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에 대한 우리의 표상과 기존의 표상 사이에는 한 언어에 대한 체계적인 문법과 그 언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마주치게 될 것들에 가능한 한 빨리 익숙해지게 하려는 목적으로 고안한 문법이 맺는 관계와 어느 정도 유사한 관계가 성립한다. 그 두 가지 경우에서 각각의 요구 조건은 매우 상이하며, 만일 그들이 제각기 각자의 목적에 제대로 부합하고자 한다면, 각자의 내부적 배열은 상당히 달라야만 하는 것이다. (Hertz, The Principles of Mechanics, p.26. 앨런 재닉·스티브 툴민, 『빈, 비트겐슈타인, 그 세기말의 풍경』, 232쪽, 재인용) 

우리는 “힘”과 “전기”electricity라는 부호들에 그들 간에 완전하게 조정될 수 있는 이상의 많은 관계들을 축적했다. 즉 우리는 계몽을 요구하고, 힘과 전기의 본성에 관해 당혹스런 물음을 제기함으로써 우리의 당혹스런 바람을 표현한다는 모호한 느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물음은 그것이 기대하는 답과 관련해서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지식과 그 이상의 관계들과 연관성들을 통해서는 만족될 수 없고, 현존하는 것들 가운데 있는 모순contradiction들을 제거함으로써, 즉 현존하는 관계들의 수를 축소함으로써 만족될 수 있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모순들이 제거될 때, [힘과 전기의] 본성에 관한 물음은 대답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더 이상 그것에 휘둘리지 않겠기에 모순에 대한 불합리한(비논리적인) 물음을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Herz, The Principle of Mechanics, p.8, A. Nordmann, Wittgenstein’s  Tractatus, p.32 재인용)  

같은 해 린츠의 실업학교를 마치고 베를린의 샬로텐부르크 기술전문대학으로 진학해서 2년 과정을 마치고는 1908년 영국의 맨체스터 대학으로 가서 항공공학 연구에 몰두한다. 공학도였던  청년 비트겐슈타인은 당시 이론 물리학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바탕으로 논리학에 접근할 수 있었다. 여기서는 먼저 헤르츠의 물리학적 사고가 당시의 비트겐슈타인에게 향후 『논고』를 저술하는 데 직접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먼저 살피도록 하자. 그 이유는 뉴턴 역학이 없이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 나올 수 없었던 것처럼, 헤르츠의 『역학의 원리』가 없이 청년 비트겐슈타인의 『논고』는 나올 수가 없을 만큼 헤르츠의 영향력은 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명제에서는 그것이 묘사하는darstellen 상황에서 구별될 수 있는 바로 그 만큼이 구별될 수 있어야 한다. 그 양자는 동일한 논리적(수학적) 다양성Mannigfaltigkeit을 소유해야 한다. (동력학적 모델들에 관한 헤르츠의 역학 이론을 참조하라.” (『논고』, 4.04) 

전자기파의 존재를 실질적으로 입증한 물리학자로 잘 알려진 헤르츠 역시 볼츠만과 같은 생각에서 출발했다. 즉 그는 맥스웰 방정식과 같은 수학적인 공식이 물리학의 모든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골격을 제공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물리적인 실재에 논리적인 구조를 부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헤르츠의 물리 이론을 접근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림’이나 ‘상(象)’이라는 낱말에 해당되는 독일어 ‘Bild’에 대한 선이해가 필요하다. 청년 비트겐슈타인의 『논고』를 그림이론picture theory이라고 할 만큼, 비트겐슈타인에게 있어서 ‘그림’에 대한 이해는 아주 중요하다. 헤르츠의 동력학 모델을 따른nachbilden 비트겐슈타인의 그림 개념은 이후 헤르츠의 생각을 자연과학 전체, 철학 전체로 확대했다. 이를 위해서는 당시 실증주의적 물리학을 주장했던 마흐Ernst Mach1838~1916와 헤르츠를 비교하는 것이 유용하다. 여기서 마흐를 끌어대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과거 비트겐슈타인의 『논고』에 대한 오해와 오독의 원천은 바로 인식론적 경험주의 노선에서 물리학(자연과학)을 연구했던 마흐를 추종했던 1920년대의 비엔나 서클에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논고』에 대한 이러한 심각한 오해와 왜곡이 잘못되었음은 (이미 앞에서 소개했던) 툴민과 야니크의 『빈, 비트겐슈타인, 세기말의 풍경』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그들의 참신한 생각은 이후 비트겐슈타인 연구자들에게도 설득력 있게 수용되고 있다. 

마흐에게 있어서 물리 이론은 경험을 단순화하는 감각자료sense data의 기술description들이며, 물리 이론에 대해서는 그것이 더 유용하다거나 덜 유용하다고 말하는 것(과학의 경제성)이, 그것이 참 또는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다. 이런 맥락에서 수학의 기능은 그 자체가 지닌 조직화의 힘을 통해 감각기관이 지각한 것을 단순화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과학에서 형이상학적 요소들, 이를테면 뉴턴의 절대 공간과 시간 그리고 운동과 같은 개념은 불필요할 뿐이다. 이런 이유로 마흐는 칸트의 사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마흐의 생각은 ‘물(리)적’physical 상태가 ‘심적’mental 상태와 동일하다는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물리 이론에 있어서 마흐와 헤르츠가 갈라지는 주된 이유 중의 하나는 독일어 ‘Bild’와 보통 표상(表象)으로 번역되는 ‘Vorstellung’에 대한 커다란 견해 차이 때문이었다. 마흐는 헤르츠의 그림이라는 단어를 영국 경험론에서 말하는 관념idea으로, 표상을 감각적 용법으로 이해했다. 그렇지만 헤르츠에게 그림은 곧 수학적 모델의 이론이었으며, 그는 공적인 용법으로서의 표상, 즉 ‘묘사’에 해당되는 독일어 ‘Darstellungen’을 일관적으로 사용했다. 표상과 묘사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표상은 외부의 사물들이 인간 정신의 내부에 ‘그려져서’ 혹은 ‘재현’representation되었을 때를 말한다면, 묘사는 그것이 다시 외부 사물들에 ‘그려져서’ 재현되었을 때를 말한다. 후자는 언어를 포함하여 그림, 기호, 필름, 악보 등 다양한 수단에 의한 것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참고적으로 볼츠만은 외부세계에 대한 그림의 의미로 ‘모사하다’를 뜻하는 독일어 ‘abbilden’를 사용한다. 비트겐슈타인의 ‘그림’은 두 가지 모두의 의미로 사용된다. 이러한 헤르츠의 생각은 전기 비트겐슈타인은 물론 후기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수학적 명제가 어떤 언어 놀이에서는 기술Beschreibung을 하는 명제와 대조해서 묘사(서술)Darstellung에 대한 규칙Regel의 역할을 한다는 것은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다.”(비트겐슈타인, 『수학의 기초에 관한 고찰』, 박정일 옮김, V §5) 결론적으로 헤르츠와 비트겐슈타인에게서 나타나는 ‘그림’Bild이라는 용어는 ‘모델(모형)’model이라는 의미로 해석했을 때, 그들의 생각을 잘 이해할 수 있다.  

『논고』에서 ‘표상한다’는 밖에서 안으로, 즉 실재에서 생각, 혹은 그림이나 명제로의 방향의 뜻으로, ‘묘사한다’는 안에서 밖으로의 방향이라는 뜻을 갖는다. 실제로 『논고』에는 감각적 용법에서의 표상하다stellen vor 라는 동사형이 두 번 등장하고, 더불어 공적 용법에서의 표상하다stellen dar라는 동사는 그보다 훨씬 더 자주 나타나지만, Vorstellung이라는 명사 그 자체로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즉 헤르츠에게 있어서 공적인 용법으로서 표상, 즉 묘사는 표상이 그냥 발생하기만 하는 수동적인 의미가 아니라, 과학적 지식에 대한 앎을 위해 의식적으로 구성된 도식이다. 기존의 관습적인 표상 개념에 문제가 있음을 파악한 헤르츠는 자신만의 새로운 표상 개념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헤르츠 책의 전체 제목이 『새로운 형식으로 제시된 역학의 원리』The Principles of Mechanics Presented in a new Form라는 점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비록 과학자들의 결정들이 미래의 경험에 의해 뒤집어질 수도 있지만, 과학자들은 어떤 시간에서도 일치할 수 있는 그림들 혹은 표상들을 결정할 수 있는 특징이 되어야 한다. 즉 그림(모형)은 우리 외부의 경험과 일치할 때 그 그림(모형)은 옳다. 셋째, 적합성(Zweckmässigkeit)이다. 그것은 명료성과 단순성이라는 두 가지 특징을 포함한다. 명료성은 가능한 한 많은 대상의 본질적 관계들을 하나의 모형으로 그리는 능력이다. 단순성은 가능한 한 불필요한 혹은 공허한 관계들이 거의 없는, 즉 단순한 것이 더 적합하다. 이는 14세기 영국 논리학자이며 프란체스코회 수사였던 윌리엄 오캄Willam of Ockham이 제시한 ‘오캄의 면도날’Ockham’s razor로 잘 알려진 ‘사고절약의 원리’ 혹은 ‘경제성의 원리’로서 “쓸데없는 다수를 가정해서는 안 된다”와 “보다 적은 수의 논리로 설명이 가능한 경우, 많은 수의 논리를 세우지 말라”는 것을 통한다. 비트겐슈타인 역시 이러한 오캄의 격률[존재자들은 필요 없이 증가되어서는 안 된다(Entia non sunt multiplicanda practer necessitatem)]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다음의 글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모든 정의된 기호는 그것을 정의한 기호들을 거쳐서 가리킨다; 그리고 정의들은 그 길을 가르쳐준다. 원초 기호Urzeichnen와 원초 기호에 의해 정의된 기호, 이 두 기호는 동일한 방식으로 기호화bezeichnen할 수 없다. 이름들은 정의들에 의해서 분해될 수 없다. (단독으로, 자립적으로 어떤 하나의 의미를 가지는 어떤 기호도 그리 될 수 없다.) (『논고』, 3.261)

어떤 하나의 기호Zeichnen가 쓰이지 않는다면, 그 기호는 의미를 잃은 것이다. 이것이 오캄의 격률이 지니는 뜻이다. (만일 모든 사정이 어떤 하나의 기호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듯이 그렇게 되어 있다면, 그 기호는 의미를 가진다.) (『논고』, 3.328) 

오캄의 격률은 물론 자의적이거나 그 실천적 성과에 의해서 정당화된 규칙이 아니다: 오캄의 격률이 말하고 있는 것은 불필요한 기호 단위는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의 목적을 충족시키는 기호들은 논리적으로 동등하며, 아무런 목적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기호들은 논리적으로 의미를 잃은 것이다. (『논고』, 5.47321)    

이런 맥락에서 헤르츠는 기존의 뉴턴 물리학에서 제시하는 힘과 에너지 같은 개념들은 자립적인 근본 표상에서 제거되며, 보다 더 단순한 그림을 묘사하고자 한다. 즉 헤르츠에게는 시간, 공간, 질량이 근본 표상으로서 원초적 용어들primitive terms이 된다. 힘이나 에너지 같은 개념은 궁극적으로 원초적 개념들에 의해 정의(定義)된다. 과거 200여 년 동안 물리학자들과 철학자들은 힘이 실제로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했었다. 헤르츠가 비판적 방법을 적용한 것은 이들의 물음이 의미가 있는지 혹은 ‘힘’이 자의적으로 추가될 수 있거나 제거될 수 있는 그러한 요소들의 하나인지를 결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만일 그렇다면, ‘힘’은 “어떤 것을 실제로 가리키지 않고 단지 우리의 감각들의 한계를 넘어서 숨겨진 것들 중 하나이거나 헛도는 바퀴들idling wheels 중의 하나로서 실제 사실들을 제시해야 하는 곳에서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Hertz, The Priciples of Mechanics, pp.25. Nordmann, p.29, 재인용) 앞에서 인용한 힘과 전기에 대한 헤르츠의 글은 이런 맥락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다음 비트겐슈타인의 글들은 우리들에게 헤르츠의 역학과 그의 비유적 글쓰기에 상당한 영향력을 받았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특히 기계공학에서도 사용되는 ‘헛도는’leergehende, leerläuft이란 용어는 후기 비트겐슈타인에서도 나타난다.  

         

역학은 세계를 기술하는 모든 명제들이 주어진 개수의 명제들 –역학 공리들- 로부터 주어진 방식에 의해 얻어져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세계 기술의 형식을 확정한다. (『논고』, 6.341)

역학은 우리가 세계 기술을 위해 필요로 하는 모든 참된 명제들을 단일한 계획에 따라 구성하려는 하나의 시도이다. (『논고』, 6.343)

헤르츠의 표현 방식으로 하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직 합법칙적gesetzmässige 연관들만이 생각가능하다. (『논고』, 6.361)       

그러니까 색의 경계선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도대체 이러한 정확성이 여기서 아직도 어떤 하나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은 헛돌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는 실로 무엇인 이 명확한 경계선을 넘어섬으로 간주되어야 할지, 어떻게, 어떤 도구들을 가지고 그것을 확정해야 할지 하는 따위들조차도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탐구』, §88)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혼란들(철학적 문제들)은 말하자면 언어가 일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헛돌고 있을 때 일어난다. (『탐구』, §132)

“나는 이것을 단지 말하기만 하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으로써 뭔가를 뜻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가 말을 (단지 말하기만 하지 않고) 뜻할 때 우리 내부에서 무엇이 일어나는가를 우리가 숙고할 때, 우리에게는 마치 그 경우 무엇인가가 이 말에 연결되어 있는 듯이 느껴진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말들은 헛돌기나 할 듯이. -마치 그것들은 말하자면 우리의 내부와 맞물려 있기나 한 듯이. (『탐구』, §507) 

아무튼 헤르츠는 고전 물리학을 다루었지만 그가 다룬 과학철학은 근대의 경계를 뛰어 넘은 현대적인 기반을 제공하였다. 그는 맥스웰을 통해 수학적인 공식이 물리학의 모든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골격을 제공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물리적인 실재physical reality에 논리적 구조logical structure를 부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헤르츠의 물리 이론에 관한 해석에 나타나는 칸트적 요소는 볼츠만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볼츠만은 ‘통계역학’을 창시한 과학자로서, 그의 이론은 20세기식 접근 방식뿐만 아니라 이론 물리학 전반을 대하는 현대적 태도의 기반을 이룬다. 특히 그의 분석 방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이론적 가능성의 공간’space of theoretical possibility이라는 개념은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논고』에서 아주 영향력 있게 다가왔으며, 이러한 생각은 (나중에 논의하게 될) 비트겐슈타인의 진리표truth table 방법과도 연관된다. 

논리적 공간 속의 사실들이 세계이다. Die Tatsachen im logischen Raum sind die Welt. (1.13)

우리는 우리에게 사실들의 그림들을 그린다. (2.1)

그림은 논리적 공간 속의 상황, 사태들의 존립과 비존립을 표상한다. (2.11)

명제는 논리적 공간 속의 한 장소를 결정한다. 이 논리적 장소의 존재는 구성성분들만의 존재에 의해서, 즉 뜻을 지닌 명제의 존재에 의해서 보증된다. (3.4)

명제 기호와 논리적 좌표logischen Koordinaten, 이것이 논리적 장소logische ort이다. (3.41)

기하학적 장소와 논리적 장소는 둘 다 어떤 한 존재의 가능성이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3.411)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비트겐슈타인] Aporia Review of Books, Vol.3, No.12, 2015년 12월, 박만엽, 서울시립대 교양교육부 강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