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제자들은 시샘이 많았던 듯하다. 행여 자신에게 해주지 않은 말씀을 다른 이에게 해줬을까, 그들은 늘 서로 견제하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아들인 공리(孔鯉)에게 한층 심오한 진리를 전하지 않았을까 싶어 떼 지어 몰려가 그를 몰아세우기도 했다. 

제자들이 이렇게 된 데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 공자는 사람의 품성과 재능을 파악하는 데에 남다른 안목이 있었다. 하여 제자를 교육할 때에도 그들의 성품과 능력을 감안하여 그들이 성취할 수 있는 목표를 주로 제시하였다. 같은 질문이라도 물어온 이에 따라 각기 다른 답을 주곤 했다. 이를테면 이러했다. 

하루는 자로(子路)가 공자에게 옳은 것을 들으면 바로 행해야 하냐고 여쭸다. 그는 행동이 앞서는, 그러니까 ‘선(先) 사고 후(後) 수습’형의 아이콘인 장비(張飛) 캐릭터의 원조 인물이었다. 이에 공자는 부모형제가 살아 계시는데 어찌 행동을 앞세우려 하냐며 만류했다. 그때도 지금만큼이나 옳음을 실천하는 데는 희생이 동반됐나 보다. 

잠시 후에는 염유란 제자가 들어와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공자는 정반대로 대답했다. 응당 그래야 하고 말고 하는 투로. 마침 공자 곁에는 이 광경을 다 보고 있던 제가가 있었다. 그는 이랬다저랬다 하는 스승의 태도를 점잖게 문제 삼았다. 그러자 공자는, 자로는 앞뒤 재지 않고 행동을 앞세우는 성격이어서 그리 답했던 것이고, 염유는 너무 이것저것 재는 성격인지라 반대로 답했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인류사상 최초(?)의 ‘눈높이 교육’이었던 셈이다. 성격이나 소양에 맞춰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케 함으로써, 저마다 어엿한 사회적 존재로 자립할 수 있게 해주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공자의 이런 교육 방식은 제자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경쟁을 야기하였다. 자신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던 제자들은 그만 스승이 차등을 두고 가르치는 줄로 오해하고 말았다. 그렇다보니 자신이 들은 가르침을 곱씹기보다는 다른 동학에게 뭐라 말씀하셨는지에 더 신경을 쓰곤 했다. 제자들은 서로 견주어보기에 바빴고 기회가 생기면 스승에게 누가 더 나은지를 여쭤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다산(茶山)은 18년이라는 긴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냈다. 그것도 인생의 한창 때라 할 수 있는 시절을 죄인의 신분으로 지냈다. 누가 봐도 그는 가진 것이 많다고 할 수 없는 초라한 이였다. 그는 궁벽한 향촌의 문화적 환경에 절망한 나머지 자녀에게는 반드시 한양에서 살라고 강권하기도 했다. 그러니 유배지에서의 삶이야 오죽했겠는가. 

그럼에도 그는 ‘지금-여기’를 말한다. 지금-여기는 지극히 존귀한 것이 존재하는 곳이요, 천하의 모든 아름다움과 선함이 극치를 이루는 곳이라고 상찬한다. 그의 눈으로 보자면, 사람들은 ‘이것’의 가치를 모른 채 ‘저것’만을 구하는 가련한 존재였다. 많이 지닌다고 하여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자꾸 자신에게 없는 바만 의식하며 그것을 희구한다는 것이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해준 말은 ‘그 순간 그 자리’에서는 천금 같은 진리일 수 있었다. 다만 그들은 다른 이가 들은 것을 신경 쓰느라 자신이 들은 바가 금과옥조임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공자는 그런 제자들에게 ‘시중(時中)’의 삶을 몸소 보여줬다. 말로 하는 가르침이 막히자 몸으로 가르쳤던 것이다. 시중이란 거칠게 말하자면 ‘시의 적절하다’는 뜻이다. 『예기(禮記)』 ｢중용(中庸)｣편에는, 군자의 중용은 곧 ‘시중하기’라는 말이 나온다. 그때그때 눈앞에 펼쳐지는 현장, 곧 지금-여기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 현장에서 가능한 최대치로 중용을 도모하고 구현하는 삶, 이것이 시중의 삶이다. 글자 그대로 현장에 충실한 삶이요, 그 속에서 ‘최적(最適)’을 도모하는 삶의 방식이다. 

이는 최선(最善)을 추구하는 삶과도, 또 현실 타협적인 삶과도 질적으로 구분된다. 최선을 추구하는 삶은 현장의 여건보다는 도덕적 가치 판단을 앞세운다. 현실 타협적 삶은 그럴 듯한 명분이나 실리 등을 들어 현장의 얽히고설킴을 가리고 비튼다. 시중의 삶은 그러한 삶과는 사뭇 다르다. 그것은 현장의 배치와 맥락에서 한 순간도 벗어나지 않은 채로 그 현장에서 최적의 상태를 추구한다. “불만은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지 않느냐”식의 임시 봉합적 타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것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하여 그를 중심으로 현장을 돌린다거나, 그에게 독점적 이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권력이나 재력, 완력 그리고 다른 무엇이든 간에 힘이 세다고 하여 그의 승자독식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단지 현장에 참여한 이들의 ‘윈-윈’을 도모할 따름이다. 또한 악을 용납하지는 않지만, 선이라고 하여 무조건 그것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최선이 ‘윈-윈’으로 이어지면 그것을 꾀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차선을 선택하여 최선의 추구보다는 ‘윈-윈’이 조금이라도 더 실현되도록 노력한다. 

그래서 시중은 기본적으로 ‘양적(陽的)’이다. 시중의 삶을 사는 이는 살아내고자 하는 기운을 잃지 않는다. 아무리 불만스런 현실이라도 그는 그것을 받아들일 줄 안다. 다산처럼 속절없이 추락한 상황도 도리어 자기 강화, 현실 개선의 계기로 삼는다는 것이다. 그래야 최선이란 도덕적 가치의 압박을 딛고, 또 어떤 권력의 개입이든 그것을 뚫어내며 현장에 참여한 이들의 ‘윈-윈’을 위해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산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다. 공자가 “어짊[仁]이 어디 저 멀리에 있던가? 어질고자 하는 순간 어짊과 함께 하게 된다.”고 한 것처럼, 예수가 하나님은 바로 네 안에 있다고 잘라 말한 것처럼, 부정적 처지를 더 나은 삶을 향한 계기로 전용하는 힘은 먼 곳에 있지 않다. 

그것 역시 저것에 있지 않고 이것, 곧 ‘지금-여기의 나’에게 있다는 뜻이다. ‘나’가 서 있는 자리를 깎아냄도 넘쳐남도 없이 바라보는 순간, ‘나’에게도 그런 힘이 생기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미 지닌 것을 무시하지 않을 때, 그 힘은 탄력을 받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나 결여에 사로잡히지 않고 ‘나’를 긍정할 수 있게 된다. 공자의 표현을 빌자면 ‘서 있는[立]’ 사람이 된다. 하여 난관에 봉착해도 문제적 상황을 나름 해결해가는 동력을 지니게 된다. 없는 것을 갈망할 시간에, 있는 것으로 최적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배치와 결합의 방식을 모색하면 된다. 

물론 우리네 자본주의 문명은 우리를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에게 ‘소유’에 집착하는 삶의 방식을 강요한다. 능력도 감성도 심지어 행복마저 가진 것에 따라 평가된다. 한술 더 떠 누군가가 ‘무소유’의 삶을 살라치면 그를 내버려두지도 않는다. 그렇게 소유욕에서 벗어나는 일은 참으로 힘들고 고통스럽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소유의 노예로 사는 것이 불편하다면, 버겁더라도 한 걸음씩 발을 떼는 것이 필요하다. 

올여름, 절정을 구가하던 폭염이 물러가며 어느덧 가을 내음이 물씬 풍긴다. 에리히 프롬의 외침처럼, 이 가을 우리는 시중의 삶을 통해 “운명이 너에게 도달하도록 허용한 지점이 어디든지 간에, 있는 자리에서 완전하게 존재해보자.” 

❍ 진항이 백어에게 물었다. “선생님께서 아마 특별한 가르침을 주셨겠지요?” 대답했다. “없었습니다. 일전에 우두커니 서 계시기에 저는 종종 걸음으로 뜰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말씀하시길 ‘󰡔시경󰡕을 공부하였느냐?’ 하시기에 ‘아직 못했습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시경』을 공부하지 않으면 더불어 말을 나눌 수가 없다.’고 하시기에 저는 물러나와 『시경』을 공부하였습니다. 다른 날에 또 우두커니 서 계시기에 저는 종종 걸음으로 뜰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말씀하시길 ‘예를 공부하였느냐?’ 하시기에 ‘아직 못했습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예를 공부하지 않으면 독립적 인간으로 설 수가 없다.’고 하시기에 저는 물러나와 예를 공부하였습니다. 이 두 가지를 전수받았을 뿐입니다.” 진항이 물러나와 기뻐하며 말했다. “하나를 물어 셋을 얻었으니, 『시경』에 대해 들었고 예에 대해 들었으며, 군자는 자신의 아들을 특별하게 대하지 않음에 대해서도 들었다.”(陳亢問於伯魚曰, “子亦有異聞乎.” 對曰, “未也. 嘗獨立, 鯉趨而過庭. 曰, ‘學詩乎.’ 對曰, ‘未也.’ ‘不學詩, 無以言.’ 鯉退而學詩. 他日, 又獨立, 鯉趨而過庭. 曰, ‘學禮乎.’ 對曰, ‘未也.’ ‘不學禮, 無以立.’ 鯉退而學禮. 聞斯二者.” 陳亢退而喜曰,  “問一得三, 聞詩, 聞禮, 又聞君子之遠其子也.”) - 『논어(論語)』 ｢계씨(季氏)｣

❍ 자로가 여쭸다. “들은 바를 바로 행해야 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아버지와 형이 계시는데 어찌 들은 바를 바로 행해야 하겠는가?” 염구가 여쭸다. “들은 바를 바로 행해야 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들은 즉 바로 행해야 한다.” 공서화가 여쭸다. “자로가 들은 바를 바로 행해야 하냐고 여쭸을 때 선생님께선 아버지와 형이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염구가 들은 바를 바로 행해야 하냐고 여쭸을 때엔 선생님께선 들은 즉 바로 행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어리둥절합니다. 감히 여쭙고자 합니다.” 공자가 말했다. “염구는 소극적이어서 진취적이게 한 것이고, 자로는 호승심이 강해서 물러서게 한 것이다.”(子路問, “聞斯行諸.” 子曰, “有父兄在, 如之何其聞斯行之.” 冉有問, “聞斯行諸.” 子曰, “聞斯行之.” 公西華曰, “由也問聞斯行諸, 子曰, ‘有父兄在’, 求也問聞斯行諸, 子曰, ‘聞斯行之’. 赤也惑, 敢問.” 子曰, “求也退, 故進之; 由也兼人, 故退之.”) - 『논어』｢선진(先進)｣.

❍ 내가 지니지 않은 사물을 바라보고 가리키며 ‘저것’이라고 한다. 내가 지니고 있는 것을 의식해 자세히 보고는 ‘이것’이라고 한다. ‘이것’이라는 것은 이미 얻어서 내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 손에 있는 것이 내 바람을 채우기에 부족하면, 만족시켜줄 만한 것을 갈망하게 되고, 그것을 바라보고 가리키며 ‘저것’이라고 하게 된다. 이는 천하의 한결같은 근심거리이다. …… 평생동안 미혹되어 오직 ‘저것’만을 바라보고 ‘이것’을 누릴 줄 모르는 지가 오래요, …… 오직 ‘저것’만을 선망하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가?(物之不在我者, 望而指之曰彼, 其在我者, 覺而頫之曰斯, 斯者我之所已得身至者也. 然苟我之所至, 有不足以滿吾願者, 其志不能不慕可以滿者, 望而指之曰彼, 此天下之通患也. …… 終身迷惑, 惟彼是望, 而不知斯之可享也久矣. …… 惟彼之是羨,不亦愚乎.) - 정약용(丁若鏞), ｢어사재기(於斯齋記)｣

❍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중용을 행하며 소인은 중용에 반한다. 군자의 중용은 군자다우면서 ‘시중한다’는 말이고, 소인의 중용은 소인다운면서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다.”(仲尼曰, “君子中庸, 小人反中庸. 君子之中庸也, 君子而時中, 小人之中庸也, 小人而無忌憚也.”) - 『예기(禮記)』｢중용(中庸)｣

❍ 공자가 말했다. “인이 어디 저 멀리에 있던가? 인하고자 하는 순간 인과 함께 하게 된다.”(子曰, “仁遠乎哉. 我欲仁, 斯仁至矣.”) - 『논어』｢술이(述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