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텍스트가 어느 정도는 다 그러하겠지만, 《시경(詩經)》만큼 그 긴장의 도가 팽팽한 텍스트는 드물 듯싶다. 《시경》의 본래 이름은 그냥 <시》였다. 혹은 모두 305편이 실려 있다 하여 ‘시삼백(詩三百)’이라고도 불렸다. 여기에 ‘경(經)’이 붙은 제목이 널리 쓰인 것은 《시》가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된 후 약 1,600여 년이 지난 남송(南宋) 초에 들어서였다.
그러나 제목에 ‘경’자가 붙지 않았다고 하여 《시》가 경전으로 대접받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이미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 《시》는 유가, 도가와 같은 사상 유파의 공통 텍스트인 동시에 이미 공자(孔子)와 그 후예들에 의해 중요한 전적의 하나로 떠받들어졌다. 그러다 한(漢) 무제(武帝) 때에 이르러 유가가 유교로 탈바꿈되며 공식 통치 이념으로 격상되자, 《시》는 《서(書)》, 《역(易)》 등과 함께 다섯 가지 주요 경전[五經]으로 존중된다. 명칭에 ‘경’자가 붙지 않았을 따름이지, 실제로는 어엿한 경전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시경》에 서려 있는 팽팽한 긴장감은 이 과정에서 비롯된다. 《시경》은 서주(西周) 초인 기원전 11세기 무렵부터 춘추 중엽인 기원전 6세기 무렵까지, 민간이나 조정에서 불리던 노래의 가사를 모아둔 책이다. 따라서 그것의 주조음(主調音)은 어디까지나 ‘문학적’이다. 이에 비해 ‘경’에서는 집권의 합법성이 ‘철학적’으로 개진된다. 문학으로서의 시가 감성을 매개로 하는 향수의 대상이라면, 철학으로서의 경은 이성을 매개로 하는 이해의 대상이다. 물론 전근대시기 한자권에서 문학과 철학이 혼융되어 있었듯이, 그렇게 감성과 이성도 서로 얽혀 있음은 분명하다. 다만 한대에 진행된 유가의 통치 이념화는 감성적 눈과 손에서 태어난 시를 이성의 영역으로 재배치했다는 점에서 남다른 데가 있다. 시 그 자체를 이성적 실체로 인식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에 대한 이해는 이성의 몫으로 치부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시에 대한 ‘해석’이 시 그 자체의 감수보다 우선하게 되고 중요시되었다. 이는 감성의 언어를 이성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에 다름없었다. 다만 그 결과는 누가 봐도 납득이 될 정도로 그럴 듯해야 했다. 이성이 언어의 영역 안에 거처한다면 감성은 언어의 경계를 넘나들기에 이 작업은 처음부터 긴장의 연속일 수밖에 없었다. 이성으로 포착되지 않는 감성은 그 하나하나가 지난한 궁리를 요하는 물음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시경》에 실린 시의 상당수에는 ‘흥(興)’이라 불리는 묘한 부분이 실려 있어 이 일을 보다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시경》에는 한 편의 시 전체 주제와는 무관해 보이는 구절이 종종 섞여 있다. 가령 《시경》의 첫 수는 이렇게 시작한다. “구욱구욱 물수리/강가 숲 속에서 우는데/대장부의 좋은 배필 아리따운 아가씨/어디 있을까?(關關雎鳩, 在河之洲. 窈窕淑女, 君子好逑.)” (2) 여기서 맨 앞의 두 구가 흥이다. 이 구절의 의미가 이 시의 주제인 요조숙녀와 군자의 만남과 별로 연관이 없어 그 정확한 뜻이 잘 파악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통의 경우라면 의미가 파악되지 않아 난감했을 이 구절이 도리어 시를 경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담당했던 훈고학자(訓詁學者: 서양으로 치자면 문헌학자)들에게는 기댈 언덕이 되었다. 의미가 모호했던 까닭에 오히려 유교의 입장에서 철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던 여지가 풍부했던 탓이다. 예컨대 그들은 ‘물수리(雎鳩)는 성적 욕구가 아주 강하지만 사리를 분별할 줄 알고 법도를 잘 지켜, 태어나면서 한 번 정해진 짝을 절대로 바꾸지 않는 새’였다고 해설하였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이 시는 남녀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내용을 읊은 것이 아니라, 옛적 주(周)의 성군이었던 문왕(文王)이 정치를 잘 하여 온 세상이 교화를 입은 상황을 칭송한 것이라고 보았다.
이로써 《시경》의 시는 경전으로 손색이 없게 된다. 감성을 매개로 언표 불가능한 것까지도 자기 안에 포괄하는 시, 그래서 이성의 손길로는 온전히 번안될 수 없는 시는 경과 만남으로써 이렇게 그 안에 심오한 깊이를 간직한 철학적 상징으로 둔갑됐던 것이다.
2. 축제, 가요 그리고 흥
20세기 초반 프랑스의 중국학을 대표하는 마르셀 그라네(1884~1940)의 명저 《중국의 고대 축제와 가요 Fêtes et Chansons anciennes de la Chine》는 흥에 대한 훈고학자의 해석을 새로운 근거에 의거하여 비판하며 동시에 보완한다.
본시 문학적 시를 철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었던 것은 정치권력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권력의 지지가 철회되거나 약해지면 시에 대한 철학적 이해는 언제라도 그 권위가 부정될 수 있다. 실제로 훈고학자들을 지탱해주던 한 황실의 권력이 쇠퇴하자, 《시경》에 대한 문학적 접근이 다시 등장하게 되고, 철학적 해석은 견강부회쯤으로 비판받는다. 이후 전근대시기 내내 《시경》은 시와 경 사이에서 길항을 거듭하게 된다. 마르셀 그라네는 이러한 《시경》의 연구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그가 제시한 새로운 근거라 함은 문화인류학적 연구 성과를 지칭한다. 1919년에 간행된 Fêtes et Chansons anciennes de la Chine에서 그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고대 축제와 가요, 시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 결과를 창의적으로 운용함으로써 《시경》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그는 《시경》에 실려 있는 시를 고대 축제에서 춤과 함께 불렸던 노래의 가사로 본다. 따라서 시를 글자들 간의 관계에서만 봐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시는 춤과 음악이 어우러진 고대 축제의 현장에서 불렸던 탓에, 그 속에는 춤동작에 맞추기 위해 뜻 없이 들어간 추임새도 있고, 축제의 주제에 따라 의례적으로 활용됐던 경물과 동작 묘사가 ‘관습적’으로 들어있다. 그런데 문명화의 과정에서 고대의 축제가 변형되자, 축제의 현장에선 즉흥적으로 이해되었던 가사가 온통 해석의 대상이 되었다. 시에 관습적으로 들어간 경물과 동작 묘사 모두가 뭔가 중요한 의미를 내장하고 있는 상징으로 인식됐다. 그리고 훈고학자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한 한대에 들어, 고대의 악곡마저 사라지자 시는 축제와 가요 모두로부터 떨어진 채 오로지 가사만으로 향수되고 이해될 수밖에 없었다.
언뜻 보면 마르셀 그라네의 이런 분석은 《시경》을 경의 측면에서 해석하는 입장에 대한 부정으로 읽힌다. 축제의 현장에 직접 참여한 이라면, 또 음악에 맞춰 시를 부르던 이라면 누구나 훤히 알던 가사(곧 시)의 의미를 도무지 알 수 없게 된 때, 그러나 하필 그런 가사가 ‘경전’이 되는 바람에 그 한 자 한 자의 의미를 명쾌하게 밝혀야 했을 때, 딜레마에 빠진 훈고학자들이 통치의 차원에서 감행한 ‘의도적 오독’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저작이 남달리 빛을 발하는 까닭은 그런 표면적인 비판 속에 시가 경전으로 변이되는 과정의 필연성을 해박한 실증과 엄밀한 추론을 통해 규명했기 때문이다. 곧 그의 분석 속에 시와 경전은 그 속성을 완전히 달리하는 두 가지가 아니라, 양면을 지닌 하나의 동전으로 통합된다.
그는 기존의 연구자들과는 달리 《시경》을 문학 대 철학 식의 분절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가 보기에 그 시절의 축제는 사회 규범을 자연에 투사하고, 이를 매개로 사회 규범의 정당성과 영원성, 신성성을 그 구성원에게 내면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이런 와중에 자연은 비유를 통해 인간 사회의 규범과 동일시되었다. 이점은 고대 민간에서 행해진 축제에서 뿐만 아니라, 제후가 권력을 잡고 도시가 형성되면서 이루어진 제도화된 축제 및 군주의 공식적인 의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연 경물은 그 자체로 인간사회의 규범을 동보적(同步的)으로 환기해주는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위의 시에서 물수리가 구욱구욱 우는 정경을 묘사한 것은 남녀의 만남과 결합이 분별 있게 행해져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으로 ‘당연하게’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훈고학자들이 흥을 철학적으로 해석한 것은 통치의 필요성 때문에 견강부회한 것으로만 볼 수 없게 된다. 고대 축제의 유산을 기반으로 도출한, 오히려 그 근거가 실제적이고도 타당한 해석이 된다. 다만 고대 축제의 실상과 정황을 체득하거나 자세히 알고 있지 못했던 까닭에 시에 반영된 춤과 노래의 요소를 의미론적으로만 접근하는 오류를 범했던 것이고, 지나치게 통치의 차원에서 시의(詩意)를 풀었기 때문에 시의 제재와 소재가 고대 축제에서 지녔던 의미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잘못을 저질렀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이러한 연구는 훈고학자들처럼 시를 경전으로 보는 철학적 이해를 지양하고 그에 대한 새로운 통합적 이해의 한 유형을 수립한 것과 다름없다. 이점에서 그의 저작은 《시경》 연구의 고전으로서 손색이 없게 된다. 그는 《시경》에 대한 문학적 접근 대 철학적 접근이라는 대립구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석의 시선을 그러한 분절이 일어나기 이전의 시점으로 돌렸다. 그 시원의 마당에서 축제에 하나로 녹아든 미적 욕망과 정치적 욕망을 목도했다. 춤과 노래, 시에서 하나가 된 문학과 철학! 이렇게 마르셀 그라네는 문학 대 철학과 같은 분절적 경계를 가로질러 《시경》을 연구했다. 일종의 시대를 앞질러 하나의 ‘통섭적(通攝的, consilient)’ 연구 사례를 제시했던 것이다.
3. ‘해석’에서 ‘문헌’으로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꽃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3)
마르셀 그라네의 연구는 다만 《시경》 해석 방법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데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가 이 책의 서두를 ‘고전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했듯이, 사실 그의 《시경》 읽기는 다른 고전 읽기에 바로 적용될 수 있는 고전 독법의 하나이기도 하다.
일단 그는 《시경》을 읽으면서 어떤 고전적 해석이나 현존하는 이본(異本) 등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예컨대 모든 상징적 해석 또는 시인이 처음부터 의도하고 세련된 기교를 고안했다는 식의 생각도 모두 버리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또 당대적으로 형성된 선입견을 모두 괄호로 묶어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약 정확한 의미가 파악되지 않는 부분이 나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는 그것과 유사한 시와 비교함으로써 그 의미를 결정하라고 한다. 일종의 텍스트에 대한 ‘내재적(內在的, immanent)’ 읽기인 셈이다. 섣부르게 텍스트 바깥의 외재적 요인에 근거하여 그 의미를 확정짓기 전에, 동일 텍스트 안에서 최대한 의미 파악에 도움이 되는 인자를 찾아본다는 것이다.
마르셀 그라네는 이런 자신의 입장을 결론에서 “문헌 그 자체를 자료로 취급했다”(259쪽) (4) 는 말로 갈무리한다. 이는 ‘해석’을 《시경》 읽기의 궁극적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과거의 훈고학자들처럼 집권과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이를 입증하고자 하는 의도에 맞춰 《시경》을 해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시경》을 모든 문학적 글쓰기의 비조로 설정하고, 그것에서 모든 문학성의 잠재적 기원을 찾아내는 식 (5) 의 읽기 역시 거부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시경》에 수록되어 있는 옛 가요에는 텍스트 자체로 인해 알 수 있는 것과 비교해야만 하는 많은 사실들이 얽혀있다고 전제한다. 따라서 텍스트 외부에서 의미 확정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참조해야 할 것을 아울러 주문한다. 그리고 문헌을 자료 그 자체로 연구한 것과 긴밀하게 연관시키면서 “그 모두를 전체적으로 검토한 다음 (비로소) 해석”(259쪽)할 것을 권유한다. 곧 텍스트 연구와 사실 연구를 긴밀하게 병행한 후, 그 과정에서 얻은 성과를 조직적인 방법으로 배열하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시경》 나아가 고전을 읽음에 있어 문헌 자료 그 자체와 그것과 긴밀하게 연계된 사실만 남게 된다. 텍스트 외부의 것마저도 텍스트에 대한 내재적 읽기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활용한 셈이다.
《시경》을 이렇게 내재적으로 읽음으로써 마르셀 그라네는 기존의 연구자가 주목하지 못했거나 규명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사실과 의미를 새로이 밝혀낸다. 그는 《시경》 특히 〈국풍(國風)〉(6) 의 시는 고대 농민사회의 축제 때 즉흥적 노래로 경쟁을 벌이며 서로를 탐색하던 청춘 남녀의 합창에서 기원한다고 보았다. 대부분의 시가 대우(對偶)를 기반으로 하는 정형문으로 지어진 까닭이, 또 후렴과 같은 것이 반복되는 형식의 기원 역시 여기에 있음을 입증하였다. 또한 시의 핵심은 운율일 터인데 그 기원은 단순히 음성뿐만 아니라 축제 때 추던 춤과 같은 몸동작이 언어적으로 표현된 결과이며, 《시경》에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첩어(疊語) 역시 노래하는 이의 동작이 언어적으로 표현된 결과임을 설득력 있게 증명하였다.
이러한 성과는 곧바로 이 책의 덕목이 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예컨대 “훈고학자들은 시경에 실려 있는 음란한 시[淫詩]를 왜 윤리적으로만 해석했는가? 다른 해석의 가능성은 없나?”와 같은 지평에서 《시경》 읽기의 새로운 방법과 실례를 제시한 것이 아니었다. 대신 그는 위에서처럼 “왜 시는 대우를 기반으로 씌어졌을까?”, “왜 운율이 시의 핵심적인 자질이 되었을까?”와 같은 자명한 것들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이런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은 자동적으로 인문학의 본령을 환기해준다. 인간과 관련된 제반 영역을 학문적으로 다루는 것이 인문학이라 할 때, 그 분석의 눈길이 표층이 아닌 심층에 닿을 때 비로소 시대나 지역, 제도나 이념 등을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존재하고 유의미한 것을 탐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4. 기원의 탐사, 그 ‘생성적’ 지식의 세계
이 책의 즐거움 비단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의 기원을 문제 삼음으로써 《시경》 읽기의 깊이를 인문학의 본령에까지 확장시켰다는 점에만 비롯되지 않는다. 문면(文面)에는 거의 드러나 있지 않는 민간 축제의 모습을 생생하게 목도할 수 있게 됐다는 점 역시 이 책이 주는 즐거움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 큰 즐거움은 이 책의 곳곳에서 기존의 통념을 통렬하게 작파하는 신선한 분석이 제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마르셀 그라네는 결혼은 저 옛날부터 철저하게 사회적으로 관리되었다는 사실을 예증하면서, 인류사의 초기 단계에서는 ‘자유로운 연애’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고 도리어 결혼이 문제시되었음이 예시한다. 그는 이어 “실제로 중국인에게 불화와 알력의 원인이라고 여겨진 것은 연애가 아니라, 특히 부부의 애정 곧 부부간의 사랑이었던 데 주의해야 할 것이다”(256쪽)고 단언한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옛적 제후에게 시집을 보낼 때면, 한 집안에서 9명의 여인을 한꺼번에 보내던 제도를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지금의 결혼관이 당시에는 사회적 금기였던 셈이다.
자연법칙과 사회규범 사이의 관계 전복 또한 우리의 통념을 깨뜨린다. “도는 자연의 법칙을 본뜬다[道法自然]”는 노자(老子)의 말처럼, 예로부터 우리는 사회규범은 곧 자연의 법칙을 본 뜬 것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저자는 성지(聖地) 곧 특정한 장소에서 주기적으로 치러진 고대 민간의 축제와 이를 제도권으로 포획한 제후들의 의식을 분석함으로써, 그러한 축제와 의식의 주요 목적이 사회규범을 비유를 통해 자연의 법칙과 동일시하게끔 내면화하는 것임을 실증한다. 이른바 서양은 자연을 인간의 관점에서 보았고 동양은 인간을 자연의 관점에서 보았다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가 최소한 시원의 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음이 입증되는 대목이다.
이렇듯 고전 읽기가 서늘한 지적 충격을 발하는 기원의 탐사로 이어지고, 이를 계기로 사고력과 상상력의 범위를 전복적으로 확장하게 된다면, 이는 고전 읽기의 새로운 지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고전을 이해하는 데서 그치고 마는 그런 ‘소극적’인 고전 읽기를 넘어, 새로운 앎을 창출하는 그런 생성적인 지식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해주는 고전 읽기. 그런 고전 읽기가 얼마나 생산적일 수 있나를 명쾌하게 보여줬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의 존재 가치는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이 책은 1930년대에 일본어판과 영어판 번역본 (7) 이 나온 지 두 세대 여가 지난 후에 우리말로 번역되었다. 정작 전통시기 《시경》 연구의 본산이었던 중국에서도 1980년대 말에 들어서야 이 책이 중국어로 번역 소개되었다는 것이 다소의 위안거리가 될 뿐이다.
이 책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상재되었다는 것은 외국의 수준 높은 중국어문학 관련 연구서가 본격적으로 번역 소개됨으로써, 국내의 중국어문학 연구 지평이 확대되고 다변화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작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물론 이 책이 내용적 면에서 완벽한 것은 아니다. 번역본 또한 번역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적지 않은 결함이 있음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아직도 이제 막 낮은 수준의 번역 역량과 관련 인프라를 벗어나기 시작한 우리의 여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특히 중국어문학 분야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상황이 다소 호전되고 있기는 하지만, 주요 작품은 물론 외국의 주요 연구 성과에 대한 번역 소개가 크게 미흡한 상태이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번역에 대한 채찍질보다는 우호적 격려가 필요한 때로 보인다. 더군다나 서구의 중국학 관련 연구 성과가 본격적으로 번역 소개되고 있는 시점에서, 제3, 제4 외국어의 습득 없이도 그 나라의 관련 연구 성과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적잖은 소득이라 할 것이다. 이것이 많이 늦었음에도, 이 책의 번역을 반기는 동시에 예정되어 있는 그의 또 다른 명저 《중국의 고대 춤과 전설》의 번역을 기대하는 까닭이다.
(3) 우리나라의 전통 놀이 중, 두 편으로 가른 두 집단이 진퇴를 번갈아 하며 서로 주고받던 노래의 일부.
(4) 쪽수는 이 책의 우리말 번역본인 《중국의 고대 축제와 가요》의 쪽수임. 이하 마찬가지임.
(5) 역대의 중국 문인들은 문학성을 구현하는 기법과 장치가 이미 《시경》에 거의 갖추어졌다는 식으로 여겨왔다. 이는 근대 이후의 문학사가 중 상당수에 의해 지지되고 있기도 하다.
(6) 중원 근방 지역에서 채집한 민요를 모아 놓은 《시경》의 첫 부분.
(7)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고문헌자료실에는 1932년 E. D. Edwards가 영어로 번역한 영문판 Festivals and songs of ancient China과 1938년 內田智雄가 번역한 일문판 《支那古代の祭禮と歌謠》가 소장되어 있다.
*이 글은 《인문논총》(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편) 제55집(2006년)에 같은 제목으로 실은 서평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이 저술.의 저작권은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서평] Aporia Reivew of Books, Vol.4, No.6, 2016년 6월,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