! 점잖지 못하다. 학계를 잘 모르는 사람은,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옹졸한가 잘 믿어지지 않을지도 모르나, 학문에 꽤 오래 종사하며 살아온 나로서는, 너무나 잘 믿어진다. 나 개인적으로도, 에릭슨의 단어 사용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다음으로, 더럽다는 말이 이해는 되는데, 루터와 프로이트의 직무의 어떤 점이 더럽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되는 독자들이 있으리라. 아마도 프로이트보다는 루터에 대해서 더 그러할 것이다. 특히 두 사람에 대한 어느 정도의 사전 지식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 루터의 어느 부분을 에릭슨이 더럽다고 한 건지가 궁금할 것이다. 프로이트야 본디 성욕을 중요시했고, 상식적으로 멀쩡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잘 인정하지 않으려는 인간 내면의 추악한 부분과 그 영향을 까발리려고 작심했던 사람이니, 고결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럽다고 표현할 수도 있으리라. 헌데, 루터는 성직자요, 하느님을 믿는 성스러운 종교생활을 했던 사람이 아닌가? 루터가 개신교를 열었다는 사실이 역사의 치욕이라는 뜻인가? 에릭슨이 무슨, 보수주의 가톨리시즘의 신봉자라도 된단 말인가?
결코 아니다. 사실 많은 보통 사람들은, 루터의 세계사적 업적에 대한 추상적인 설명만을 학교에서 딱딱한 방식으로 전해 들었을 뿐, 루터 개인이 어렸을 때 어떻게 살았고, 어떤 고민을 했으며, 어떤 심리적 과정을 거쳐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 사실, 루터를 적대시하는 가톨릭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를 자기들의 선배로 떠받드는 개신교도들조차도 “인간 루터”를 잘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가톨릭은 루터를 거짓말쟁이이자 반항자로 욕하기에 바쁘고, 개신교도들은 그를 성스러운 인물로 미화하기 바쁘다. 에릭슨은 개신교의 분위기에서 성장한 듯하지만, 결코 거기에 몰입하지 않고, 마치 성욕과 자기정체성 때문에 고민하는 사춘기 청소년을 정신분석하듯, 최대한 객관적으로, 루터의 어린 시절을 추적한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청년 루터”는, 성욕 때문에 극심한 내적 고뇌를 겪던 영혼이었다. 그는 청년 시절에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소속 수사(修士), 즉 가톨릭 수도승이었다. 기독교는 인간 영혼의 내적 순결을 무엇보다 중시하며, 그러한 순결한 영혼을 하느님께 전적으로 바치는 것을 요구한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율만으로도 부족해, “어떤 여자에게 음란한 생각을 하면 이미 그 여자를 간음한 것(마태 5:27~28)”이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지극한 순결의 요구인 동시에, 인간을 자기 내면의 끊임없는 감시자로 살도록 만들어 버렸다. 게다가 루터는 수도원에 들어갈 때, 자식의 세속적 성공을 강렬하게 원하던 부친으로부터 “너는 성욕 때문에 수도원 생활에 실패할 것”이라는 거의 저주에 가까운 악담을 들은 터였다. 게다가 그는, 비록 촌스럽고 투박한 성격이긴 했지만,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더 집요하고 철저했다. 에릭슨의 분석이다:
루터는 늘 성욕으로 인한 불안과 긴장상태에 놓여 있었으며, 신경과민이었던 루터는 성욕이 일으키는 이러한 불안과 긴장을 곧바로 성적인 죄악과 동일시했다. 성 문제로 인한 이러한 신경증적 긴장은, 단순히 청소년기의 정상적인 성인 남자라면 누구나 갖게 마련인 자연적 성 충동의 압박이라는 차원을 넘어섰다. 루터보다 남자답고 덜 신경증적인 사람이라면, 금욕과 해소가 필요한 상황들을 스스로 잘 판단해낼 수 있으리라. 그러나 루터의 성 문제로 인한 고뇌는, “너는 결코 금욕생활을 못견딜 것”이라고 비아냥대는 친부의 예언과, “넌 해낼 수 있다”고 하는 수도회 선배들의 격려 사이에서 분열된 탓에, 이미 생물학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함의를 갖게 되었다. (p.158)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루터를 바라보는 에릭슨의 시각은, 다분히 환자를 대하는 정신의학자의 그것임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 이 책에 대한 개신교 측의 반응은 별달리 나온 것이 없는 것 같고, 몇몇 언급들은 대체로 “저명한 심리학자도 루터의 업적이 탁월하다는 것을 알아보았다”는 식의, 다분히 아전인수식 반응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책에 제시된 인간 루터의 모습은, 자신의 정결한 영혼을 추구하려는 강렬한 욕망과, 그것을 이룰 수 없게 하는 육신 사이에서 철저하게 분열되어, 고통받고 미칠 지경이 되어가는 불쌍한 사춘기 소년일 뿐이기 때문이다. 몽정이나 자위행위로 인한 죄의식 때문에 고통받는 남자의 영혼에서 성스러움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단순히 루터는 “성충동의 압박을 받아 신경증을 앓는 환자의 사례”에 머무르지 않는다. 충실한 개신교도들과 다른 지평에서, 에릭슨은 루터의 위대함을 끌어내는 것이다.
3
앞에서 암시했던 것처럼, 에릭슨은 하버드의 교수까지 지냈고, 심리학에 관한 수십 권의 책을 냈으니, 도저히 “학자” 이외의 인간 분류 항목으로는 분류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에릭슨은 이 시대의 학자들과 다른 어떤 반골적 기질이랄까, “공부만 한 학자라면 도저히 가질 수 없을 것 같은 드넓은 시야”를 책의 도처에서 보여준다. 사실, 그가 스물다섯의 나이에 친구의 권위로 빈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안나 프로이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는 아마도 평생을 떠돌이 예술가로 살면서, 학문과는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확실히 이런 이력을 지닌 사람 가운데, 제도권에서 이른바 성공(?)한 학자가 되고, 에릭슨 정도의 세계적 지명도를 얻은 사람은, 내가 아는 한, 달리 없다.
근대의 학문은, 어떤 제도(institution)라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학문은 모름지기 대학에서 하고, 지식은 논문이라는 형식으로 산출되어야 한다. 각 지식은 분과별로 분류되며, 학제적 연구가 있다고는 해도, 대체로는 자기 연구대상을 엄격히 제한해야 하고, 방법이나 대상을 지나치게 확대하면 안된다. 이러한 학문 제도에는 나름의 타당성 또한 있겠지만, 결국 자본주의 사회의 분업화라는 전체적인 흐름의 산물이고, 학문 또한 “아무런 편견 없이 진실을 탐구하는 행위”가 아니라 “제한된 판도에서 요구되는 지식을 산출하는 작업”으로 변질된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소크라테스는 철학과 교수가 아니었으며, 스피노자는 대학교수직을 거부했다. 서양철학사에서 교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무리 올라가더라도 칸트(1724~1804) 이전으로 넘어가기 어렵다.
에릭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물론 정신의학과 심리학 교수였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일 뿐, 그는 {청년 루터}라는 책을 쓸 때, 단순히 심리학적 저술을 한다는 생각으로 쓰지 않았다. 이 책의 부제목은 “정신분석학과 역사(Psychoanalysis and History)”이다. 그는 루터를 분명히 정신분석했고, 일종의 신경증 환자로서 간주했다. 그러나, 그가 루터에 주목한 것은, 단순히 개인적 고통을 앓는 환자여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루터가, 이 책의 다른 한 축을 이루는, “역사”를 창조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루터를 매우 존경하는 개신교계에서는, 이러한 점이 잘 보이지 않았다. {청년 루터}의 진가를 한국 개신교계에서 알아볼 수 없었다는 점, 또한 한국의 정신의학계에서는 이처럼 풍성한 인문학적 심리분석 저술을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한국의 학문 세계가, 분업화된 서구 학문의 외형적 상태를 수입한 채 정체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루터가 로마 가톨릭을 버리고 개신교라는 새로운 종교 형태를 창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로 분석될 수 있을 것이다. 부패한 교황청이 면죄부를 과도하게 판매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교황의 개입을 싫어했던 독일 제후들이 루터를 비호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모두 일리 있는 설명이다. 그러나 에릭슨은 이러한 외적인 현상에 주목하지 않고, 오직, 루터가 가톨릭에서 이탈하는 전 과정 내내, 그의 내면에서 벌어진 일에만 주목한다. 그 과정에서 에릭슨은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루터가 자신의 내적 고뇌를 끝까지 추구한 결과, 가장 파괴적인 죄(간통, 강간, 가정파괴, 치정살인 등)의 잠재적 가능성이 되는 “성적 유혹”을 처리하는 데에서, 로마 가톨릭이 내놓은 “고해성사”라는 해결책이 근본적으로 아무 효과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앞서 나는 에릭슨이 자유로운 영혼이고, 학자답지 않게 넓은 시야를 가졌다고 했다. 그는 참으로 세상의 온갖 제도 바깥에 있다는 듯이, 아주 천연덕스럽게, 이런 말을 한다: “우리의 이데올로기는, 우리가 진실이라고 간주하는 것의 구조에 의문을 제기하고 분석하는 일을 늘상 막는다. 그래야만 우리는, 우리가 사실상 불가피하게 믿을 수밖에 없었던 것을, 자발적인 선택으로써 믿게 됐다는 허구를, 유지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는, 다른 체제에서 움직이는 사람한테서는, 논리적인 결함이나 진실되지 못함이나 수동성 같은 결함들을 찾아내려고 혈안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와 다른 시대나 다른 국가의 사람들이, 자기 나름의 이데올로기적 수동성 안에서 평화를 찾고, 꽤 자유로우며, 생산적인 일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감각적 자극의 노예인 우리들이,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 수백만 가지의 인상들과 기회들의 덫에 걸려, 우리가 사실은 자유로운 존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p.135).”
나는 사실 이 구절을 읽으며, 약간 소름이 끼쳤다. 제아무리 인간의 말할 수 없는 부분까지를 모두 까발린, 프로이트의 제자라 하지만, 저런 말을 태연하게, “학술적인 서적”(2) 속에서 쓸 수 있다니! 예컨대 위의 “이데올로기”에 자본주의를 대입하고, “다른 체제에서 움직이는 사람”에 북한 사람을 대입해 보라. 한국 사람이라면 이 구절이 훨씬 더 잘 이해될 것이다. 또한, 그렇게 대입해서 이해할 경우, 국가보안법 위반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적(利敵) 표현물” 내지 “적의 논리에 동조하는 표현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에릭슨이 말하는 것은, 그 정도로 무시무시한 얘기는 아니다. 에릭슨을 이해하려면, “이데올로기”의 자리에 개신교를 대입하고, “다른 체제에서 움직이는 사람”의 자리에 로마 가톨릭의 권위에 순종하던 중세 서유럽인들을 대입하면 된다. 그리하여 이 책은, 중세의 시작과 끝을 알렸던 로마 가톨릭의 성립과 몰락을 다루어야 했고, 그 과정이 가장 극적으로 전개된 공간인 “루터의 내면 심리”, 즉 “루터의 영혼”을 탐사해야 했던 것이다.
4
영혼의 순결, 하느님에 대한 절대 순종, 그분의 아들이 우리를 위해 대신 피흘리셨다는 것을 사실로 믿는 것. 서양 기독교를 떠받드는 절대 원리들이다. 이러한 원리를 위협하는 것은 모두 죄가 되는바, 이 중에서 인간의 육신에 가장 강력하게 느껴지는 것은 성욕에서 비롯되는 죄이다. 성욕은 몸을 가진 인간의 존재조건일 뿐만 아니라, 그 결과가 그 어떤 다른 욕망들보다도 치명적이고, 파괴적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간음뿐 아니라 “간음하려는 마음”까지 죄라고 규정하신 것은, 호의적으로 해석하자면, 그러한 성욕의 파괴적 성격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배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연약한 인간으로서, 예수님과 논쟁을 벌이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그럴 힘도 없다. 그러나 연약한 인간으로서 또다른 해석을 할 자유는 있다고 생각한다. “간음하려는 마음 또한 죄”라 한다면, 인간은 누구나 죄인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러한 애매한 일반론으로 달려가서, “그러니까 신앙이 필요한 거야!”라고 윽박지르는 많은 기독교인들을 나는 보았다. 만약에 예수님의 이 말씀의 의도가, 자신의 내적 욕망에 대한 강력한 감시자를 설치해 두려는 것이었다면, 그 의도는 충분히 달성되고도 남았다. 루터같은 고지식하고 순진한 영혼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해 인해 엄청난 괴로움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에릭슨에 따르면, 젊은 루터는 죄와 유혹이 없는 순결한 상태, 구원의 상태를 갈망했다. 그러나, 몽정(夢精) 혹은 억눌린 정액이 느닷없이 방출되는 현상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루터는 이런 비자발적 사정(射精)을 겪고 괴로워하면서, 그러한 해프닝 속에, 자기도 모르는 어떤 무의식적 의도, 죄에 까깝고 유혹에 굴복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되었다. 즉 나의 의지는 성욕을 억제하려 하지만, 내 안에 또다른 나, 나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내가 있어서(정신분석학의 무의식), 성적 쾌락을 즐기고 있다면? 자기도 의식할 수 없는 죄의 상태가 내 안에 있다면, 고해성사라는, 무의식을 파고들지 못하는 외적 제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루터는 지나치게 죄에 민감한 사람이었고, 아주 사소한 사건들 속에서도 죄를 찾아내, 그것을 삶의 주된 분위기로 만들어 버렸다. 그는 죄를 고백하면 할수록 자기가 죄가 많다고 느꼈고, 사소한 영혼의 혼탁함까지 찾아내, 몇 시간이고 고해를 했으며, 고해가 끝난 뒤에도 돌아가다가 다시 죄를 생각해 내어, 다시 고해 사제를 찾아가 괴롭혔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도달한 민감한 독자라면, 분명 루터와 프로이트의 공통점을 찾아냈을 것이다. 그것은 두 사람 모두, 자발적 의지를 넘어선 내면세계 즉 비자발적인 욕망의 크기를 측정하기 위해, 자기를 지배하는 괴물과도 같은 무의식 앞에, 혈혈단신으로 마주 섰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앞에서 에릭슨이 말한 바, 루터와 프로이트가 떠맡았다고 한, “가장 더러운 직무”의 참뜻이다.
아닌게아니라, 에릭슨은 정신분석과 수도생활의 공통점을, 다음과 같이 정면으로 거론한다. “정신분석이란 매우 격렬하고 근본주의적인 치료법이며, 그러한 분석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에게만 도움을 줄 수 있다. 정신분석은 일종의 고행을 포함한 수련방법과 같다. 정신의 후미진 곳을 파헤치고 일깨우는 일,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의식의 통제로부터 완전히 제거되었을 터인 어둡고 추악할 수 있는 부분들을 드러내는 일, 말하자면 긁어 부스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p.153).”
사실, 기독교에서 모든 인간을 죄인으로 규정한 뒤로, 민감한 인간은 우울한 존재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죄짓고 사는 인간이 무슨 낯짝으로 즐거움을 누리고, 발뻗고 편하게 살 수 있겠는가! 이 세상은 죄로 가득찬, 가급적 빨리 떠나야 하는 정거장에 불과하다. 진짜 세상은 저기 피안에 있고,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찬미의 대상이 된다. 고대 로마의, 중세 마녀재판의, 그리고 18~19세기 조선의 많은 기독교 순교자들이, 이러한 마음으로 죽어갔다. 그러나 모두가 이렇게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하느님 또한 인류가 이런 지경에 처하기를 원하신 것은 아닐 것이다. 중세 가톨릭 사회도 일종의 체제요 시스템이었던 이상,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라고 윽박지르는 것뿐 아니라, 그러한 죄인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탈출구를 제공해야 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죄를 고해 사제에게 고백하는 “고해성사”라는 제도였던 것이다.
그러나 고해성사 제도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기의 모든 죄를 말로 표현해내는 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불완전하다. 게다가 루터는 자기의 인생을 하느님께 바친 수도자였고, 극도로 순결을 갈망했다. 죄의 근원인 마음으로 일부러 파고들어가, 죄가 없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 꽁꽁 숨겨진 죄의 뿌리를 훤하게 밝혀내야 하는 것이다. 에릭슨의 말을 빌면, 그것은 “행동의 의심스러운 동기를 늘 체계적으로 감시해야 하며, 그러면서도 그 의심스러운 행위 동기가 소심함이나 자기모멸 같은 피학증적 심리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즉 죄와 유혹을 집요하게 의식하며 벌이는 싸움이되, 추악해 보인다고 눈감아서도 안되고, 자각하며 이겨내야 한다고 강요하는, 피말리는 싸움(p.153)”인 것이다.
5
루터는 어린 시절부터 부친에게 매를 맞으며 자랐고, 모친 역시 루터의 작은 잘못조차 심하게 나무라면서 죄의식을 심어 주었다고 한다. 그는 어떤 “작은 죄인”이라는 생각에 일찍부터 빠져 있었고, 늘 자기의 의도를 의심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게다가, 독일 중부지방의 음울한 기후와, 광부였던 부친의 미신적 믿음에까지 영향을 받아, 악마를 머릿속으로 생생하게 그려내는 능력(?)까지 가지고 있었다. 부친은 세속적 성공뿐 아니라 집안 전체의 지위 향상을 원했던 탓에 똘똘한 아들 루터에게 법률 공부를 시켰고, 그의 도움을 받아 도시 부르주아 사교집단에 진입하기를 원했다. 그러던 루터가, 자기 눈앞에서 떨어진 벼락을 경험한 뒤에 수도사가 되기로 결심을 했으니, 부친은 그런 아들의 선택을 축복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아들에게 해서는 안될 말까지 했다. “네가 받은 것은 하느님의 성령이 아니라 악령”이라고. 이것은, “너는 성욕 때문에 수도원 생활에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말보다 더 심한, 거의 저주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루터는 이 두 마디를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에릭슨의 말에 따르면, 루터에게는 “두 하느님”이 있었다고 할 정도로, 부친의 영향력이 컸던 것이다. 실제로 루터는 부친의 이 말들 때문에 수도원 생활을 제대로 해 나갈 수가 없었다. 성령을 받아 기쁨에 넘치는 순간, “이게 혹시 악마가 보낸 환상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느껴 다시 좌절하는 패턴이, 지속됐던 것이다. 결국 가톨릭 사제 서품을 받아 첫 미사를 집전하는 날, 성체(가톨릭에서 예수의 몸에 해당된다고 믿는 밀떡)를 집어드는 예식을 행하는 도중, 죄의식이 맹렬하게 일어나 불안발작을 일으켰고, 미사를 망치고 말았다. 상황은 최악이었다. 부친이 초대를 받아 미사에 참례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친은 노발대발하여 아들의 동료와 선배 수도사들에게 고함을 쳤다. “봐라. 너희들이 내 아들을 망쳤다. 내 아들은 결코 수도사가 될 수 없는 놈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 이후의 사정을 간단히 이야기하겠다. 루터는 아버지의 저주 섞인 예언이 사실이라는 확신이 굳어졌고, 수도원 생활은 지옥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때, 기적처럼, 수도원의 대선배 슈타우피츠 신부(1468~1524)가 그의 상처를 (근본적으로는 아니지만) 치유해 주며, 그에게 적절한(?)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수도회 내의 사고뭉치가 되어버린 루터에게 비텐베르크 대학의 신학교수직을 맡도록 한 것이다. 루터는 죄의 유혹에 찌들어 있는 자신은 그 직을 맡을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지만, 슈타우피츠는 루터에게, “하느님 나라에는 자네같은 사람도 필요하네”라며 그에게 한사코 직책을 맡겼다. 슈타우피츠는 루터의 죄에 대한 고뇌 속에 어떤 대단한 종교적 힘이 잠재돼 있음을 알았고, 그의 학문적 역량을 높이 사서, 정신적 위기에 처한 루터에게 때마침 알맞은 위치를 부여했던 것이다(p.166).
이제 루터는 본격적으로 성서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종교개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린 이후에도, 평생 그 대학의 신학교수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시편과 신약성서를 연구․강의하며, 가톨릭에 맞설 수 있는 영혼의 주체적이고도 강력한 힘을 발견한다. 루터의 깨달음은, 인간은 외적 제도(율법)를 통해서는 순결하게 될 수 없으며(즉 구원받을 수 없으며), 오직 자기의 영혼 스스로가 격렬한 참회를, 죽음에 근접할 정도로 철저하게 행할 때에만, 그리하여 하느님의 아무 대가 없으신 은총를 받을 때에만, 순결하게 될 수 있다(구원)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매우 미묘한 두 가지의 결합을 느끼게 된다. 그 두 가지란 다름아닌, “영혼의 주체성”과 “하느님의 대가없는 은총”이다.
에릭슨은, 루터가 이러한 깨달음을 얻게 된 데에, 분명히 생리학적 계기가 있었을 거라고 믿는다. 그에 따르면 루터는 평생을 변비로 시달렸다고 한다. 여기서 변비는, “고해성사로는 도저히 근원적으로 해소될 수 없는 죄의식에 짓눌려 고통받는 루터의 영혼”에 상응한다. 그러던 그가, 어느날 변소에서 변비가 낫는 체험을 하게 되었는데, 그 순간 죄의식에서 근원적으로 벗어나는 길을 깨달았다고 해석한다(p.205). 그 길이란, “하느님의 은총”이다. 은총은 절대자가 피조물에게 내리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역시 중세의 가톨릭이 그렇듯, 인간의 위치는 여전히 수동적인 것이 아닌가? 맞다. 기독교를 버리지 않는 한, 서양인들은 근원적 능동성을 회복할 수 없다. 서구문명 내부에서는, 니체(1844~1900)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무모하게 맞서다 장렬하게 전사했고, 기독교의 위상은 여전히 공고하다. 단, 개신교가 가톨릭과 달라진 점은, 죄인이 은총을 받을 때에, 어떤 외부자(가톨릭 성직자)나 제도(고해성사)의 개입을 거부하고, 죄인의 영혼이 능동적으로 참회하고 그 은총을 주체적으로 원한다는 데에 있다. 즉 기독교의 골격을 유지한 상태에서, 개인의 주체성에 줄 수 있는 최대한의 권한을 부여한 것이, 개신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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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슨은 루터의 혁명이 세계사적으로 필연적이었고, 역사적 정당성을 갖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러한 혁명을 실행해 간 인간 루터의 모습은, 비참할 정도로 고통스럽고 지저분한 내적 투쟁으로 가득차 있었음을 밝혔다. 경건한 개신교인이라면, 이미 위에서 인용한 그의 설명 방식에 불쾌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 영혼의 참모습일 것이다. 다음과 같은 에릭슨의 말이, 상처받았을지 모르는 교인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가 직접 체험할 필요가 없는 위대한 인물들의 광기는 물론, 우리가 사랑하는 영웅들이 받은 고통까지,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의 인생은 매우 짧지만, 우리가 선호하고 지지하고 위대하다고 인정하는 사람들의 영향은, 우리 세대를 넘어서 서너 세대 혹은 그 이상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p.149).”
15세기 중엽 이후, 세계사의 전환은 신속했다. 상업이 발달하면서 중세의 장원체제는 흔들렸고, 새로 발굴된 희랍어와 라틴어 문학 작품의 사본들이 기독교 이전의 세계관을 소개하며 기독교적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인류를 각성시켰다. 가톨릭 교회는 교황청을 정점으로 한 부동산 투기회사 노릇을 하고 있었고, 이탈리아 이외의 지역에서 봉건 영주들과 백성들 모두를 부글부글 끓게 하고 있었다. 아마 루터가 아니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가톨릭의 개혁은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개혁을 시작할 용기는 위대한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에릭슨의 다음 문장들은, 아마도 루터를 포함한 위대한 선각자들에 대한 최고의 찬사일 것이다: “사회가 원기를 되찾으려면, 그 사회에 이물감을 느끼는 존재가 나와야 한다. 아무도 기존의 체제가 정착시킨 타협의 패턴에서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고립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심지어 자기의 세속적 욕망 자체와 싸우면서까지, 우리의 실존이 놓인 근본문제에 맞서는 독창적인 길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활기를 찾을 수 없고, 기술이나 사회구조의 변화에 상응하는 인간의식의 확장을 이끌어낼 수 없다(p.150).”
가톨릭 성직자의 육체적 순결서약 역시, 오늘날은 거의 잊혀졌지만, 커다란 중세적 질곡의 하나였다. 중세 수도원 터의 지하를 파 보면 갓난아이들의 유골이 산더미처럼 발견된다는 이야기가 아주 허무맹랑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세속기관으로서 대학도 없고, 책이라고는 성서 필사본이 대부분이었던 중세에, 가톨릭 성직자들은 당대의 “유일한 지식계급”이었다. 그들은 사실상 지역의 경제권을 쥐고 있었고, 세속권력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는 사실상 행정권까지 휘두를 수 있었다. 그런 막강한 세속적 권한을 가진 자들이, 종교적 순결서약을 지켰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들은 많은 여자를 취했고, 그들의 성적 비행은 18세기에 나온 작품인 <캉디드>에까지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가혹한 평가 같지만, 중세 가톨릭은 그 자체로 거대한 위선의 체제였다고 해도, 변명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중세 성직자들의 죄악일 뿐만 아니라, 성욕의 파괴적 힘을 두려워했던 나머지 그것을 겉으로 통제하고 억압하려고만 했던, 어리석은 제도를 고안한 인류 자체의 한계였을 것이다.
그러니, 루터가 성적 문제에서 그토록 고민을 했고, 그 문제에서 풀려남으로써 종교개혁을 완성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에릭슨은 이렇게 말했다: “루터는, 성충동이 인간 존재 전반에 늘 넓게 스며들어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는데, 이는 분명히 프로이트를 앞선 것이다. 성교나 자위를 포함한 성적 행동을 성공적으로 억눌렀다고 해서, 그것이 성충동에 대한 확고한 승리의 증거라고 볼 순 없다고, 루터는 주장했다. 순결을 지키는 것은 가능한 일이지만, 그것은 극도로 희귀한 재능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져야만 진정한 순결이라고 루터는 보았다. 순결은 정녕 위대하고 좋은 것이나, 성적 흥분에 지배당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나쁘거나 결함이 있는 자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p.162).” 물론 에릭슨은, 루터가 성욕의 힘에 패배한 것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성욕과 같은 본원적 문제에서, “근거없는 낙관주의(성욕은 별 것 아니며, 정복할 수 있다)”나 “제도화된 자기기만(나는 고해성사를 했으니 순결해졌다)”으로 자기의 정직성을 훼손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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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의 개념으로서 종교개혁이란, 종교에서 개개 인간이 자기주도권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루터는 인간이 보편적으로 놓여 있는 조건을 새롭게 규정했다. 에릭슨에 따르면, 루터가 가톨릭과 투쟁하면서 인간조건에 관한 독자적 견해에 도달한 과정은,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정신과 의사가 감지해 내는 역동적인 변화의 양상과, 놀랄 정도로 비슷하다. 루터가 죄의식 과잉의 신경증에서 벗어나 신앙의 힘으로 재생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루터 개인의 자기주도권 회복이 열렬하게 이루어졌음을 확인하게 된다(p.206).” 그래서 루터는 성욕의 압박이 다가올수록, 그것을 죄의식의 근원으로 삼지 않고, 자기 자신이 더욱 철저히 하느님께 의지해야 하는 존재임을 자각하게 하는 계기로 삼았다. 이렇게 생각을 바꿈으로써, 그는 정신적으로 건강해졌고, 마침내 가톨릭 수도원을 나와, 결혼도 하게 되었다. “너는 성욕 때문에 수도생활에서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부친의 예언이 실현된 것이다. 실제로 루터는 주의에서 결혼을 결심한 이유를 묻자,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건 농담이 아니었다고, 에릭슨은 극구 강조한다.
그러나, 루터가 해결책을 찾았다고 해서, 우리의 이야기가 바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불의하고 부패한 가톨릭을 쓰러뜨리고, 내 영혼을 제약하는 모든 외적 권위를 무너뜨렸으니, 이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는가? 우리는 아니라는 것을 금새 알 수 있다. 사르트르가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았다”고 말했듯이, 적당한 자유는 인간에게 해방감을 주지만, 완전한 자유는 인간을 처참한 공포로 휘감는다. 물론 하느님이 곁에 계신다. 그러나, 하느님은 고해성사처럼 구체적인 형상을 갖지 않는다. 그러니까 고해성사로 다시 돌아가자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고해성사가 하나의 제도이듯, 회개를 개인에게 맡기는 것 또한 하나의 시대적 제도요, 제도인 이상 한계를 갖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분명 루터는, “당신의 의로움으로 저를 구원하소서(in iustitia tua libera me, 시편 71:2)”라는 성서 말씀을 주체적으로 체험하고 난 뒤, 가톨릭이 불필요하게 요구하던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느님의 의로움은 처벌하는 의로움이 아니라, 열성으로 회개하는 자를 구원하는 의로움이라는 것이 그의 해석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성서를 숭상하고, 고해소와 고해 사제를 물리쳐 버린 근대적 인간(개신교인)은, 자기가 어떤 인간인지를 스스로 발견하고, 자기 영혼의 깊이를 스스로 탐사해야 하는 부담을 짊어진다. 가톨릭의 고해성사와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기만(欺瞞)이 끼어들 수 있다.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남을 속일 수 있는 여지가 너무나 많고, 마음을 좀만 무디게 하면, 자기 자신조차 속일 수 있다.
나 자신은 개신교인이 아니지만, 뜻있는 개신교인들이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확실히 오늘날 개신교에는, 중세 가톨릭이 하느님보다 교황을 더 숭배했던 것처럼, 하느님보다 외적 성장을 더 숭배하는 분위기가 엿보인다. 그 부작용을 부패라 말하든 타락이라 말하든, 그건 중요치 않다. 이 모든 현상의 원인은, 종교개혁이 인간에게 영혼의 통제권을 되돌려준 데 따른, 필연적인 결과임을 알아차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루터처럼 끈질기고 철저하게 자기를 감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 영혼의 잘못이나 더러워진 부분을 관대하게 눈감고, 심지어 자기를 속이는 경향까지 있다. 영혼의 검증을 개인에게 모두 맡겨 버린 개신교는, 이러한 자기기만과 나약한 영혼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길이 없다. 그리고 한가지 더, 이러한 진정한 신앙은 종교적 광신과 잘 구별되지 않고, 다원주의 사회를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 우리는 이미 그로 인한 참혹한 결과들을 숱하게 보아 왔다.
에릭슨은 정신분석학자다. 그는 인간의 자기기만을 파헤치고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프로이트의 제자다. 그러니, 그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새겨들어야 하지 않을까? “감정이나 도덕적 문제를 다루는 심리치료사나 전문 상담사들은, 인간이란 존재가 대부분, 자기들이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게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을, 경험상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은 진실을 말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거짓말을 꾸며내려고 발버둥치다가 자기도 모르게 진실을 발설하기도 한다. 따라서 진실을 말한다(meaning it)는 것은, 단지 자기의 신조를 표명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진실을 말하는 것은 활력을 회복하는 일이며, 개인의 원초적 생명력을 승화시키는 데 성공했음을 뜻한다. 진실을 말하고 병들 수는 없는 것이다(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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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책 소개를 빙자한 이 긴 이야기를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나 개인의 소박한 소망은, 이 글이 종교 문제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내용 모두를 본의 아니게 비판하게 되었지만, 나의 본뜻은 다른 데 있었다. 나는 세계의 모든 언어가, 그 모든 세부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소리”라는 점에서 하나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세계의 모든 종교는, 그 모든 세부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고통을 경감하는 데 도움을 주려는 어떤 마음씨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하나라고 믿는다. 에릭슨은 결코 신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대학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루터를 청소년기의 정체성 위기(identity crisis)의 한 사례로 다루는 논문을 기획했다가, 루터라는 인물의 크기 때문에 결국 책으로 다룰 수밖에 없었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이것이 진정한 학문의 힘, 진실을 추구하려고 다른 모든 세속적 업무를 포기한, 진정한 “학자”의 힘이 아닐까?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이런 학문의 힘이었다.
따라서, 이 글을 세상에 내보내며 독자를 제한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내 개인적 소망은, 이 글을 루터에 맹목적 애정을 갖고 있는 개신교도들보다, 어떤 학문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인문학도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것이다. 나는 인문학이 인간의 고통을 경감하는 데 도움을 줘야 한다고 믿는다. 눈물 흘리는 사람에게 내어주는 값싼 손수건을 만들기보다, 근원적으로 고민하고, 그 고민 앞에 놓인 것이 언어 장벽이든 기존 학문 분과의 장벽이든 결코 굴하지 말고, 지혜롭고 단호하게 극복하는 미래의 인문학자들이 이 글을 읽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지금은 돌아가신 에릭슨 선생의 가르침이 나로 하여금 이 글을 쓰게 했고, 나 또한 그의 글을 읽으면서 인문학자로서 조금은 더 성장했기 때문이다.
종교 문제에 대해 사족을 덧붙이자면, 나는 오늘날 시행되는 가톨릭 고해성사의 유효성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둔다. 고해성사를 하는 사람을 “영혼의 자유를 사제에게 내맡긴 노예”라고 비난하는 것은, 과도하다. 종교 과잉이었던 루터의 시대에는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르나, 오늘날 그런 말을 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범죄다. 개신교에 대한 비판도 마찬가지다. 나는 개신교에 대해 어떠한 원한도, 악감정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그것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개인의 내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인지를 사람들이 깨닫고 있는지 의구심을 갖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가톨릭에 대해서 그랬듯, 이에 대해서도, 똑같은 이유로 더 이상의 언급을 삼가고자 한다.
내가 기독교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또 있다. 덴마크의 기독교 실존주의자 키에르케고르(1813~1855)가 만년의 루터를 비판하면서 모든 말을 해 놓았기 때문이다. 역시 에릭슨을 인용하는 형태로 제시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루터는 생애의 몇 년간은 진정으로 이 세상의 소금이었으나, 그의 후반 생애는 부패해 버렸다. 그는 개혁자가 가져야 할 자질의 수준을 전반적으로 떨어뜨렸으며, 후대의 이른바 ‘개혁자 행세를 즐기는 집단’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루터는 자신의 힘을 교황이라는 세속권력을 비판하는 데 집중했고, 그 결과 인간의 영혼 속에 있는 악이라는, 진정한 적에게 쏟아야 할 종교개혁 에너지를 허비해 버렸다. 루터는 기존의 것에 반대는 할 줄 알았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진 못했으며, 이로써 말년에는 거의 복지부동의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p.240~241).”
“루터는 어떤 의미에서 너무 쉽게, 혼자만의 힘으로 성공을 이뤘다. 그가 쟁취하려고 분투했던 그 영혼의 자유는, 삶을, 특히 삶의 정신적 부분을, 이전의 그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게 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알았어야 했다. 그는 완전한 영혼의 자유를 얻지 못했으며, 영혼에 작용하는 세속적 권력을 교체해, 상대적인 정신의 안일함을 얻었을 따름이다. 물론, 만약에 루터가 진정으로 영혼의 완전한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에 몰두했더라면, 그는 결코 세속적 명망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고, 교황의 권력과 절대적 고립감으로 인한 이중의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아무도 루터의 편이 되지 않았을 터인데, 왜냐하면 아무도 자기 인생이 힘들어질 것을 알면서 다른 사람을 따르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p.241).”
PS. 이 책의 인용 면수는, Young Man Luther, New York: Norton, 1993(reissued)에 따랐다. 번역도 모두 내가 새로 했다. 독자들은 도서관 등에서 이 책의 국역본을 찾을 수 있을 것지만, 나는 이를 밝히지 않을 생각이다. 유감스러운 이야기지만, 원본을 조금 더 빨리 읽는 데 부분적으로 도움을 줄 뿐, 인용할 수 있는 수준의 정확한 문장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의 독서를 어느 정도 도와주신 셈이 되는 번역자에 대해 이런 언급을 해야 하는 상황이 괴로울 따름이다. 한국어와 한국의 학문 수준이 더욱 향상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나 또한 분발을 다짐한다.
<주>
(1) 예컨대 다음과 같은 구절이 그렇다: “루터의 신학은, 교황과 상인들을 모두 휩쓸고 있던 중상주의의 흐름 속에서 교황에 맞서는 상인들의 교리로 타락해 버렸고, 프로이트의 이론은 인간을 효율에 지배당하는 신경증 환자로 만드는 산업문명에 대해 경종을 울렸지만, 결국은 적응을 강조하는 치료법만을 숭상하는 방향으로 왜곡되어 버렸다. 루터와 프로이트는, 위대한 인물이란 칭호는 얻었으되, 적들로부터는 물론, 그들만큼 철저하지 못했던 동료들한테서조차 거부당하는 운명에 놓였다.” p.252.
(2) 물론 에릭슨은 “학술적 서적과 학술적 서적 아닌 것의 경계가 뭐요?”라고 물을지 모른다. 에릭슨이 저명해졌기 때문에 그런 제약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이라는 반론 또한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표현 자체가, 우리가 놓여 있는 “학문이라는 제도” 안에 우리가 갇혀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서평] Aporia Reivew of Books, Vol.3, No.3, 2015년 3월, 배수찬,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