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는 여러 측면에서 유대교를 닮아가고 있다. ‘예수의 수난’(Passion of Christ)이라는 영화에 반영된 서양 기독교인들의 유대인들에 대한 일반적 편견을 고스란히 답습하면서도,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goy)이라는 신앙적 태도를 일상 속에서 거침없이 노출하는 것이다. 즉 한편으로는 ‘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밖은 우매한 집단으로 유대인들을 비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브라함과 다윗으로 형상화되는 유대인들에 대한 지극한 하나님의 사랑을 자기화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프린스턴 대학(Princeton University)의 안토니 그래프톤(Anthony Grafton)의 기독교 연구, 그리고 옥스퍼드 대학(University of Oxford)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았다가 최근 호주의 퀸즈랜드(University of Queensland)로 자리를 옮긴 피터 헤리슨(Peter Harrison)의 연구에서 보듯, 기독교는 유대인들의 성경해석과 신앙태도를 상당부분 흡수했다. 특히 이전까지 ‘여러 종교들 중의 하나’로 스스로를 지칭했던 기독교가 ‘하나님을 섬기는 유일한 종교’로 스스로를 정의하기 시작한 르네상스 이후의 교회사에서, 우리는 유대주의의 전통이 기독교회의 교리와 의례 속에 빠르게 스며든 것을 볼 수 있다. 

비견한 예로, 니콜라 푸생(Nicholas Poussin, 1594-1665)의 그림이 전하듯,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마지막 만찬’은 로마의 풍습을 따라 행해졌던 실제 만찬의 모습을 유대인의 것으로 각색한 것이다(드러누운 모양에서 식탁에 앉은 모습으로). 또한 요한복음 13장에 기술된 ‘마지막 만찬’의 상이한 날짜가 초래한 여러 논쟁을 해결한 것도 유대인이 하루를 계산하는 방식이었다. 아울러 최초의 민족주의 운동으로 알려진 15세기 사보나롤라(Savonarola)의 ‘새로운 예루살렘 운동’도 유대인에게 독점되었던 선민의식의 토착화였다. 어떻게 보면, 구약도 기독교의 중요한 부분이기에 기독교의 성경해석과 신앙생활 속에는 유대교의 전통과 의식이 늘 잠재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시온주의자들의 두뇌집단으로 잘 알려진 샬렘 센터(Shalem Center)의 창설자인 요람 하조니(Yoram Hazony)의 『히브리 성경의 철학』 (The Philosophy of Hebrew scriptur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2)은 다소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유대주의를 배격했든지, 아니면 유대주의를 받아들였든지, ‘구약’ 또는 ‘유대인의 성서’가 갖고 있는 ‘이성적 측면’을 배제함으로써 기존의 기독교 또는 신학자들이 구약을 잘못 이해했다는 것이다. 즉 ‘계시’가 아닌 ‘이성,’ ‘인간적 판단’이 내재된 텍스트를 초월적이고 탈(脫)이성적인 신의 언어로 독해함으로써, 히브리 성서(구약성서)에 담겨있는 유대인들의 역사를 자기의 것으로 둔갑시키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하조니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면, 기독교 또는 서양 철학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기존 해석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 첫째는 ‘계시’와 ‘이성’이라는 중세이후 지속된 서양 철학사의 이분법을 다시 검토해야한다. ‘신앙’과 ‘이성,’ ‘계시’와 ‘이성,’ 그리고 기독교 교리와 그리스·로마 철학으로 양분했던 인간사유의 틀들을 모두 재고해야하고, 아울러 이와 관련된 ‘자연법’(Natural Law)이나 ‘인권’(Human Rights) 등을 둘러싼 근대 자유주의의 출현이후 벌어졌던 제도사상사의 논쟁들도 새로운 측면에서 논의해야한다. 둘째는 유대인의 입과 손을 통해 전달된 성경의 말씀이 갖는 신학적 의미를 다시 검토해야한다. 만약 구약의 많은 부분들이 이성적 관찰의 산물이라면, 그동안 신의 계시이기에 분석하지 못했던 많은 부분들이 학문적 연구의 대상으로 다시 자리매김할 것이다. 동시에 구약의 ‘선택된 사람들’에 대한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환상도 계시라는 명분하에 전개되었던 인간적 욕망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연구자에게는 전자가, 신앙인에게는 후자가, 논박이 되던지 납득이 되던지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질 것이다.   

하조니의 서양 정치사상사에 대한 비판은 무엇보다 삼위일체 교리를 확립하고 초기 기독교 신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테르툴리아누스(Quintus Septimius Florens Tertullianus, 160-225)에게서 시작된 하나의 전통을 염두에 두고 있다(219-256). 즉 ‘아테네와 예루살렘’이라는 구분을 통해 ‘이성’과 ‘계시’를 나누고, ‘히브리 성서’를 전적으로 후자에 귀속시킴으로써 잘못된 구약에 대한 이해가 생겼다고 보는 것이다.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하조니는 이 부분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히브리 성서의 주요한 텍스트들은 신앙과 이성이라는 이분법이 적용되기 500년 전에 기술되었으며, 그것도 이러한 틀이 잡혀있던 그리스어와는 다른 언어를 말하는 사람들에 의해, 그리고 이러한 신앙과 이성이라는 틀 속에서 무엇이 옳은지를 설명하는 기독교와는 다른 종교에 의해 서술되었다’는 것이다(2). 물론 ‘신’이 히브리 성서에서도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지만, 히브리 성서에서는 ‘이성’이라는 부분이 도외시할 수 없을 정도로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계시’와 ‘이성’의 이분법은 히브리 성서해석에서는 적용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하조니에게 ‘계시의 작품’으로서 성서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하조니의 해석을 따르면, 계시의 결과로서 성서는 인간의 이성을 배제하거나 제한한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 ‘하나님이 이르시기를’이라는 말만 등장하면, 그 기술된 내용을 이성적 해석이 불가능한 사실 또는 사건으로 이해하는 습관 때문이다. 즉 계시의 결과로서 성서는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석하는 것과는 다른 잣대를 적용해야한다는 충동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5). 둘째, 성서에 기록된 기적적인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아야한다는 기대를 양산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계몽주의자들이 신앙을 미신적이거나 비이성적인 습관으로 이해했다고까지 주장한다(12-16). 두 가지를 묶어 이야기하면, ‘이성을 통한 계시의 완성’을 말했던 보이티우스(Boethius)나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해법조차도 히브리 성서의 진면목을 보여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첫 번째 경우에 대한 하조니의 비판은 그리스 철학에서 시작된다. 만약 기독교적 해석이 옳다면, 소크라테스도 선지자라는 것이다. 사실 『변론』(Apologia)에서 소크라테스가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고백은 오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31d, 40a-b). 동일한 맥락에서, 하조니는 엠페도클레스(Empedocles)나 헤라클리투스(Heraclitus)로부터 플라톤의 텍스트까지, 히브리 성서의 예레미아(Jeremiah)가 사용했던 선지자적 표현들이 자주 등장한다고 주장한다(31-46). 그리고 서양 정치철학에서 철학적 성찰이 계시 또는 신과의 교감에 부분적으로나 전적으로 의지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은 허다하다고 부언한다(9). 즉 기독교의 유대주의 혐오사상과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그리스·로마 사상에 대한 지나친 천착만 없었다면, ‘이성’과 ‘계시’의 이분법은 그 철학적 의미를 전혀 인정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다(12). 

두 번째 경우에 대한 하조니의 비판은 ‘이성의 작품’으로서 히브리 성서를 읽어야할 이유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하조니에게 히브리 성서는 ‘이스라엘의 역사’다(47-64). 즉 특수한 역사적 맥락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목도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그들만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하조니는 바빌론에 억류되었던 시기(950-560BC)에 유대민족이 이 땅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두려움, 그러기에 다시 모세의 율법으로 돌아갈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 히브리 성서라고 주장한다(57). 이렇듯 유대인을 대상으로 하는 특수한 맥락의 역사서가 모든 ‘민족’ 또는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 가르침으로 이해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제시된다. 하나는 계시의 실현을 목격한 증거자로서 스스로를 내세운 신약성서의 저자들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유대민족의 문제와 역사가 갖는 보편성이다. 전자는 소위 ‘신의 약속의 실현’을 가장 중요한 증거로 삼고 있는 신약성서의 내재적 한계에서 비롯되었고 설명되고(49 & 53), 후자는 ‘이성의 작품’으로 읽었을 때에만 얻을 수 있는 히브리 성서의 철학적 내용 때문이라고 주장한다(66-100). 다시 말하자면, 신약성서와 구약성서는 다른 목적에서 기술되었고, 동일한 이유에서 서양 철학사에서 상호파괴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주장은 전통적인 유대주의에도 반기를 든 셈이다. 하조니의 해석은 모세 5경을 비롯한 ‘토라’(Torah)의 가르침을 이후 예언서들과 구분하는 랍비적 전통(Sifrut Hazal)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랍비적 전통에 따르면, 5개의 경전(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모세가 기록한 것이고, 그러한 이유에서 이후 예언서와는 구별되어 해석된다. 반면 하조니는 히브리 성서연구자의 다수가 주장하듯, 모든 히브리 성경은 바빌론 유수시기에 기록되었다는 입장을 지지한다. 

아울러 하조니가 제시하는 철학으로서 히브리 성서의 근거도 논쟁을 불러일으킬 내용이다. 그는 전체 맥락을 보기보다 자기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뽑아내는 독서로부터 해방되어야하고, 기술된 사실이 갖고 있는 특수한 맥락을 봐야하며, 구절마다 담긴 저자의 특수한 의도를 읽어야한다고 주장한다(81). 이런 독서를 하면, 성서의 내용이 ‘기적’과 ‘비이성적 사실’이 아니라 일반적인 인간의 이성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건들로 점철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고 부언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히브리 성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what happened)에 초점을 잡기보다 ‘어떤 일이 항상 일어나는지’(what always happens)에 초점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79). 그는 바로 이것이 히브리의 역사가 모든 사람들에게 철학적 가르침을 던져줄 수 있는 근거라고 역설한다.

‘이성의 작품’(works of reason)으로 히브리 성서를 읽으라는 하조니의 주장으로부터 몇 가지 흥미로운 성찰의 자료를 얻게 된다. 그 중 하나는 ‘순종’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저항’을 용인하는 유대인의 신에 대한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양치기의 윤리’로 묘사되는 철학적 가르침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자는 상당히 매력적인데, 후자는 다소 자의적이다.

두 가지 모두 ‘양치기 윤리’(The Ethics of a Shepherd)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 4장에서 제시된다(103-139). 우선 하조니는 히브리 성서가 ‘순종’(obedience)을 앞세운다는 생각은 잘못된 독서라고 주장한다. 그의 해석을 따르면, 히브리 성서는 ‘저항’ 또는 ‘불복종’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핵심을 이루고 있다. 첫째, 하조니는 히브리 성서에는 ‘신의 법’(God's law)이 제시되기 훨씬 이전부터 옳고 그름에 대한 잣대를 행위의 잘잘못을 판단하는 데에 적용했다고 전제한다. 사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아오기 훨씬 전, 즉 하나님의 법이 공표되기 이전, 카인의 살인행위와 소돔과 고모라의 방탕함은 처벌받아 마땅한 잘못으로 기술된다. 즉 히브리 성서는 ‘신의 법’ 이전에 누구나 잘못되었다고 느낄 수 있는 ‘자연법’(natural law)을 행위의 판단근거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104). 둘째, 이렇게 ‘자연법’에 기초해서 기술된 히브리 성서는 ‘양치기’(shepherd)가 대변하는 저항적 표상을 이해하지 못하면 결코 이해하지 못할 이스라엘의 역사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히브리 성서는 어떤 한 곳에 정착해서 사는 ‘농사짓는 사람’이 아니라 ‘양을 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선택이 있다는 것을 거듭 가르침으로써, 신의 법도 과감하게 비판하고 맞섰던 인간의 이성을 용인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사람이 신의 선택을 받았음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129-139). 

아마도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사무엘상 15:22-23)는 성경구절이 사무엘(Samuel)의 말이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주장을 받아들일 기독교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와 ‘저항’에 관대했던 구약성서의 여호와에 대한 이야기는 간과해서는 안 될 성서의 주요한 내용임은 분명하다. 물론 여호와에 대한 불복종을 ‘옳은 행위’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모든 것이 신의 섭리라는 이유에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고통을 받는 욥(Job)의 하소연을 비난하는 친구들과 동일한 실수를 해서는 곤란하다는 말이다(욥기 17:6-16 & 42:7). 욥기의 하나님은 ‘대장부처럼(geber)’ 허리를 묶고 ‘답하라’(yada)고 요구하신다(욥기 38:3). 즉 신과 인간의 차이는 분명하지만, 성경 속의 하나님은 인간의 넋두리도 비판도 용인하시며 함께 대화하고자하신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카인(Cain)이 만든 인간의 도시로부터 벗어나, 양을 치며 하나님과의 개별적 만남을 통해 삶의 좌표를 정했던 ‘이방인(outsider)’의 모습을 본받아야할 예로 제시한 점은 크게 반박할 이유가 없다. 하나님과 씨름하는 야곱(Jacob)을 신앙의 거름으로 삼을 수 있는 계기마저 상실한 오늘날의 기독교회가 다시 바라보아야할 거울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스치는 것이다.

5. 

‘계시’와 ‘이성’의 구분 속에 잠식된 히브리 성서의 재해석만으로도 하조니의 책은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특히 ‘이스라엘인의 역사’가 갖는 보편성에 대한 철학적 접근은 구약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거부감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단초를 제공한다. ‘순종’과 ‘계시’로 단순화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의구심’과 ‘이성적 회의’가 용인되는 신과 인간의 교감을 발견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경우, 하나님의 말씀을 사유화함으로써 교회 내부의 비판과 저항을 잠재우려던 폭력이 자행되어왔던가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경우, 집단적 광기가 자연법조차 거론할 수 없는 암묵적인 강제를 정당화해왔던가 고민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 성서를 이스라엘 정치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하조니의 시도는 또 하나의 경계해야할 우리 안의 문제를 보여준다. 도식과 유형을 통해 성서를 해석한 후, 스스로가 현재 당면한 문제에서 갖고 있는 정치적 입장이 옳다고 말하는 태도가 거슬린다는 것이다. ‘양치기’의 철학으로 도식화하기 전에, 히브리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각각의 처지에서 신의 섭리를 이해한 방식과 내용을 독자 스스로 묵상하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 다. 어쩌면 이것이 ‘나는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안다’는 소크라테스의 회의주의가 인간의 흠결을 받아들임으로써 관용의 물꼬를 튼 기독교 선배들의 신앙에서 빛을 발한 이유는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치는 것이다. 

 * 이 글에 대한 권한은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서평] Aporia Review of Books, Vol.2, No.9, 2014년 9월, 곽준혁, 숭실대 가치와 윤리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