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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8-24 10:57

공허한 제목과 서글픈 반복: 설명없는 '슬픈 예수'

글쓴이 : 아포리아

도서정보

저자명	김근수
저서명	슬픈 예수
출판사	21세기북스
연도(ISBN)	2013(9788950949648)

슬픈 예수(김근수, 2013: 21세기북스)

1.
1970년대와 1980년대 변화를 열망했던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해방 신학'에 대한 상당한 채무의식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된다. 억압과 고통의 시대를 벗어나고자 신앙에서라도 안식을 찾고자 하던 때, 개인보다 공동체, 성공보다 소외에 주목했던 기독교인들의 이야기에 한 번쯤은 부끄러움을 느꼈던 기억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권력을 잡아 세상을 바꾸겠다고 말했고, 어떤 사람은 대중들을 계몽하는 것이 먼저라고 외쳤고, 어떤 사람들은 세상을 버리고 종교의 세계에 몰입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바로 지금이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할 때라며 그들과의 동행을 선택했던 것이다. 1980년 엘살바도르에서 군인의 총에 순교한 로메로 대주교와 같은 삶을 선택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소위 기독교는 '신 중심'(theo-centered)의 종교다. 거의 대부분의 일신교가 그렇지만, 아마도 기독교만큼 '하나님' 중심으로 교리든 원칙이든 구성된 종교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성경의 시작도 '신'으로 시작하고, 성경의 끝도 '신'을 기다리며 끝이 난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신앙에 대해 훈계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나' 또는 '인간 중심'에서 '하나님'이 중심이 된 삶으로의 전환을 주문한다. 나치 독일에서 순교를 선택한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도, 개혁주의 신앙을 표방하는 월터스토프(Wolterstorff)도, 지금 우리 주변에서 '제자도'를 가르치는 선생들도, 모두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주문한다. 이렇듯 '하나님 중심'이라는 단어는 해방 신학의 전유물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3년 한국 사회에서 '해방 신학'이 이야기하는 '하나님 중심'은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사회복지는 예스(Yes), 사회비판 노(No)란다"는 지적으로부터 마더 데레사 식의 헌신에 가려진 "돈 이야기 제일 많이 하는" 한국 교회에 대한 한탄에서, 우리는 1970-80년대 느꼈던 부끄러움을 다시 느끼게 된다(23쪽). "가난한 사람들을 편드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슬픈 예수"로 귀결되는 과정에서 성장 중심의 '전도폭발' 속에 감추어진 기독교의 치부가 드러나는 아픔을 느낀다(10쪽). 그리고 뻔한 이야기에 다시 고개가 숙여진다. "진정한 회개는 심판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비로운 하느님 체험"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에 언제이던가 흘렸던 회개의 눈물이 다시 눈시울을 뜨겁게 달군다(27쪽). 우리가 간과해 온, 예수님의 얼굴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2.
그러나 이렇게 뜨겁게 달구어졌던 기대는 이후 저자를 따라가며 만나게 되는 마가복음의 묵상에서 실망감으로 이어진다. 첫째, 무엇보다 한 가지의 생각만을 강요하려는 태도다. 출판사의 의도인지 저자의 메시지인지 모르지만, 책 표지부터 당황스럽다. '슬픈 예수'라는 제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고통을 없애는 저항의 길"이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는 모순된 태도가 마음에 걸린다. 기독교적 맥락에서 본다면, 세상의 고통을 없애는 길이 모두 '예수님'으로 통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저항'이 혹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다른 해석과 갈등에 대한 거부를 담지 않았는지 의심하게 된다. 즉 '저항'은 때로는 견해가 다른 사람에게는 고통 또는 고민을 수반한다. 어쩌면 자기 자신으로 도피하지 않는 한, 인간은 살아가면서 서로 다른 의견과 서로 다른 신념이 빚어내는 갈등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즉 '저항'은 불의에 대한 반감이면서 동시에 '무엇이 정의인가'에 대한 첨예한 갈등을 초래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인간의 한계를 인정한다면, "고통을 없애는 저항"에 대한 확신만큼이나 다른 의견이 있다면 함께 논의해 보자는 태도가 요구되는 것은 아닐까.

둘째, 과장된 제목과 동떨어진 내용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이 책은 '마가복음'에 대한 새로운 해석, 또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성경 구절 하나를 전면에 제시한 후, 그 내용과 관련성이 없는 묵상이나 주장을 펼치면 독자들은 의아해 진다. 예를 들면, "귀신을 쫓아냄"(34-37쪽)과 "병자의 아픔을 함께하다"(38-40쪽)는 제목의 글에서 우리는 저자가 사회적 상황으로 설명하는 '귀신'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리고 '아픔'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듣지 못한다. 대신 "한국의 교회나 성당건물 재산의 10분의 1만이라도 팔아서 아픈 사람을 무료로 치료해 보라"(39쪽)는 주문만 있을 뿐이다. 이 주장 자체는 분명 새겨들어야 할 충고일 것이다. 그러나 마가복음을 새로운 눈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엉성하고 허술한 반복일 뿐이다. 이렇게 무성의하게 반복되는 정언명제들은 독자들의 묵상을 방해할 뿐이다.

셋째, 마가복음의 저자에 가려진 예수님이다. 문득 '슬픈 마르코'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하는가에 대한 해석학적 불평이 아니다. "그 관행을 정당화하려고 마르코가 지어낸 이야기(48쪽)," "고난과 희생의 신학을 강조한 마르코"(49쪽), "세상에서 가장 고치기 어려운 것이 종교적 오만"(52쪽), "마르코에서 십자가 사형장에 없던 마리아가 요한[복음]에서는 갑자기 십자가 바로 곁에 나타난다"(76쪽)는 이야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성령'의 도움으로 쓰여졌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런 해석도 열린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저자의 '정언명제'인 '가난하고 소외받은 사람에게 다가가라'는 메시지로만 귀결되고, 마르코의 저술배경과 성경구절들이 갖는 의미에 대한 성의있는 설명이 부재할 때, 독자는 허무함을 느끼는 것이다. "쏟아지는 비난들"(75-77쪽)에 대한 설명에서 '비난'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3.
물론 깨닫지 못하거나 놓치고 있던 성경의 단면들이 설명될 때 느끼는 유쾌함에 대해서도 언급해야 할 것이다. 귀신의 이름이 "군대(legion)"라는 부분에서 식민지 이스라엘인의 분노를 설명해 준 부분(95쪽),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한 집에 머무르라는 이야기는 "더 좋은 집을 찾아다니지 말라는 뜻"이라는 해석(108쪽), 코르반을 이유로 부모를 내팽겨치는 신앙에 대한 도전(125쪽)은 의미있는 반성을 불러 일으킨다. "오 하나님, 굶주리는 자들에게는 빵을 주시고, 빵을 가진 우리에게는 정의에 대한 굶주림을 주소서"라는 월터스토프의 지적을 새삼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아울러 기독교가 사회 부정의에 직면해서 가졌던 보수적인 태도에 대한 질책도 지금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는 말이 얼마나 수없는 부정의를 외면하게 만들었던가. "돈이 사람을 부릴 수 없듯이 권력도 사람을 부릴 수 없다"는 말씀 속에서, "하나님과 권력은 그 차원이 다르다"는 신앙적인 태도 속에서, "국가권력에 대한 조건 없는 의무 이행"에 대한 강조가 가져왔던 지난 시절의 부끄러움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것이다(232쪽).

그래서 "마음이 깨끗함"(123-126쪽), "무화과나무 저주"(211-213쪽), "예수 성전 항쟁"(214-217쪽)과 같은 묵상은 많은 생각을 갖게 만든다. 짧은 글 속에 담겨있지만, 성경만이 던져주는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오묘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접하게 되는 것이다. 나도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아닐까, 나도 예수님께서 꾸짖던 사람들 중의 하나가 아닐까라는 고민이 생기는 것이다.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 소외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외면한 신앙 생활이 예수님께는 어떻게 비쳐질까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제목과 묵상이 함께 가는 서술들은 반복되는 정언적 명제보다 더 큰 감동을 던져준다.

4.
"개신교인들은 믿는 자세는 뜨겁지만 믿는 내용은 잘 모르는 듯하다"는 저자의 비판은 매우 적절하다(121쪽). 그러나 '슬픈 예수'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없이 과연 이러한 비판이 기독교인들의 신앙 속에 스며들도록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재산 포기에 대한 예수의 요구"(184쪽)도 진지한 성경에 대한 묵상이 각자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가난한 사람에 관한 관심과 배려"(185쪽)가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행동 속에 발견될 수 있다는 전제를 누가 반대할 것인가. 그러나 이런 사람으로의 변화는 성경을 통해 각자가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이 책에는 충실한 설명과 진지한 묵상이 좀 더 가미되었어야 했다.

죽었다는 여아를 살리신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두려움에 대한 따뜻한 사랑을 느낀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처럼 분노하셨고, 우리 모두처럼 아파하셨다는 점에 우리는 고마움을 느낀다. 여기에서 교회를 개혁하겠다고 분연히 일어섰던 바리새인들과 성전을 청소하시는 예수님의 차이가 나오는 것은 아닐까. '슬픈 예수'에서 저자가 전개하는 비판들은 오늘날의 기독교인들만의 숙제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속에서 자성해야 할 것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자극적 표현이나 단어보다 세밀하고 성의있는 묵상이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여전히 남는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사야 58:6-7)에 대한 이야기에 '말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곁들여졌으면 하는 바램이 생기는 것이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서평] Aporia Reivew of Books, Vol.1, No.1, 2013년 9월, 아포리아 편집부, Scient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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