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은 주로 근대 한국의 종교 혹은 역사의 맥락에서 그 의미가 논의되어 왔다. 그것이 근대의 문턱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한국 최초의 신종교였고, 1894년의 동학농민운동이나 1920년대의 신문화운동 등 한국 근대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이는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철학, 특히 동양철학 연구자의 눈에는 종교학자나 역사학자가 그리 주목하지 않는 또 다른 동학사상의 의미가 보인다. 예컨대 전통적 생활양식과 서구 근대적 생활양식에 대해 최제우·최시형과 같은 19세기 동학 사상가들이 보인 비교적 균형 잡힌 시각과 태도가 그렇다.

 

주지하다시피 19세기 중엽부터 말기에 이르기까지 조선에서는 전통적 삶의 방식을 유지하느냐 아니면 서구 근대적 삶의 방식으로 전환하느냐의 문제를 놓고 두 가지 이념이 대립하고 충돌한다. 역사학계에서 흔히 위정척사(衛正斥邪)파와 개화파의 대립과 충돌이라 이름 붙인 것이 그것이다. 이들에 대한 일반적 평가를 보면 위정척사파는 민족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수용했어야 할 서구 근대문명을 배척한 ‘역사의 지진아’로 취급되고, 개화파는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간파해 서구 근대문명을 적극 수용하려 했으나 외세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민중적 기반이 없었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였다고 여겨진다. 물론 서구적 근대화가 당시의 민족적인 지상과제였다는 점만을 잣대로 삼는다면 그런 평가는 지극히 타당하다. 그러나 사상에 대한 평가의 잣대를 민족의 생존과 발전이라는 역사적 과제가 아닌, 문화적 측면에서 전통과 서구적 근대에 대한 올바른 가치판단과 태도로 삼는다면 위정척사파든 개화파든 각기 그 편향성을 드러내고 전통과 서구에 대해 비판적 계승 혹은 수용의 태도를 보인 동학은 그 의의가 새롭게 조명된다. 본 편에서는 서구적 근대에 대한 동학의 태도가 지니는 의의를 당시의 위정척사파 및 개화파의 그것과 비교함으로써 재조명하려 한다.

서구적 근대에 대한 위정척사파와 개화파의 평가는 어떠했던가? 문명과 야만이라는 당시의 판단 잣대를 기준으로 보면 위정척사파는 서구적 근대를 야만으로, 전통 유교문화를 철저히 체현한 조선을 문명이라 여기는데, 그러한 판단의 준거는 전통 유교적 신념이다. 당시 화서(華西)학파의 거두였던 이항로 같은 이는 서양인을 금수에 가까운 오랑캐로 판단했는데, 그렇게 판단한 근거는 이들에게 군신·부자 간에 지켜야 할 유교적 윤리규범이 없다는 것, 그래서 조상제사도 거부하는 천주교를 믿는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이들이 동양 전통문화의 잣대로 서양문화를 평가하고 문명과 야만을 가른다는 것이다. 반대로 급진개화파는 당시 조선의 현실을 미개한 것으로, 일본이 이룩한 서구적 근대화를 문명으로 여겼으며, 이러한 시각은 19세기 말 독립협회 인사들의 인식에서도 조선은 미개, 서구는 문명이라는 도식으로 이어진다. 문명과 야만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한 생각이 이렇게 급진개화파와 위정척사파는 완전히 상반되었다. 하지만 세상을 야만과 문명으로 구분하여 전자를 송두리째 부정하고 후자를 맹목적으로 숭배했다는 점에서 양자는 똑같다. 

전통과 서구적 근대에 대한 태도의 문제에서 위의 두 대립된 견해 외에 일종의 절충적 견해도 있었다. 이른바 온건개화파로 불리는 동도서기(東道西器)론자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얼핏 보면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서구의 근대문물을 적극 수용하려 했다는 점에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졌던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전통유교를 정신문화의 핵심으로 하면서 서구 근대의 기물(器物)문명을 부국강병을 위해 시급히 수용해 발전시켜야 할 것으로 여겼다는 점에서, 이들의 의식은 진정한 종합이 아닌 분열된 의식이다. 이렇게 19세기 중·후반에 걸쳐 조선의 엘리트들이 서구 근대문명에 보인 태도는 맹목적 추종, 지나친 배척 혹은 실용적 이유에서의 수용이라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이에 비해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는 서구적 근대를 동양 전통의 잣대로 배척하지도 맹목적으로 추종하지도 않았고, 실용적인 목적에서 그것의 수용을 주장하지도 않았다. 

언뜻 보면 서구적 근대에 대한 그의 입장은 위정척사파와 유사해 보인다. “서양은 싸워 승리하고 공격해 취하여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으니, 천하가 다 소멸해버리면 순망치한의 탄식이 없지 않을 것이다.”(󰡔동경대전󰡕 ｢포덕문｣) 서구 제국주의 세력의 동아시아에 대한 무력침공을 두려워하는 대목이다. 또 이렇게도 말했다. “1860년에 이르러 서양 사람들은 천주의 뜻이라 하여 부귀는 취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천하를 공격해 취하여 교당을 세우고 자신들의 도를 행한다고 하므로 나는 그것이 그럴까 어찌 그것이 그럴까 하는 의심이 있었다.”(<동경대전> ｢포덕문｣) 서양인들의 무력침공을 언급하는 것은 앞의 인용문과 같지만 이런 행동을 하는 까닭을 위정척사파처럼 단순히 그들이 금수에 가까운 오랑캐여서라고 치부하지 않는다. 최제우는 서양인들의 행동을 이들의 신앙과 결부 짓는다. 부귀를 취하지 않는 것이 천주의 뜻이라고 믿는 이들이 어찌 천주의 뜻에 반하여 다른 나라를 무력으로 침략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서양인 자신의 종교적 신념과 행동 사이의 이율배반을 지적함으로써 서양인들에 대해 비판하는 태도는 동양 전통의 잣대로 서구를 재단하는 것보다 훨씬 공정할 뿐만 아니라 근대 서구인이 지닌 문제의 정곡을 찌른 것이다. 

최제우의 서구적 근대에 대한 비판정신은 아래의 짤막한 글에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서학과 동학의 차이를 묻는 물음에 최제우는 서교(西敎), 즉 천주교와 서학, 즉 서구의 근대학문 사이의 자기모순을 지적함으로써 서학을 비판하고 있다. 서교는 천주를 믿고 천주를 위하라는 가르침으로, 이 가르침을 따르는 서양인들은 평소의 언행이 천주의 가르침에 부합되어야 한다. 그러나 앞서 최제우 자신이 언급한 대로 서양인들은 부귀를 취하지 않는, 천주를 위한 삶을 산다고 하면서도 다른 나라를 침략한다. 이들이 침략할 수 있는 힘은 서구의 근대학문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이 근대학문에는 천주를 위한다는 기준에 의한 올바른 시비판단이 들어 있지 않다. 오로지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 자연을 전면적으로 이용, 개발하는 인간을 전제로 하여 “제 몸을 위한 계책만을 빌 뿐이다.” 이런 이기적 인간·인간중심주의적인 세계관을 가진 인간의 영혼에는 ‘생명운동을 하는 신(氣化之神)’, 즉 천주가 없다고 최제우는 단언한다. 서양인의 영혼에 천주가 없으므로 그들이 발전시킨 서양 근대학문에도 천주를 위하는 가르침은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천주의 영이 내면화되지 못한 서양인들이 서양 근대학문을 기반으로 형성하고 발전시킨 서구 근대문명은 그럴듯한 형체만 갖추고 있을 뿐, 그 화려한 물질문명에는 천주가 자연의 영역에서 부단히 행하는 생명운동의 자취는 찾아볼 수 없음을 지적한다. <동경대전> ｢포덕문｣ 서두에서 “상고시대 이래로 봄과 가을이 서로 교체되고 사계절이 성쇠하되 그 질서가 변하지도 바뀌지도 않는 것은 천주가 행하는 조화의 자취가 천하에 분명히 드러난 것”이라 천명하였듯이, 최제우는 자연이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자기동일성을 유지하는 것을 천주 자신이 행하는 생명운동, 즉 기화(氣化) 덕분이라고 여겼다. 천주가 자연의 영역에서 행하는 이러한 생명운동 덕분에 생명을 유지하고 확장하며 나아가 문화를 형성 발전시키는 인간은 그 문화 안에 천주의 뜻을 구현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서구의 근대문명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최제우의 판단이다. 이성을 도구화하여 열심히 사유하지만 주문을 외울 때 드는 천주를 위하는 생각 같은 것은 없으며, 따라서 서양인의 도(道), 즉 천주교가 말하는 진리는 천주를 위하는 학으로 구체화되지 못한 허무에 가까운 것이라 주장한다. 요컨대 최제우는 서양인들이 믿는 천주에 대한 신앙을 잣대로 서양인들의 제국주의적 행태, 서양 근대 학문, 서양 근대 물질문명을 비판했기 때문에 동양의 잣대로 서양을 비판한 위정척사파보다 그 비판이 훨씬 설득력을 지닌다. 또한 급진개화파처럼 서구적 근대를 맹목적으로 추종하지도, 온건개화파처럼 전통과 서구적 근대 사이에서 어정쩡한 절충적 태도를 보이지도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서학을 비판한 최제우는 어떤 신념에 근거해 어떤 대안을 제시했을까? 최제우는 오랜 구도의 여정 끝에 1860년 4월에 “마음이 선뜩하고 몸이 떨려 아프되 증상을 짚어낼 수 없고 말로는 형언하기 어려운”(<동경대전> ｢포덕문｣) 신비체험을 계기로 상제와 조우한다. 그러고는 근 1년 여 간의 수행과 이론적 탐색을 거쳐 동학의 중심 교의를 ‘하늘님 모심(侍天主)’으로 표방한다. 그가 자신이 조우한 신을 한문으로 쓴 일련의 글에서 천주라 일관되게 명명하고 있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당시가 조선 조정의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일시적으로 관대해진 철종 대였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천주’라는 말은 여전히 조선에서는 불온한 사상의 대명사였고 금기시되는 용어였다. 이 점을 경주 땅에서 나고 자란 최제우가 몰랐을 리 없다. 그가 천주라는 용어를 과감하게 의식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은 서학은 “도(道)라는 측면에서는 동학과 같지만 이치(理)라는 측면에서는 아니다”라고 한 데서도 확인된다. 구체화된 교리라는 측면에서 동학과 서학은 다르지만, 가장 근본적인 진리의 측면에서 양자는 모두 천주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그는 자신의 종교체험을 토대로 천주교의 천주 관념을 수용했으며,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천주의 보편적 내재성을 강조함으로써 평등의식 또한 크게 고취한다. 그는 모실 시(侍) 자를 사람마다 자기 “안에 신령이 있음”(<동경대전> ｢논학문｣)으로 풀이하고 “나는 믿지 말고 하늘님을 믿어라. 네 몸이 모셨으니 가까운 것을 버리고 먼 것을 취한단 말인가”(<용담유사> ｢교훈가｣) 라고 하여 사람마다 각기 자기 내면에 모신 하늘님을 믿는 것이 신앙의 중심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렇게 하늘님이 모든 사람들의 내면에 보편적으로 내재되어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모두가 하늘님을 모신 존귀하고 평등한 존재라는 평등의식이 동학도들 사이에서 강렬하게 각인된다. 

어찌 보면 위와 같은 신념은 천주교의 그것과 상당히 유사하다. 하지만 이 근본적 신념을 실현하는 학(學)의 원칙은 천주교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다. 최제우는 이 원칙을 무위이화(無爲而化)(<동경대전>｢논학문｣)로 제시한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무위란 천주의 무위를 가리킨다. 천주는 자연물에 억지로 강요하거나 함부로 폭력을 휘두르지 않으며, 다만 만물이 자신의 본성에 따라 그 생명운동을 하도록 해준다. 이것이 천주가 무위의 원칙에 따라 만물의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무위이화 원칙의 구체적 의미이다.

 

노자의 무위사상과 마찬가지로 최제우에게 무위는 인간이 지켜야 할 원칙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몸 안에 천주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천주가 무위의 원칙을 따르듯이 인간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제우에게 서양인과 서양문명은 무위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인위의 극치로 느껴졌을 것이다. 최제우에게 서양인들은 만물을 생육하는 천주의 생명운동을 거슬러 자연을 대규모로 파괴하고 다른 문명권에 자신의 문화를 억지로 이식시키고 지배하려다 여의치 않자 총과 대포로 폭력을 행사하다 결국은 자신마저 소외되고 기형화되는 것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반대로 그는 자신이 세운 동학이 무위이화의 원칙에 따라 인위적 파괴적 문명이 아닌, 자연친화적이고 평화로운 문화를 창도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희망과 사명감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이상으로 최제우의 서구 근대문명에 대한 비판과 천주 관념·평등의식의 주체적 수용을 살펴보았는데, 서구에 대한 이런 일면 비판·일면 수용의 태도는 전통 유학사상에 대해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다음 편에서는 최제우의 전통에 대한 태도를 살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