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역사가 영웅 시대에서 소위 “잡놈”들이 목소리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 잡놈 시대로 본격적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것은 대략 기원전 7세기부터다. 소위 민주주의의 씨앗들이 땅을 열고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것이 이 시기이기에. 이런 역사 전환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름 방아쇠를 당기었다 할 수 있는 잡놈이 한 명 있었다. 이 잡놈에 대한 이야기이다. 

바로 영웅의 고상한 이야기를 제치고 허접스런 잡놈들의 욕정과 욕설을 상품으로 팔아먹기 시작한 노래꾼이었던 아르킬로코스의 이야기다. 사내가 잡놈인 것은, 아니 소위 잡놈 세계의 원조인 것은 그의 개인사에서 잘 드러난다. 고향은 파로스(Paros) 섬였고, 아버지 텔레시클레스(Telesicles)는 파로스 섬의 나름 저명 인사였다. 어머니는 에니포(Enippo)라는 노예였다. 그의 직업은 군인이었다. 아르킬로코스라는 이름에서 확인된다. ‘아르코스’ (archos)는 ‘우두머리’를, ‘로코스(lochos)’는 ‘매복’을 뜻한다. 따라서 전방의 한 초소를 책임졌던 소대장을 지냈던 군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고사가 전해온다. 아버지 심부름으로 소를 팔러 가는 중에 일군의 미녀(美女)를 만났다고 한다. 그녀들이 그에게 비싼 값을 쳐줄테니 소를 팔라고 흥정을 걸어왔고, 소를 넘기려는 순간에 소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고, 그 자리에 리라(Lyre)만이 덩그러니 놓여졌다고 한다. 이것이 아르킬로코스가 무사 여신들을 만나 “딴따라”의 길로 접어들게 된 사연이라고 한다. 

아르킬로코스의 흉상이다. 한데, 흉상은 가수의 얼굴이라기보다는 전쟁터에서 막 돌아온 퇴역 군인의 지친 모습에 더 가깝다. 아닌 게 아니라,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는 직업 군인이었다. 이는 그의 작품으로 인정되는 여러 단편들에서 확인된다. 대표적으로 그의 단편 2번을 들어보자.    

먼저, 그가 직업 군인이었다는 사실에 눈길이 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요즘식으로 치면, 그가 특정 음반 회사의 전속 가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당시 연예 기획 회사의 사장에 해당하는 귀족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전혀 없다는 점, 따라서 한편으로 생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그 덕분에 자신이 떠들고 싶은 대로, 느낀 대로 자유롭게 노래를 부를 수 있었는데, 그것이 잡놈들의 목소리를 역사의 무대에 올릴 수 있었던 힘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와 같은 잡놈들의 노래가 이른바 서정시의 기원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다. 아무튼, 예나 지금이나 노래의 어머니는 자유일 것이다. 그 자유가 생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물적 자유이든, 맘대로 말하고 떠들 수 있는 것을 허용하는 표현의 자유이든 말이다. 어쨌든, 모든 노래는 이렇게 자유라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자궁에서 태어난 아이의 입에서 터져 나온 노래의 한 대목이다. 

인용에서 들을 수 있듯이, 이런 자유에 기초해서 아르킬로코스는 자신의 내면에서 밀고 나오는 감정과 느낌을 거침없이 노래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와 같은 내밀한 내면에의 관찰은 호메로스와 같은 서사시인의 표현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시선이라는 점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자신 겪는 겪음 혹은 사태 자체가 시의 직접적인 표현 대상이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 구조 (Narratio)”를 가지지 않는 관찰과 이에 대한 서술 자체를 노래의 대상으로 끌어 올린 사람이 아르킬로코스다. 그러면 뭔가 그 자체로 상품성을 가지고 있어야 할 텐데, 과연 그러한지를 또 다른 단편을 통해 살펴보자. 

단편은, 뜨거운 사랑에의 열망이 한번 내면의 심연에서 올라와 온 몸을 휩싸고 난 후 찾아오는 차가운 절망의 냉기는 그의 숨을 멎게 하고, 온 몸은 다시 뼈 마디가 다시 으깨어지는 고통으로 가득 찬 상태를 노래하는 노래이다. 누군가를 사랑했는데, 그 사랑이 혼자서 울부짖어야 할 때, 나타나는 신체적인 현상을 아르킬로코스는 정확하게 포착해서 노래로 표현하고 있다. 

이 표현이 과연 실연 혹은 절연의 상태에 빠진 사람의 신체 상태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각자의 경험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극도의 경험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고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삶을 살다 보면, 이런 경험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험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이 힘은 종종 신들의 사지(四肢)와 예지(叡智)를 풀어헤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 에로스(Eros)의 작용이기 때문이다. 다시 헤시오도스의 말이다.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그러니까, 사랑의 신 에로스는 우주의 시작부터 있었던 힘으로, 이 힘은 인간은 물론 신들의 신체와 정신을 압도하고 지배할 정도로 강력한 무엇이다. 따라서 이 힘의 영향으로 겪게 되는 인간의 사랑에 대한 경험은 작고 아무것도 아닌 겪음이 결코 아님이 분명하다. 인간이 이 힘 앞에서 얼마나 무력하고, 따라서 이 겪음(Pathos)이 물론 인간 모두에게 중요한 사건은 아닐 지 몰라도 그것이 개인에게는 얼마나 큰 사건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편을 읽어 보자. 아나크레온(Anacreon, 기원전 7세기)이라는 시인의 사랑의 상태에 대한 관찰이다. 

인용에서 읽을 수 있듯이, 사랑의 힘은 어떤 이를 압도해서 그를 정신 분열 상태로 몰아 넣을 정도로 막강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정신적 아노미 상태를 관찰하는 시인의 눈일 것이다. 물론 시에서 말하는 화자는 시인이다. 일종의 정신적 아노미 상태에 놓인 사람이라면, 그리고 앞의 인용에서 읽었던 시에서도 마찬가지로, 그토록 고통스러울 정도면, 말은커녕 하물며 운율에 맞추어서 노래를 부른다는 일은 상식에 맞추어 볼 때에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일 것이다. 일단 말부터가 모순이다. “미치고 미치지 않는다”니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논리적으로 보면,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순의 순간에서 번득이는 시인의 시선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사랑하고 다시 사랑하지 않는 미치고 미치지 않는 그런 내적 분열 경험을 실제로 한다. 하지만 그 순간이 얼마나 지속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사랑하면서 미워하는 두 감정이 한 마음 안에서 공존하며 경쟁하는 경험의 순간을 겪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경험을 노래로 표현한 로마의 시인 카툴루스(Catullus, 기원 전 85-55년)의 절규를 들어보자. 

인용에 따르면, 미워하고 사랑하고, 왜 그러는지에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느끼는 나”가 있고, 그것을 “노래하는 나”가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노래가 관장하는 영역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것은 “느끼는 나”를 관찰하는 일이고, 이 관찰을 노래로 엮어내는 일을 하는 “노래하는 나”가 바로 가수이자 시인임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바로 분열의 순간에서 인간의 논리와 인간의 경험, 인간의 언어와 인간 간의 느낌 사이에 있는 간극이 있음을 확인하게 되는데, 이 간극을 포착하는 것이 시인의 눈이고, 이 간극을 메워 주는 힘이 서정시라는 장르이다. 바로 이 서정시의 세계를 열게 해 준 사람이 아르킬로코스다.

그러면, 아르킬로코스에게 “뼈 마디 마디에서 울려 퍼지는 극렬한 고통”을 제공한 여인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이 여인도 서정시의 탄생에 일조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만약 아르킬로코스가 사랑의 고통으로 괴로워하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이 순조롭게 잘 이루어지고 있는데, 굳이 노래를 부를 필요가 있을까? 노래는 대개 사랑을 구하고자 시도하거나 이별을 경험할 때에, 상실의 자리에 위안으로 대신하는 역할을 하는 수단이기에 말이다. 이 소녀의 이름은 네오불레(Neobule)이다. 그녀와의 사랑이 잘 이루어지던 시절에 지어진 시가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그녀가 어떤 미모에, 어떤 심성의 소녀인지에 대해서 알기는 어렵다. 우리에게 전승된 몇 개의 단편으로 추정해보건대, 아르킬로코스가 아름다운 여인을 “장미”에 비유하는 것을 보아 네오불레도 장미의 미모를 가진 처녀가 아니었나 싶다. 

아마도 이런 미모의 여인이었기에 절연의 상처도 크지 않았나 싶다. 이는 그녀를 향한 그의 욕설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인용의 욕설이 얼른 보기에는 저급한 언사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는 문학사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왜냐하면, 이 노래는 문학사에서 소위 “풍자(satire)”라는 장르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비방과 욕설을 노래로 바꾸어 부를 수 있는(iambizo) 운율인데, 바로 아르킬로코스의 입을 통해서 이얌부스(iambos) 리듬이 확인되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이얌부스(v-v-) 운율의 특징은 일상 구어에 가장 가까운 리듬이다. 보다 자세한 논의를 해야 하겠지만, 그 원형은 데메테르(Demeter) 제의에서 사용된 노래와 관련되어 있다. 다산과 번식을 기원하는 이 제의는 디오니소스 축제와도 연결되어 있는데, 고대 그리스에서 축제의 기본적 원형은 마치 한국의 마당극과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이 축제가 열리는 기간에 사람들이 축제 마당에 나와서 그간의 서운하고 억울한 사연들과 지배층들에 대한 비판을 웃음을 통해서 풀어냈다. 대개는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서 동원되는 것이 음담패설인데, 이 대목에서 잠시 아르킬로코스의 입이 얼마나 걸걸한지를 읽어보자. 

이런 종류의 음담패설이 제공하는 웃음은 한 공동체에 드리워진 상호 나쁜 감정들의 앙금을 정화해내는 기능을 수행하는데, 이 음담패설에 사용된 리듬이 또한 이얌부스 리듬였다. 그런데 대개는 이런 음담패설에는 술이 빠질 수가 없는데, 여기에서 디튀람보스(단장단장단장)라는 운율이 생겨난다. 이 리듬은 디오니소스 신과 관련된 것으로, 이에 대해서 아르킬로코스는, 

라고 노래한다. 이 디튀람보스 운율에 기대어 때로는 해학을 때로는 욕설을 그는 공개적으로 표현한다. 그런데 이 욕설의 긍정적인 측면은 그것이 비판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 비판 전통이 한편으로는 코메디아(comoedia)로 이어지고, 다른 한 전통이 풍자(satura)로 흘러갔다. 이에 대해서는 보다 자세한 논의가 필요하다 하겠다. 어찌되었든, 아르킬로코스는 자신이 욕설에 능한 사람이었고, 이 분야의 전문가임을 스스로 밝힌다. 

는 또한 어느 유곽의 주모에게 느끼었던 욕정에 대한 표현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이런 태도에 대해서, 사랑을 잊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그가 원래 성정이 욕정으로 가득 찬 사내인지 잘 모르겠다. 어찌 보면, 소위 아주 “실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 실은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이런 모습은 그렇게 욕설과 저주를 퍼붓다가는 이내 또 그녀와 다시 한번 사랑하기를 갈망하는 모습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어떻게 보면, 소심한 사내의 모습이기도 하고, 비열한 남자의 모습으로도 보인다. 그리고 뭔가 진득한 뚝심도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의 성격에 대해서 뭐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가 산전수전(山戰水戰)을 다 겪은 사람이고, 이러는 중에 그가 경험한 열기와 냉기, 열망과 절망, 극도의 기쁨과 극도의 고통의 양극단을 왔다 갔다 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그가 이러한 양극단의 경험으로부터 새로운 덕목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용에서 읽을 수 있듯이, 아르킬로코스는 앞에서 읽은 개별 단편들에서 나타나는 그런 종류의 삼류 인생을 산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알 것은 다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고, 마음이라고 번역한 튀모스(thymos, 기개, 용기)에, 이는 전쟁에서 전사에게 필요한 덕목의 자리인데, 이 자리에 새로운 덕성을 심으라고 가르쳐 준 현인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가르쳐 준 것은 다음과 같다. 그것은 견딤이다. 견딤 일반에 대한 아르킬로코스의 노래를 잠시 듣고 가자. 

물론, 아르킬로코스에 따르면, 견딤은 신이 제공한 치료제이다. 하지만, 엄밀하게 이 견딤은 신의 선물이 아니다. 지나간 사랑, 혹은 이미 겪어버린 일들에 대한 회복 혹은 보상이 아니다. 그것이 다시는 되돌아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냥 견디는 것이고, 견디다 보니 견딜 만 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딤은 따라서 신이 준 것이 아니라, 인간이 무수한 견딤을 통해서 얻게 된 통찰의 결과이다. 삶에는 고저와 장단과 강약이 있고, 그 극단의 결과에 너무 억매일 것 없다는 판단이 그것인데, 이 판단으로부터 나오는 덕목이 중용(中庸)이다. 내려올 때가 있으면 올라갈 때가 있다는 통찰, 삶에는 흐름이 있다는 것! 이를 파악하는 것이 혹은 흐름과 리듬에 대한 통찰을 하라는 것이 그의 핵심 주장인 셈이다. 

인생은 쓴맛 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쓴맛은 씁쓸한(bitter) 고통이 아니다. 인생을 쓰다(use)보니, 거기서 우러나오는 쓴맛이다. 이 쓴맛의 결정체가 어떤 흐름(Rhythm) 위에 우리가 올라타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라고 한다 아르킬로코스는! 이것이 아르킬로코스가 자기 인생을 사용해 보고서 난 위에 남긴 통찰일 것이다. 여기까지가 “인생사용서”에 대한 아르킬로코스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