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한 상품의 교환가치는 일종의 ‘시니피앙’이자 매체로서, ‘시니피에’이자 내용물인 사용가치를 운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구조언어학에서 시니피에가 시니피앙 체계의 효과 이듯이 사용가치는 교환가치의 체계의 효과라고 보드리야르는 말한다. 왜 그러한 것일까? 교환가치의 체계는 곧 등가의 원리가 지배하는 체계를 의미하는데, 사용가치는 유용성이라는 척도이자 일반적 등가물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마르크스는 사용가치를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용가치 자체는 구체적인 양을 제시할 수는 없을 뿐, 등가성과 비교의 원리에 지배를 받는다. 왜냐하면 상품의 ‘객관적’ 유용성은 같은 상품에 속하는 개별 사물의 특이성을 모두 삭제하고 이러한 사물들 사이의 동일성과 등가가 성립한 후에 발생하는 것이며 이러한 유용성이라는 척도에 따라 사물을 평가한 것이 사용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용가치는 등가의 체계로서 교환가치 체계의 산물인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사용가치는 비록 산술적인 의미에서의 양적인 것에 속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이미 등가물의 속성을 띤다. 모든 재화들은 유용한 가치로서, 동일한 기능적/합리적 공분모에, 동일한 추상적 결정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이미 서로 비교될 수 있다.[...]물건은 추상적인 보편성, ‘객관성’에 이른다. ” (장 보드리야르, 이규현 옮김『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문학과 지성사,1992),p.144)
보드리야르는 이러한 등가체계의 추상을 통해 구체적인 사회적 관계가 사상됨으로써 물신숭배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즉, 교환가치뿐만 아니라 사용가치에 의한 물신화도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사용가치가 교환가치 체계의 효과이자 물신숭배의 대상이라면 자본주의의 '합리적 비판'을 자처하며 사용가치의 회복을 주창하는 마르크스주의는 그 근본에서부터 잘 못된 것이 된다. 교환가치의 피안으로서 사용가치는 기표의 피안으로서 초월적 기의만큼이나 존재하지 않는다.
보드리야르는 이러한 사용가치의 물신숭배와 교환가치의 물신숭배 모두를 기호의 '코드'에 의한 물신숭배, 즉 "변별적이고 코드화되고 체계화된 것에 주체가 사로잡히는 사태" (1) 로 보고 있다. 즉 사물 자체가 가진 실체적․주술적 힘에 대한 숭배로 보고 있지 않는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처럼 물건에 대한 현행의 물신숭배는 실체와 역사가 없어지고 차이의 표지목록으로 환원되며 차이들의 체계 그 자체로 요약되는 물건-기호에 결부된다."(『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p.95)
'체계'와 '코드'에 대한 물신숭배는 이처럼 실체와 역사를 삭제해버리는 것이다. 특히 구체적인 노동은 이러한 물신숭배가 "실제의 노동 과정을 부정" (2) 함으로 인해 그 실체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게 된다. 특히 사용가치가 이러한 구체적인 노동의 산물임을 생각할 때, 이것은 오늘날 사용가치의 실체가 없고 그 껍데기만 남아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인간의 모든 구체적인 노동을 추상화하는 것이야말로 교환가치 체계의 기본적인 특성임을 생각해볼 때 우리는 이렇게 껍데기만 남아버린 사용가치가 교환가치 체계의 산물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상품의 궁극목적이자 내용물인 사용가치는 기호이자 매체로서 하나의 체계 속에서 작동하는 교환가치에 의해 안으로 함몰되게 된다. 이것을 훗날의 보드리야르는 '내파(Implosion)'라고 불렀을 것이다.
2.
사실 보드리야르는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사용가치가 교환가치 체계의 산물이자 효과임을 보일 뿐 내용물이자 시니피에로서의 사용가치의 '내파'에 대해서 다루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내파'는 위에서 보듯이 논리적 필연에 속한다. 또한 보드리야르는 이미『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이러한 '내용'으로서의 시니피에 또는 사용가치가 중요하지 않으며 교환가치/기표의 형식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보드리야르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생산의 물질적인 내용 또는 의미 작용의 비물질적인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결정적인 것은 바로 코드, 곧 기표들의 작용에 관한 규칙, 교환가치의 작용에 관한 규칙이다."(『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p.162)
또한 상품을 형식화하고 기호를 형식화하는 '코드'의 작용은 "내용에 대한 의식의 소외" (3) 를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즉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 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코드는 기표/교환가치의 조작을 통제함을 통해 "교환을 합리화하고 조절" (4) 함으로써 작동된다. 여기서 보드리야르는 아직 '이데올로기 비판'에 머물러 있기는 하지만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의 이데올로기 비판, 즉 자본주의가 '내용에 대한 의식의 소외'를 통해 의식을 허위의식에 빠지게 한다는 비판으로부터 벗어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시니피에/사용가치/내용이 중요하지 않고, 시니피앙/교환가치/형식이 "결정적인 특권" (5) 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박한 자본주의 비판 담론'에서는 사용가치가 중요하다고 여겨지고 있는데, 이것은 마르크스주의 담론의 순박함에 기인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는 다음과 같이 가정한다.
"사용가치는 비록 제한된 것이긴 하지만 자체의 고유한 궁극목적이 있다. 그리하여 사용가치에는 상품 경제․화폐․교환가치를 넘어, 자신의 노동과 생산물에 대한 인간의 단순한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명예로운 자율성 속으로 다시 솟아오를 가망성이 있다."(『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p.142)
보드리야르는 이러한 "노동과 생산물에 대한 인간의 단순한 관계"의 자명성을 의심한다. 마르크스주의와 부르주아 정치경제학은 모두 이러한 주체와 객체의 '자명한 관계'가 '욕구'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말하는데, 보드리야르는 이러한 '욕구' 관념이 주체와 객체를 연결하기 위해 순환논리와 동어반복에 빠진다고 말한다.
“...욕구의 덕택으로만 주체와 대상을 접합시킬 수 있다. 그 개념은 대상에 대한 주체의 관계를 합당성, 곧 대상에 대한 주체의 기능적 반응과 거꾸로 주체에 대한 대상의 그것에 입각해서 나타낼 따름이다.[...]요컨대 이것은 사실상 대상에 의해 주체를, 그리고 거꾸로 주체에 의해 대상을 규정하는 작업이다.”(『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p.67)
즉 이러저러한 대상을 선택하는 것은 주체가 어떤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후에, 주체를 둘러싼 대상들로 구성된 환경에 의해 주체의 욕구가 규정된다고 말하는 것, 즉 "욕구는 각 사회의 역사와 그 사회구성원들 각자의 문화에 의해 결정되는 함수" (6) 라고 말하는 것이 부르주아 정치경제학과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순환논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순환논리는 '욕구'라는 개념으로 인간과 사회를 설명하는 것의 한계를 드러내준다.
이처럼 사용가치의 투명성을 보여준다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연스러운 욕구' 자체가 잘못된 개념이고, 따라서 보드리야르는 마르크스와 그 추종자들이 영구적인 자명하고 투명한 필연성이라고 말하는 욕구와 사용가치 개념 자체를 근본적인 비판에 부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드리야르는 마르크스가 부르주아 정치경제학자들이 좋아하는 로빈슨 크루소 이야기에 조소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로빈슨 크루소 이야기에서 궁극적으로 벗어나지 못하는 담론을 생산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의 1권에서 다음과 같이 쓴다.
"정치경제학이 로빈슨 크루소풍의 이야기를 애호하므로, 로빈슨의 섬을 찾아가보자.[...]로빈슨이 자신을 위해 창출한 부를 형성하는 사물들과 로빈슨 사이의 모든 관계는[...] 과도하게 높은 정신의 긴장 없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고 명백하다. 그렇디만 거기에는 가치에 관한 모든 본질적인 결정이 내포되어 있다."(『자본론Ⅰ』,『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p.155에서 재인용)
그런데 보드리야르는 "사물들과 로빈슨 사이의 관계"로서의 욕구와 사용가치가 그렇게 단순하지도 명백하지도 투명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보드리야르는 오히려 "도구와 노동의 산물에 대한 사람의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 투명성까지도 부르주아 사유의 신비 사상과 형이상학에 일치" (7) 한다고 말하며, 결국 마르크스가 부르주아 형이상학의 덫에 걸려버렸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보드리야르는 로빈슨 이야기는 그리고 이러한 사용가치와 욕구에 대한 신화는 "부르주아판 '지상낙원'의 신화" (8) 라고 말한다. 이러한 사용가치와 욕구의 신화는 중세의 지상낙원에 대한 신화가 "죄와 고통으로 말미암아 깨어진" (9) 자연스러운 조화를 역사의 종말에 이르러 회복하고자 하듯이, "교환가치에 의해 파묻힌" (10) 사용가치를 역사의 종말에 이르러 회복되어야할 본질로 보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이러한 '신화'로부터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사용가치는 투명한 것이나 순수한 것이나 상품의 진정한 본질이 아니라 복잡한 교환가치 체계에 항상 이미 오염되어 있으며 이러한 교환가치 체계의 효과에 불과하고, 교환가치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관계를 은폐한다. 그리고 교환가치의 물신화가 상품을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에 대해 외부적인 실체로 보이게 만들 듯이, 사용가치의 물신화도 물건을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에 대하여 자율적인 실체로 보이게 만든다.
3.
이렇게 자본주의의 외부에 사용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물론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기호의 세계’를 넘어서는 ‘현실적인 것’으로서 ‘지시대상’을 추구할 수는 없다. 이 현실적인 세계, 즉 지시대상의 세계 역시도 “기호의 효과, 기호가 끌고 다니는 그림자, 기호의 투영된 축도” (11) 에 불과하고, “기호와 세계의 분리가 허구” (12)에 불과하다고 보드리야르는 말한다.
보드리야르는 교환가치와 기호의 체계를 넘어서는 것으로서 ‘상징적인 것’을 제시한다. 기호는 언제나 명확한 구분 혹은 다른 기호와의 명확한 ‘차이’에 의해 작동하는 확정적인 것, 즉 ‘실증성’과 ‘명증성’을 가진 것인 반면에 ‘상징적인 것’은 언제나 양면성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불확정적인 것이 된다. 이렇게 불확정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 가치를 확정할 수 없고, 따라서 교환될 수도 없는 ‘특이한’(singular) 존재가 된다. 보드리야르는 오늘날 자본주의가 이러한 ‘상징적인 것’을 기호로 환원시킴으로써 작동한다고 말한다.
반대로 자본주의와 기호체계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은 사용가치가 아니라 이러한 ‘상징적인 것’이며 이러한 기호체계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것도 ‘상징적인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기호에 출몰하여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형식적인 상관관계를 부수는 것도 상징적인 것이다.[...]상징적인 것은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상징적인 것은 기호의 실증성과 가치의 상실․용해이다.”(『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p.179)
보드리야르는 “실증성과 가치의 별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13) 기호체계의 상징적인 것에 대한 억압과 배제의 폭력은 이에 대항하는 폭력, 즉 실증성, 가치, 기호를 희생시키는 폭력에 의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고 말한다. 보드리야르는 이것이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혁명 전체”라고 말한다.
4.
이와 같이 보드리야르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와 이러한 자본주의를 궁극적으로 넘어서지 못하는 형이상학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를 동시에 뛰어넘으려고 시도하는데, 그 방식은 매우 치밀하고 엄밀하다. 그렇다면 이 책은 새로운『공산당 선언』, 새로운『자본론』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이 책이 한 점의 오류도 포함하지 않는 절대 진리라는 것을 의미하는데, 급속하게 변하는 자본주의라는 환경은 기존의 절대 진리를 낡은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나 기호의 코드를 통해서 작동하는 현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이론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이 책을 건너뛸 수 없다. 차라리 아주 엄밀하고 정교한 논리로 구성된 이 책과의 대결을 통해서 더욱 엄밀하고 정교한 이론을 만들어나가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이다.
<주>
(1) 장 보드리야르, 이규현 옮김,『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문학과 지성사,1992),p.94
(2) 위의 책, p. 95.
(3) 위의 책, p. 163.
(4) 위의 책, p. 163.
(5) 위의 책, p. 174.
(6) 위의 책, p. 70.
(7) 위의 책, p. 155.
(8) 위의 책, p. 156.
(9) 위의 책, p. 156.
(10) 위의 책, p. 156.
(11) 위의 책, p. 169.
(12) 위의 책, p. 169.
(13) 위의 책, p. 182.
*이 저술의 저작권은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서평] Aporia Reivew of Books, Vol.4, No.8, 2016년 8월, 김상범, 포항공대 수학과 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