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근대소설을 통해서 한국 현대사상을 들여다보는 최정운의 야심찬 기획은 『한국인의 탄생』에서 빛났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준비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기다렸다. 연초라던 출간일정은 점점 연기되더니 지난해 말에 나왔고, 분주한 일이 겹쳐 바싹 들여다보지 못하고 시일이 지체되었다. 어제 오랜만에 지하철 로 오래 이동하게 되어, 절반쯤 읽고, 늦은 밤과 아침을 도와 결국 마지막 장까지 읽고 났을 때. 나는 탄식했다. 아, 보수는 ‘한국인’을 이렇게 보는 구나. 합리적 보수는 공동체적 전망을 가지고 있구나. 안타깝게도 딱 거기에 그쳤다.
2.
“1980년대 이후 한국 지성계는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 사회에서 본격적인 학문은 이 ‘투쟁의 시대’에 새롭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는 새로 운 흐름의 반지성주의가 휩쓸고 있다. 좌우 이념 대결이 냉전이 지난 후 너무 늦게 다시 벌어졌고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투쟁에 말려들어 왔 다. 이들이 싸워온 모습은 학문적 수준의 논쟁이 결코 아니었으며 정치적인 적과의 투쟁도 아닌 흡사 악귀들과의 원한 맺힌 멸절의 싸움이었다. 이들은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한 온갖 중상과 인격 훼손을 서슴지 않았으며 결국은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파괴하고,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싸움거리가 되는 역사의 대목들 은 학생들의 교과서에서 삭제되고 삭제를 면한들 우리의 이념 투쟁의 장인 근현대사는 두 나라 이야기가 되어 갔고, 그렇게 양 진영의 싸움과 협상에 따라 우리 의 역사책은 ‘별떡 달떡’으로 뜯어 먹혀 얄팍해지고 결국에는 사료로 없는 밑도 끝도 없는 고대사만 덜렁 남아 우리의 신화마저 모진 학대를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마치 멀쩡한 어른이 주민등록증에 돌사진, ‘인증샷’을 붙이고 다니며 자신이 ‘수컷’임을 자랑하는 웃지 못 할 지경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12, 책 을 펴내며)
처음 읽을 때부터 인상적인 서문이라 생각했지만, 위화감을 떨칠 수 없었다. 어쩌면 최정운이 전작 『한국인의 탄생』에서부터 눈을 두고 있는 지점은 반지성주의 일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도 충분한 설명은 없지만, 곳곳에서 드러난다. 홍명희의 「임꺽정」에서 황석영의 「장길산」으로 이어지는 반지성주의가 소설 속의 주인공을 통해서는 의적이나 반란을 꿈꾸는 역도로 묘사되고, 최인호의 「바보들의 행진」이나 이철용의 「어둠의 자식들」을 근거로 반지성주의를 말하지만, 서론과 결론에서 언급하는 반지성주의는 지식인에 대한 혐오나 지성에 대한 반발과는 조금 다르다. 정작 최정운이 비판하는 반지성주의는 대학 내 혹은 지식인 사회 내 부의 반지성주의다. 그리고 그 원인은 수입 학문의 나열에 있다고 설명한다. “나아가서 이런 상황 즉 대부분의 제도, 사상, 학문, 철학 등을 서구에서 처음부터 배워 와서 우리나라에 도입하는 것이 우리 지식인들의 최대의 역사적 임무라는 생각은 반지성주의를 이루어 혼자서 다른 생각을 하거나 ‘골치 아픈’ 문제들을 들추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생각 자체, ‘철학’을 억압하고 기피하는 문화로 발전해 왔다.”(23) 결론에서 반지성주의 극복을 다시 언급되듯이, ‘반지성주의’는 지식인들에 의해서 극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자리 잡는다. 독자적인 사고와 사유를 낳음으로써. 그런데 그런 것이 흔히 말하는 반지성주의인가?
반지성주의는 지식인 사회 내부에 원인이 있는가? 아니면 대중의 지식인에 대한 거부인가? 최정운은 지식인 사회의 무능력이 지식인 사회 내부로 부터 반지성 주의를 낳았고, 거기다 은근슬쩍 지식인 비판을 곁들인다. 운동권 비판과 이데올로기의 과잉이나 이념화의 실패를 곁들이면서. 잠시나마 최정운이 비판하는 수입상 노릇을 해보자. 리처드 호프스태터는 ‘반지성주의’를 지식인과 지성에 대한 적대감이라고 말했고, 실상 트럼프 대통령을 현대 미국에서 보이는 모습도 그렇다. 안리 모리모토는 미국 복음주의와 부흥운동의 확산 과정에서 반지성주의가 가지는 평등화 가능성과 통합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우치다 다쓰루는 외골수의 지성이 보여주는 몰시간성을 반지성주의의 정체라고 말했고, 시라이 사토시는 지성의 불평등과 권력의 불평등을 함께 비판하는 대중의 분노이고, 일본 의 경우 역사에 대한 부인이 원인이라고 말한다. 흔히 알려진 반지성주의는 지식인과 대중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에서 나오는데, 지식인들이 권력과 결탁해서 대중을 배신하는 데 대한 대중의 반응이며, 여기에 사이비 지식인이 결탁하면서, 대중의 열정 혹은 분노는 오도되어 파괴적으로 변하는 데 대한 지적이다. 물론 현대 한국에서 지식인의 무능력은 분명한 사실이고, 성찰 부족도 엄연한 사실이다.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이론 공부가 약해지고 있다. 반면, 현대 한국에서 지식인이 권력과의 결탁 자체가 반지성주의를 낳지는 않는다. 많은 지식인이 그것을 꿈꾸기는 해도, 권력과 결탁하는 지식인이 있지만, 이것이 지식이나 지성의 부인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냉소와 비난을 낳기는 한다. 반면, 지식인이나 지성이 무용하다고 부인되는 경우들이 있다. 여전히 활동가들이 관여하고 있지만, 예전처럼 ‘학출’이라는 대학생 출신 노동운동가가 필요하지 않다. 정치나 경제 등 수많은 영역에서 지식인들은 계륵 취급을 받고 있다. 대표적 지식인인 교수가 여전히 발표와 강의를 하고 심사를 맡지만, 아무것도 모른다는 비아냥이 등 뒤에서 난무한다. 당사자들만 모르고 있을 뿐. 절차상, 과정상 필요해서 불러들이고 있는데, 그걸 모른다. 지성인들이 이미 권위를 상실했음이 광장에서 확인되고 있다. 여전히 그들에게 발언권이 주어지지만, 예전 같지 않다. 수많은 자유발언과 마이크의 확대. 심지어 김용옥이 발언을 마치지 못하고 쫓겨난 사건. 지식인과 지성인들은 이미 밥벌이의 현장에서 무능을 확인하고 자리를 잃었지만, 이제 광장에서 마저 구석으로 밀려나고 있다. 지식인 사회 내부의 무능력과 외부의 냉소가 광장에서 결합되고 있다. 한국 사회 나름의 반지성주의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지식수입상, 소비자주의적 자기 해석을 못하는 지식인이기 때문이라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 분명 수입상들에게 한계가 있고, 성 찰도 필요하다. 그러나 자기 성찰을 통한 자기 해석을 해내면 반지성주의는 극복될 것인가? 최정운은 성찰과 자기해석으로 극복할 수 있다 말한다. 나아가 ‘지성 과 학문의 선진국'(642)이 될 것이라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도 한다. ‘지성과 학문의 선진국’이라니 헛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지금 전 세계를 휩쓰는 반지성주의는 바로 그 ‘지성과 학문의 선진국’들에서 나타나고 있지 않나. 나는 최정운의 반지성주의에 대한 이런 해석과 제시되는 해결책은 지식에 대한 또 하나의 ‘근대화 이론’이라고 말하겠다. 그는 아직도 근대화의 여정을 마지막으로 지식 분야에서 완수하려고 오늘도 노력 중이다.
3.
최정운의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해방에서부터 50년대까지를 다루는 부분이다. 해방 이후의 ‘광기의 순간'(49, 박명림 인용), ‘정글의 법칙'(50, 강준만 인용), ‘카오스의 도가니'(51, 김병걸 인용). 『한국인의 탄생』에서 구한말을 ‘홉스적 자연상태’라고 이름했던 최정운은 해방 직후를 ‘로크적 자연상태’라 말하며, 자생적 보호연합의 탄생과 자유지상주의의 역사(54)라고 이름 짓는다. 그리고 이태준의 수기를 인용하는데. ‘민심은 집중이 아니라 이산이요, 신념이기보다 회 의의 편’, ‘해외에서 다년간 민중을 가져보지 못한 임시정부’의 민중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무능력, ‘조선 독립의 국제성'(5758) 등에 대해 이야기 한다. 김구와 임시정부의 실패는 대중정치의 실패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로운 지적이다. 정읍발언에 가리워진 이승만의 이 시기 남부지방 순회활동의 파괴력은 종종 간과되어 왔다. 취약국가인 대한민국이 미군에 의한 국가수립 과정에서 식민지 관료와 식민지 경찰이라는 자원을 수용하고, 이를 이승만이 받아들인 것은 국내에서의 친일파에 대한 증오를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간단히 언급한다(70). 이승만의 적극적인 우파 조직 과정을 보면, 과연 그랬을까 의심이 들지만, 그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을 최정운은 반복적으로 민족국가(72) 수립과정이라고 말한다는 점이다. 최정운이 가지고 있는 개념의 혼란은 바로 이 ‘민족’이라는 용어와 ‘민족국가’라는 용어의 사용법에 있다. 이점은 뒤에서 말하겠다.
한국전쟁 해석에서 세 가지 차원의 전쟁과 그 말미에 포로수용소에 대한 언급과 함께 살육의 전쟁에 대해 설명학려고 한다(94). 그러나 최정운은 전쟁 수행과 정에서 국가지도자의 무책임에 또 슬쩍, 야당의 책임론을 끼워 넣는다(93). 야당이 문제라기보다는 야당도 문제였다는 요즘도 흔히 듣는 어법이다. 나라는 미국이 지켜주니까, 안심하고, 당시 야당이 정치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인데. 실은 이런 비판은 그다지 온당하지 않다. 야당이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아직 국가형성 중에 있기 때문에. 국가형성은 1948년에 끝나지 않았다. 물론 민족(국민)형성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한국 전쟁 기간 중 미군과 중 국군 병사의 결사적인 전투 수행에 비추어 북한군과 특히 남한의 국군의 중국군의 공세 앞에 파죽지세로 무너지면서, 도망친 이유가 국가형성과 민족(국민)형 성이 되지 않은 탓이라 생각한다. 실상 그들을 목숨을 내놓고 싸워야 할 이유를 몰랐다. 전쟁 막바지로 가면서 알게 된다. 이런 과정을 가장 극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 이 책에서 상세히 언급되지 않지만, 포로수용소다. 사상 초유의 포로 자유 송환의 관철을 위해 1년 7개월이나 지연된 휴전과 그 과정에서 포로수용소에 서 이루어지는 김학재의 표현에 의하면 배신의 정치, 색출, 심사, 린치, 사상교육, 전향교육, 폭동, 학살 등으로 이루어지는 체제에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국민의 형성은 한국전쟁 전후를 보는 중요한 관점인데. 이런 점은 슬쩍 넘어가면서 언급될 뿐이다. 손창섭과 황순원의 작품을 통해 표현되는 50년대 초반의 사람들은 ‘좀비'(99) ‘시대를 견디지 못하고 쇠락하여 멸망해간 도시 부르주아'(102) ‘형제를 죽인 죄인의 핏줄'(103), ‘저승사자'(107), ‘탈문명화된 유령'(111)의 모 습이며, 어디에나 있는 죽음이다(122).
전후의 재생과정을 손창섭의 단편들의 주인공들을 연대순으로 이어가면서 해석하는 부분은 이 책의 백미이다. 그 전환의 지점을 55년으로 삼는다. 「혈서」(55 년 1월), 「미해결의 장군소리의 의미」(55년 6월), 「유실몽」(56년 3월), 「층계의 위치」(56년 12월), 「소년」(57년 7월), 「치몽」(57년 7월), 「침입자 속「치몽」」(58년 3월)로 이어져 58년에 발표되는 「잉여인간」에 대한 연속적 분석을 통해, 시체상태의 한국인이 5년 후 되살아나 움직이고 욕망을 부리기 시작하는 것으로 묘사한다(143). 마지막으로 분노하는 한국인의 등장이라고 말한다(195). 그는 이를 한국인의 ‘부활resurrection’이라고 말하지만(144), 나는 ‘재 생’regeneration 정도가 적합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그리고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를 통해서, 장용학 등 종교적 색채를 띄는 작품이 많은 점과 50년대 신흥 종교의 부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원혼들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라고 갈파한다(171). 오늘날 신흥종교, 유사종교 현상을 어디서부터 분석해야 할지 시사하는 대 목이다. 1950년대의 절대빈곤 상황에서의 높은 성장율도 한국인의 부활이 가져온 좌절과 분노를 해결할 수 없었다(198).
4.
1959년 발표된 이범선의 「오발탄」은 붕괴와 위험한 인간을(204), 손창섭의 「포말의 의지」와 장용학의 「현대의 야」(60년 3월)는 군중의 힘을(205)예고한 다. 최정운은 4.19와 5.16을 두 개의 혁명이라고 말한다. 시모카나 아냐나의 논문을 인용하며, 도시빈민의 폭발에 의한 폭력을 지식인들이 찬탈하여 대학생들 의 민주주의 혁명으로 바꾸었고(215), 작성된 각본에 의한 연극(219)이라고 표현하며, 그 결과 민주당 정권은 민주주의 놀이에 빠졌고(220), 국가는 취약했 으며(221), 4.19의 서자들이 4.19세대가 되었으며, 빈곤, 가난, 좌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약한 국가는 실패했다고 해석한다(222223). 최인훈의 「광 장」의 명준을 ‘역사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꿈과 희망에 찬 젊은 세대의 한 사람’, ‘혁명에 감질난 젊은이'(249)라 말한다. 그럼에도 붉은 심장의 설레임이기 때문에, 4.19는 ‘혁명’이라고 말하는데(252). 이는 혁명이 취약국가로 귀결되고 실패했다는 점에서, 스카치폴을 따라 강한 국가로 귀결되는 것이 혁명이라는 최정운의 주장에 따를 때, 혁명이라 말하기 어려운 것을 혁명이라고 부른 것이다. 왜 그랬을까?
나는 그가 5.16을 혁명이라고 부르기 위해, 4.19도 혁명이라 이름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한다. 이란성 쌍둥이, 5.16은 4.19와 무관하게 미리 준비된 것 등으로 설명하며, 쿠데타가 4.19세대의 지지를 받았다. 사회 정치적 변화를 구상했고 엄청난 우리 역사의 변화를 이루어 냈다. 그렇기에 5.16은 혁명이다(258259)라고 나름 열심히 설명하지만, 아, 이 설명은 궁색하다. 성공한 쿠데타라고 말하면, 격이 떨어지는 걸까? 4.19와 5.16은 모두 변화를 향한 강렬한 열망이 양쪽 방향에서 표출된 것이고, 결국 통치능력과 동원능력을 가진 쪽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것이 성공했다고 해서, 대중 속에서 나온, 대중 운동을 통해서, 혁명세력 을 형성하고,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며, 강한 국가를 창출하는 사회혁명이 아닌 한에서. 둘 다 혁명이라고 부를 수 없다. 몇 명의 군인이 한강을 넘어서 정부를 장악했다고 해서, 혁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저 정치적 수사의 차원이라면 모를까. 이 두 가지 모두는 그가 말한 대로, 약한 국가를 극복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두 흐름은 연속선상에 있다. 이 지점에서 최정운의 보수적 통치와 보수적 가치의 정당성과 해명을 위해 나름 골몰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그 누구보다 세련되었다. 최인훈의 「구운몽」의 독고민을 통해 욕망에 대한 묘사를 발견한다(275). 63년에 발표된 최인훈의 「회색인」을 통해 역사와 시간의 발견을 제시한다. 역시 최인훈의 「서유기」는 합리적 근대적 한국인 만들기라고 평가한다. 이런 식으로 최정운은 특정 작가의 작품을 연대기적으로 따라 가는데. 물론 이는 자료 선택의 자유라고 하겠지만, 빛을 발할 때도 있는 반면, 어두울 때도 있다. 67년 박태순의 「서울의 방」에서 그는 ‘희망’을 발견한다(306). 김승옥의 소설들에서 욕망의 다른 형태로 ‘위악’을 발견하기도 한다(309). 물론 만성적 정체성 위기 상태에 있다(324). 김승옥의「무진기행」에서 광기를 찾는다(329). 최정운은 60대 후반 김승옥의 소설에서 현실주의 주어진 현실에 적응하며 산다, 소박한 희망과 고즈넉한 행복과 함께 60년대 말 피로하고 타 락하고 변질된 모습이 등장한다고 부연한다(337). 1960년대 한국인들은 전통과 과거로부터의 문화를 일괄적으로 거부하고, 기존, 현존의 사회 윤리에 대해 거부 내지 도전의 포즈를 취한다고 설명하면서, 서둘러 근대화할 수 있는 성마른 인물들을 찾는다(346)고 설명한다. 특히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로 대표되는 대중가요에서 도시 성인 서민의 삶이 희망적으로 아름답게 그려진 전무후무한 특별한 세대라고 설명한다(348). 한국 현대사에서 1960년대는 특별한 세대이며, 이 시대에 나타난 것들은 오랫동안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348)고 말하면서, 이 시대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드러낸다. 어두운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1960년대에서 무엇을 발견할 것인지는 최정운의 전적인 자유라고 생각한다. 판단할 것은 오직 충분한 설득력과 설명력을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일 뿐. 최인훈 과 김승옥이라는 두 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도시 사회, 그 중에서도 도시 지식인 사회에 대한 그의 분석은 애정 가득하면서도 예리하다. 그는 욕망과 희망으로 부풀어 오른 시대를 그려낸다. 그리고 그 사회가 꽃피었다가 곧 쇠락했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70년대에 대한 평가가 좀 독특한 듯하다. 게다가 최정운 의 분석에서 60년대와 70년대를 통틀어서 꼭 보일 것 같은데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수난이대」의 하근찬, 「북간도」의 안수길, 「관촌수필」과 「우리동 네」의 이문구, 「병신과 머저리」, 「언어사회학 서설 연작」, 「남도사람 연작」, 「잔인한 도시」, 「비화밀교」의 이청준, 「판문점」, 「소시민」과 「서울은 만원이다」 의 이호철, 「비무장지대」의 유현종 등. 물론 최정운의 이 분석이 이런 사람들을 다루지 않아서 문제다라는 식으로 몰아치려는 것은 아니다. 연구를 위한 소재 선택에는 자유가 있다. 나로서는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나름 이유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최정운이 채택하지 않은 작가들과 작품들을 살펴보면, 그가 어떤 점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또는 외면하는 지 알 수 있다. 이들 작가들은 분단문학의 중요한 작가들이고, 토속적인 내용을 다루는 작가들이 많으며, 역사적인 작가들이 많다. 게다가 이 시기 가장 큰 사건 중 하나인 월남전에 대한 언급도 전혀 없다. 물론 최정운이 분단이나 역사, 농촌 등를 다루는 작품 을 모두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작품에 대한 분석을 통해 나름대로 언급하고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 방식이 한 편으로는 관념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소박한 공동체로 치우치고 있어 보인다. 책 속에서 계속해서 ‘사실주의’ 픽션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의외로 그는 관념적인 작품을 분석 대상으로 적잖이 선택한 다. 나는 그가 유독 이 책에서 도시 지식인사회를 다루는 작품들과 빈민촌을 다루는 작품들 사이를 거칠게 뛰어넘는 이유를 사실 잘 모르겠다. 혹시 정체성 형성 을 위한 지식인들의 노력은 결국은 실패하고 마나, 가난하고 짓밟히는 사람들의 생명력 속에서 나오는 소박한 공동체성이야말로 희망의 원천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5.
최정운은 1970년대를 분열의 시대인 동시에 사적 영역과 시민 사회가 등장한 시대이며, 국가권력이 사회를 주도하던 시대가 1960년대로 끝났다(358)라고 말하는데. 이는 도무지 동의하기 어렵다. 그런 시대는 분명, 80년대까지 지속되었고, 심지어 그 이후까지도 지속되었다. 사적 영역과 시민 사회가 등장했지만, 독자적이라고 보기 어렵지 않았나. 그의 분석은 다시 최인훈에서 시작한다. 그는 정말 최인훈을 좋아한다. 그런데도 1994년작「화두」는 건드리지 않지만. 1970년작 「하늘의 다리」. 그는 여기서 소외를 발견한다. 세대, 성, 지방, 계급의 소외(364). 1970년대 문학과 예술에서 최정운이 주목하는 것은 여성의 등장 이다. 박경리의 「토지」의 서희를 가부장제에 대한 최후통첩으로(371), 역시 최인훈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혁명아 평강공주(373), 나중에 영화화된 1973년 조선작의 「영자의 전성시대」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강한 여성성(376)을 발견한다. 황석영의 「객지」에서 노동자의 발견(380)을, 「돼지꿈」에서 빈민(384)이 이루는 따뜻한 공동체가 등장한다. ‘빈민이 이루는 공동체’는 정말 최정운의 모티브이다. 박완서의 「휘청거리는 오후」부르주아로의 상승을 위 해 외관을 꾸미는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한다(391). 부르주아와 쁘티 브루주아 등 계급의 본격적인 등장이다(392). 그럼 오정희도 다룰만한데. 빠진 게 좀 아쉬웠다. 뭐, 이유가 있겠지. 최정운은 대중 소설과 대중문화도 거침없이 이끌어 들이는데, 이 점은 정말 찬탄할 만하다. 이장호에 의해 영화화된 최인호의 「별들 의 고향」은 도시 지식인 남자들이 함부로 소유했다 함부로 버리는 그러니까 도시가 죽이는 여자의 이야기이다(398). 결국 밑바닥에 다다른 경아는 희생자이자 ‘성처녀’가 된다(405). 역시 최인호의 작품으로 불운한 천재 하길종에 의해 영화화된 「바보들의 행진」은 반지성주의 표방하면서 사회적 불신 문제를 지적하는 작품으로 해석한다(414). 윤흥길의 「양」에서 희생양 만들기(418)를 「장마」에서 비합리와 초합리를 발견한다(419). 전상국의 「아베의 가족들」을 통해 죄를 참회해야 하는 세대의 자기고백을 말한다(432). 그는 이 시대의 사람들이 작아지고 있다고 진단하는 데, 황석영의 「장길산」에서도 지식인 스타일의 반지성적 민중으로 작아진 영웅을(435436), 다시 최인훈의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에서 혁명의 유보를 본다(437). 윤흥길의 1977년 단편들을 통해 계급들 간의 연합과 동맹, 노동자 정체성 형성과 계급 연합, 투쟁의 연원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448). 조금씩 의문이 생긴다. 과연 그럴까. 이런 움직임은 80년대 말에나 가능하지 않나. 왜 10년씩 이렇게 앞당기는 것인지. 다소 조급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1978년 조세희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통해 폭력이 난무하고 부조리, 착취, 비극이 만연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라는 주관적 판단을 내린다(457). 이 소설로 1970년대 말 운동권이 등장했다고 본다(458). 그러면서 1970년대를 이문열로 마감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한국인들이 ‘권력’의 속성에 대해 알게 되었고, 폭력 사용을 자제하고, 강요도 부드럽게, 권력 은 권위의 형태로 행사되고, 폭력은 다른 사람이 행사한다는 헤게모니를 설명한다고 한다(465).
문제는 여기서 언급하는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그의 기술처럼 1979년 작이 아니고, 1987년 『세계의 문학』에 발표된 작품이라는 점이다. 같은 해 이상 문학상도 받는다. 최정운은 1979년 이 작품을 발표하고, 이문열이 스타가 되었다(458)고 말하는데. 1979년에 나온 그의 출세작은 1980년대에서 다 루고 있는 「사람의 아들」이다. 아마도 착각이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게 아니면, 작가가 미리 작품을 써두었다가 나중에 발표했다거나 하는 설명이 필 요한데, 과문한 탓에 그런 설명은 들어본 적이 없고, 스타가 되었다는 말을 하는 걸 보면 분명 착각을 한듯하다. 미리 써두었다 해도, 발표 연대를 기준으로 보아 야 옳다.「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대한 설명이나, 조세희의 작품의 등장, 최인호를 가져오는 것 등에 대해서 별다른 불만은 없다. 불만이 있다면, 그것은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으나, 자꾸만 시대를 이끌어 올린다는 점이다. 이는 최정운이 가장 아름다운 시절로 보고 있는 ‘노오란 샤쓰입은 ‘ 사람들의 시대가 급속한 쇠락, 즉 조로하였기 때문이다(347). 그래서 1970년대 작품에 대한 설명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1980년대에 대한 설명처럼 느껴진다. 최정운의 설명을 따르면 1970년대말 한국 자본주의는 나름의 성숙을 이루었고, 계급 구조도 상당한 정도로 정착이 된데다가, 권력의 헤게모니까지 확보되고 그것을 또 대중들이 이해 한 상황인데. 이건 사실 1970년대에 대한 보통의 이해와 상당히 어긋난다.
6.
왜 이런 해석들이 등장하게 될까. 이는 이어지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대한 설명에서 이해가능하다. 1980년대를 여는 작품으로 다시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이 언급된다. 1979년작 「사람의 아들」은 선신과 악신의 전쟁, 즉 서로의 부정을 위한 커다란 전쟁이 준비되고 있는 전조라고 해석된다(480). 1980년 3 월에 발표된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 역시, 악마의 등장과 악마와의 투쟁을 예고했다(480). 모두 전쟁의 예감이었다(484). 그리고 이어서 최정운의 가장 탁월 한 기여로 이해되는 5.18과 절대공동체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주로 전작 『오월의 사회과학』에서 가져온다. 5.18의 특징을 ‘전시적 폭력demonstrative violence’이 광주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이루어진 ‘폭력 극장’이라고 말한다. 광주 시민들로 하여금 5공에 저항하지 못하게 하는 동시에 엽기적 소문이 전국으로 퍼지기를 유도했다는 것이다(487). 유언비어는 심리전이고 공수부대원들은 ‘악마’ 였으며, 이들은 ‘우리는 악마’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인륜에 반하는 행동을 하려고 왔다는 것이다. ‘악마들의 축제’였다(488). 대한민국은 ‘민족국가’나 ‘민주공화국’ 이 아니라 ‘너희들을 짓뭉개는 악마다’라는 말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 이다(489). 이어지는 최정운의 분석은 잘 알려져 있다. 광주시민들은 분노와 모멸감으로 인간의 존엄성, 즉 ‘사람임’을 회복하는 투쟁에 나서고, 이때 일순간 ‘절대공동체’가 형성된다(491). ‘해방광주’에서 죽음의 공포는 오히려 되살아나고, 마지막에 사람들은 싸움의 진실성truthfulness, authenticity를 인정받기 위 해 도청에서 죽는다. 그리고 오공은 결국 5.18의 진실에 의해 붕괴된다는 것(492493). 진정성의 탄생이다.
최정운의 5월 광주에 대한 분석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전두환을 필두로 한 5공의 악마화다. 5공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룬, 인륜을 저버리고 짓밟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제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투쟁에 나서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의 논의는 5공에 대한 저항의 투쟁을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투쟁이자 그를 위한 희생과정으로 미화시키는 동시에, 87년 이후의 운동권의 분파성과 이데올로기를 타락으로 간주하고, 90년대 그들의 지리멸렬을 일종의 투항으로 보아, 이들을 포섭하는 화합, 즉 통합의 ‘민족’ 곧 한국인을 이루려고 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 5월 광주는 민주화를 앞세우는 세력, 집단 혹은 국민에게만 우선권 이 주어져서는 안 되고, 산업화와 군사주의로 표방되는 한국인에게도 유산이 되어야 한다. 물론 5월 광주는 모두에게 유산이 되어야 한다. 문제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전두환과 5공을 악마화 함으로써, 산업화와 군사주의의 발전국가를 이루어온 세력, 집단, 그리고 국민에게 참회의 필요도 없는 면죄부를 주게 된다는 점에 있다. 전두환과 5공은 하늘에서 떨어진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악마적으로 행동한 자들이므로, 이들은 산업화 세력, 소위 보수의 계보에 들 수 없다. 이들을 계보에서 파내어 버리고, 5공과의 투쟁의 성과를 모두가 공유하면서, 앞장서서 투쟁하던 운동권이 지리멸렬하게 될 때, 넉넉한 마음으로 이들을 포용해서 국민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하나의 구성plot이다.
그러나 실상 전두환과 신군부, 그리고 5공은 박정희의 자식이었다. 그들은 박정희 체제가 만들어낸 이들이었고, 박정희 체제에서 통치술을 배웠고, 박정희 체제가 만들어 준 무력과 폭력에 힘입어 정권을 장악하고 반대파를 억압했다. 그들은 박정희 체제 경제정책의 한계를 넘어서고, 3저 호황이라는 외부 조건에 힘입어 성공을 구가했다. 박정희의 또 다른 자식인 박근혜와 그들이 갈등관계에 있었다고 해도. 그들이 박정희의 적자임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전두환과 5공의 악마성은 박정희 체제의 귀결이었다. 그건 바로 차지철이 박정희가 살해되는 마지막 술자리에서 몇 백만 죽여도 좋다고 했던 바로 그 말을 실천한 거였다. 나치 의 유대인 대학살이 파시즘의 귀결이자, 근대성의 한 극단적 귀결이듯. 5월 광주는 군사독재의 귀결이었다. 전두환과 5공의 악마성에만 집중하는 것은 유대인 대학살의 책임을 히틀러와 주변의 나치 핵심인사들 히믈러 등 소수의 집단의 악마적 의도로 해석하는 의도주의적 해석과 궤를 같이 한다. 그 결과 나치 체제를 지지했던 독일인들의 죄는 사면이 아니라 아예 없었던 것이 된다. 이런 해석은 곤란하다.
1980년대 초반부터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가치를 다루는 내용으로 먼저 이철용의 『어둠의 자식들』이 언급된다(495). 그는 밑바닥 하류 인생이지만, 거기서 사람 구실하고 싶다, 떳떳하게 살고 싶다 말하며, 지식인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다(499500). 이어서 그의 이문열 사랑이 나타난다. 그는 정말 이문열을 좋아 한다. 아니 1980년대 거의 전체를 이문열에 의존해서 해석한다. 이 점은 정말 동의하기 어려운데, 차분히 이야기해 보자. 먼저 1981년 작 『젊은 날의 초상』은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들어가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며, 지식에 대한 허영을 거부해야 한다(509)는 것이라 말한다. 이어지는 1982년 작 『황제를 위하여』 에서 근대 이후 한국인들의 이념 과잉을 비판했지만, 대체할 만한 가치는 제시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푸코의 돈키호테 분석을 가져오면서, 1980년대 한국 사 회는 모든 이념과 가치가 붕괴되고, 말과 사물이 따로 놀며 세상이 의미를 잃는 이른바 ‘헤테로토피아’였음을 드러낸다고 한다(520521). 그런데 그런 시대는 1989년 이후로부터 1990년대에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가? 1980년대는 외려 목표가 뚜렷하지 않았나. 최정운은 자꾸만 세월을 10년씩 앞당긴다. 그리고 최인호의 1984년작 「고래사냥」을 멜빌의 『모비딕』의 이미지와 연결하면서, 그것이 마네킹 미국인에서 정을 떼는 이야기이듯이(526), 「고래사냥」은 작고 예쁜 고 래 한 마리를 갖는 욕망이 하나의 대체물로서, 위대성을 향한 충동이 세속화되는 계기라 말한다(528). 학생 운동권은 분파투쟁,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변질되고 있었다(530). 다시 이문열의 1986년작 『변경』은 월북한 자기 아버지의 이야기이다(531). ‘애비는 빨갱이였다’는 그의 핵심 모티브이다. 『변경』은 1980년대 중반 한국인 들이 겪는 정체성 위기, 극도의 공포와 증오, 극도의 환희의 경험, 이상주의, 물질주의, 쾌락주의 등 이면의 난무와 교대로 의식상의 대혼란을 겪는 시기이며, 한 순간 거대한 전사가 되었다 다시 움츠리는 정체성 위기를 표현한다고 한다(538). 옳은 이야기다. 그런데 한국인이 근대에의 여정을 백오십년 전 에 시작한 이래, 그렇지 않은 적이 한 순간이라도 있었던가. 또 이문열의 1988년작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에서 한국인이 느끼는 자기 자신에 대한 증오, 한국 땅에 대한 증오를 발견하고, 1980년대 말에 물질주의의 위태로움을 느꼈다고 설명한다(547). 민주화와 서울올림픽의 화려한 승리로 1980년대는 마감 되었지만 정체성을 잃고 병들어 가는 한국인들에게 그 화려함과 보람은 음미되지 못했다(548).
책장을 넘기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정말 1980년대에는 이문열뿐인가? 근데 왜 「익명의 섬」은 빠뜨린 거지. 물론 이문열은 1980년대 문학을 살피는데 첫손으로 꼽아야 한다. 나도 이문열을 전혀 안 읽은 건 아니기에. 『황제를 위하여』나 『변경』은 좀 약하지 않나 생각하는 정도다. 여튼 여기서도 다시 한 번 작품 선택에 있어서 최정운의 자유를 존중한다. 그렇다면 뭐가 빠진 아니 채택되지 않은 것일까? 거론되지 않은 것에서 거론된 것의 의미를 살펴보자. 송기숙, 조정래, 조성기, 박범신, 강석경, 현기영, 박영한, 현길언, 임철우, 고원정, 김원일. 내가 이들을 모두 아는 것도 아니고, 이 글을 위해 검색해 보았다. 이들을 다 말하기 어렵지만, 두드러진 한 가지는 근현대사에 대한 재해석이다. 제주 출신 작가들의 4.3에 대한 이야기, 김원일의 전쟁이야기, 송기숙의 「녹두장군」. 그 리고 무엇보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나는 이 작품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태의 『남부군』에서, 이병주의 『지리산』, 조정래의 『태백산맥』, 권운상의 『녹슬은 해방 구』로 이어지는 빨치산 소설의 계보가 있다. 앞의 세 작품은 사실 이태의 『남부군』 원고가 출판사를 떠돌 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기도 했고. 그리고 김성종의 소설로 1975년부터 1977년까지 『일간스포츠』에 연재되고, 1991년에 드라마로 만들어져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여명의 눈동자』가 있다. 바야흐로 이 시대는 근현대사의 재발견을 통해, 역사적 정체성을 다시 세우고, 오늘날 말하는 친일파 척결과 민족정기라는 담론이 형성되고 만들어진 시기다. 아직까지도 그 영향력은 다시 확인되고 확산되고 있다. 이 시기에 김구는 사실상 재발견되었다. 6권으로 발간된 『해방 전후사의 인식』은 역사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 직까지도 논쟁 중이다. 최정운이 서문에서 ‘별떡달떡’ 이야기를 할 만큼. 그리고 이 시대 또 한 가지가 노동자 문학의 형성이다. 최정운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만 언급했지만, 우선 조영래의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 『전태일 평전』으로 출간되고, 무엇보다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이, 그리고 이 어지는 안재성의 『파업』. 잡지 『노동해방문학』이 발간되었다. 이 작품들이 최정운이 선정한 사실주의 픽션에는 못 미칠지 모르지만, 이 시대를 읽는 과정에서 결 코 간과되어 서는 안되는 것들이다. 1987년의 민주화를 단지 형식적 민주주의로서 직선제 성취라고만 보면, 그 입체성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1987년의 6월 항쟁은 두 가지 큰 분출을 낳았는데. 그중 하나는 통일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그해 여름의 노동자 대투쟁으로 시작된 본격적인 조직 노동운동이다. 이는 마침내 중간계급의 탄생을 가져온다. 이런 변화들은 앞에서 언급한 문학을 통한 역사의 재해석과 노동 문학과 노동자 문학과 무관하지 않다. 나는 이런 흐름의 첫발자국으로 1970년대말 불법복사 테이프로 확산된 김민기의 노래굿 『공장의 불빛』을 들고 싶다. 노래 「야근」은 아직도 울림이 있다.
7.
이제 거의 막바지다. 최정운은 그의 이야기를 1990년대에서 마무리한다. 그리고 1990년대를 논하는 제9장의 제목은 「근대로의 진입」이다. 운동권의 몰락, 동 구원의 붕괴, 대형사고로 요약되는(551552) 1990년대를 이렇게 설명한다. “1980년대는 반동 세력과 혁명 세력 간의 피나는 투쟁의 시대였다면 1990년대 는 혁명 세력의 순치와 우리 사회로의 수용에 이은 과격 사상들의 침윤의 시대였다. …… 1990년대야 말로 우리에게 근대화의 결정적 단계였다. 서구의 근대성 을 흉내 낸 ‘짝퉁’ 근대화를 넘어서 근대성의 근본 문제의식이 내화되어 ‘근대’라는 시대의 문턱을 넘어 진입하는 시대였다(553). 도대체 그가 말하는 근대란 무엇일까?
하일지의 1990년작 『경마장 가는 길』로 1990년대 분석은 시작된다. 이 작품은 포개진 두 겹의 텍스트로 진정한 근대 소설문학이 태어나는 신화라고 평가하며, 정체성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다시 그리며, 의식 뿐 아니라 몸까지 만들어가는 자기반성의 동적, 지속적 체제를 만드는 일 (566)이라 제시한다. 근대적 사실주의 글쓰기(567)로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다. “질적이며 의미 있는 우리 모습의 변화, 우리 자신의 윤리적, 철학적 평가와 의미 부여를 포함하는 우리의 변화하는 모습의 관리는 사실주의적 근대 소설문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단정한다(567). 충격적이다. 글쓰기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니. 박일문의 1992년 작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세상을 폭력으로 증오하던 화자(569)가 정체성을 포기해 버린 라라와의 광기어린 관계에서 자신을 지키는 최소한의 방법으로 또 글쓰기를 제시한다(581)고 정리한다. 이어서 1995년 작 양귀자의 『천년의 사랑』을 통해 이데올로기 과잉과 흥분과 동요를 넘어 서는 운명의 사랑이야기를, ‘민족으로서의 우리’ 천년 혹은 더 오래전부터 앞으로의 만남과 헤어짐, 기다림과 약속으로 엮여 있음을 말한다(591592). 역시 1995년 작 김소진의 『장석조네 사람들』은 다시 한 번 가난한 사람들의 세계로 들어간다. 동네 사람들의 공동생활의 밑바닥. 서로 감싸주고, 보살펴주는 공동체, ‘공동체’, ‘사회’, ‘민족’ 같은 경계를 가진 집단은 언급되지 않는 이웃 사람들의 세계(612). 최정운은 김소진이 남을 위해 도와주는 세상, 공동체를 살 만한 곳으로 만들려는 마음과 행동이 인간의 본질로 제시하고, 영웅주의적 개인을 공동체의 이름 없는 일원으로 환원시켰다(613)고 평가한다. 1990년대의 발견은 이질 적인 사람들이 모인 우리가 ‘우리!’라는 형식을 강조할 때, 문제가 악화되므로 복수複數임을 인정하고 오랜 시간을 두고 서로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 말한다(618). 따뜻한 마음으로 배려하는 민족의 내용, 구체적인 ‘우리’의 내용으로 사랑과 정이 가득한 민족으로의 진화 추구(618)라 설명한다. 상대주의, 양시론, 양비론 같은 냉소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이 근대의 완성이고, 공동체는 광기의 이상주의자를 따뜻하게 품음으로서 이루어진다(619) 말한다. 사랑 타령이 대중문화를 지배한 1990년대는 이제 ‘화和’가 상위의 규범이 되는 정의와 화합이 동시에 확보된 상태가 진정한 근대성이고(620), 이성적 원칙과 규범을 세우는 근대화를 넘어, 흉내낼 수도 수입할 수도 없는 오래 잘 살 수 있는 ‘마음’으로써 ‘지혜’의 근대화가 필요하고, 이제 이 여정이 1990년대에 시작되었다는 말이다(621). 개인적인 글이니까 솔직하게 쓰겠다.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결론인가. ‘동도서기東道西器’가 결론이라니. 그래서 1990년대를 분석하는 마지막 소설로 1999년 작 공지영의 『고등어』를 선택한다. 그에 따르면 이는 한때 준準절대공동체 운동권을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다(628). 그러나 취기에서 깨어나는 것은 고통스러웠고, 그들의 정체성 위기는 절박했다(632633). “이 소설은 한 시대, 한 세대와의 고별의 몸짓이었다”고 평한다(634).
1990년대를 바라보는 최정운의 결론은 이데올로기에 오염되어 극단주의에 함몰된 운동권의 실패와 그 투항이었다. 이들의 정체성 찾기는 글쓰기, 즉 지성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가난하고 소박한 사람들의 정에 근거한 공동체에 대한 소망이었다. 반지성주의 극복의 장이 열린다. 1990년대를 그렇게만 보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1990년대에서 최정운이 정말 좋은 작가들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시 다시 한 번 그가 채택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 중요한 사람 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윤대녕, 신경숙, 은희경. 그리고 공지영의 다른 작품들. 김영하와 김애란은 여기 포함시키기는 좀 어렵겠지만. 문학 전문가도 아니고 평론가도 아니기 때문에 기억을 더듬어서 말할 수밖에 없는데. 무엇보다 이들의 시대는 문체의 시대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정치사회적 무관심과 자기의 삶, 특히 소시민적 삶을 파고드는 경향을 보이지만, 그것이 빈곤이나 노동자성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의 문학은 계급성을 탈피했거나 사 회적 안정성 속에서 자유로움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운동권들의 투항이나 이전 시대와의 결별을 의미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게다 가 1990년대는 신세대의 시대였고, 일본 드라마의 영향을 받고 베끼다 시피한 ‘트렌디 드라마’들이 큰 인기를 얻던 시기다. 과거에 나를 포함한 꼰대들은 이들 신세대가 탈정치화되고, 의식이 없다고 평가했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 이념 지형을 보면, 오히려 1990년대 초반에 20대 초반을 보낸 이들이 지금까지 한국 사 회에서 등장한 어느 누구보다 진보적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오히려, 근엄하게 통일과 노동과 민족을 외쳤던 꼰대들은 기득권의 일부가 되기도 하고, 여전히 근엄한 꼰대로 남아있기도 한 것이 현실이다.
8.
최정운의 연작 『한국인의 탄생』과 『한국인의 발견』은 근현대 한국소설을 그 사상연구의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그의 연구 대상이 된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는 아닐지라도 상당수가 지식인이다. 당대의 지식인들의 자기 사유 방식에 대한 고찰이다. 물론 지식인들은 어느 정도 시대를 대변할 수 있다. 실제 시대를 표현 할 수도 있다.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모두 지식인이다. 그러나 지식인들의 정체성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대변한다고 보기 어렵다. 아마도 그래서 일까, 그는 종종 다른 사람들을 드는데. 시대마다 빈민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이 빈민들은 종종 가난한 사람들의 공동체, 이웃사람들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이 두 부류를 통해서 공동체를 구성하고 전망을 세울 수 있을까? 그러다 보니 결론은 지성의 회복과 이성과 정情의 화합이라는 동도서기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지식인의 자기비하에서 지식인의 자기성찰로 이어지는 구조는 수미쌍관하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이 반지성주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그 공동체 란 말하자면, 운동권 세력의 투항, 즉 민주진보세력의 투항을 통해 이루어지는 화합, 소위 말하는 국민통합이 아닌가. 조금 넉넉하고 여유가 있고 받아주는 보수 의 헤게모니에 근거한 지난 10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 동안의 이데올로기 전략이었다.
왜, 이런 해석을 하게 되었는가? 나는 최정운이 ‘우리’와 ‘민족’에 집착했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서문에서부터 시작해서 너무나 많은 ‘우리’가 반복된다. ‘우 리’의 반복이 스스로도 힘겨웠는지 마지막에 그 ‘우리’는 따뜻하게 품는 ‘우리’가 되지만. 그리고 ‘민족’이라는 개념이다. 그의 ‘민족’ 개념은 좀 묘하다. 흔히 민족 이라고 할 때, 대부분의 사람은 언어적, 혈통적 공동체를 상정하고, 그렇게 받아들이도록 배워왔다. 최정운은 양귀자의 「천년의 사랑」 분석에서 마치 그런 해석 을 받아들이는 듯하다. 그것 말고도 행간 속에서 ‘민족’이라는 말이 반복될 때, 대중이 일상적으로 이해하는 ‘민족’이라는 어휘의 의미에 기대고 있으며, 그에 근 거해서 ‘민족국가’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북한을 통일해야할 대상으로 보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혈통 문제에 대한 그의 인식은 제한적이다. 한국전쟁을 동족상잔으로 형제를 죽인 카인의 살인죄로 인식하지만, 통일에 대해서는 단 한 차례도 언급이 없다. 분단이라는 말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조작적인 네이션nation국민/민족 개념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것을 ‘민족’으로 번역한다. 1960년대를 설명하는 그의 문장을 조금 인용해 보자. “1960년대의 한국인은 전 과는 전혀 다른 활기찬 모습이었다. 혁명 과정에서 욕망을 얻었고 역사의 발견을 통해 희망을 얻었으며, 이 희망을 지키기 위한 결의는 진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고독했고, 그들의 정서를 품어줄 공동체는 거부되었다. 그들은 모두 가족도, 공동체도, 윤리도, 도덕도, 심지어는 민족도 벗어버린 가벼운 군장으로 욕망 을 향해 잠시의 휴식도 거부하고 달려 나갔다. 이것이 바로 1960년대 ‘한국주식회사(Korea Inc.)’라 불렸던 ‘민족 공동체’의 모습이었고, 이 지점에서 ‘민족이란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라는 앤더슨(Benedict Anderson의 명제는 너무나 정확했다. 1960년대 한국인들은 가벼운 군장으로 너무나 빠르게 달려 나갔기에 ‘타임머신’에서 빨리 늙어버렸다. 1960년대 말이 되면 그들은 촉촉한 속살은 다 말라버리고 껍데기와 탈만 남았다(346347).” 여기서 실상 최정운은 아주 정확하게 포착했다. 1960년대 박정희 체제는 박정희 체제의 민족 또는 국민을 만들어냈다. 이 시대에 하나의 네이션nation이 형성되었고,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최정운이 언급하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1980년 절대공동체로부터 시작해서 또 하나의 민족 또는 국민이라고 부르는 네이션이 형성되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운동권의 지리멸렬로 투항했다고, 끝맺는 것과는 달리, 이 새로운 네이션nation 민족 또는 국민 은 신세대들을 통해서, 월드컵과 효순이 미선이, 노무현 탄핵 반대의 촛불을 지나 2016년의 광장으로 이어졌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반이야말로 희 망, 욕망, 자유, 낙관이 넘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이제 이 새로운 네이션nation 민족 또는 국민이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다. 그 가장 큰 증거는 거리로 뛰쳐나온 1960년대의 그 민족 또는 국민들이 이렇게 외친다는 점이다. ‘우리도 국민이다.’ 그들의 구호에 더 이상 국민통합은 없고, 그들은 계엄령과 쿠데타를 요청하고 있다. 거리를 누비는 그들의 면면에서 이들의 쇠퇴가 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단지 세대로만 분석할 수 없다. 네이션nation 민족 또는 국민으로 보아 야 한다. 그리고 이들은 우리 역사상 세 번째와 네 번째 네이션nation 민족 또는 국민이다. 첫 번째는 구한말과 식민지 시기 초기에 형성된 국권과 국가 및 영토 없는 네이션nation 그래서 이들은 혈통과 언어, 영웅에 기댄 민족이라는 이름에 자기를 의탁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는 해방과 한국전쟁의 폭력과 배신의 구 조, 전향과 심사를 통해서 만들어져 나온 체제에 절대적인 충성을 표시함으로써 살아갈 수 있는 네이션nation 민족 또는 국민이다. 네이션nation 민족 또는 국민은 변해간다. 연속적이지만은 않다. 단절적이고 전복적이고 주도권 다툼과 투쟁을 통해 새롭게 형성되기 까지 한다. 네이션 스테이트nation state 민족국가 또는 국민국가의 안정화가 이루어질 때까지는 적어도 그렇고 그 이후로도 그럴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아이덴티티identity 정체성 혹은 동일성의 문제다. 그것이 근대성의 한 측면임도 자명하다. 이 네이션nation 민족 또는 국민을 하나로 보고 ‘민족’과 ‘우리’라는 호명에 붙들렸을 때, 그는 네이션nation 민족 또는 국민의 조작성과 영속성 사이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었고, 국면적으로 형성된 하나의 네이션nation 민족 또는 국민에 절대성을 부여하게 되었다. 이 책은 그 결과다. 나 는 그래서 ‘우리’라는 단어의 사용을 글쓰기에서 중단하고, 굳이 국민이라는 객관적이면서, 민족보다는 거리를 둘 수 있는 단어로 바꾸어 써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 또한 끊임없이 회의하고 재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이달의 서평] Aporia Reivew of Books, Vol.5, No.2, 2017년 2월, 이원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