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국시대 말기에 순자(荀子)는 인간이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물이나 불은 물리적 기운(氣)은 있지만, 생명(生)은 없다. 풀이나 나무는 생명은 있지만, 지적 능력(知)은 없다. 금수는 지적 능력은 있지만, 예의(義)는 없다. 사람은 물리적 기운·생명·지적 능력도 있고 예의도 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다.”(<순자> 「왕제」) 현상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순자의 위와 같은 관찰과 분석은 훌륭하다. 식물이 전혀 지적 능력이 없는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식물은 무기물에는 없는 생명이 있고 동물은 식물에게는 박약한 지적 능력이 왕성하며, 인간은 짐승에게는 없는 윤리도덕이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인간사회에 윤리도덕이 존재한다고 해서 인간이 다른 자연존재보다 훨씬 더 ‘도덕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순자가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윤리도덕에서 찾은 것은 그가 유학자였기 때문일 터이지만, 같은 유교경전인 주역에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가 인간의 문화 형성 및 발전 능력에 있음을 간파한 듯한 다음과 같은 기록도 보인다. “강한 것과 부드러운 것이 교차하니 하늘의 꾸밈(天文)이다. 꾸미고 밝힘(文明)으로써 멈추니 사람의 꾸밈(人文)이다. 천문을 관찰하여 사계절의 변화를 살피고, 문화(人文)를 관찰하여 천하를 교화하고 완성한다.” (<주역> 「비」 「상전」) 물질문명의 측면에서 문화란 흔히 인간이 자연을 대상으로 삼아 그것을 변형하고 가공하는 노동을 통해 자연 위에 인위적으로 세운 것으로 규정되는 것임을 고려할 때, 옛 중국인들은 문화가 사람이 인위적으로 ‘꾸민’ 결과임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 <주역>의 작자들은 이러한 인간의 문화 창조가 ‘하늘의 꾸밈’, 즉 자연의 운동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인간이 문화를 형성·발전시켜온 이유는 무엇보다 인간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였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은 일차적으로 자기 생존과 종족번식의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고자(告子)는 “식욕과 성욕(食色)이 본성”(<맹자> 「고자상」)이라고 했다. 모든 생명은 살기 위해, 그리고 자신이 죽은 후에도 자신의 종족을 지속시키기 위해 한순간도 쉬지 않고 생명운동을 한다. 모든 생명운동의 목적이 ‘나’와 ‘내 새끼’를 위한 것이므로 그것은 일차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성격을 띤다. 인간이 밥을 먹는 것도 뱀이 개구리를 삼키는 것도 심지어 채 녹지 않은 단단한 지면을 뚫고 새싹이 돋아나는 것도 모두 자신을 위한 행위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생명의 생명 유지는 ‘내’가 살고자 하는 의지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봄날 새싹이 돋아나려면 그 식물 자신이 자기를 확장하려는 의지도 필요하지만 그 뜻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햇빛·공기·바람·흙·흙 속의 미생물 등 무수히 많은 자연존재의 협력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내’가 ‘나’의 생명을 한순간이라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무수히 많은 자연존재들이 끊임없이 ‘나’에게 유익한 작용을 가한 덕분이다. 이렇게 ‘나’의 생명 유지를 가능케 해주는 ‘내’ 생명의 근원을 노자는 ‘도’라고 억지로 이름 붙였다. “보려 해도 보이지 않는 것을 흐릿함(夷)이라 하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는 것을 희미함(希)이라 하며,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것을 미미함(微)이라 한다. 이 셋은 끝까지 캐물을 수 없다. 그러므로 뒤섞여 하나가 된다. 그것의 위는 밝지 않고 그것의 아래는 어둡지 않으며, 새끼처럼 꼬여 이름 붙일 수 없으니 사물이 없는 상태로 되돌아간다. 이를 형상이 없는 형상, 사물이 없는 형상이라 하고 황홀이라 한다.”(<노자> 14장)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이 자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그 생명의 근원을 노자는 그것이 무형의 상태로 존재하지만 무엇이라 규정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도(道)’라 이름 붙였다. 우리의 감각기관으로 지각되지 않지만 모든 생명의 생장을 가능케 하는 어떤 것이 존재함을 직관하면서 노자는 자연에 대한 신비감, 즉 일종의 황홀경에 빠졌다.
이상의 서술에서 문제가 되는 상황은 인간을 비롯한 생명이 부단히 자기 확장을 한다는 점이다. 뱀도 새싹도 살기 위해 자기 확장을 꾀하되 그 확장의 운동은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지 않는 한계 안에서 이루어진다. 반면 불행인지 다행인지 인간은 자연에서 벗어나 자연을 통제하고 이용할 수 있는 지적 능력과 기술을 통해 문화를 형성하고 발전시킨다. 인간 삶에 편의를 가져다주는 수많은 문명의 이기들, 예컨대 의식주와 관련된 갖가지 기물을 비롯하여 수레·배 등의 교통수단, 지식의 축적과 전승을 가능케 하는 문자 등이 생겨난다. 이러한 문명의 이기들은 인간의 물질적 삶을 편리하고 풍요롭게 했지만, 이는 불평등한 사회적 관계에 기반을 둔 인간의 인간 지배를 대가로 한 것이었다. “관청은 깨끗한데 논밭은 황폐하고 창고는 텅 비어 있다. 권력자들은 화려한 옷을 입고 날카로운 칼을 차고 음식을 배불리 먹으며 재물은 쓰고도 남음이 있으니 이들을 강도들의 두목이라 한다.” (<노자>, 53장) 화려하게 빛나는 문명의 이면에는 소수의 권력자들이 ‘강도들의 두목’처럼 다수의 백성을 착취하는 폭력적 야만이 도사리고 있음을 간파한 노자는 사람들에게 문명 속 화려한 삶에 대한 욕망을 버리고 원초적인 소박한 삶으로 되돌아갈 것을 주문한다. “영화로움을 알면서도 욕됨을 지키면 천하의 골짜기가 된다. 천하의 골짜기가 되면 변치 않는 덕이 족하여 통나무 같은 상태로 되돌아간다.”(<노자> 28장) 화려한 문명 속에서의 영화로운 삶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문명인의 눈에는 치욕스러워 보이는 골짜기 같은 낮은 자리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포용하는 삶, 인위적인 꾸밈이 판치는 문명에서 벗어나 가공되지 않는 통나무처럼 원초적 소박함을 간직하는 삶으로 되돌아가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은 자기중심적 욕망을 끝없이 확장시키는 지식과 기술을 거부함으로써 가능해진다고 보았다. “사람의 수십 수백 배 몫을 하는 기계가 있어도 사용하지 않게 하고 백성들이 죽음을 중히 여겨 멀리 나가지 않게 한다. 배와 수레가 있어도 그것을 탈 일이 없고 갑옷과 무기가 있어도 그것을 쓸 일이 없으며, 사람들이 다시 끈을 묶어 문자 생활을 하게 한다.”(<노자> 80장)
이렇게 인간이 자연을 대상화하여 인식·지배하려는 지식, 그러한 지식의 기술적 응용으로 산출된 문명의 이기 사용, 화려한 문명 속에서의 삶 등을 거부해야 하는 까닭은 그것이 도의 ‘무위’에 위배되는 인위의 극치이기 때문이다. “도는 늘 함이 없으나(無爲)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다.”(<노자> 37장) 생명이 자신을 유지할 수 있는 근원으로서의 도에는 어떤 인위적인 지배의 요소도 없다. 자연 안의 어떤 존재도 타자를 대상화하여 인식하고 지배하는 지식을 축적하거나 타자를 전면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인위적 기술을 발전시키지 않은 점이 이를 증명한다. 이러한 무위의 도를 인간이 따라야 하는 이유는 인간 역시 우선은 자연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라는 노동조직을 통해 자연을 이용하고 문화를 발전시켰지만 그렇다 해도 인간이 자연적 존재라는 사실은 변치 않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노자의 무위 사상은 문명 자체에 대한 근원적 비판정신이 담겨 있다. 인류는 문명사회에 진입하는 그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는 것이 노자 무위 사상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이다.
2.
노자의 무위 사상이 문명 자체에 대한 비판정신을 함축하고 있다고 한다면 동학의 무위 사상은 서구 근대문명에 대한 비판정신으로 충만해 있다.
최제우의 무위 개념은 도가에서 수용한 것으로 기본적인 함의는 노자의 그것과 같다. 그러나 최제우는 무위가 실제로는 하늘님의 조화 작용임을 천명함으로써 도가의 무위 관념을 비판하고 동학의 무위와 도가의 그것을 차별화하고 있다.
상고시대부터 봄과 가을이 갈마들고 사계절이 성했다 쇠했다 하는 것이 바뀌지도 변하지도 않으니, 이는 역시 하늘님의 조화의 흔적이 천하에 밝게 드러난 것이되, 어리석은 사람들은 비와 이슬의 은택인지 알지 못하고 함이 없이 변화되는지(無爲而化) 알더라. 오제 이후로 성인이 나시어 일월성신과 천지의 법칙을 책으로 만들어 천도의 변치 않는 모습을 확정하였다. 한번 움직였다 고요해지고 한번 성했다 쇠해짐을 천명에 부치니, 이는 천명을 공경하고 천리를 따르는 것이었다. 이런 까닭에 사람은 군자가 되고 배움은 도덕을 성취했다. 도는 천도이고 덕은 천덕으로 그 도를 밝히고 그 덕을 닦아 군자가 되고 성인에 이르렀으니 어찌 감탄하지 않겠는가! 다시 최근에 이르러 온 세상 사람들이 각자 자신만을 위하여 천리를 따르지 않고 천명을 돌보지 않으므로 마음이 늘 불안하고 지향할 바를 몰랐다. (<동경대전> 「포덕문」)
위 인용문은 상고시대 사람들의 무위 관념에 대한 비판, 오제 이후의 동아시아 문명사회에 대한 찬탄, 근대문명에 대한 비판, 이렇게 세 가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 중 첫 번째 상고시대 사람들의 무위 관념에 대한 비판은 도가의 그것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인용문의 ‘함이 없이 변화되는지 알더라’라는 구절은 ‘인간이 어떤 인위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변화되는 줄 알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상고시대부터 자연은 사계절의 변화와 같은 불변하는 질서를 통해 모든 생명을 생육해왔다. 그런데 이 생명 양육의 과정에서 비가 내리고 이슬이 맺히는 것 같은 현상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님이 자신의 기운을 사용해 만물을 생육하는 운동이 겉으로 드러난 흔적이라는 것이 최제우의 시각이다. 이렇게 자연이 따르는 무위의 원칙의 이면에 하늘님의 기화가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은 본능적인 무위자연의 삶을 산 상고시대 사람들을 향한 비판이지만, 이는 동시에 생명 양육의 주체를 설정하지 않은 도가를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최제우가 노자의 무위 개념을 수용했지만 그 함의가 다르다는 점은 이어지는 유교문명에 대한 찬탄에서 더욱 분명하게 확인된다. 주지하다시피 노자와 달리 유교는 문명에 대해 성찰적이지만 그것에서 벗어나라고는 주장하지 않으며 문명의 발전을 추동하는 힘인 지식과 기술에 대해서도 그것이 인간의 자연 지배와 인간의 인간 지배를 심화시키므로 지식을 추구하지도 기술의 산물을 이용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예컨대 맹자는 인간이 지적 능력을 발휘해 기술을 발전시켜 인간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면서도 대상 파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지식과 기술이 쓰일 수 있음을 발견함으로써 유가 나름의 무위 관념을 정초한 바 있다. “세상 사람들은 본성을 논할 때 법칙을 따를 뿐인데 법칙 탐구는 이익을 근본으로 한다. 사람들이 지적 능력에서 싫어하는 것은 그것이 대상에 천착하기 때문이다. 만약 지혜로운 자가 우(禹)의 물을 흐르게 한 것과 같이 한다면 지적 능력에 대해 싫어할 것이 없을 것이다. 우가 물을 흐르게 함은 그 무사(無事)를 행함이었다. 지혜로운 자 역시 그 무사를 행한다면 그 지혜 또한 크다고 하겠다.” (<맹자> 「이루상」) 유가는 노자처럼 문명의 발전을 가능케 하는 지식과 기술 자체에 대한 거부의 태도는 보이지 않는다. 유가가 반성하고 거부하는 것은 인간의 지식 추구와 기술 개발이 대상에 대한 아무 고려 없이 이루어지는 것일 뿐이다. 맹자는 우왕치수의 사례에서 자연을 고려하는 무위(無事)의 계기와 인간 자신을 위하는 인위적 행(行)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전범을 발견한다. 문명·지식·기술을 대하는 최제우의 태도 역시 기본적으로는 유교적이다. 그는 오제 이후의 유교문명이 생명의 눈으로 자연운동의 질서를 파악하여 이를 지식체계로 축적하고 전승한 점, 비록 하늘을 신앙의 대상으로 바라보지는 않지만 자연의 생명운동이 생육의 주체인 하늘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본 점, 또 이 생육의 주체인 하늘을 공경하고 하늘이 행하는 생명운동의 질서를 따를 것을 윤리적으로 요구하는 점 등에서 유가가 나름대로 정립한 무위 사상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렇게 노자에 의해 개념화되고 유가에 의해 그 의미가 변형되어 계승된 무위사상은 전통문화 속에서 나름대로 그 이념을 실현할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근대의 문턱에서 뒤흔들리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인간 자신 혹은 자기 자신만을 위할 뿐 더 이상 ‘하늘’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최제우의 근대에 대한 진단이다.
앞서 우리는 최제우의 서구 근대문명에 대한 태도를 검토한 바 있는데, 서학과 동학의 차이를 묻는 선비의 질문에 최제우가 아래와 같이 대답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의 도는 무위이화(無爲而化)이다. 그 마음을 지키고(守其心) 그 기운을 바르게 하며(正其氣) 그 본성을 따르고(率其性) 그 가르침을 받으면(受其敎) 변화가 자연스러운 가운데에서 생겨난다. (<동경대전> 「논학문」)
위 인용문에서 그는 동학도들이 행하는 내면 수양과 외적 배움의 의미를 말하고 있는데, 사용한 것은 모두 유교적 용어이지만 그 실질적 의미는 다르다. 유교에서 수양 혹은 공부란 ‘내’가 인위적으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동학에서 그것은 ‘나’의 안팎에 존재하는 하늘님의 영과 기운이 펼치는 운동을 따라가는 무위의 일일 뿐이다. ‘그 마음을 지킴’이란 ‘내’ 마음에 내재한 하늘님의 영을 따라가는 것이고, ‘그 기운을 바르게 함’이란 ‘내’ 밖에서 기화 혹은 조화 운동을 하는 하늘님의 기운을 따라가는 것이다. 이 하늘님을 따라감은 구체적으로 두 가지 의미를 띤다. 하나는 인간 내면의 측면에서 하늘님의 신비로운 조화에 힘입어 삶이 변화된다는 의미이다. 예컨대 최제우는 “법을 정하고 글을 지어 입도한 세상 사람들이 그날부터 군자되어 무위이화 될 것이니, 지상의 신선이 네가 아니겠느냐”(<용담유사> 「교훈가」)고 했고, “나 역시 이 세상에 무극의 대도를 닦아 오는 사람을 효유하여 21자를 전해주니 무위이화가 아니겠느냐?”(<용담유사> 「도수사」)고도 했다. 동학의 교의는 지극히 쉬워 억지로 고행하지 않고도(無爲) 내 몸 안에 모신 하늘님을 잘 따르기만 하면 변화된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다. 다른 하나는 자연의 영역에서 하늘님이 자신의 기운으로 만물을 생육하는 그 기화작용을 따라간다는 의미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최제우는 전자의 측면에서 무위 개념을 훨씬 많이 쓰고 있지만 후자의 측면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앞서 논한 최제우의 서구 근대문명에 대한 비판을 이해하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앞서 우리는 최제우가 서양인들은 천주를 신앙하면서도 천주를 위하는 학문과 문명이 아닌,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지식·기술·문명을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서구 근대문명을 비판했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 비판은 동학의 무위 사상과 관련 지어 볼 때 그 의미가 더욱 명확해진다. 최제우의 견해에 따르면 천주가 자연의 영역에서 행하는 운동은 ‘무위’의 성격을 띤다. 천주 자신은 무위의 운동을 한다. 천주를 믿고 섬긴다면 인간의 문화 창조 역시 무위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 불행히도 근대에 태동한 지식·기술·문명은 민중과 자연에 대한 배려 및 섬김의 계기를 필연적으로 포함하는 무위와는 전혀 상관이 없을뿐더러 오늘날에 이르러 그 인위성은 더욱 극에 다다르고 있다. 근대의 문턱에서 동학이 고수하려 했던 무위의 원칙은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소중하다.
다음 편에서는 최제우의 천주 관념이 지닌 사상적 연원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고전 다시읽기] Aporia Review of Books, Vol.2, No.7, 2014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