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제부터인가, 모순적인 것 같지만 ‘인문학의 유용성 혹은 유익함’에 대한 이런저런 담론들이 오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철학이나 고전을 읽고 공부하는 습관이 직업적으로 도움이 되는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글쎄 딱히 ‘이러이러한 식으로 도움이 되더라.’라는 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공부 자체가 즐거운 것은 사실이지만, 직업적으로나 생활에서 도움이 되는지 여부는 그리 분명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굳이 꾸며내어 그럴듯한 말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당위에 가깝지 사실을 말하는 것은 아닌 거 같기에, 인문학의 유용성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그리 할 말이 없는 편이다.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일을 하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비슷하지 않을까 추정해본다. 

자연과학자나 물리학자들은 어떠할까? 전체적 양상을 불확실하지만 <부분과 전체>를 쓴 저자인 하이젠베르크는 이른바 인문학적(특히 철학적) 성찰이 그의 인생과 과학의 탐구에서 톡톡히 효과를 본 모범사례라고 할만하다. 아마 최상급의 자연과학자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자기 분야 이외에 추가적으로 인문학을 공부한다고 더 상급을 학자나 인간이 되느냐는 것은 자명하지 않은 것 같다. 

2.

소개하려는 <부분과 전체>라는 책은 독일의 물리학자인 하이젠베르크가 양자역학에 대해 쓴 개론서도 아니고, 물리학적 통찰을 경유한 철학적 자기주장을 하는 것도 아니다. 개인의 구구절절한 자서전도 아니다. 이 책은 거의 토론 녹취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책 어디를 펼치나 2/3이상에서 저자가 그의 동료들이나 스승 혹은 제자와 토론하는 따옴표 속 문장을 볼 수 있다. 토론하고, 토론하고 또 토론하는 것이 대부분의 내용을 이룬다. 

책에서는 저자의 대학입학 직전 시절부터 시작해, 물리학을 선택하게 된 계기, 보어와의 만남, 아인슈타인과의 대화, 칸트주의 철학자와의 논쟁, 나치 정권의 전횡으로 인한 고민, 2차 대전 중의 물리학자로서의 처신, 핵무기와 연구자의 책임 문제, 전후 독일 물리학 연구의 복원 등등을 다루며 45년에 걸친 사색과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이리 오래전에 논쟁했던 내용들을 다 기억했나 싶을 정도의 세세함이 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토론의 밀도와 그 토론 속에서 개인의 사유들이 펼쳐지고 부딪히며 상승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여러 대화 속에서 느껴지는 매혹적인 지적 상승의 쾌감 때문에 여러 번 읽어도 기분이 좋은 책이다.

 

서두부터 눈길을 끄는 것 중에 하나는, 하이젠베르크와 그의 대화 상대자들이 과연 ‘이해’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당시 교과서에 나오는 원자모형에 대한 것이었다. 탄소원자 하나와 산소원자 둘이 호크와 고리로 연결되어 탄산가스 분자를 형성하는 것으로 그려진 도해에 대해, 그 그림으로 표상되는 바가 무엇인지를 논하는 것이었다. 하이젠베르크는 그런 도해가 무의미하며 임의적인 합목적성에 따라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이에 대해, 한 친구는 어떤 경험적 사실이 그 도해를 그리게 되었나를 알아야만 할 것이라며, ‘화학적 원자가’ 개념이 그 원인일 것이라고 말한다. 철학에 정통한 다른 친구는 경험적 사실로서 진리를 얻었다고 믿어버리는 자연과학적 태도를 비판하면서, 그들의 인식이 표상체계라는 인간의 선험적 인지구조의 특수성 속에 갇혀 사유할 수밖에 없음을 경고한다. ‘원자의 형태’라는 개념을 좀 더 조심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화는 하이젠베르크가 대학입학전 학생 시기에 이루어진 것인데, 묘하게도 이런 대조되는 사유유형의 대결이 평생에 걸쳐 반복되며 심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또한 하이젠베르크의 탐구적 자세는, 경험적이고 실재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실증적인 태도와 좀 더 근본적인 원리를 추구하는 태도 사이를 흥미롭게 오간다.

3.

서두에서 보이는 과학에서의 인식론에 대한 철학적 논쟁들은, 대학시절 볼프강 파울리와 실용주의자인 오토 라포르테와 함께 상대성이론을 토론하는 자리에서 더 깊이 있게 지속된다. 

볼프강이 하이젠베르크에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이해하고 있는지 물었을 때, 하이젠베르크는 상대성이론의 수학적 구조는 어렵지 않으나, 어째서 운동하는 관찰자의 ‘시간’이 정지한 관찰자와 다르게 여기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다며, 이 시간 개념의 혼란이 아직도 불분명한 하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볼프강은 수학적 구조를 이해한다면 운동하거나 정지하고 있는 관찰자가 지각하고 측정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계산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 이상의 무엇을 바라는지를 되묻는다. 하이젠베르크는 무엇을 바라는지 자신도 잘 모르지만, 수학적 구조만으로는 기만당하는 느낌이며 그 이론을 머리로써는 이해하고 있지만 아직 가슴으로 모르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실용주의적 입장에 있는 오토는, 하이젠베르크의 의구심을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학교에서 배우는 철학에서는 ‘공간’이나 ‘시간’ 개념이 이미 확고하고 더 이상 바뀔 수 없는 의미를 갖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학교에서 배우는 철학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간과 시간을 실체적으로 표현하는 철학적 화법은 명명법의 조직적인 남용이라는 생각이다. 모든 것에 대한 절대성을 요구하는 철학적 자세는 거부되어야 하며, 실제로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감각적인 지각에 관련될 수 있는 말이나 개념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찰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태도야말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성취시킨 태도였으며, ‘동시성’이라는 측정 불가능한 개념을 버리고 시간을 시계로 읽는 것이라는 평범한 확인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나의 이론이 관찰 결과를 정확하게 예고한다면 그 이론은 이해를 위한 모든 것을 제공한 것이라는 관점이다.

하이젠베르크는 역사적인 실례를 들어, 미리 계산할 수 있는 능력과 이해를 동등시하는 데 대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중심에 정지하고 있는 지구로부터 출발해 행성의 궤도를 많은 원 궤도의 중첩으로 그렸고, 이와 같은 이해를 바탕으로 일식과 월식을 미리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었다. 그의 학설은 무려 1500년 동안이나 천문학의 확실한 기초로서 중요시되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프톨레마이오스가 행성계를 정말로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관성의 법칙을 알았고, 또 운동의 원인으로서 힘을 도입하였던 뉴턴이 비로소 중력에 따른 행성의 운동을 실제로 설명하고 이해한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오토는 프톨레마이오스와 뉴턴이 정도의 차이는 인정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차이는 인정할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오랜 시간 지속되었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은 훌륭한 것이었으며, 뉴턴의 천문학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그렇게 훌륭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뉴턴이 프톨레마이오스보다 근본적으로 더 좋은 것을 만들었다고 인정할 수 없으며 다만 다른 수학적 방식을 통해 서술을 하였고, 이후 결실이 풍부한 것임이 드러났을 뿐이라는 것이다.

볼프강은 오토의 견해를 지나치게 실증주의 일변도로 흐르는 주장으로 보았다. 자연을 이해한다는 것은 자연의 상호연관성을 구체적으로 통찰하고 그 바닥에 깔려있는 관계를 인식함을 뜻하는 것이며, 개별적 현상이나 일정한 그룹의 현상에 대한 지식만 가지고는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그것으로 굉장히 많은 현상들을 통일적으로 연관된 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 표상이나 개념을 갖는다는 것을 뜻한다. 외관상 엉클어지고 혼란된 다양성을 간단한 것에 귀착시키는 일을 우리는 ‘이해’하였다는 말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미리 계산할 수 있는 능력은 때로는 이해와 올바른 개념 소유의 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미리 계산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이해한다는 것과 동일하다고 간단히 말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견해를 밝힌다.

4. 

하이젠베르크는 1925년 코펜하겐에서 수소원자 스펙트럼선의 강도에 대한 공식을 찾는 연구에 들어갔으나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이 시도로부터 원자 안에서는 전자의 궤도를 문제 삼아서는 안 되며, 직접 관찰할 수 있는 진동수와 진폭을 궤도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친구 오토가 토론 중에 아인슈타인의 견해를 대변해서 주장하였던 그 철학대로, 관찰할 수 있는 양만을 원자의 결정요소로 간주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생각을 바탕으로 하이젠베르크는 상당한 성취를 이룩한다. 이처럼 하이젠베르크는 물리학에서 이론적 사고의 바탕이 되는 철학적인 인식론적 입장들에 대한 토론을 통해 새로운 탐구의 영감을 얻은 것이다. 

5.

소기의 업적을 이룬 하이젠베르크는 곧이어 아인슈타인과 자신의 시도를 뒷받침하고 있는 철학적인 전제에 관해 대화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하이젠베르크에게, 원자 안에 전자가 있다고 가정하면서 전자의 궤도를 전적으로 무시하려는 기이한 가정의 근거를 명확하게 설명해달라고 한다. 하이젠베르크는 관찰가능한 양들만으로 이론을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에, 관찰할 수 있는 양들을 전자궤도의 대표로서 도입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생각되었다고 답한다.

이에 대해 아이슈타인이, 관찰 가능한 양만을 물리학의 이론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진지하게 믿어서는 안 된다고 하자, 하이젠베르크는 놀라면서 되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이후 하이젠베르크는 1927년 안개상자 안에서 전자의 궤도가 수학적으로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던 어느 날 밤, 극복할 수 없는 매우 어려운 고비에 부딪히며 혹시 문제를 잘못 제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희미하게 떠올랐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이란 말인가? 안개상자 안에는 분명히 전자의 궤도가 있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직접 관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양자역학적인 수학의 도식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이러한 겉보기 사실들에 반해서 어떻게 하면 무엇인가를 찾아낼 것 같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갑자기 아인슈타인과 나눈 대화 가운데서 ‘이론이 비로소 사람들이 무엇을 볼 수 있는가를 결정한다.’는 말이 기억이 났다.

확실히 사람들이 본 것은 안개상자 안의 물방울일 뿐이고, 이 물방울은 전자보다는 훨씬 확대된 것임에 틀림없었다. 따라서 올바른 질문은 다음과 같아야 할 것이다. 즉 사람들이 양자역학에서 한 전자가 대략(약간의 부정확성으로서) 주어진 장소에 있을 수 있고, 그때 대략 이미 주어진 속도를 가지고 있는 그런 상태를 서술할 수는 없을까? 이 부정확도를 아주 작게 할 수는 없을까? 하이젠베르크는 계산을 통해 그런 상태를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 부정확성은 뒷날 양자역학에서 불확정성 원리로 불리게 된다. 

6.

원자세계의 이해에서, 예측가능성만으로 이해됐다는 태도는 실증성의 한계를 갖는다. 물론 안개 속을 해쳐나가는 방식으로 때로는 경험적 실증적 태도가, 때로는 진정한 이해의 통합적 앎을 추구하는 방식이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경험적 실증적 태도와 근본원리를 추구하는 태도라는 두 가지 관점을 ‘오가면서’ 하이젠베르크는 자신의 이론을 완성해갔다. 왜냐면 하나의 일관된 입장에 서지 않으면, 이론의 성립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세계의 실재는 하나의 (인간의 인지적 측면에서) 일관성 있는 입장으로 환원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을 탐구하는 인간은 적어도 하나의 상황 속에서는 하나의 입장에 설 수 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인식론적 관점에 대한 성찰을 통해 영감을 얻고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가는 구체적 모습이 주는 근사함 이외에 눈길을 끄는 또 하나의 중요한 논의 주제가 있다. 바로 실증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닐스 보어와 볼프강 파울리, 하이젠베르크가 토론을 하며 실증주의에 대해 상당한 비판적 고찰을 보여준다.

7.

보어는 실증주의자들의 태도를 역사적으로 고찰한다. 실증주의자들이 체계화했다고 볼 수 있는 주의는 확실히 초기 근대자연과학의 시대정신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전근대적 시대의 사람들은 항상 세계적인 커다란 연관성에만 관심을 쏟았으며, 아리스토텔레스나 교회의 교리와 같은 고대로부터 내려온 권위와 관련시켜 토론하였지, 경험의 개체성에 관해서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17세기 이후 과학에 관한 협의단체 같은 것이 만들어질 당시, 어떤 아카데미에서는 회원들에게 절대로 커다란 연관성에 관해서는 말하지 말고 낱낱의 사실에 관해서만 이야기할 것을 의무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연에 대한 이론적인 고찰들은, 현상의 개체 그룹에만 해당하고 전체의 연관성에는 연결시키지 않는 전통이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실증주의자들은 근대과학의 발달을 하나의 철학적 체계로서 기초 짓고 정당화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들은 이전 철학에서 쓰였던 개념들이 자연과학에서 쓰이고 있는 개념보다는 정확성이 없다고 지적하며, 거기서 제기된 문제들이 의미가 없는 것들이며, 생각할 가치가 없는 허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모든 개념들이 극단적인 명료성을 지녀야 한다는 그들의 요구에 대해 보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러한 의미의 명료한 개념이란 현실에서도 심지어 과학에서도 없으며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8. 

실증주의의 대변자들은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언어의 가치를 강조하고 논리적인 추리가 가능해질 정도로 언어를 이상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증주의자들은 자연과학이 실증주의의 이상에 아주 가깝게 접근할 수 있지만 절대로 거기에 이를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까닭은 우리가 실험결과를 묘사할 때 사용하는 언어가 이미 그 통용범위를 정확하게 확정할 수 없는 개념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해 왔던 개념들의 적용범위가 얼마나 제한되어 있는가를 바로 원자물리학에서 너무나 자주 접하게 된다는 것이다. 보어의 실증주의에 대한 반론은, 그것에 회의적이라서가 아니라, 반대로 자연과학도 실증주의가 비판하는 영역과 근본적으로 별반 나을 것이 없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9.

볼프강 파울리는 실증주의에 대해, 사실을 별로 검토해보지 않고서 덮어 놓고 받아들이는 것이 실증주의자들의 태도라고 비판한다. ‘세계는 일어난 일의 전부다’, ‘세계는 사실의 총체이지 사물의 총체가 아니다’라는 태도는, 사실을 서술하고 있기만 하면 어떤 이론도 받아들여져야 하는 태도라는 것이다. 

하이젠베르크는, 실증주의자들이 이해의 의미를 예측능력과 같은 뜻이라고 보는 것을 비판한다. 그들은 단편적인 이해와 전면적인 이해 사이를 연속적인 척도로서 보며, 예측능력과 진정한 이해 사이에 어떤 질적인 구별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예측의 가능성에 대한 기준으로 본다면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은 뉴턴의 것과 견주어서 그렇게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오늘날 그 두 가지를 견주어 본다면, 뉴턴은 실로 천체의 궤도를 운동방정식으로 더 포괄적으로 더 정확하게 정식화 것이다. 뉴턴의 물리학에서는 개체성에 대한 세심한 연구와 전체에 대한 조망, 이 두 경우가 함께 작용하고 있다. 실증주의자들은 이 위대한 연관성을 보려고 하지 않으며 그래서 과오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10.

‘부분과 전체’에서, 부분이 구체적인 연구와 탐구의 시작점이라면 전체는 그것과의 커다란 연관성을 가진 중심질서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에서는 3가지의 주요한 부분과 전체의 관계가 나타난다.

주요한 하나는 물론 물리학의 탐구에서 부분과 전체이다. 사실에 대한 관찰에서 근본 원리를 추구하는 위대한 연관성은 양자역학 등의 이론에서 통일장이론에 이른다. 다른 하나는 개인의 인생에서 전체에 해당하는 공동체나 인류와의 관계에 대한 윤리적 모색이다. 나치정권 하에서 많은 지인들은 하이젠베르크에게 이민을 강력히 권유한다. 하지만 그는 독일에 머무르는 선택을 한다. 특출한 연구자이자 교수 신분이라는 특권을 가진 사람만이 용이한 이민을 거부하고, 독일의 평균적인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것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하나는 연구자의 책임에 대한 것이다. 분과분야인 원자물리학의 연구가 인류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핵무기 개발에 이르게 됐을 때, 연구자의 책임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연구자는 그의 목표를 대국적인 연관성에서 통찰해야 한다는 것, 즉 어떤 작은 그룹의 이익만을 위하여 더 큰 공동체를 경솔하게 위험에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11.

책이 끝날 때까지 저자는 무수한 대화들을 통해, 물리학이라는 학문에서 철학적 인식론적 성찰과 토론이 얼마나 중요하며 진리탐구에서 얼마나 유효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그와 더불어 인생과 정치, 윤리, 사회적 책임 등등 가볍지 않은 주제를 진지하게 다룬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과학자가 쓴 인문학 저서이다. 물론 주요 주제는 물리학이었기 때문에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선에 있다고 하겠다. 인문학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것은 공동체나 혹은 개인의 ‘전면적 위기적 문제에 대해 사유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뻔하게 사는 사람들에겐 인문학의 매력이 와 닿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하지만 전면적 위기적 문제와 싸우는 분들에게나 혹은 사유의 첨단에서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필수 영양소일 것이다. 그래서 <부분과 전체>는 상당히 좋은 영양제이며, 내용에서도 이미 저자가 영양제의 효능을 스스로 입증해 보이는 책이니, 아무래도 읽는 사람들은 혹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