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아직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던 시절의 이야기다. 중국에 ‘우공(愚公)’이란 노인이 있었다. 이름을 곧이곧대로 풀면 ‘어리석은 분’ 정도가 된다. 그의 집 앞엔 큼지막한 산이 두 채나 놓여 있었다. 하여 어딜 가든 빙 돌아서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하고 말았다. 가족회의가 소집됐다. 그리고…

다음날 우공과 그의 자손들은 저마다 삽 한 자루 씩 걸머지고 산 정상에 올랐다. 이름 하여 ‘이산(移山, 산 옮기기) 프로젝트’의 첫 삽이 떠지는 비장한 순간이었다. 한 삽 두 삽, 그들은 퍼낸 흙을 망태기에 나눠 짊어지고는 발해(渤海)의 끝으로 향했다. 멀고 먼 여정이었지만 산을 깎아낸 흙을 처리할 데는 바다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다에 흙을 쏟아 붓고 다시 산에 오르니 벌서 반년이 지나 있었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또 다시 흙을 망태기에 퍼 담기 시작했다. 이쯤이면 소문이 퍼지고도 남았을 터, 옆 마을의 ‘지수(智叟)’란 노인이 우공을 찾았다. 그는 산을 옮기는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설파했다. 요점인즉슨 한 망태기를 퍼 나르는 데에 반년씩이나 걸리니 죽기 전에 산 높이를 터럭만큼이라도 줄일 수 있겠냐는 얘기였다. 순간 우공의 얼굴에 측은한 표정이 감돌았다. 

지수는 아무런 대꾸도 못했다. ‘지혜로운 늙은 이’라는 뜻의 이름이 하얗게 바래는 순간이었다. 당황한 것은 지수만이 아니었다. 얘기를 엿듣고 있었던 두 산의 신령과 발해의 신도 애가 탔다. 지체 없이 최고신 상제(上帝)에게 달려가 언젠가는 닳아 없어지거나 메워지고 말 딱한 처지를 하소연했다. 이에 상제는 거인족인 과아씨를 시켜 두 산을 통짜로 한적한 데로 옮기게 했다. 여섯 달을 들여 골치 거리였던 산을 치운 우공, 별 다른 손실 없이 산과 바다를 지켜낸 신령들, 인간과 신 사이의 갈등을 일거에 해소한 상제 그 모두에게 이득인 그야말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깔끔하게 실현되었다. 

본질을 꿰뚫는 어리석음  

이상은『열자(列子)』에 나오는 ‘우공의 산 옮기기’ 이야기이다. 흔히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사자성어로 지칭되곤 하는데, 이 표현은 근자에 천 수백여 킬로미터에 물길을 내서, 그것도 두 군데에 걸쳐서 장강의 물을 황하 일대로 끌어온 ‘대국’ 중국의 저력과 연동돼 곧잘 운위되곤 한다. 

그런데 그런 쓸모가 있다고 해도 이야기 자체는 재미가 정말 없다. 대립구도도 그저 상투적이다. 윤똑똑이들이 어리숙한 이들에게 당하는 서사에 웃어주기엔 세상이 너무 패악하다. 그럼에도 이 ‘잉여’ 같은 이야기엔 뭔가 남다른 점이 담겨있다. 중국 정부가 장강의 물을 황하로 끌어오려 한다고 했을 때, 세상 사람들은 비아냥조로 우공이산을 운운했지만 현실은 그들의 말대로 되었고, 이젠 발해의 물을 신장 위구르로 끌어댈 것이라는 계획에 우공이산의 후예답다며 찬탄까지 한다. 왜 이렇게 됐을까? 

첫째, 상상력과 어리석음의 가없는 크기 때문이다. 우공의 상상력은 ‘지혜로운’ 지수조차 매몰돼 있던 시공간상의 제약을 가뿐하게 뛰어넘는다. 큰 산도 한 삽 한 삽 떠내면 평평케 할 수 있다는 단순함과 자자손손 그 일을 끊임없이 해간다는 어리석음 아래, 우공은 자신의 죽음을 넘어 먼 미래마저 자신의 ‘현재적 실존’으로 끌어들인다. 그래서 여섯 달이나 걸리는 공간적 이동 역시 늙디 늙은 그에게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자손 대대로 이어질 영겁의 시간 속에 왕복 6개월이란 시공간은 애초부터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 크디큰 어리석음 속에, ‘지혜로운’ 이들은 절대 품지도 또 실행치도 못했을 상상이 급기야 현실이 된다. 

둘째는 어리석음의 힘이다. 우공의 어리석은 논리 앞에서 지수의 지혜로움은 아무런 힘도 못쓴 채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지혜로움에 대한 어리석음의 한판승! 순간 어리석지 않기에 지혜롭고, 지혜롭지 않기에 어리석다는 당연한 설정도 함께 무너졌다. 어디까지가 지혜이며 또 무엇까지가 어리석음일까? 지혜가 3차원적 시공간을 초월하지 못하는 인간 조건 안에서의 지혜일뿐이라면 그것의 한계는 자못 분명하지 않은가? 이렇게 치부가 드러난 지수의 지혜는 우공의 우둔함 앞에 그저 왜소해진다. 게다가 지수도 못 본 본질을 꿰뚫은 어리석음에 신령과 조물주가 움직였고, 결과적으로 우공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은 채로 산을 옮기는 데에 성공한다. 관련 당사자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이른바 ‘윈-윈’을 이끌어낸 원동력, 그건 다름 아닌 우공의 ‘남다른’ 어리석음이었다. 

셋째는 상상이 현실이 되기 위한 조건의 쟁취이다. 우공의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과정에선 무소불위의 존재인 조물주의 도움이 있었다. 우공이산이 황당한 이야기로 읽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신은, 인간이 못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조력자’ 정도로 설정될 수도 있다. 그러면 이 이야기는, 조력자의 적절한 도움이 자신의 일을 꾸준히 해가는 이와 만나게 되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조차 너끈히 실현할 수 있다는 얘기로 읽힐 수 있게 된다. 이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하면 된다’식의 저급한 태도를 말함이 아니다. 또한 단순히 해석의 유희를 즐기자는 것도 아니다. 현재 우공의 후예들은 첨단 기술과 장비의 도움 아래 장강의 물을 황하로 끌어들이는 대역사를 벌였고, 발해의 물을 수천 킬로미터 서쪽의 신강으로 끌어들일 태세이다. 과학문명의 이기란 조력자 덕분에 21세기 중국의 우공들은 또 다시 황당한 상상을 현실로 바꾸고 있다. 결국 조력자가 생기면 상상은 현실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상상이 없으면 아무리 강력한 조력자가 있어도 어떤 것도 일궈내지 못한다. 

상상은 단지 망상이 아니다. 아니 상상을 망상에 가둬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선 남다른 어리석음, 곧 큰 어리석음을 품을 필요가 있다. “최상승의 논리는 아무런 논리도 없는 것과 같다(大辯若訥)”는 노자(老子)의 말처럼, 이미 ‘어리석다-지혜롭다’ 식의 이분법을 넘어섰기에 오히려 어리석어 보이지만 그 앞에 서면 그 어떤 논리도 오금을 펴지 못하는 ‘큰 어리석음’의 경지. 인간의 한계를 넘나드는 상상력의 원천. ‘빛의 속도’로 지구 반대쪽조차 순식간에 연결된다는 유비쿼터스의 시대, 잰 걸음보단 우둔한 몸짓으로 일상을 채우고픈 까닭이 여기에 있다.  

❍ 태형산과 왕옥산은 넓이가 칠백 리에 높이는 만 길이나 된다. 본래 기주의 남쪽과 하양의 북쪽 사이에 있었다. 북쪽 산에 사는 우공은 아흔 가까운 나이인데 거처가 산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지라 산 북쪽에 막혀 빙 돌아 출입해야 했다. 하루는 그가 집안사람들을 불러 모아 상의하였다. “나와 너희들이 힘을 다해 험한 산을 평평하게 깎아, 예주의 남쪽으로 통하고 한수의 북쪽으로 다다르게 함이 어떠하냐?” 모두가 그러자고 했다. 다만 그의 처가 의문을 표했다. “당신의 힘으로는 괴보라는 구릉조차 줄일 수 없는데 태행산이나 왕옥산을 어찌하실 수 있겠습니까? 또한 깎아낸 돌과 흙은 어디에 버리시렵니까?” 여러 사람들이 말했다. “발해의 끝머리인 은토의 북쪽에 버리면 됩니다.” 마침내 그는 자손들과 짐질 인부 셋을 거느리고서 돌을 깨고 흙을 판 후 삼태기에 담아 발해의 끝머리 쪽으로 날랐다. 이웃 경성 씨의 과부에겐 유복자가 있었는데 겨우 이를 갈기 시작한 나이였지만 달려가 일을 돕게 했다. 그들은 추위가 더운 시절로 바뀌었을 때 비로소 한 번 되돌아왔다. 하곡의 지수가 이를 보고는 웃으면서 말렸다. “너무도 심합니다. 노쇠한 연배의 체력으로는 산의 터럭 하나도 훼손할 수 없거늘 산의 흙과 돌을 어떻게 하시겠다는 겁니까?” 북산의 우공은 길게 탄식하면서 말했다. “그대는 마음이 참으로 좁고 융통성이 없으시군요. 그대 말처럼 나는 곧 죽게 될 것이요. 그러나 자식은 남아 있소. 내 자식은 손자를 낳을 것이고, 손자는 또 자식을 낳을 것입니다. 그렇게 그 자식도 또 자식을 낳고, 그 자식 역시 또 손자를 낳아 자자손손 영원히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산은 더 이상 높아지지 않을 터, 어찌하여 평평하게 만들 수 없다고 하십니까?” 하곡의 지수는 대꾸할 수가 없었다. 산을 관장하는 신이 그 얘기를 듣고서 우공이 그만두지 않을까 하여 두려워지자 최고신 상제께 이를 고하였다. 상제는 우공의 정성에 감동하여 거인족 과아 씨네 두 아들에게 명하여 두 산을 지다가 하나는 삭동에 놓고 하나는 옹남에 놓게 하였다. 이로부터 기주의 남쪽과 한수의 북쪽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太形王屋二山, 方七百里, 高萬仞. 本在冀州之南, 河陽之北. 北山愚公者, 年且九十, 面山而居, 懲山北之塞, 出入之迂也. 聚室而謀曰, “吾與汝畢力平險, 指通豫南, 達于漢陰, 可乎.” 雜然相許. 其妻獻疑曰, “以君之力, 曾不能損魁父之丘, 如太形王屋何. 且焉置土石.” 雜曰, “投諸渤海之尾, 隱土之北.” 遂率子孫荷擔者三夫, 叩石墾壤, 箕畚運於渤海之尾. 隣人京城氏之孀妻, 有遺男, 始齔, 跳往助之. 寒署易節, 始一反焉. 河曲智搜笑而止之曰, “甚矣. 汝之不惠, 以殘年餘力, 曾不能毁山之一毛, 其如土石何.” 北山愚公長息曰, “汝心之固, 固不可徹, 曾不若孀妻弱子. 雖我之死, 有子存焉. 子又生孫, 孫又生子. 子又有子, 子又有孫. 子子孫孫, 無窮櫃也. 而山不可增, 何苦而不平.” 河曲智嫂亡以應. 操蛇之神聞之, 懼其不已也, 告之於帝. 帝感其誠, 命夸蛾氏二子負二山, 一厝朔東 一厝雍南. 自此, 冀之南, 漢之陰, 無隴斷焉.) - <열자(列子)> ｢탕문(湯問)｣ 

이 글은 <사과나무> 2008년 1월호에 게재한 것을 수정한 것입니다. 이 저술에 대한 저작권은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도란도란] Aporia Review of Books, Vol.3, No.4, 2015년 4월,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