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11-07 11:19
'종교' 너머의 종교 연구를 꿈꾸며
 글쓴이 : 아포리아
조회 : 15,680  


도서정보
저자명 맬러리 나이
저서명 문화로 본 종교학
출판사 논형
연도(ISBN) 2013(9788963571478)
‘종교’ 너머의 종교 연구를 꿈꾸며 

한 사람이 살아가는 문화는 그 사회의 지배적 종교(혹은 종교들)로부터 깊이 영향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이 실천하는 종교는 언제나 문화적 맥락과 위치에 따라 영향을 받을 것이다. - 맬러리 나이(Malory Nye), <문화로 본 종교학>

<문화로 본 종교학>은 “Religion: The Basics”의 번역서다. 원서의 제목만으로 보자면, 종교의 기본 원리를 제시하는 글로서 인식되기 쉽다. 번역서의 제목은 그러한 제목이 독자에게 가져다줄 오해를 사전에 차단한다. 저자는 종교를 구성하는 독특한 본질이나 심오한 원리를 전제하고 그것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는 문화의 일부이며 또한 하나의 문화라는 시각에서 논의하고 있다는 점이 번역서의 제목에 담겨 있다. ‘문화로 본 종교학’이란 제목은 원로학자 정진홍의 발언 내용을 상기시킨다. 오래 전에 그는 “종교는 ‘종교라는 문화’로 기술되어야 하고, 그렇게 기술된 ‘종교라는 문화’에 대한 분석의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것이 종교학의 과제”라고 밝힌 적이 있다. 우리는 흔히 종교를 세속 사회와 정반대의 자리에 놓고 보려 한다. 그래서 종교를 비판할 때도 그 탈세속성을 준거로 삼는다. 순수성, 초월성, 도덕성의 오염을 문제시하는 것이다. 이렇듯 종교는 탈세속적일 때 가장 종교답다는 인식은 일반인을 넘어서서 종교 연구자에게도 만연되어 있다. 그런 입장에 있는 종교 연구자는 종교 ‘본연의 본질’을 드러내거나 그러한 본질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한 분석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정진홍의 발언과 맬러리 나이의 시각에서 종교는 문화일 뿐이다. 종교는 그 나름의 의미 있는 인간의 상징적 행위로 구축된 구성물이기는 하지만, 세속(의 문화)과 ‘본질적으로’ 분리된 자리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두 학자가, 종교적 행위는 마치 컴퓨터 게임 행위와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고 보는 것도 아니다. 종교가 개인과 집단에게 미치는 영향의 성격과 규모는 컴퓨터 스크린 앞의 붙박이들에게 미치는 게임의 그것과 비교 대상이 되기는 어렵다. 정진홍과 맬러리 나이의 요지는, 종교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며, 이 세계에서 인간의 사유와 행위에 의해 구성된 문화이기에 그러한 문화 분석을 위한 시각과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맬러리 나이는 종교, 문화, 권력, 젠더, 믿음, 의례, 텍스트, 현대종교와 현대문화 등은 종교라는 것을 빚어내는 작용 방식과 그 종교가 펼쳐 보이는 문화적 현상을 좀 더 가까이 들여다 볼 수 있는 렌즈로 제시한다. 가령 ‘제1장 종교’에서는 종교 개념의 형성과 종교들의 분류 방식에 기입된 서구 그리스도교적 시각과 권력이 쟁점의 대상이 된다. 그리스도교 문명의 자양분을 먹고 자란 서구 학자들에 의해 비서구의 여러 문화 중 일부는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종교의 범주에 배치되고, 또한 이러저러한 유형의 종교로 분류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명백히 드러나는 것은 포함과 배제를 행사하는 힘의 논리이다. 종교와 종교가 아닌 것, 문명과 야만, 고등 종교와 원시 종교 등으로 분류하고 배치하는 행위 주체는 언제나 타자를 자신의 시선에 묶어두고 자신의 관점을 강제하는 전제 군주와 같다. 그는 어떤 대상에 이름을 지어줌으로써 현실로 드러내고, 그렇게 현실로 드러난 말을 통해 다시 현실을 설명하면서 자신의 권위를 확고하게 구축한다. 많은 경우에 종교학자는 그렇게 노정된 ‘종교’에 대한 추상적이고 평면적인 작업에 과도한 열정을 바치곤 한다. 의례, 경전, 역사, 교리, 창시자 등을 중심으로 종교로 불리는 것의 성격을 짜맞춰가는 것이다.     

이와는 다른 지점에서 맬러리 나이는 종교-문화의 연구를 제안한다. 종교 행하기의 생태계에 주목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필리핀에서 가톨릭의 사제 앞에서 무릎을 꿇고 성체를 받는 여인의 모습은 평범한 제의에 불과하지만, 젠더, 권력, 상징 조작, 종교 경험, 정서, 위계, 식민지배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간의 몸과 물질을 통하지 않고 행해지는 종교는 없다. 그렇다면 그러한 종교를 분석하는 연구자는 그러한 몸과 물질이 어떤 사회적 맥락, 생리적 조건, 권력 기제, 문화적 생태계 등에 놓여 있는지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문화 안의 종교 연구에서 문화로서의 종교 연구라는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문화는 삶의 방식이라는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생각과 연결하면, 종교학자는 자신의 눈앞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서 시선을 거둘 수 없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종교 연구가 아닌,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종교 연구가 요청되는 것이다. 

파란색으로 하늘이 물든 가을날에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함께 인왕산의 국사당을 찾았다. 운이 좋았는지, 때마침 그곳에서는 한참 굿이 열리고 있었다. 굿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얼굴에서 발동된 호기심을 읽을 수가 있었다. 한참이나 만신의 말과 몸짓에 주의를 기울이며 생각에 잠기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여기저기 주변을 살피며 제의의 환경을 살피는 학생도 눈에 들어왔다. 그 호기심 어린 눈에 굿과 굿을 행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려졌을까? 그 현상을 하나의 상으로 집약시키는 초점은 무엇일까? 돌아오는 길에 한 학생이 말했다. “색깔이 참 화려하고 선명해서 잊히지 않아요.” 그 말에 굿의 제의가 감각의 현상학이라는 측면에서 읽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려오면서 내게 오랫동안 남은 잔상은 만신의 말과 몸짓에 응대하면서 쉼 없이 두 손을 비비며 몸을 낮추는 여인의 얼굴이었다. 무당을 찾아 굿을 청하기까지의 사연이 고스란히 그 얼굴에 담겨 있었다. 그 여인의 삶의 이야기가 굿의 제의에서 내게 전해졌던 것이다. 내게는 한국 무속이 샤머니즘에 속하는지, 종교로 규정할 수 있는 요소를 갖추고 있는지 등의 논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내게 중요한 것은 삶의 이야기와 그것을 실어 나르는 말과 몸짓, 그리고 사회적 관계 방식이다. 이렇듯 인간의 행위 방식과 실천성에 시선을 둔 연구, 나아가 타인의 언어 놀이에 따른 종교의 틀을 넘어서서 다양한 삶의 방식에 기웃거리는 내게 이 책은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 이 글에 대한 권한은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서평] Aporia Review of Books, Vol.2, No.11, 2014년 11월, 박상언, 감리교신학대학 강사)

 
   
 

BOOK REVIEW
  • 사회과학
  • 인문학
  • 자연과학
  • 논픽션
  • 픽션

월간 베스트 게시물

공지사항
  • 1 아포리아 북리뷰(Aporia Review of Books)
  • 2 궁금하신 사항은 언제든지 문의하여 주시기 바…
이용약관| 개인정보 취급방침| 사이트맵

Copyright (c) 2013 APORIA All rights reserved - www.apor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