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조차 맑아진다. 그 맑음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아이는 구함도 욕망도 없으며, 사물들을 해치지도 않는다.” <노자>의 주석가로 이름 높은 왕필(王弼)은 “그래서 독벌레도 아이를 물지 않는다.”고 한다. 

노자는 무릇 성인(聖人)이란 온 백성을 갓난아이로 만들 줄 아는 이라고 하였다. 성현의 학문을 익히고 매일 같이 배운 것을 행해야 했던 유가들, 그들이 보기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발언이었다. 그러나 노자는 꿋꿋했다. 가슴에 품은 덕이 도타운 자는 갓난아이와도 같은 자이니, 이런 사람만이 천하와 한 데 어울려 그 마음을 섞을 수 있는 자라. 모름지기 이러할 수 있는 자만이 성인이라고 누차 단언한다. 

실로 파격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근대 이후 ‘어린이’의 가치가 재평가되어 어린이의 양육이 국가적 의무가 된 지금, 온 국민을 어린아이처럼 만든다는 것은 우민정치의 극치와 다름없다. 어린아이는 잘 가르치고 인도할 대상이지, 결코 성숙한 시민의 목표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순자(荀子) 역시 마찬가지였다. 공자 이래로 유가의 주류적 인성론인 성악설(性惡說)을 이론화했다는 그. 따라서 그는 무엇보다도 교육을 중시했다. 인간은 타고난 본성 탓에 악해질 수 있지만 그건 ‘절대악’이 아니므로, 적절한 교육과 훈도를 통해 너끈히 교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름 하여 ‘문치교화(文治敎化)’! 성인은 바로 이 “문화의 힘으로 백성을 다스려 그들을 온전히 교화하는” 일에 기틀을 다진 이라고 했다. 그는 그저 갓난아이의 마음을 회복한 자가 아니라, 엄격한 학업과 고도의 수련을 통해 천명 곧 자연의 섭리를 체득한 자였다.

하나는 타고난 천성 그대로를 유지한 아이, 또 하나는 연마를 통해 천명을 체득한 성인. 이 둘이 결과적으로 드러낸 경지는 공히 ‘자연을 닮은’ 경지이다. 물론 거기까지 도달하는 방식과 경로는 사뭇 다르다. 노자가 유가의 성인을 갓난아이로 비유한 것은 그저 수사 전략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는 소리다. 정녕 그는 갓난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성인이 될 수 없다고 믿었다. 그의 눈에 비친 아이는 뭔가를 희구하느라 만물의 근원에서 벗어나지도 않으며, 욕심 때문에 참됨을 더럽히지도 않는다. 아이는 오직 부드러움의 극치 그 자체일 따름이다. 하루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 아이, 그들은 온 힘을 다 기울여 오히려 부드러움에 도달하는 존재이다. 

노자의 성인은 바로 그 부드러움으로 들어가 만물을 껴안는 존재이다. 그는 만물과의 다툼 없이 만물로 스며든다. 공자조차도 “예순이면 귀에 거슬리는 것이 없다[耳順]”고 하지 않았는가? 거슬림 없이 스며들어 자기를 발현하는 경지. 부드러움은 그렇게 견고한 만물에 스며들어 안으로부터 물길을 낸다. 

노자는 말한다. 세상에 물보다 더 부드럽고 연약한 것은 없다고. 그래서 물은 아래로만 흐른다. 아래로 흘러 모두가 싫어하는 곳에 머물며 어떤 욕됨도 감내한다. 영화로움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있음이다. 산보다는 바다가 되고자 함이다. 그는 바다의 힘을 잘 안다. 그것은, 그게 무엇이든 간에 흘러든 바를 결코 내치지 않는다. 산이 내뱉고 뭍이 버린 것을 그저 묵묵히 받아들일 따름이다. 그러나 그 ‘포용’의 침묵 아래서 만물은 변이된다. 받아들이고 품어서 변이를 일으키는 바다.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사실 말이지 인간은 탁류이다. 이 탁류를 받아들여 깨끗이 해줄 수 있는 것은 바다일 것이다. …… 그렇다. 내가 당신들더러 초인이 되라고 하였는데, 그것이 곧 바다이다. 거기에서는 당신들의 어떤 큰 모독도 용납될 것이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아무리 심한 욕을 해도 요동치 않는다. 바다는 이렇게 다투지 않고 늘 이기는 길을 택한다. 그래서 공자도 물을 좋아하는 이는 지혜로운 자라 했다. 부드러움으로 굳셈을 이기고, 연약함으로 강함을 이기는 지혜. 아래로 흐르고 밑으로 젖어들어 오히려 상대를 변이시키는 지혜. 이는 맞부딪쳐 승리를 쟁취하고, 완력을 가해 상대를 변화시키는 일보다 더한 기쁨을 안겨준다. 하여 공자도 단언한다. 물을 좋아하는 이, 그는 즐거운 자일 게라고. 

노자에게 예를 물어보았다는 공자. 그 경로와 방식은 달라도 노자와 공자가 바라본 물은 동일한 속성을 지닌 존재였다. 다만 공자는 산에 서서 물을 내려 보았고, 노자는 물에서 산을 올려 보았을 따름이었다. 하여 노자 보기에, 거기에 늘 그렇게 서 있는 산조차도 아래로 내달려 물의 본향, 바다로 빠져든다. 바다는 만물이 도달하는 종착점이다. 동시에 늘 새로운 시발점이 되는 ‘천지의 뿌리’이다. 바다의 신[谷神]은 멈춘 듯 움직이며 만물을 낳아주고 길러준다. 그러나 그 공로를 주장하지도 않고 자랑하지도 않으며 차지하려고도 않는다. 바다에게 그 모든 것은 그저 놀이일 따름이다. 한바탕 재미나고 신나게 놀았을 뿐, 애초부터 뭔가를 만들자는 희구가, 뭔가를 차지하자는 욕심이 도무지 개입되지 않는 유쾌한 놀이이다. “어린아이는 순진무구한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이며, 하나의 놀이이고,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이다.”(니체, 위의 책에서) 본인에게는 놀이였으나 타인에게는 생성이 되는 배치, 부드러운 속성 따라 만물에 스며들어 흘렀을 따름인데 오가는 이에게는 길이 되는 배치, “암수의 교합을 모름에도 곧추서는 고추”(<노자․55장>)를 지닌 어린아이, 그 ‘무위(無爲)의 생산력’! 

노자의 성인과 니체의 초인, 그리고 어린아이는 이렇게 셋이면서 하나이다. 그는 천하의 골짝이 되고 바다가 되어 뭇 산마저 장쾌하게 포용한다. 산에는 원래 길이 없었다. 물이 그렇게 흐른 자취를, 짐승이 따르고 사람이 따라 길이 된다. 산은 그 길을 따라 바다로 가서 섬이 된다. 그리고 ‘놀이하는 인간(homo ludens)’은 그 길을 밟으며 물이 된다. 

❍ 성인은 고정된 마음을 지니지 않은 채 백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다. 선한 것은 나도 선하다 여기고 선하지 않은 것도 나는 선하다 여겨 선함을 얻는다. 미더운 것은 나도 미더워하고 미덥지 못한 것도 나는 미더워하여 미더움을 얻다. 성인은 세상에 거처함에 한 몸처럼 세상과 그 마음을 한 덩어리로 하나니, 성인은 그렇게 세상을 모두 어린아이로 만든다.(聖人無常心, 以百姓心爲心. 善者吾善之, 不善者吾亦善之, 德善, 信者吾信之, 不信者吾亦信之, 德信. 聖人在天下, 歙歙爲天下渾其心, 聖人皆孩之.) - <도덕경(道德經)> 49장.

❍ 남성성을 알고 여성성을 지키면 세상의 시내가 된다. 세상의 시내가 되면 변화하지 않는 참된 덕에서 벗어나지 않게 되어 어린 아이로 돌아가게 된다. 하얌을 알고 검음을 지키면 세상의 기준이 된다. 세상의 기준이 되면 변화하지 않는 참된 덕과 어긋나지 않게 되어 무극으로 돌아가게 된다. 영화로움을 알고 욕됨을 지키면 세상의 골짜기가 된다. 세상의 골짜기가 되면 변화하지 않는 참된 덕이 풍족하게 갖추어져 질박함으로 돌아가게 된다.(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爲天下谿, 常德不離, 復歸於嬰兒. 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 爲天下式, 常德不忒, 復歸於無極.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樸散則爲器.) - <도덕경(道德經)> 28장.

❍ 강과 바다가 세상 모든 계곡 물의 왕자가 되는 까닭은 밑에 처하길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성을 위에 두고 반드시 말로 자신을 낮추고자 하며, 백성을 앞세우고 자신을 뒤에 두고자 한다. 하여 성인이 위에 처해도 백성은 이를 짐스러워하지 않으며, 앞에 처해도 백성은 이를 해롭게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온 천하가 즐거이 지지하며 실증내지 않으며 그와 다투지 않으니, 천하에 그와 다툴 수 있는 자가 없게 된다.(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 以其善下之, 故能爲百谷王. 是以欲上民, 必以言下之, 欲先民, 必以身後之. 是以聖人處上而民不重, 處前而民不害. 是以天下樂推而不厭, 以其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 <도덕경(道德經)> 66장.

❍ 품은 덕이 도타운 자는 어린아이와 같아, 벌과 전갈, 독사, 뱀 등이 물지 않으며 맹수도 달려들지 않고 사나운 새도 쪼지 않는다. 근골이 약하고 부드러워도 손에 쥠은 견고하며, 암수의 교합을 모름에도 곧추서는 고추는 정기가 지순하기 때문이다. 종일토록 울부짖어도 목이 쉬지 않음은 조화가 지극하기 때문이다.(含德之厚, 比於赤子, 蜂蠆虺蛇不螫, 猛獸不據, 攫鳥不搏. 骨弱筋柔而握固, 未知牝牡之合而全作, 精之至也. 終日號而不嗄, 和之至也.) - <도덕경(道德經)> 55장.

❍ 휘면 온전해지고 굽으면 곧아진다. 패이면 채워지고 적어지면 얻게 되며 많아지면 미혹케 된다. 하여 성인은 참된 도 하나만을 품고 세상의 기준이 된다.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기에 밝아지며, 스스로를 옳다 하지 않기에 빛나게 된다. 스스로를 떠벌이지 않기에 공이 세워지고, 스스로를 자랑하기 않기에 머리가 되며, 오로지 다투지 않기에 세상엔 그와 다툴 수 있는 이가 없게 된다. 굽으면 온전해진다는 옛날의 말이 어찌 희언이었겠는가? 참되게 온전해지면 참된 도로 귀의하게 된다.(曲則全, 枉則直, 窪則盈, 幣則新, 少則得, 多則惑, 是以聖人抱一爲天下式. 不自見, 故明, 不自是, 故彰, 不自伐, 故有功, 不自矜, 故長. 夫唯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古之所謂曲則全者, 豈虛言哉, 誠全而歸之.) - <도덕경(道德經)> 22장.

❍ 공자가 말했다. “나는 열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서른에 섰다. 마흔에 미혹되지 아니하였으며 쉰에 천명을 알았다. 예순에는 도무지 귀에 거슬리는 게 없게 되었고 일흔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대로 해도 법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 <논어(論語)> ｢위정(爲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