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에도 품격이 있다?! 공자는 낮잠을 즐기던 제자 재여에게 “넌 똥 같은 존재야!”며 호되게 몰아붙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자가 바라본 낮잠일 뿐, 낮잠도 그것을 통해 무엇을 얻느냐에 따라 ‘고품격’이 될 수 있다. 

장자의 낮잠을 보자. 어느 날 잠깐 든 낮잠에서 그는 나비가 되어 흐드러진 봄꽃 사이를 너울너울 흥겹게 날아다니는 꿈을 꾼다. 그러다 문득 깨어난 그, 대개의 사람은 거 참 기꺼웠다며 한 판 기지개에 훌훌 망각했을 꿈이건만 역시 장자였다. 쓸모없다는 낮잠을 자고 나서는 지성사에 길이 남을 묘한 물음을 던졌다. “혹시 나비인 내가 지금 사람이 된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물론 장자의 물음은 말장난에 불과할 수도 있다. 향유는 고사하고 생활 자체가 팍팍한 일상에서 “사람인 내가 꿈속서 나비가 된 걸까 아니면 나비인 내가 꿈속서 사람이 된 걸까?” 식의 되물음은 사실 망상에 가깝다. 그리고 저명인사가 잔 낮잠이라 하여 높이 평가되는 것은 아닌 법, 누가 잔들 낮잠은 그저 낮잠일 따름이다. 그럼에도 장자의 낮잠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후했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낮잠의 뒤끝에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 통념의 전복을 촉구하는 묵직한 물음을 던졌기 때문이었다. 그 물음 하나로 게으름의 표상에 불과했던 낮잠이 순식간에 인류의 소중한 지적 자산으로 탈바꿈되었다. 훗날 나비의 꿈이라는 뜻의 ‘호접몽(蝴蝶夢)’이라는 이름까지 부여 받은 장자의 낮잠, 여기에는 옳음과 그름, 착함과 악함, 좋음과 싫음 등과 같은 모든 인위적 대립은 물론 ‘남 대 나’, ‘사람 대 동물’, ‘생물 대 무생물’ 같은 존재에 대한 구분 자체를 극복하고자 했던 그의 지향이 오롯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장가가 보기에 낮잠은 그 자체로 그에겐 유용한 것도 또 무용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앞뒤에 무엇이 놓이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매순간 다르게 구성되는 것일 따름이었다. 재여는 낮잠의 앞뒤에 아무 것도 놓지 않았지만 장자는 자신의 낮잠 뒤에 나비인 자신이 사람 꿈을 꾸고 있을 수도 있다는 물음을 놓았다. 그 결과 재여는 공자의 호된 꾸지람을 불러 왔고 장자는 역사의 후한 평가를 불러 왔다. 장자의 낮잠 뒤에 연이어 배치된 ‘나비의 낮잠’이, 한낱 낮잠일 뿐인 낮잠에 아연 헤아리기 벅찬 깊이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장자뿐만이 아니었다. 꽤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꿈을 여러 모로 활용했다. 옛적 은(殷)나라의 임금이었던 무정(武丁, ?～1192? BC)은 꿈속에서 보았다며 죄수 무리에 섞여 길을 닦고 있던 부열(傅說)이란 이를 재상으로 발탁, 그의 도움 아래 은나라 최고의 중흥기를 구가했다. 당시는 제정일치 사회였던지라 사람들은 꿈을 하늘의 계시로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따라서 꿈속에서 본 이라면 이는 하늘이 점지한 인물이니, 설령 출신 성분이 노예급이라고 할지라도 그를 능히 등용할 수 있었음이다. 곧 꿈이 최하층 출신을 일거에 고위직으로 발탁하는 방편이 된 셈이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어 지성이 사뭇 진화됐던 제자백가의 시대에도 꿈은 여전히 중요한 대목에서 중용되었다. 제자백가의 저술 가운데에는 󰡔열자(列子)󰡕란 책이 있다. 장자처럼 도가 계열에 속하는 텍스트로 여기엔 ‘몽학(夢學)’ 그러니까 꿈에 대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꿈과 관련된 예화와 꿈에 대한 사유가 쏠쏠하게 담겨 있다. 이를테면 꿈을 꾸게 되는 원인에 대한 논변이라든지 꿈의 종류에 대한 분류와 해설, 꿈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통찰 등이 서술되어 있으며, 꿈을 제재로 삼은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제법 실려 있다. 그중에는 황제黃帝 그러니까 지금 한족漢族의 시조라고 주장되고 있는 신화적 인물의 낮잠 얘기도 들어 있다. 

그는 즉위한 후 30년 동안 천하 통치에 온 힘을 쏟아 부었다. 그 결과 바라던 대로 태평성대를 이룩하였지만 정작 자신은 갈수록 내상이 심해져 급기야 피부는 거멓게 변질되었고 오감이 마비되어 정신이 혼미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에 그는, 자신의 과욕이 너무 심했다고 탄식하며 일선에서 물러나 욕망을 줄이며 양생에 돌입했다. 그렇게 3개월쯤을 보내던 어느 날, 그는 낮잠에 젖어들었다. 그러곤 화서씨(華胥氏)의 나라 꿈을 꾸었다. 그곳에는 통치자도 없었다. 사람들은 선호함이나 아낌과 같은 욕망이 없었고, 가족이라고 하여 특별히 여긴다거나 남이라고 하여 무관심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보니 배신이나 순종이란 게 없었고 사랑이나 증오 따위도 없었다. 게다가 살아 있다고 즐거워하지도 않았고 죽는다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래서인지 신기하게도 요절하는 이가 없었고 칼에 베어도 아파하지 않았고 물에 빠져도 죽지 않았다. 가만히 살펴보니 이 모두에는 그 어떠한 인위나 욕망도 전혀 개입되어 있지 않았다. 생성의 순간부터 본래 그러했던 것처럼 그저 저절로 그렇게 되고 있었다. 

그렇게 깨닫는 순간 문득 잠에서 깨어난 황제는 몇몇 중신을 불러 놓고는 꿈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고는 천하를 화서씨의 나라처럼 변모시켰다. 곧 황제도 장자처럼 낮잠 다음에 깨달음을 놓았던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장자는 깨달음을 자기 한 몸 차원에서 실현하고자 한 데 비해 황제는 이를 천하 차원에서 구현하여 태평성대를 일궈냈다는 점이었다. 

  

백일몽이니 일장춘몽이니 하며 경시되기 일쑤인 낮잠은 이처럼 누구에게는 우주의 섭리를 깨닫는 통로가 되고, 또 누구에게는 사회적 위계질서를 가로지르는 힘이 되며, 또 누군가에게는 치세(治世)를 일궈내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사람은 이렇게 쓸모없이 보이는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그 속이 깊어가는 존재이다. 그저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며 삶을 소모하는 존재만은 아니다. 곧 낮잠처럼 무용해 보이는 것에서도 의미를 창출하여 삶의 깊이를 더해갈 줄 아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다. 기계처럼 같은 일을 매일같이 반복할지라도, 사람은 기계와 달리 반복되는 작업에 의미를 부여하며 일상에 깊이를 더해갈 줄 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역사를 배우고자 하고 그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안다. 장자나 황제의 낮잠처럼, 거기에는 엷은 일상에 두터운 의미를 입혀준 사례와 방도가 넉넉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여 역사와 꾸준히 만나는 이들은 금전적 형편과 무관하게 일상이 풍요롭고 삶이 여유로울 수 있다. ‘빵’으로만 채워지지 않기에 그들의 일상은 다채로우며 ‘수數’로 환원될 수 없기에 그들의 삶은 자체로 소중하다. 

빵이나 숫자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거기에 역사가 더해졌을 때 어떤 삶이 가능한지에 대한 이야기다. 역사는, 반복되는 듯 늘 마주하는 일상이지만 그 속에서 삶에 의미에 더해줄 ‘장자-나비’ 같은 존재를 발견해낼 ‘눈’을 준다. 그리고 바로 그 ‘눈’으로 인해 ‘나’의 삶은 곧 역사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 재여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공자가 말했다.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똥이 섞인 흙으로 쌓은 담은 마름질할 수 없다. 재여를 무엇으로 책망할 수 있단 말인가?” 계속 말하였다. “애초에 나는 사람에 대해 그의 말을 듣고는 그의 행실을 믿었다. 허나 이제 나는 사람에 대해 그의 말을 듣고는 그의 행실을 지켜보게 되었다. 재여로 인해 이렇게 바뀐 것이다.”(宰予晝寢. 子曰, “朽木不可雕也, 糞土之牆不可杇也. 於予與何誅.” 子曰, “始吾於人也, 聽其言而信其行. 今吾於人也, 聽其言而觀其行. 於予與改是.”) -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

❍ 언제인가 장주는 나비가 된 꿈을 꾸었는데, 흥겹게 날아다니는 나비로서 절로 즐거워하며 마음에 흡족하여 자신이 장주임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깨어나 보니 틀림없는 장주였다. 다만 장주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음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속에서 장주가 되었음인지가 분간이 되질 않았다. 장주와 나비는 반드시 구분되는데 이를 사물화라고 한다.(昔者莊周夢爲胡蝶, 栩栩然胡蝶也, 自喩適志與, 不知周也. 俄然覺, 則蘧蘧然周也. 不知周之夢爲胡蝶, 胡蝶之夢爲周與. 周與胡蝶, 則必有分矣. 此之謂物化.) -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

❍ 무정은 즉위 후 은을 부흥시키려 하였지만 자신을 보좌해줄 이를 얻지 못했다. 그는 3년 동안 말을 하지 않고 정사는 총재(冢宰)가 총괄토록 한 후 나라의 풍속을 살폈다. 그러다 무정은 꿈속에서 성인을 얻었는데 이름이 열(說)이었다. 무정은 꿈에서 본 성인의 모습을 대신과 관리들과 대조해보았는데 모두 아니었다. 이에 백관들에게 민간에서 찾아보게 하여 부험(傅險)에서 열을 찾아냈다. 이때 열은 죄수의 신분으로 부험에서 길을 놓고 있었다. 무정에게 그를 보이니 무정은 “바로 이 사람이다.”고 하였다. 무정이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해보니 그는 과연 성인이었다. 이에 그를 재상으로 삼으니 은나라가 이에 크게 다스려졌다. 무정은 부험에서 성을 따와 그를 부열(傅說)이라고 불렀다.(帝武丁卽位, 思復興殷, 而未得其佐. 三年不言, 政事決定於冢宰, 以觀國風. 武丁夜夢得聖人, 名曰說. 以夢所見視群臣百吏, 皆非也. 於是迺使百工營求之野, 得說於傅險中. 是時說爲胥靡, 築於傅險. 見於武丁, 武丁曰是也. 得而與之語, 果聖人, 擧以爲相, 殷國大治. 故遂以傅險姓之, 號曰傅說.) - <사기(史記)> ｢은본기(殷本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