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회에는　‘집안 구석진 곳에서 부끄러움이 없다.’라고 하는 유교적 도덕이 서양의 존엄dignity과 같이 내면적 기초를 마련했다는 점을 후쿠자와가 인정한 사실을 소개했다. 그러나 후쿠자와가 무엇보다 주목한 것은 이를 반증하는 현상이다. 즉 왜 ‘미개’한 사회에서는 사익(私益)을 희생하여 도덕규범에 따르게 하려는 정치적, 사회적 압력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체적인 경제나 도덕의 측면에서 향상됨이 없이 위선과 태만이 만연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에 그는 주목했다.

후쿠자와는 ‘미개 사회’에서 ‘도덕’으로서 존중받는 것은 실로 좁은 인간관계에서 상찬 받으려는 사심(私心)에 바탕을 둔 ‘사덕’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고금의 인물 가운데 대사업을 이루는 자가 있으면, 사람들은 그를 영웅호걸이라 칭찬한다. 그러나 그 사람의 덕의에 대해 상찬함은 단지 하나의 사덕에 있을 뿐으로, 공덕으로서도 소중한 것은 오히려 덕의의 조목(條目)에 더해지지 않고, 흔히 망각되어 버리고 말았다.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덕의 뜻을 좁게 이해하고 있는지는 이를 보더라도 분명하다. (『문명론 개략』 123항) (1)

여기서 ‘사덕’이란 ‘정실(貞實), 결백, 겸손, 율의(律儀) 등과 같이 내면에 속하는 것’(『문명론 개략』 119항)이라고 정의된다. ‘사덕’ 자체가 해를 끼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의 내면 문제일 뿐이기 때문에, 그것의 적절함과 완성도를 측정하기가 곤란하다. 통상 ‘평판’이라는 사회적인 평가를 단서로 하여 측정되기는 하지만, 그런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은 내면적 덕의 달성보다 사회적 평판의 향상만을 꾀하게 된다. 즉 사람은 타인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쉽게 비도덕적인 행동을 한다.

덕의는 한 사람의 내면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활동이 아니다. 수신(修身)이라든지 신독(愼獨)이라든지 하는 것 모두 외부적인 것과는 관계가 없다. 가령 무욕정직(無慾正直)이라는 것을 덕의로 하더라도, 타인의 비방을 두려워하거나 세간의 악평을 꺼려 무욕정직의 행위에 노력을 기울이는 자를 진실로 무욕정직한 자라고 할 수는 없다. 악평과 비방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외부적인 것이다. 외부적인 것을 위해 움직이는 자는 덕의라고 하는 것을 행할 수 없다. 만일 그런 것을 덕의라고 할 수 있다면, 한때 운 좋게 세간의 비난을 사지 않을 수 있을 때 탐욕부정(貪慾不正)한 일을 하더라도 덕의라는 평판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래서는 거짓 군자와 참된 군자 사이의 구별이 없는 것과 같다. 본래 덕의란, 일체 외부적인 것의 변화와 상관없이, 세간이 비방하든지 칭송하든지 뒤돌아 봄 없이, 설령 위협을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굴하지 않고, 빈천한 상태에 빠지더라도 확고부동하게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문명론 개략』 128항)

사회가 단순한 상태인 단계에서는 ‘사덕’을 강제함으로써 사회적인 규범을 유지하는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미개한 상태에서는 사덕이란 가르침을 주장하여, 인민이 그 기풍에 따르게 하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고, 어떤 나라도 사정이 비슷하다. 즉 ‘국민정신’이 아직도 발생되지 않은, 금수와 다를 바 없는 상태의 시대에는 우선 조야하고 잔혹한 행동거지를 제어하여, 내면의 마음을 온화한 것으로 만들어, 인류의 ‘방심(放心)’(맹자의 말. 잃어버린 양심)을 구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기 때문에, 인간 교제(=사회)가 뒤얽힌 관계에 대해 배려하는 것이 어렵다. (『문명론 개략』 123-124항) (2)

하지만 문명이 발전한 사회가 복잡화하면 ‘거짓 군자’의 문제뿐 아니라, ‘사덕’ 자체의 다양화 문제도 떠오르기 마련이다. 즉 누군가가 위선에 의해 이익을 얻으려 하는 문제보다도, 각각의 사람들이 각각의 상황에서 가령 진지하게 선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사회 전체적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오직 한 마음으로 율의(律儀)(3)를 지켜 문 밖의 일(세간의 동향)을 모른 채, 심지어 자신을 죽이더라도 결코 세상에서 도움 되는 일이 없는 자가 있다. 그런 자는 어찌해도 총명한 행동을 찾아보기 어렵고, 사물의 관계를 잘못 보아, 대소경중을 구분하지 못하고, 덕을 닦는 일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문명론 개략』121항)

 

후쿠자와에 의하면 문명의 진보란 사회관계가 복잡화하여, 사람들이 존중하는 가치가 다양화하는 것이다. 권력이 교육을 통해 하나의 가치를 고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차제에 문명이 진보하면 인사(人事)(=사회관계) 또한 번다해져서 사덕이라는 하나의 기계(器械)를 써서 인간세계를 지배한다는 이치가 이제 통용되지 않는다. [역자 삽입: 사덕으로 인간세계를 지배하려 하면] 사람들이 고래의 관습과 나태의 성질에 머무르고, 단지 옛것을 사모해 현상에 안주하며, 한쪽에 쏠려 평균을 잃게 된다. (‘평균’이란 후쿠자와가 선호한 표현으로, 기존의 권위나 정해진 사실에 집착하지 않고, 다양성을 목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balance의 번역어에서 유래한다.) (『문명론 개략』 124항)

또 문제인 것은, 어떤 사람이 선이라고 여기는 가치가 반드시 다른 사람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어긋남이 위선이나 과오에 의해 생겨난다고만은 할 수 없다. 오히려 개개인이 성실하게 자신이 존중하는 가치를 추구하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과 마찰을 일으키게 한다든지, 사회 전체에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든지 하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incommensurability(공약불가능성. 과학사가 Thomas Kuhn의 용어)의 문제다.

물론 사덕의 조목(條目)은 만세에 걸쳐 불변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통용될 때 다름이 없고 무엇보다 단일하고 무엇보다 아름답기 때문에, 후세에서도 이를 개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세상의 연혁에 따라 이를 적용해야 할 경우와 적용할 방법을 공부[역자주 : 일본어에서 공부(工夫)는 궁리라는 뜻도 가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먹을 것을 구하는 일은 만고불변이라고 하겠지만, 예전에는 직접 자기 손으로 구하는 단 하나의 방법 밖에 없었던 반면 후세에 이르면 음식을 구하는 일에도 천 가지 종류, 만 가지 다양한 방법이 있는 것과 같다. (『문명론 개략』 124항)

문명의 인사는 실로 번다해지지 않을 수가 없어서, 사회관계가 번다해지면, 이에 따라 마음의 활동 역시 번다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문명론 개략』 125항)

‘인사’라는 말은 『맹자』 고자편 상에 ‘人事之不斉’이라는 용례가 있다. 『맹자』에는 사람의 작업이 일정하지 않은 경우를 보리의 잘 되고 못 됨이 있을 수 있다는 비유로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원래 보리나 사람이나 보살피는 손길이나 환경에 의해 차이가 생길 뿐, 같은 성질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인간의 선함에 본질적인 차이란 없다(예를 들면, 일반인도 성인도 얼굴 생김은 기본적으로 같다.)라고 하는 의미이다. 후쿠자와는 거꾸로 ‘인사의 번다함’이라고 하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인사’의 잘 되고 못 되는 차이가 우열을 낳는 원인이라 하지 않고, 그것을 문명의 조건으로 보아 적극적으로 긍정하였다. 즉 다양성(‘천종만양千種萬樣’)을 긍정하였다.

따라서 사람의 마음이 선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문명에 유해하다. 그렇다면 도덕 문제는 방치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결국 사람 마음의 선하고 악함은 사람들의 공부에 있으므로, 옆에서 자유자재로 부여하거나 빼앗을 것이 아니다. 교육이 미치지 못했던 고대의 인민 가운데에도 선인이 있고, 지력이 미숙한 어린 아이들 가운데에도 정직한 자가 많은 것을 보면, 인간의 성품은 대체로 선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도덕 교육의 목적은 그 선의 발생을 방해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가족 친구의 사이에 선의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천성에 없는 것을 옆에서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그 선한 마음을 막는 것을 제거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어, 본인의 공부를 가지고 자기 본래의 선에 돌아가게 할 뿐이다. 고로 덕의는 인간의 힘으로 교육하여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 배우는 본인의 공부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이다. (『문명론 개략』 146항)

여기서도 곧잘 맹자가 인용되고 있다. ‘가족 친구 간의 선의 책임을 묻는다.’라는 표현은 『맹자』 이루장구하편, 「夫章子、子父責善而不相遇也、責善朋友之道也、父子責善、賊恩之大者」에서 유래했다. 제(齊)나라의 광장이라는 자가 아버지로부터 선을 행하라는 채근을 받은 후, 사이가 틀어져 서로 만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불효라고 해야 하는지, 묻는 장이다. 맹자는 ‘책선(責善)[역자주: 선을 채근함]’은 친구 사이에서는 좋지만, 부자간에서는 은애(恩愛)를 훼손할 뿐 아니라, 옳지 않다고 한다. 상대와의 관계에 따라 ‘책선’이 옳은 행동이 될 수도 있고 아니게 될 수도 있다. 다만 맹자는 자기의 과오를 후회하고 있는 광장을 결국엔 나름 평가했다. 후쿠자와는 이에 대해 애초에 상대가 가족이든지 친구이든지 상관없이 ‘책선’은 당사자의 ‘공부’를 촉구하는 것 말고는 효과도 의의도 없다고 한다. ‘공부’는 정주학(程朱學)의 용어이다. 자기의 내면을 발견해 그 덕성을 닦는 것이다. 또 주희는 『맹자집주』에서 맹자가 광장의 사정을 참작하여 동정적인 판단을 한 점을 긍정했다.

의외로 후쿠자와의 도덕론의 결론은 인간의 도덕적 향상이 그 사람의 내면적인 노력 밖에는 없다고 보는 점에서 주자학의 공부론과 닮았다. 다만 후쿠자와는 사람들의 사회활동과 관계가 다양화함으로써 개인이 품은 가치도 다원화하고, 각각이 존중받아, 사람들의 다양한 능력이 발휘되는 것이 문명화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덕의가 문명의 나아감에 따라 권력을 잃는다고 하지만, 그것이 이 세상에서 덕의의 분량이 감소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문명이 진보함에 따라 지혜도 덕도 함께 늘어나며, ‘사(私)’를 확대하여 ‘공’이라 하며, 세간 일반에 (개인의 지혜, 개인의 덕이 아니라), 공공의 지혜, 공공의 덕이 미치는 곳을 확대하여, 태평의 세계로 향하고, 태평의 기술은 하루하루 진보하며, 쟁투의 일은 매월 잦아들어, 그것이 극도에 이르렀을 때는 토지를 다투는 자도 없고 재산을 탐하는 자도 없어질 것이다.  …길에 떨어진 것을 줍는 자가 없어졌기 때문에, 나졸(메이지 시대 초기의 경관)은 단지 떨어진 것을 주워, 본래 주인을 찾아 돌아다니게 된다. (『문명론 개략』 176-177항)

‘길에 떨어진 것을 줍는 자가 없어진다.’라는 것은 『여씨춘추』, 『회남자』, 『사기』 등에서 나오는 ‘도불습유(道不拾遺)’에서 유래한다. 사실 ‘도불습유’의 의미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이성적인 치세에 사람들은 길에 떨어져 있는 것을 줍지 않는다는 의미와, 또 하나는 너무나 처벌이 엄격하여 사람들이 길에 떨어져 있는 것을 줍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여씨춘추』, 『회남자』에서는 선정(善政)이 행해져 사람들이 만족한다는 문맥에서 쓰였다. 마찬가지로 『사기』에서도 공자가 노나라에 귀국하여 정치에 참여하게 되자, ‘門不夜關, 道不拾遺’(밤에도 문을 닫아걸지 않고, 길에 떨어진 것을 줍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는 용례가 있다. (「공자세가(孔子世家)」) 후쿠자와는 이를 인용했을 것이다. 다만 『사기』에는 중앙의 책임있는 관리가 지방호족을 엄하게 탄압해 그 결과 ‘도불습유’가 없어졌다는 기술과 (「혹리열전(酷吏列傳)」) 진나라에서 엄하게 법에 의거해 단속한 상앙商鞅의 무서움 때문에 ‘도불습유’가 되었다는 기술이 있다. (「상군열전(商君列傳)」)

후쿠자와가 ‘도불습유’의 의미를 「상군열전」이 아니라 「공자세가」의 용례에서 찾는 이유는 『문명론 개략』이 주장하는 서양문명의 대담한 도입이 결국엔 도덕의 향상에 모순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크게 기여한다는 전망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또 ‘덕’의 강제는 위정자의 의도가 ‘인정’이라 하더라도 결국 『사기』의 상앙이나 가혹한 관리와 마찬가지로 공포와 맹종 밖에는 낳지 못한다. 이를 가지고 후쿠자와의 도덕 사상이 ‘유교적’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후쿠자와가 유교 고전에서 찾은 도덕 문제의 중요한 이론적 핵심을 한껏 근거로 삼아 그것을 자신의 문명론에서 장애나 잡음으로 본 것이 아니라 자기주장을 지지하는 중요한 도구로 삼았다는 것이 분명하다.

(1) 이하 『문명론 개략』(1875)으로부터의 인용은 松沢弘陽校注、福沢諭吉著 『文明論之概略』 岩波文庫、1995에 의거해, 그 항을 기록한다. 다만 인용문 가운데는 현대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수정한 부분이 있다. 인용문 내의 ( )는 필자에 의한 보충설명.

(2) ‘인민이 기풍에 따른다.’라는 표현은 『論語』顔淵篇「君子之徳風也、小人之徳草也、草上之風必偃」에서 나왔다. 그리고 ‘방심(放心)’은 『孟子』 告子章句上 「孟子曰、仁人心也、義人路也、舎其路而弗由、放其心而不知求、哀哉、人有鶏犬放、則知求之、有放心而不知求、學問之道無他、求其放心而已矣」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