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과 리바이어던: 인간은 여전히 이기적인가?

1.

진화인류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마이클 토마셀로(Michael Tomasello)가 2008년 자신이 미국 스탠포드(Stanford) 대학교에서 행한 강연을 Why We Cooperate? (MIT Press, 2009)라는 책으로 엮어 출간했다. 한국에서는 『이기적 원숭이와 이타적 인간』 (허준석 옮김, 도서출판 이음, 2011)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는데, 이 책은 동물의 군집과 구별된 인간의 결사만이 갖는 특징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과학적 논증으로 발전시킨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협력을 통해 얻은 이익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미래의 협력에 대한 기대, 즉 ‘공유된 의도’(shared intentionality)가 인간만의 독특한 진화를 가져왔다는 주장은 큰 반향을 가져왔다(Tomasello 2009, xiii-xvi). 협력의 사회인지적 합리성을 통해 이기심의 사회계약적 합리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만들었던 것이다.

2011년 출간된 요차이 벤클러(Yochai Benkler)의 The Penguin and the Leviathan(『펭귄과 리바이어던』, 이현주 옮김, 반비, 2011)은 토마셀로의 책보다 좀 더 본격적으로 이기심의 사회계약적 합리성에 도전한다. ‘How Cooperation Triumphs over Self-Interest' (‘어떻게 협력이 이기심을 이기는가?’)라는 부제가 드러내듯, 그는 인간의 이기심에 기초한 패러다임을 이타심에 기초한 협력적 패러다임으로 바꾸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좀 더 상세하게 말하자면, 상호부조의 결과가 가져올 행동의 변화에 만족하지 않고, 손해를 보면서도 이타적 행동을 유지하는 이유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본다면, 토마셀로의 상호부조를 통한 진화도 궁극적으로는 ‘이기심’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사회적 의미에서는 ‘이타적’으로 보이지만, 진화적 의미에서는 ‘이기적’인 견해일 뿐이라는 불평을 접하게 되는 것이다(35-64).

2.

그러기에 처음부터 벤클러는 이기심에 기초한 지배적 패러다임에 대한 노골적인 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이기심은 인간 본성에 대한 부분적 사실일 뿐이며, 이기심에 기초한 사회경제적 패러다임은 최근에서야 지배적 견해가 되었을 뿐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패러다임이 상식 또는 진리가 된 것은 단순명료한 설명을 좋아하는 우리의 타성과 계몽주의 이후 집단교육의 성과일 뿐이라고 말한다(원서 15-21). 그리고 이러한 지배적 패러다임을 대변하는 홉스(Thomas Hobbes)의 사회계약적 국가 또는 리바이어던과는 대조되는 사회경제적 근거들을 협력적 플랫폼 또는 리눅스의 마스코트인 펭귄 턱스(Tux)로 표현한다. 불특정 다수에게 자기의 노력을 통해 얻은 정보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사람들, 인터넷을 통해 새롭고 거대한 지식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협력적 플랫폼, 바로 이러한 것들이 상호관계를 이해하는 틀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특히 ‘가치가 개입된 상황에서의 협력’에 대한 논의가 매우 흥미롭다. 동일한 사람도 처해진 상황, 또는 물질적 보상 이외의 감정과 의식이 개입된 동기에 의해, 전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울 것이 없다. 오히려 죄수의 딜레마를 실험해봤더니 예측한 바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배신보다 협력을 선택하더라는 이야기가 새롭다면 새롭다(원서 67). 그리고 ‘공동체 게임(the Community Game)'이라는 말만 듣고도 이기적인 사람들이 협력적 태도를 보였다는 이야기가 신선하다. 우리가 갖고 있는 도덕적 감성, 그리고 문제를 바라보는 틀(frame)에 따라, 전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왜 하나의 ‘이상’처럼 치부되는지가 의아해지는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다.

3.

그러나 벤클러가 토마셀로의 ‘상호부조’ 모델보다 더 효과적으로 이타성의 연원을 보여주었는지는 미지수다. 협력적 틀을 제시한다면 인간은 충분히 협력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이론이 과연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수없이 반복해서 얻어지는 학습의 결과로서 협력과 얼마나 다른지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고프먼(Erving Goffman)의 ‘틀 분석’(frame analysis)을 하나의 예로 제시하는데, 각자의 경험을 통해 독특한 개념적 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는 이론이 이타적 본성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 지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물론 인간에게는 이타적 본성이 있어서 ‘협력적 틀’이나 ‘협력적 가치’를 통해 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은 납득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이타성의 연원을 이기심의 발로와 확연하게 구별할 수는 없다.

‘공감,’ ‘연대감,’ 그리고 ‘집단 정체성’이 협력을 강화한다는 주장도 그 자체만으로는 이타성의 연원과는 다소 동떨어져 보인다. 이타성은 결과처럼 보이고, ‘자기애(self-love)’나 ‘인정받으려는 욕구’(love of recognition)와 같은 자기중심적 이해관계가 원인처럼 보인다는 것이다(91-95). 물론 사람들이 결과의 공평성뿐 아니라 의도의 공평성에도 상당한 주의를 기울인다는 이야기도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121-131). 협력의 결과를 항상 N분의 1로 나누지 않아도 공평하다고 믿는 태도로부터 이기적 상호계약과는 다른 형태의 협력적 동기를 충분히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가 행위자와 사회구조의 상호작용의 결과일 뿐이라면,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즉 합리적 행위자로서 인간은 동일한데 선택지가 주어진 환경만 다를 뿐인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의 처지와 경험을 자기의 것으로 이해하는 ‘감정이입’(empathy)의 정치사회적 결과도 이타성의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동정’(sympathy)을 단순히 ‘미안한 감정’ 정도로 정의한 것은 문제가 있지만(원서 82), 감정이입이 이해타산을 넘어 불합리해 보이는 협력을 가능하도록 만드는 사례는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이입’조차도 사회적 ‘낙인’(stigma)과 같은 퇴행적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 그리고 동일한 이유에서 ‘타인에 대한 관심’이 종종 개개인의 이기적 편견을 일방적으로 관철하기위해 사용되기도 한다는 점을 도외시할 수는 없다. ‘공동체’ 또는 ‘전체’를 개인의 자율성보다 앞세웠던 근대 이데올로기들이 펭귄보다 리바이어던을 더 신뢰했던 역설을 경험한 바 있지 않는가 말이다.

4.

인간의 이타적 성격에 대한 관심이 예전 같지 않다. 몇 해 전만하더라도 인간의 ‘이타적 협력’ 또는 ‘이타적 특성’에 대한 논의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1976년에 출간된 The Selfish Gene (『이기적 유전자』 홍영남·이상임 역, 을유문화사, 2010)과 같은 집단적 선택과 진화 생물학이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한국 사회는 상호협력을 이기적 본성의 발현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고, 동일한 이유에서 협력적 플랫폼이나 이타적 협력의 지속가능성에도 그만큼 더 회의적이다. 그래서인지 사이버 공간에 올라온 정보를 ‘공유’한다고 생각하기보다 ‘무료’로 취한다는 태도가 팽배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정보로 내용을 채우는 인터넷 플랫폼이 폭증하고 있다. 여전히 적지않은 사람들이 이타적 본성을 통해 공익에 기여하고 있지만, 탄탄해보이던 협력적 플랫폼도 ‘간접 광고’와 ‘거대 플랫폼’이 형성하는 ‘무료’ 시장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지 오래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펭귄’이 ‘리바이어던’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정치사회적 근거가 더욱 절실하다. 물질적 동기만큼이나 도덕적 가치가 우리의 선택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을 수시로 환기시켜야하고, 이러한 선택 자체가 학습의 결과라기보다 인간에게 내재된 본성의 발현일 수 있다는 점을 서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리바이어던’과 ‘보이지 않는 손’이 가져온 사회적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도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타적 행동방식을 서로가 체득하는 시민적 공간마저도 기껏해야 이기적 욕망을 관철하기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펭귄과 리바이어던』의 저자가 말하는 ‘협력을 배우고 실험하자.’는 말을 되새겨볼 필요는 여전히 충분하다.

* 이 글에 대한 권한은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서평] Aporia Review of Books, Vol.2, No.8, 2014년 8월, 곽준혁, 숭실대 가치와 윤리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