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형사처벌의 목적은 응보 즉, 복수였다고 설명된다. 소위 ‘눈에는 눈’과 같은 법언(法言)으로 표현되는 응보야말로 전통적인 형사처벌의 패러다임이었고, 이는 국가가 합법적 폭력 및 공형벌권을 독점적으로 행사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사실 ‘죄를 범한 사람은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라는 말은 사회에서 공리(公理)처럼 이해되기에 위와 같은 역사적 설명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기 쉽지 않다. 응보적 패러다임은 ‘법치주의를 확립하자’와 같은 우파적 주장에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부패한 자본가와 관료들을 처벌하자’는 좌파적 주장에도 마찬가지로 등장한다. ‘범죄’로 규정되는 행위가 사회에 존재하는 이상 위와 같은 패러다임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소위 그리스도교의 소수 종파로서 국가를 불신하고 권력의 사용을 거부하는 재세례파에게로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시작한 ‘회복적 정의(또는 사법)’은 위와 같은 패러다임을 반대한다.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은 형사처벌은 범죄자를 '국가'가 규칙위반을 이유로 고통을 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범죄로 인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생긴 피해에 '원상회복'을 가져오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인데,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전통적인 응보주의 패러다임에 의하여 짜인 다음과 같은 형사사법절차의 기본적인 가정 즉, "1. 유죄가 확정되어야 한다. 2. 유죄인 자는 '정당한 처벌(응보)'을 받아야 한다. 3. 정당한 처벌(응보)은 고통의 부과를 요구한다. 4. 정의는 절차에 의해 평가된다. 5. 범죄는 법위반으로 정의된다."들이 근대 국가의 형성과정에서 생겨난 역사적 뿌리가 깊지 않은 특수한 주장에 불과하다고 평가한다. 응보적 정의 패러다임은 종교개혁 시기에 루터, 깔뱅등에 의해 새롭게 도입된 것에 불과하단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형사사법체계에 대한 전통적인 패러다임을 뒤엎자는 정치적 함의가 듬뿍 담긴 ‘Changing Lenses’다. 1980년대 중반에 메노나이트 대학교(Eastern Mennonite Univ.)의 갈등전환학 대학원장으로서 회복적 정의를 가르치고 있는 하워드 제어 교수는 1980년대 중반에 이 책을 저술하면서 '응보적 정의'에서 '회복적 정의로의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학계에 본격적으로 펼쳤고, 그 후 이 주장은 20여년을 거치면서 '피해자-가해자 화해 프로그램(VORP)'등의 다양한 결과물로 세계 각지에서 실제 형사 정책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주로 ‘피해자와 가해자가 얼마나 형사절차에서 배제되어 있는지’(제2장 피해자, 제3장 가해자 참조), ‘응보적 정의 패러다임의 역사적 당위성이 얼마나 취약한지’(제5장 응보적 정의 참조),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의 이론적 기초가 얼마나 수긍할 만한 것인지’(제7장 공동체 사법 : 역사적 대안, 제8장 언약 법 : 성경적 대안 참조), 그리고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이 실제 형사사법체계에서 얼마나 구체화될 수 있는지’(제9장 피해자-가해자 화해 프로그램(VORP) : 실험의 장 참조)를 강조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저자가 설명하고 있는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의 개념을 간명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에 실려 있는 다음의 표를 보는 것이 좋다.

회복적 패러다임은 일반 시민들 뿐 아니라 법률가들에게도 어색한 주장이다. 한국의 사법체계에서 쓰이는 언어로 해석해서 표현하자면, '직권주의가 아닌 당사자주의', '전문가에 의한 형사절차가 아닌 당사자 사이의 조정 등의 대안적 절차', '형사절차와 민사절차의 부분적인 융화', '처벌보다는 배상' 등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매우 전문적으로 조직화되어 있는 형사사법절차에 익숙한 한국의 기존 법률가들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도대체 이게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자연스레 따라 나온다. 

그런데,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의 문제제기는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 형사사법체계의 맹점을 접할 때 더 설득력을 갖는다. 개인적으로 군복무 중 군검찰관으로서 수사 업무를 수행했을 때 응보적 정의 패러다임의 맹점을 어렴풋이 느꼈고, 이 책을 접하면서 그러한 생각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개념체계를 얻었다. 오로지 그 이론적 기반을 응보적 정의에만 입각한 형사사법체계는 그 안에 관련된 당사자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고 만다. 

군에서의 경험을 예를 들어 보자면, '엄정한 처벌'이라는 군형사법의 목표아래 형사처벌의 당위는 명료한데 반해 처벌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결과는 상당히 모호하다. 군에서 처리하는 사건의 다수는 영내폭행(폭행, 상해, 강요, 군형법상 가혹행위,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등으로 의율) 사건들이다. 보통 가해자는 반성이 별로 없고 우발적인 범행이 많고, 피해자는 피해정도와 무관하게 군대에선 어쩔 수 없다는 통념 때문에 가해자에 대한 처벌의사가 약한 희한한 상황이 많다. 때문에 그러한 경우 기소와 불기소처분 사이에서 골똘히 고민을 하다보면 "이 사건이 피의자를 전과자로 만들어도 될 만한 사건인가"가 첫 번째 기준이 되고, 그게 애매해지면 결국 처분의 형평을 위해서 두 번째 기준인 선례(및 양형기준)에 따라 처분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결국 기소든 불기소든, '무엇인가 조치를 했다'라는 결과는 남지만 실질적으로 가해자나 피해자에게 생긴 긍정적인 변화가 전혀 없다는 것이 꺼림칙했다. 피의자들에게 아무리 훈계를 해도 그들은 간부와 수사기관 종사자들에게 반성하는 척 할뿐이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치 않으며, 오히려 자신이 전과자가 될 수 있는 상황에 억울해한다. 한편, 피해자들은 정작 형사처분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앞으로 어떻게 형사절차가 진행되는 지도 모르며 그들은 단지 가해자들과 떨어져 다른 부대에서 근무하게 되는 것만을 바랄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선 어떠한 처분을 내려도 만족스럽지 않다. 열심히 수사를 하고 처분을 내려도, 가해자도, 피해자도, 수사기관으로서도 얻게 되는 긍정적인 결과가 없다. ‘반성’도, ‘회복’도 없다. 남는 것은 추상적으로 ‘정의’가 달성되었다는 실체가 잡히지 않는 법감정 뿐이다. 

병들어 가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점차 늘어나고 있는 학교폭력의 예를 상정 해봐도 결과는 동일하다. 행정당국이 의례 책임회피용으로 내놓는 대책인 ‘엄정한 처벌’은 아무런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 가해자인 학생에게선 용서받을 기회를 박탈하고 그를 전과자로 만들 뿐이며, 피해자인 학생에게서는 가해자와의 관계에서 무너진 인격적 상처를 해결해나갈 구체적인 과정을 앗아간다. 미성숙한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상처와 낙인을 씻을 기회를 갖지 못한다.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은 이와 같은 응보적 정의 패러다임에 입각한 형사사법체계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고든다.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은 마을, 교회, 가정, 학교처럼 구체적으로 구획 가능한 ‘공동체’ 내에서 일어난 범죄들을 실제로 해결하는데 적용되곤 하는데, 과연 공동체가 다양한 차원에서 붕괴된 한국사회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이상적인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이다.

그런데, 이 책은 실제 사례를 들어가며 실제 적용이 가능한 지점들을 모색한다. 모든 사회분쟁영역 전체에 패러다임이 직접적으로 제도화될 수는 없겠으나, 이 책의 제2장, 제3장에서는 캐나다, 미국, 뉴질랜드 등에서 제도화되어 시행되고 있는 '피해자-가해자 화해 프로그램(VORP)'의 여러 실례를 소개한다. 한국에선 2008년 6월부터, 소년법 제25조의 3(화해권고)이 신설되어 '법원의 판단에 따라 소년사건에 대하여 피해자의 요구를 반영하고, 당사자 간의 자율적 문제해결의 여지를 두어 이를 보호처분 판단에 참작'하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고, 이는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이 제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인데, 그 제도의 긍정적인 결과가 이 책의 한국어판에 소개되어 있다. 부록에 실린 서울가정법원의 소년사건담당 형사단독에 화해권고위원으로 위촉되었던 분들이 실제 경험을 기록한 '깨어진 관계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씨앗, 회복적 정의, 한국의 피해자-가해자 대화모임, 무엇을 배웠는가'라는 글이 그것인데, ‘엄벌’만 부르짖는 응보적 정의 패러다임이 실패한 대표적인 영역인 학교폭력 사례들에서 감동적인 해결이 이루어진 사례들을 보여준다. 충분히 가능한 영역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충분한 가능성’ 외에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이 주는 ‘대안적 상상력’이란 가치도 짚을 필요가 있다.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은 알 수 없는 이야기만 하는 판사, 검사, 변호사들의 정교한 체계로 건조하게 넘어가 다수의 피해자들만 양산해내는 현재의 사법 패러다임에서 거의 다루지 못했던, 당사자 사이의 화해와 용서,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인격적 존중과, 구체적인 회복에 대한 이상을 던져준다.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은 ‘사형제 찬반론’외에 제대로 된 의제가 존재하지 않았던 한국의 형사사법영역에서 주요하게 다뤄질 새로운 의제가 될 수 있겠고, 또한 모든 사회분쟁해결의 종국적 목표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신선한 통찰을 부여한다. ‘엄벌’에 대한 목소리가 제동장치 없이 각계에서 점차 높아져가고 있는 한국의 최근 맥락에서 일반인들에게도, 법률가들에게도 영감과 구체적 대안모색에 대한 고민을 던져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