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가 쓰고 있는 말과 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서평자는 지금 “시나브로”나 “짜장”과 같은, 점점 사라져 가는 정감있는 우리말 어휘에 대한 지식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말에 대한 지식”이 그런 걸 뜻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경향이 있고, 그걸 문제삼을 생각은 없다. 허나, ‘우리말글’에 대한 지식을 그런 “소중하지만 이제는 잘 쓰이지 않는 궁벽한 어휘들에 대한 지식”으로 한정짓는 것 또한 위험한 일이다.

서평자는 국어국문학과의 교수로서 우리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리말이 오늘날에 이른 내력을 제대로, 동시에 알기 쉽게 설명하는 일이 긴요하다고 여기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국어국문학’이라는 학문이 제도상으로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실질로서 존립할 수 있기 위한 근거이다. 헌데 오늘날 대학의 국어국문학과는 존립의 위기에 놓여 있고, 국어학자와 국문학자들 대부분이 제각기 좁은 자신들만의 세부 전공에 함몰되어 있어서, 이러한 대국적인 문제의식을 갖기 어려운 실정이다.

현재 국어국문학과에서 “우리말이 오늘날에 이른 내력”을 설명하는 세부 강좌로는 국어사와 국어학사가 있을 뿐이다. 국어사는 대체로 전공필수로 지정되어 있으나 어렵고 재미없기로 학생들 사이에서 소문난 강좌이고, 국어학사는 듣는 학생이 없어 폐강되거나, 아예 학과 자체에서 개설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국어사(國語史)는 학생들의 언어 생활과 관련이 적은 음운(말소리)의 역사, 문법형태의 변화사 등을 포함하고 있어 소수의 학생들만 들어도 큰 문제는 없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국어학사(國語學史)라는 과목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강좌가 (물론 잘 가르친다는 전제에서) 국어사보다 훨씬 중요하고, 재미있는 강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국어사는 현대 감각으로는 중요성을 느끼기 어려운 문제들을 다룬다. 삼국시대의 음운추정, 고려시대의 어휘형태 추정, 중세국어의 형태분석 등 극도로 전문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국어학사는 실제로 우리가 실감할 수 있는 바 가까운 시대의 우리 조상들이 우리말을 고민하고 살뜰히 가꾸면서 느낀 점들과 고민한 문제들을 다루는 강좌이다.

국어학사라는 말에 들어 있는 “국어학(國語學)”이라는 개념이 일반인들에게 낯설 수는 있다. 국어학은 말 그대로 “국어를 연구하는 학문”이지만, 거기에는 좀더 깊은 뉘앙스가 숨어 있다. 현행 국어학 체계는 18세기 후반부터 서유럽에서 성립한 음성학과 음운론 중심의 근대 언어학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언어를 사회적 현상으로 보거나 언어 바깥에서 바라보는 관점보다는 “언어 자체”의 특성이나 조직, 질서를 탐구하는 경향이 있다. 근대 언어학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소쉬르(1857~1913)가 했던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소쉬르의 박사학위논문은 “산스크리트어의 절대적 속격용법(De l'emploi du genitif absolu en Sanscrit)”이며, 그를 비교언어학의 선두주자로 부각시킨 유명한 논문의 제목은 “인도유럽 여러 언어들의 원시 모음체계 연구(Memoire sur le systeme primitif des voyelles dans les langues indo-europeennes)”이다. 서평자가 여기서 듣기만 해도 어려운 논문의 제목을 원문으로 들먹이는 것은, 독자를 주눅들게 하려는 뜻이 아니다(소쉬르는 스위스 제네바 출신이지만, 제네바는 프랑스어 권이므로 그도 대부분의 저술을 프랑스어로 했다). 오히려 나는, 소쉬르가 만들어낸 “언어를 바라보는 문제의 틀”을 현재 국어학계가 거의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려고 한다. 전자도서관에 들어가 국어학 관계 논문을 검색해 보면, 대부분의 논문들이 소쉬르 논문과 유사한 틀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서울방언의 음운체계 연구”, “15세기 국어의 성조 연구”, “중세국어의 구문론 연구”, “근대국어의 어휘 연구” 등이 기존의 국어학계에서 배출되는 논문들의 틀이다.

이와 같은 학계의 연구 경향이 성립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나, 그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언어 자체”에 연구의 관심을 철저하게 집중시키는 것은, 학문의 성과를 일반인들과 소통하지 어렵게 할 수 있고, 언어가 실제로 세상에서 고립되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착각을 유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국어학사와 같은 강좌만 하더라도, 국어학이 오늘날과 같이 분업화된 세부 학문분야로 위축되기 이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만큼, 제대로 연구만 된다면 국어국문학이 지닌 현재의 문제를 돌파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서평자가 소개하고자 하는 책, 토쿄대 교수 미쓰이 다카시 선생의 “식민지 조선의 언어지배 구조”는 일본인의 연구이긴 하나, 이러한 관점에서 소중한 성과이다.  

내가 미쓰이 다카시 선생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성균관대학교에서 출간된 {흔들리는 언어들}(2008)이라는 논문집에 실린 <식민지 시기 조선에서의 언어운동 전개와 그 성격>을 보았을 때였다. 식민지 시기의 한가운데인 1933년에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나오게 되기까지의 과정, 그 속에서 총독부와 조선어학회 간의 긴장을 학술논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박력있게 서술한 데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후 선생을 두 번 직접 만난 적이 있다. 한번은 개인적인 대면이었고, 다른 한번은 학회장에서였다. 두 번 다 나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는데, 그 이유를 설명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책 소개가 될 것 같다. 

2010년 초겨울, 나는 가족과 함께 여행과 자료 조사를 겸하여 일본을 방문했고, 그때 히토츠바시 대학의 이연숙 선생님의 소개로 미쓰이 선생을 직접 만나게 되었다. 이연숙 선생님은 한국인으로, 미쓰이 선생이 2002년에 제출한 박사학위논문 지도교수였다. 이연숙 선생님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을 위해 한마디로 소개하자면, “학계(學界)의 김연아”와 같은 분이다. 1970년대에 연세대학 국문과를 다니시고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국어학사(앞서 언급한 “국어학사”이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자기 나라의 말은 ‘국어’라고 일컫는 것이 자연스럽고, ‘국어’라는 말은 일본이 먼저 쓰기 시작했다.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이렇게 자기나라 말에 대한 고민을 학문적으로 전개한 사실의 역사가 국어학사인 것이다)와 일본인들의 언어심리를 연구한 명저 {国語という思想(국어라는 사상)}(1996)을 쓰셨고, 일본 최고의 명문 중 하나인 히토츠바시(전 토쿄상대)에서 교수로 활약하고 계신 여걸(女傑)이시다. 참고로 말하면 {국어라는 사상}은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있다.

2010년 초겨울, 나는 이연숙 선생님의 소개를 받아 선생이 근무하는 쿄토의 도시샤 대학 캠퍼스를 찾아갔다. 선생은 처음 보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는데, 가장 먼저 놀란 것은 그가 나와 동갑(1974년생)이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깊이있는 논문의 내용만으로, 상당한 연배의 학자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선생의 연구실로 안내되었고, 거기서 두 번째로 놀랐는데, 선생의 연구실에서 당시 출간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친일인명사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분의 사전에 대한 평가는 간명했다. “학자들이 자료에 기반해서 쓴 것이니까 믿을 만할 것.” 선생의 이 말은 매우 중요한데, 필자가 소개할 선생의 책 또한 똑같은 평가를 받을 만하기 때문이다. 

나는 선생에게 내가 쓴 책을 증정한 뒤, 선생에게 2002년에 쓰셨다는 박사학위논문을 읽고 싶은데 여분을 주실 수 있냐고 요청했다. 선생은 “성과가 미흡해서”라고 겸손해하면서도 지금은 여분이 없고 나중에 우송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또한 지금 그 책의 한국어 번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귀띔을 해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2013년 2월에 나온, 내가 서평하려고 하는 책 {식민지 조선의 언어지배 구조}이다. 선생은 그후 약속을 지켜 한국으로 논문을 우송해 주었다. 그러나 게으른 나는 “일본어로 된” 선생의 박사학위논문을 읽지 않은 채 계속 묵혀두고 있었고, 마침내 2013년 초에 번역본이 출간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나는 책을 사서 단숨에 읽어버렸고, 서평을 쓰기 위해 이렇게 컴퓨터 앞에 섰다.

미쓰이 선생의 연구 분야는 단적으로 말하자면 사회언어학이다. 한국에는 비교적 생소한 분야인데, 일본에서는 활발하게 연구되는 듯하다. 이연숙 선생님의 {국어라는 사상}과 미쓰이 선생의 {식민지 조선의 언어지배 구조}는 “지도교수의 저술” 대 “제자의 저술”, “한국인의 일본어학사 연구” 대 “일본인의 한국어학사 연구”라는 점에서 절묘한 대칭을 이룬다. 이연숙 선생님은 “논문지도는 형식일 뿐, 대등하고 탁월한 학자”라고 미쓰이 선생을 높이 평가했고, 한갓 구경꾼인 내가 보기에도 미쓰이 선생은 그러한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 이연숙 선생님과 미쓰이 선생의 저술은 외면적인 대칭을 넘어서 어떤 공통적인 기반을 갖추고 있다. 그것은 한국의 국어학계에서 보는 바와 달리 언어를 언어 바깥의 사회적인 힘 속에서 파악하는 “언어사회학적 연구”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학문적이고 중후한 반격(反擊)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이연숙 선생님의 저술은 단순한 학문적 연구성과를 넘어서 근대 일본의 언어인식(국수주의, 제국주의)이 생성, 발달, 파탄에 이르는 과정을 묘사하여 일본 근대사에 총체적 반성을 요구한 역작(力作)이다. 

미쓰이 선생의 연구는 더 나아가 이른바 “일본 극우파”들의 주장인 “일본이 조선에게 식민지배를 통해 해를 끼친 것이 아니라 근대화시켜 주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시혜론)을 정면으로 거론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흔히 공업화나 도시화 등 사회적 측면에서 언급되나, 언어사회학적인 관점에서도 논할 거리가 많다. 식민지 시대에 보통학교(오늘날의 초등학교)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총독부에서 조선어 철자법을 연구해 공포했으며, 조선어사전까지 간행했으니, 일본이 조선어 말살을 했다는 것은 역사왜곡이라는 것이다. 미쓰이 선생은 실제 책 서론에서 곤도 겐이치, 니시오 간지, 황원슝 등의 논자들을 언급하며 이러한 시혜론이 갑작스럽게 나온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15~17면)

필자는 이러한 논의에 대해 일반적인 한국인들이라면 감정적으로 반발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도로, 총독부 학무국에서 관장한 보통학교 교육에서 조선어가 1930년대 후반까지 교수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에서 겉보기에 가장 뜨거운 논란이 되는 바, 조선총독부 언문철자법 제정시 조선어학회 학자들의 관여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식민지의 경영자였던 일본인들은 이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었으나 패전 이후 침묵을 강요당했고, 지배받던 ‘조선인’들은 ‘한국인’으로 거듭난 뒤 “조선인이었던 시절의 기억”을 굳이 떠올리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시절의 역사는 수사법 속에 가려져 버렸고, 사실을 차근차근 확인하려는 노력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식민지 근대화론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동감할 수는 없더라도 이해할 수는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예컨대 1910~1945년 동안 조선 땅을 생활 터전으로 삼아 실제로 뿌리를 박고 살았던 많은 일본인들이 있었고, 조선 땅에서 태어난 이들도 많았다. 그들은 한국인들과는 다른 느낌에서겠지만 분명히 조선땅을 “고향”이라고 생각했다. 조선을 터전으로 삼아 사업을 하거나 식민지 경영에 참여했던 이른바 재조선(在朝鮮) 일본인들이 패전 후 일본으로 건너가 세운 우방협회라는 단체가 있는데(17면), 회원들은 이러한 심성을 갖고 있었던 것 같고, 이는 최근에 일본이 급속히 우경화하면서 일어나는 “식민지배가 뭐 나쁘냐?”는 깡패논리와는 분별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일본에서 벌어지는 논란의 구도를 우방협회 식의 “온건 시혜론”과 극우파의 “과격 시혜론”으로 굳이 이분해 본다면, 대체로 말해 온건 시혜론은 식민지배를 직접 경험한 구세대에서, 과격 시혜론은 (아마도) 역사를 체험이 아닌 수치와 사료 속에서만 파악하는 신세대에서 발견되지 않을까? 한국에서도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심층에서 비슷한 구도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친일파”는 존재하지 않지만, 무의식 혹은 “남들에게 굳이 일부러 드러내지 않는 의식” 속에서 친일적(혹은 일본에게 호의적)인 생각을 갖거나 표현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고려대 명예교수를 지낸 한승조의 “일본의 식민지배는 다행한 일”이었다는 주장이나, 최근 경제사 학자들을 중심으로 주장되었던 “식민지 공업화론”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극우파들 가운데는 젊은이들도 많다. 베를린의 뒷골목에는 네오나치 젊은이들이 우글거리고, 일본 수상 아베(1954~)도 전쟁을 체험한 조부나 부친 세대에 비하면 “신세대”에 속한다. 하다못해 히틀러조차 “늙음”과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이들을 추동하는 힘은, 이유가 제각각인 “여러 가지 분노들”일 것이다. 보수적인 귀족 기득권층에 대한 분노(히틀러), 이민족에 대한 혐오와 분노(히틀러, 네오나치, 아베), 조국이 부당하게 저평가되었다 느낌에서 오는 분노(히틀러, 아베) 등등. 

나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동조하거나, 혹은 그러한 연구경향을 보여주는 젊은 세대들한테서도 어떤 ‘분노’를 찾아볼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미쓰이 선생은 책에서 이러한 경향의 한국인 논자들로 김철과 이혜령을 들고 있는데(22~26면), 이들은 모두 조선어학회의 한글운동과 조선총독부 정책의 관계를 협력이라고 폭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분노는 어떻게 보면, 선배 세대들로부터 식민지 시대의 실제 모습에 대해 “잘못 배웠다”는 느낌, 까놓고 말해서 “속았다”는 느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아직도 “태어날 때에는 법적으로 한국인이 아니었던 한국인(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수립 이전 출생자들)”들이 엄연히 다수 생존해 있는 현실에서, 일본의 식민지배는 생생한 현실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극단적인 식민지 근대화론자라 할지라도 부정할 수 없는 굴욕의 역사를 포함하고 있었고, 이 때문에 한국인들은 이 시기를 ‘연구’하려고 하는 순간 감정의 불길에 휩싸이거나, 수많은 “감정들의 회오리”에 말려들게 마련이다. 피해자는 피해자대로 억울해하고, 가해자는 (최대한 감추다가 감출 수 없게 되면) 약육강식의 논리를 들고 나와 자기를 정당화한다. 한편 감춰진 모습을 나중에야 알게 된 후배들은 선배들이 감춘 현실 앞에서 충격받고 환멸에 빠진다. 

나는 개인적으로 총독부 정책과 한글운동의 상관관계를 강조하려는 김철과 이혜령 같은 비교적 젊은 연구자들에게서 그러한 감정적 분노와 환멸을 읽는다. 이러한 감정적 에너지를 어떻게 해소하고 관리하고 감당할 것인가. 이것은 “한국인 된 자들”이 걸머질 운명일 것이다. 어쨌거나, 일제 강점기라 하든 식민지 시대라 하든, 그 왜곡된 시대에 관련된 사실을 정확하게 확인하는 일이 가장 먼저 필요하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사실 확인의 작업은 일본인들이 더 잘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1910~1945년 사이에 한반도에서 벌어진 일을, 보통 한국인들은 “한민족이 일본인들에게 탄압받고 수탈당했다”고 표현하고, 많은 일본인들은 “일본인들이 한반도에 진출해 식민지를 경영하고 조선을 근대화시켰다”고 표현한다. 이러한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나는 이것을 모순이 아니라 언어의 한계라고 표현하고 싶다. 극단적으로 말해, 한국인들의 표현도 일면 타당하고, 일본인들의 표현도, 주저스럽지만, 일면 타당한 점이 있음을, 최소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표현을 그렇게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표현의 의도가 더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그것을 조심스럽게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로서 제안하는 건지, 아니면 작은 사실을 정치적 의도를 갖고 침소봉대하여 반성하지 않으려는, 뻔뻔하고 폭력적인 행동의 징후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미쓰이 선생의 책을 볼 때에도 이러한 세심함이 요구된다. 우리는, 수탈론자는 민족주의자이자 애국자이고, 식민지 근대화론자는 친일파이자 매국노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진정으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더 큰 시각이 존재한다면, 1910~45년에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벌어진 일은 단순한 수탈도 단순한 발전도 아닌, 훨씬 복잡한 어떤 것이었다. 보통학교에서 조선어를 가르쳤으니 식민지배는 언어말살이 아니라는 순진해 보이는 주장은, 1930년대 후반 이후 일본이 보여준 광기를 은폐하는 불순한 정치적 의도에서 나온 것일 뿐이다. 반대로, 조선어학회와 조선총독부의 협조를 거쳐 1930년의 언문철자법이 나왔다는 사실을 은폐하는 것도 (그러한 은폐에 가담한 선배들의 마음을 짐작하지 못하는 바 아니지만) 역사 앞에서 정직한 태도는 아니다. 

미쓰이 선생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인정한다. 그는 김철이나 이혜령 같은 한국인 연구자들이 접근하지 못한 사료들(예컨대 토쿄대학의 오구라 문고 소장자료. 오구라는 식민지 시대에 설립된 경성제국대학에서 조선어학을 가르친 일본인 교수임)을 이용하여 조선총독부와 조선인 학자들의 적극적 협력관계를 돌이킬 수 없는 사실로 확정한다. 그렇다고 해서 미쓰이 선생이 순진하게 “조선총독부의 식민지배는 한국인에게 이로웠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미쓰이 선생의 탁월함과 학문적 정직성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사실 “보통학교 조선어 교육 시행 = 일본 통치의 관대함”을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순진함을 가장한 극도의 정치적 불순임을 이미 살펴봤지만, 이런 저열한 수준의 말장난이 먹힐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상대방을 얕보는 마음씨”에서 비롯된다. 

미쓰이 선생은 엄밀한 학문적 훈련을 받은 사람이고, 한국과 일본이라는 관점보다는 사실 자체를 앞세워야 한다는 학적 양심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책 전체에 걸쳐서 조선총독부의 조선어 철자법 제정운동과 거기에 참여한 조선인들의 노력을 상세히 밝혀내고서도, “이 보라, 일본이 조선의 언어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냐?”는 식의 정치적 해석을 전혀 하지 않는다. 미쓰이 선생은 스스로 “나 자신은 일본인을 대표하게 되는 것에는 강한 위화감을 느낀다(4면)”고 언명하고 있지만,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관련된 일본어 자료나 일본의 연구성과들을 참고하고, 엄밀한 실증에 입각해서만 말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일본인임이 분명하다. 미쓰이 선생의 말을 직접 들어 보기로 하자.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다. 허나, 일본인인 미쓰이 선생도 한국인을 상대로 “식민지 조선”에 대해 발언하는 순간, 한국인들이 겪는 감정의 회오리 속에 빨려드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다. 위에 언급된 “물음이나 비난들”은 내가 2011년 겨울에 개최된 한 학술대회에서 직접 목격한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내가 선생과 두 번째 만남에서 놀란 일이며, 안타까운 일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어떤 주장의 문면(文面) 자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언어적 외피 속에 있는 의도를 읽어야 하고, 그러한 주장이 나오게 된 정황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미쓰이 선생은 최대한 선입견을 배제하고 자료에 입각해서, 식민지 조선 최대의 문화과업 중 하나였던 “조선어 철자법 제정”에 조선총독부와 조선인 학자들이 어떻게 관여했고, 어떻게 협력했고, 어떻게 갈등했는가를 “최대한 사실대로” 밝혔을 뿐이다. 

지금까지 서술한 내용을 통해서도 아직 이해되지 않은 한국인 독자들을 위해 쉽게 말하겠다. 흑백논리를 쓰자면, 최소한 이 책에서 서술된 내용만을 가지고 보았을 때, 미쓰이 선생은 시쳇말로 “우리(한국인) 편”이다. “어떻게 일본인이 한국인 편을 들 수 있는가? 믿을 수 없다”는 의심을 할 독자는 없으리라 믿는다. 나 또한 미쓰이 선생의 무의식까지 알지는 못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 서술된 내용”이라고 단서를 달지 않았는가. 최소한 이 책의 내용에서 비추어 볼 때, 미쓰이 선생은 선진국(일본)의 학자답게 광활한 학문적 시야를 갖고 있으면서도, 일본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조선을 의식하고, 조선을 두둔하고 있다. 한국인인 나조차 왜 그런지 궁금할 지경이다. 다음을 보라.

서평자로서는 저절로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절이었다.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일본문학 연구자 임경화 선생과 재일 한국인 학자 고영진 선생은 후기에서, “저자에 대한 감사의 뜻(360면)”을 전했으나, 서평자는 솔직히 말해 감사의 뜻만을 표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이렇게 긴요한 기초 연구를, 우리가 지금 현재 쓰고 있는 말과 글에 대한 멀지 않은 과거(불과 100년도 되기 전의 일들이다)의 내력에 대한 연구를, 왜 일본인이 먼저 하도록 내버려 두었던가 하는 자책(自責)이 앞서는 것이다. 한국의 국어학자들이 소쉬르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언어 자체”만을 파고드는 동안, 우리는 우리 국어학사의 핵심부를 서술하는 권능조차 일본 학자에게 선수를 빼앗긴 것이다.

내가 이 서평을 쓰는 이유는, 미쓰이 선생의 연구가 갖는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학문적 이견을 제시하려 함이 아니다. 오히려 이 소중한 책을 소개하고, 이런 책이 왜 이제야 한국인이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나오게 됐는지를 설명하고 싶어서였다. 어찌 보면, 식민지 시대 조선인의 언어문제, 우리 선배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내려 했던 우리말과 글의 내력에 대해 ‘일본인’의 설명을 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역설적이고, 어찌 보면 부끄럽고, 기적같기도 하며, 조금 과장적으로 말한다면 “초현실적”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이연숙 선생님도 한국인이면서 일본인들에게 “일본어가 국어화되면서 벌어진 일본인의 정신구조”를 일본인들에게 “가르쳐 주는” 쾌거를 이룩하지 않았던가. 이제 나도 서평자다운 냉정을 되찾아, 책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고 마치려고 한다.

근대 국민국가의 언어는 ‘국어(國語, 국가어)’로 채택되기 위해 표준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표준화란 여러 측면에서 고찰할 수 있겠지만 가장 분명하고 시급한 문제가 표기법(철자법)의 통일이다. 이것은 정치권력이 개입하는 인위적인 과정으로서, 여러 가지 지역방언의 특성을 무화시키는 등 부작용도 크다. 그러나 근대인(近代人)의 가능성은 국민국가 속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엄연한 역사적 현실을 피해갈 수는 없었던 만큼, 이 또한 운명적인 것이었고, 우리가 쓰고 있는 우리말글, 그러니까 “한국어”의 전신(前身)이었던 “조선어(朝鮮語)” 또한 근대어가 되기 위해서는 표준화되어야만 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듯이, 1910년 8월 29일에 공식적으로 조선(대한제국)은 법적으로 소멸하고, 일본의 한 지역으로 편입되었다. 동시에 조선 땅의 국어(국가어)도 일본어가 되었다. 이것은 근대국가의 기본 이념 가운데 하나인 평등한 공민교육(公民敎育)의 수단이 일본어가 됨을 의미한다. 물론 지배자 일본은 조선인들에게 내지(內地, 일본 본토를 가리킴) 일본인들과 동등한 법적 지위를 전혀 보장하지 않았으며, 조선인들의 위상은 명목상으로는 일본인이되 실질은 전혀 일본인이 아닌, 분열된 상태로 방치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근대적 공민이나 시민을 창출하는 과제는 꿈도 꿀 수 없는 것이었다(사실 내지 일본에서조차 시민계급은 형성되지 않았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으니, 조선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상황을 악화시킨 것은 한국과 일본이 전통적으로 좋은 사이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근거가 있든 없든간에) 조선인들은 전통적으로 일본인들에 대해 문화적 우월감을 갖고 있었고, 왜구의 내습이나 임진왜란 등 전란의 체험으로 인한 근거 있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식민지배는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지배와는 또다른, 이중으로 왜곡된 정신구조를 한국인들에게 심어주었다. 

한국사에서는 대체로 1910~45년까지의 기간을 “일제 강점기”라고 표현한다. 잠시 강제적으로 점령당했을 뿐, 한국의 역사는 그대로 유지되었다는 믿음의 표현일 것이다. 실제로 정치사를 제외한 많은 개별 분과의 역사들, 예컨대 문학사(文學史) 같은 경우는 일제 강점기에도 한국문학이 멀쩡하게 자체적으로 발전한 것처럼 서술된다. 예컨대 “1910년대 한국소설”, “1920년대 한국시”, “1930년대 한국비평”이라는 개념이 아무런 의심 없이 성립한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1910년 8월 29일에 일어난 사건을 한일병합이라 하든, 경술국치라 하든, 그 사건은 국제정치적 사건이며 정치권력의 변화일 뿐이다. 1910년 8월에 국제법상으로 조선이 없어지고 일본이 되었다 한들,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뼛속까지 곧바로 일본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1910년 당시 조선인들의 일본어 문맹률은 (소수 지식인이 아닌 총인구 기준으로) 당연히 100%에 가까웠을 것이고, 1945년 패망 직전에도 일본어를 해독하는 조선인의 수는 총인구의 30%를 넘지 못하였다. “일본어=국어”라는 정치적 도식을 잠시 제쳐두고 생각해 보자. 총인구의 30%도 해독하지 못하는 언어가 과연 국어의 자격이 있는가? 그 초라한 수치조차 1938년 이후 일본당국이 조선어 교육을 철폐하고, 아이들을 매질하고, 감시를 붙여 가며 총력을 기울인, 언어적 광기의 결과였다.

미쓰이 선생의 책을 읽기 위해 우리가 먼저 알고 있어야 할 것은 이런 사실들이다. 미쓰이 선생이 “총독부가 조선인의 언어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쓰든, “총독부가 조선인을 배려했다”고 쓰든,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우리의 조상들인 “조선인들”의 실제가 어떠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1910년대의 일본인들은, 무력을 앞세운 병합을 실행하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식민지를 통치해야 할 것인지, 그 앞에 어떤 어려움이 놓여 있는지 충분히 의식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처음에는 매우 단순한 힘의 논리로 접근했다는 사실이다. 일본 극우파들이 이야기하듯 “조선인들을 위한 마음에서 조선어 교육을 시켜 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1911년 제국교육회 산하 조선교육조사위원회에서 조선어를 철폐하고자 결정했다는 미쓰이 선생의 보고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56면).

그러나 제아무리 잘난 일본인들이라도, 이민족인 조선인들을 갑자기 “숙달된 일본어 능력자”로 만들 재주는 없었다. 1910년대 당시 조선의 교육상황은 비참했다. 보통학교는 일본어 가르치는 왜놈학교라 하여 사람들이 외면했고, 서당보다도 인기가 없었다. 보통학교에서 모든 시간에 일본어를 가르친다 한들, 설령 그래서 보통학교 졸업자들이 능숙한 일본어 구사자가 된다고 한들, 보통학교 졸업자가 총인구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 자체가 극도로 미미했다. 1912년에 총독부가 공포한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총독부 1차 철자법)”은 그러한 다급한 상황의 임시방편이었으나, 거기서도 어윤적, 유길준 등 “저명한 조선인들”이 이미 참여하고 있다. 회의 과정에서 “天”의 발음으로 “텬”을 살릴 것인가 “천”으로 통일할 것인가를 놓고 벌어지는 어윤적(한학자, 중추원 부참의)과 타카하시 토오루(경성고보 교유, 이후 경성제대 교수)의 논쟁은, 우리말 표기법과 관련된 논란에 우리가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기도 하다(83~4면). 이 문제는 조금 후에 다시 거론할 것이다.

그러나 총독부 1차 철자법은 철자법 통일을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어떤 것들인가를 확인한 성과를 거뒀을 뿐, 그 결론은 잠정적이었고, 실제로 교육현장에 큰 영향도 주지 못했다. 애당초 “보통학교용”이라고 못박은 것부터가 그랬고, 1910년대 보통학교의 위상을 고려하면 그 한계는 처음부터 명확했다. 이후 10년간의 폭압적인 무단통치가 지속되었고, 조선인들은 숨죽이며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고종의 죽음(1919)으로 민중들의 울분과 압력이 폭발했고, 그것이 3․1운동을 낳았으며, 일본인들은 이를 진압하느라 큰 애를 먹는다. 비록 모든 권력을 손에 쥔 일본인들이었으나, 한반도 내에서는 어쨌거나 소수에 불과했던 그들이, “조선인들 대부분이 자신들에게 적대적이며, 때로는 목숨을 걸고 저항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3․1운동의 경험은, 분명 일본인들에게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제3대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1858~1936)가 1919년 9월 18일에 귀족원 의원 사카타니 요시로에게 보낸 다음과 같은 편지는 “식민지 경영”에 골머리를 앓던 일본인들의 고민을 진솔하게 전달하고 있다. 

조선에 있는 일본 관리는 일본어를 모른다. 그로 인해 우리의 의지를 그들에게 전할 수 없고, 또한 그들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어서, 평상시에 대단히 불편을 느낄 뿐만 아니라, 갑자기 유사시에 이르면 전혀 사정을 밝힐 수가 없다. 눈앞에서 음모를 이야기해도 그것을 알 수가 없고, 그 심정을 알고자 해도 그것을 캐낼 수가 없고, 특수한 용무를 시키려고 해도 그것을 명령할 수가 없으며, 경찰 기능이 부족하여 범인의 검거를 못하고, 불령자의 탐지를 어렵게 한다. (미쓰이 선생의 책 147면에서 재인용)

요즘 아이들 말을 써서 표현해 보자면, 일본인들이 드디어 조선통치가 “장난이 아님”을 깨달은 셈이다. 일본인들은 애당초 칼로 흥한 자들이었고, 젊고 날렵하고 유능하되, 사려깊고 자비롭고 대국적인 마음씨는 부족한 편이다. (물론 대체적 경향을 말한 것이지만, 이는 지금의 일본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식민통치 10년간 그들은 열심히 칼을 휘둘러 댔으나, “조선인들이 자기네 말(조선어)로 바로 코앞에서 자기들을 욕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딱한 처지에 놓였음을 새삼스럽게 자각했던 것이다. 사이토는 이로써 조선 민중을 직접 대하는 말단 일본 경관들부터 조선어를 배우도록 장려했다. 

1921년에 공포된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 대요(총독부 2차 철자법)”는 보통학교 교육뿐만 아니라, “재조선 일본인들을 위한 조선어 교육”이라는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 여기서 미쓰이 선생의 분석은 실증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데, 심지어 조선어 학습서가 언문철자법을 지켰는가의 여부를 꼼꼼히 따지고 있어, 외국어(한국어)를 연구하는 학자(일본인)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치밀한 분석의 정수를 보여준다(147~158면). 여기서 내려지는 결론은, 2차 철자법 역시 조선 내의 교육자들, 조선어학자들, 또한 조선어를 배우는 재조선 일본인들 누구에게도 만족을 주지 못한 표기법이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일반적인 한국인 독자들이 가장 관심을 가질 듯한 부분, 즉 “조선어학회와 조선총독부의 협력”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다. 총독부 1차 철자법(1912)은 보통교육의 보급이 부족한 상태에서 서둘러 공포한 측면이 있고, 표기법에 대한 구세대들의 견해와 새로운 시대의 이념을 절충하는 데 실패했다. 3․1운동 이후 새롭게 정비한 총독부 2차 철자법(1921)은 조선인과 일본인 학습자 모두에게 필요한 “표준화된 조선어”라는 분명한 목표를 지향하고 있었으나, 역시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보통학교와 고등보통학교에 근무하는 조선인 교사들을 중심으로 총독부 철자법의 문제를 지적했고, 그들은 자신들의 힘을 결집하여 철자법에 대한 의견을 총독부를 상대로 관철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1921년에 조선어학회의 전신인 조선어연구회가 발족한 것이다. 미쓰이 선생은 연구회가 “직접적으로는 2차 철자법에 대한 대응을 의도해서 이루어진 것(138면)”임을 명시한다. 

1930년 2월에 공포된 언문 철자법(총독부 3차 철자법)은 기존의 한학자들이 고수했던 철자법에 관한 견해를 거의 배척하고, 한자음에 대한 표기의 예외규정 없이 철저하게 적용한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거의 의식하지 못하지만, 본래 다른 한자음들이 철자법 통일 과정에서 같아지는 경우가 있었다. 예를 들어, ‘천국(天國)’이라 할 때의 ‘천(天)’과 ‘수천(數千) 명’이라 할 때의 ‘천(千)’은 본래 다른 소리였다. 전자는 전통적으로 ‘텬’으로, 후자는 ‘쳔’이라고 표기되었다. 평안방언을 제외하고 양자의 구별은 점점 희미해졌지만, 전통적 한학자들에게 이 구별은 매우 뚜렷한 것이었다. 한학자 어윤적은 1911년의 회의에서 이를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경성어(서울방언)을 표준어로 삼고 전국적 규모의 공공교육을 시행해야 하는 총독부와 공립학교 교사들의 관점에서 이러한 견해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1,2차 철자법까지만 하더라도 ‘디, 티’를 ‘지, 치’로 구개음화해서 표기하는 규정의 예외로 한자음은 손대지 않는 절충안을 마련했으나, 3차 철자법은 이러한 예외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이것은 총독부의 규정에 조선인 교사들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며, 총독부에서도 이를 기회로 “사회에서 행해지는 (온갖 종류의 중구난방식) 언문철자법의 실태를 이혁(釐革)한다(162면)”는 의도를 분명히 관철하고자 했던 것이다.

1930년 총독부 3차 철자법이 공포된 이듬해인 1931년, 3차 철자법 작성에 적극적으로 간여한 조선어연구회가 ‘조선어학회’로 개명한다. 이듬해인 1932년에는 기관지 {한글}이 창간되고, 이들은 독자적인 내용의 맞춤법 통일안을 기획하여 이듬해인 1933년의 10월 29일에 발표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며, 현행 한글 맞춤법으로까지 계승되고 있다. 부끄러운 것은, 한국인이 서술한 기존의 국어학사에서 “한글 맞춤법 통일안” 이전의 3차에 걸친 총독부 철자법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미쓰이 선생은 3차 철자법과 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연관성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총독부 철자법의 내용적 변화가 조선어연구회 안에 크게 의존한 형식으로 행해진 것, 조선어학회에 의한 수정 작업이 1930년의 총독부 철자법을 토대로 한 것이었음은 일목요연할 것이다(258면).”

6.

나는 지금까지 미쓰이 선생의 책 내용과 그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문제틀을 제시하고, 책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였다. 더 자세한 내용은 직접 독자들이 읽어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다만 여기서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이 결코 읽기에 쉬운 책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식민지 시대”라거나 “일제 강점기”라는 이름으로, 그저 이미지로만 이해하는 한 역사적 시기를 사실적으로 탐사한 책이고, 오히려 그러한 사실에 대한 탐사가 너무 세밀한 까닭에, 이미지와 풍문에 익숙해진 일반 독자들로서는 오히려 읽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책을 읽기 위해서는 식민지 시대의 정치구조나 용어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 어느 정도의 언어학적 지식이 필요하다. 서평자로서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장애가 독자들을 가로막지 않을까 하는 점이며, 이 장벽을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 이 서평을 쓴 가장 큰 목적 중의 하나임을 밝혀둔다. 

미쓰이 선생의 이 책은 또한, 어떤 의미에서 미완성작이다. 그 이유는 선생이 열심히 공부하는 연구자이기 때문이다. 2002년에 나온 학위논문에 최신의 연구성과를 반영하여 한국어 번역을 완성하게끔 도왔으며, 조선어학회와 대척점에 서 있던 박승빈과 조선어연구회의 활동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지금도 조사를 계속하는 중(330면)”이라고 솔직히 밝히고 있다. 아마도 선생은 이 부분의 서술이 미흡했다고 느낀 듯, “내용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로 인해 번역을 그만두자고 하기도 했음(7면)”을 고백한다. 그러나 이 정도의 내용이라도 책으로 엮이기에 충분하며, 충분하다 못해 소중하다.

이런 훌륭한 책을 일본인이 먼저 썼다는 사실을 너무 애석하게 여기지는 말도록 하자. 많은 한국학 전공자들이 자료를 찾기 위해 국외를 떠돌아야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미쓰이 선생으로 “표상”되는 일본인이 이러한 연구를 먼저 해낸 것은, 단순한 우연은 아니다. 한국현대사 전공자들은 미군정 기밀해제 문서를 보기 위해 미국 도서관에 가야 하듯이, 식민지사 연구의 선편은 역시 일본인들이 잡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국어국문학도인 서평자 개인으로서 이 책을 읽으며 얻었던 가장 소중한 성과 하나는, “1910년부터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성립하던 1933년까지 도대체 우리 조상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라는 단순하고도 어리석은 질문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는 점에 있었다. 이 점만으로도 미쓰이 선생에게 나는 큰 빚을 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