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서평을 쓰려고 했던 책은 '아프니까 청춘이다" (쌤앤파커스, 2010)였다. 주지하다시피,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힐링'이냐 아니면 '사기'냐란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문제작이다. 상업적으로 본다면, "한국출판사상 최단기 100만부 돌파!"라는 출판사의 광고에서 보듯 대단한 성공을 거둔 저술이다. 그리고 이 책으로 김난도 교수 자신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도 만들어졌다. 젊은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 즉 지금의 젊은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잡아내는 트렌드와 컨텐츠의 전문가라는 이미지다.
처음에는 김난도 교수가 심리학자인줄 알았다가, 상품이나 브랜드에 담긴 상징적 의미를 분석하는 행정학자라는 점에 놀랐다가, 소비자아동학부가 무엇을 가르치는 곳인지 궁금했는데, 이제는 그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의 수장이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트렌드 코리아'(2013)로 기업을 살찌울 방법을 제시하고, 젊은이들에게 낙심하지 말고 새로운 전망에 분투하라고 가르치고, 본인은 새로운 트렌드의 프레임을 잡아서 대중을 위한 책과 지식을 판다. 어쩌면 젊은이들에게 고기를 잡아주기보다 고기를 낚는 법을 가르치는 참된 스승일 수도 있고, 어쩌면 모두가 스스로를 기업화해야 하는 신자유주의의 트렌드 메이커이거나 선봉장일 수도 있다.
2.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아픔은 무엇일까? 다분히 이 아픔은 사회적으로 주어진다. 마치 내가 이 나라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태어나고 보니까 이 나라였듯이. 청춘이 견뎌내는 아픔은 대부분 기성세대와 사회가 가져다 준다. 배고픔으로부터 벗어나 먹고 살만해진 1970년대에도 이런 아픔이 있었고, 민주화시대의 소용돌이를 함께 경험했던 1980년대에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대부분의 자기 개발서들이 우리시대 청춘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네들에게 주어진 아픔은 함께 풀어갈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아니 우리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소위 좋은 대학교 운동장에서 취업 시즌이면 볼 수 있었던 1970-80년대 대기업 채용차량도 없고, 1990년대 초까지만해도 학과 사무실에 쌓여 있던 취업원서들도 없어졌다. 입학전부터 머리 싸매고 스펙을 쌓아도 일본말로 '후리타', 영어로 'between job'으로 연명해야 할 젊은이들의 하소연만 있다. '알바'를 찾기 위해 오늘도 벼룩시장 광고를 뒤져야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우리 옆에 있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젊은이들은 소설가 김사과가 쓴 '천국에서'(창비, 2013)처럼, 이곳도 저곳도 상상만이 행복을 던져주는 절망적 분열증을 경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문제를 젊은이들에게 풀어보라고 던져준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요즘 아이들은 정말 문제야'라는 상투적인 말이 오래 전 그리스 신전에도 새겨져 있다고 하듯이, 세대 사이의 차별적 인식과 그로 인해서 초래되는 젊은이들의 아픔은 늘 인간 사회와 함께 했다.
그러나 지금의 '아픔'이 색다른 것은 이런 아픔을 던져주는 문제가 아니다. 바로 젊은이들에게 이 모든 문제의 책임을 전가하고, 그들 개개인에게 각자의 해결책을 요구한다는 점이 다르다. 너희들이 이러고 있는 것은 기성세대도 경험했었던 아픔이고, 어쩌면 궁극적으로는 자기관리의 실패일 수 있으니, 자기만의 힘으로 일어나 걸어가라는 것이다. 그것도 혼자 일어나 걸어가라는 것이다.
어렵게 이야기하자면, '자기 기업화'(self-entreprener)로 문제를 풀어나가라는 것이다. 스펙으로 몸서리치고 있는 학생들에게, 대학까지도 그 아픔의 책임은 전적으로 네게 있고, 어차피 이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스펙과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말을 곱씹으면, 이제는 모두가 매니저가 있어야 하고, 모두에게 카운셀러가 필요하고, 모두가 스스로를 브랜드로 만드는 상업적 방식에 익숙해져야 하고, 탈락당하고 배제당하지 않으려면 새로운 전술로 임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물론 새로운 시도가 실패할 때, 그 책임도 당연히 젊은이가 담당해야 한다.
'아니라고? 무슨 소리. 인간은 모두 똑같고, 모두가 명품가방을 들고 싶고, 모두가 특별한 존재로 각인되길 바라는걸'하는 답이 돌아온다. 아니라면, '질시형 사치'일 뿐이라는 말을 돌려 들을 모양새다. 과연 이렇게 가르치는 우리 시대의 멘토들이 취하는 힐링 방식이 얼마나 지속될까? 아니 과연 이렇게 힐링되는 젊은이들이 만들어 갈 사회는 정말 괜찮을까?
3.
'힐링'과 '조언'은 어느 시대에도 필요하다. 그러기에 무조건 김난도 교수의 노력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아니 그럴 생각도 없다. 책의 26쪽에서 보듯, 비평하는 필자나 김난도 교수는 모두 "아르바이트는 더이상 용돈벌이가 아닌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된 지금의 구조에 안타까움을 갖고 있다. 특히 김난도 교수는 졸업까지 유예하며 대책없는 구직에 뛰어든 학생들을 아빠의 마음으로 주시하고 있다. 그래서 말한다. "알바렐라"와 '올드보이"를 위한 "내 일 찾기"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이다(9-31).
내용도 좋다. "브라운 칼라," "유목형 근로," "노마드 워커," "착한 사회적 기업," "취미의 직업화" 등등, 1부는 글로벌시대 엄지족들에게 꼭 맞는 이야기로 가득찼다. 기성 세대들과는 전혀 다른 감각적 지성이 왜 구태의연한 '사농공상'과 '좋은 일자리'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느냐는 말씀이시다. 여기에 이재혁 프로듀서의 감각까지 더해졌다. 속도감 있고, 새로운 삶의 모습도 다층적으로 조명된다. 이렇게 다양한 직업들이 있다는 것을 젊은이들이 알았으면 하는 바램이 밀려온다.
그런데 몇 가지 단어들이 눈에 들어온다. "전 세계 슈퍼엘리트들이 찾는 훈련된 전문가"(42쪽)라는 말처럼, 또 하나의 다른 '스펙'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 훈련된 전문가의 고객은 매우 특별하고 글로벌하다는 이야기이고, 만약 우리 젊은이들이 이런 선택을 한다면 그런 고객들이 찾아줄 수 있는 시장과 경쟁력이 필요하다는 말이 된다. 즉 또 다른 형태의 '대박'을 꿈꾸는 삶, 그리고 또 다른 형태의 '스펙'이 요구되는 삶인 것이다.
또 몇 가지 그림이 떠오른다. 해외여행이라고 가서 보면, 여행을 일처럼 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대부분 동북아시아 사람들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행을 일처럼 한다. 사진도 열심히 찍고, 짧은 시간에 여러 곳을 돌아다닌다. 특급 호텔에 묵더라도, 구비된 시설을 이용하며 느긋하게 지내는 법이 없다. 여유롭게 책을 읽는 법이 없고, 하루에 최소한 두세군데는 다녀와야한다. '반복하는 일상'이 싫어서 취한 여행, 이 여행에서도 우리는 사서라도 고생을 한다. 삶의 지도에 그려진 노동과 휴식의 개념이 서구와 달라도 너무 다른 것이다.
그래서 이런 질문들을 해 본다. 외국에서 인력거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진 생각을 한국에서 옮길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61쪽) 네덜란드와 같이 비정규직의 유토피아를 위해 만들어야 할 사회적 조건은 무엇일까?(89쪽) 이런 고민은 청년실업으로 골머리를 쌓고 있는 이탈리아의 청년실업전문가와의 대담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나라마다, 지역마다 각기 다른 미래상이 있고 또 개인마다 추구하는 '내 일'이 다르다"는 말로 어떻게 비켜갈 일인가. 청년들에게 다른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기 전에, 이들이 그 가능성을 실험할 수 있고 향유할 수 있는 조건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조건을 구비하는데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할 이유와 그 실현 방식을 논의해야 옳은 것을 아닐까?
4.
그래서 등장하는 다음 항목에 눈이 간다. 사회적 기업이다. 좋은 일하며 주변을 가꾸고 돕는 일에 대한 설명이다. '소유하지 말고 공유하자'는 슬로건도 눈에 들어온다(127쪽).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대견하고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필자도 '희망제작소'의 회원이다. 그래서 이런 생각들이 자리잡으면, 구조적으로 큰 변화가 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다. "나눔이란 가치로 서로의 마음을 열어주는 것"에 대한 기대가 생기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기부'라는 공여 또는 공유의 방식이 시장의 주된 흐름을 바꿀 수 있느냐는 매우 단순한 우문이다. 즉 '기부'란 자본의 첨예한 갈등 이후에 등장하는 문제에 대한 매우 '개인주의적' 해결방식이라는 점이다. 물론 여기에는 '노동'에 대한 사회과학적이고 이념적인 갈등을 수반할 논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다만 '기부'가 공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기부'로 만들어진 '사회적 기업'이 구조적 문제의 올바른 해법처럼 이야기되는 것은 조금 본말이 전도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적 기업이 많아져서 일자리가 많이 창출된다고 전제해 보자.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것을 나누고 함께 사용한다고 이야기해 보자. '자기의 것'이 된 물건을 산 시장, 그리고 이 시장이 창출하는 자본에 우리를 여전히 맡겨야 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가능한 시나리오다. 즉 빌 게이츠가 수억달러를 기부하는 것에 박수를 보내는 것과 '사회적 기업'이 많아져서 일자리가 많이 창출되는 것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리석게 공유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소유와 시장은 매우 중요한 삶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사회의 불공정 행위를 최대한 억제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자는 이야기를 왜 '개미'들에게 그 불공정을 감내하면서 함께 피해가자는 이야기로 전환시키느냐는 말이다. 사실 인류에게는 시장을 인정하면서도 '기부문화'말고도 공정사회의 길을 논의한 많은 지혜들이 축적되어 있다. 그리고 오늘도 이런 지혜를 찾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그러기에 '여유경영의 힘'은 오히려 오늘도 땀흘리고 1년 12개월동안 한번도 매뉴얼이 바뀌지 않는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힘빠지게 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위한 강의라면, '내 일'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자기경영의 신화를 만드는 것일까라는 의구심이 생기는 것이다. 구글과 네이버가 우리 대학생들이 얼마가 가고 싶어하는 기업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아쉬움이 지속적으로 독서를 방해한다.
5.
사회구조와 같은 거시적 문제보다 "Made in 우리동네"와 같은 노력이 우리의 삶의 지도를 바꾸어버릴지도 모른다(200쪽). 김난도 교수는 이런 작은 일들로 세상을 바꾸려하는 듯 보인다. 그래서 그는 컨트리 보이스의 시대가 온다고 역설하면서, "지역에 기반을 두고 성장을 거듭하면 어느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히든 챔피언이 되어 있으리라"(226쪽) 말하는지도 모른다. 강한 공동체 의식, 다양한 선택지, 그리고 자유롭고 창의적인 인간의 조합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동체 의식, 자율적 인간, 그리고 창의적이고 다양한 일거리가 동시에 주어질 수 있는 삶의 공간은 과연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 가능할까? 공동체의식과 자율적 인간이 함께 공존할 수 있으려면 어떤 사회적 규약과 습관이 필요할까? 우리의 배타적 민족주의와 유목적 시민의 자유가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미국 아미쉬 공동체의 도덕적 가르침이 자유롭고 창의적인 생각을 가로막는 것처럼, 앞서갔던 대안 공동체 운동이 2세대에 이르러 그 존립마저 거부된 역사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그러기에 결국 '못먹어도 Go!'라는 청년의 실험정신으로 돌아간 가르침이 이 책에 대한 아쉬움을 더욱 가중시킨다(263쪽). 우리시대 청년 멘토는 스펙이 아닌 아이디어로 승부하기를 요청하지만, '못먹어도 Go!'를 하지 못하는 우리의 젊은이들은 오늘도 10만명이나 모 대기업의 시험에 응시하고, 9급 공무원 시험은 매년 사상 최대의 경쟁률을 갱신한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내 일'에 나온 이야기들은 지금의 젊은이들이 아니라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위안이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 말이다. 아니라면, 김난도 교수가 말하는 '내 일'(my job)이 '내일'(tomorrow)이 될 수 있는 정치사회적 조건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전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바로 이것이 '좋은 것'과 '원하는 것'의 균형은 언제나 쉽지 않다는 그 옛날 훈육서들이 전하는 말에 더욱 수긍하게 되는 이유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서평] Aporia Reivew of Books, Vol.1, No.2, 2013년 10월, Scient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