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圖蘭道欄) [10]: 이해에서 ‘공명’으로 

한때는 그래서 사람들이 공자를 성인聖人이라고 하는구나 하며, 그런 경지에 공감하지 못하는 내 자신을 반성하곤 했다. 그리고 결의를 다지기까지 했다. “그래!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선 이렇게 각별하고 남달라야 하는 거야. 나도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그러나 그 후에도 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 그건 그저 ‘머리’로만 한 도덕적 결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안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공자 당시에 사람들은 앎에 두 차원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머리로 아는 것과 행할 줄 아는 것의 두 차원이 그것이다. 하여 공자는 머리로는 이미 깨달았음에도 행동으로 더디 옮기는 제자 염구冉求에게 깨달은 즉시 행동할 것을 촉구했다. 반면에 머리보단 늘 몸이 앞서는 다혈질의 제자 자로子路더런 제발 두 번 세 번 더 생각해보고 행동으로 옮기라고 가르쳤다. 보기와는 달리 머리와 몸 사이엔 꽤 넓은 간극이 있는지라, 어느 한쪽으로만 아는 것은 참된 앎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머리와 몸이 동시에 알고 있는 상태, 그것만이 참된 앎이라는 입장은 먼 훗날 심학心學을 제창한 왕양명의 ‘지행합일知行合一’이란 명제로 이어졌다. 흔히 따로따로 존재하는 ‘지’와 ‘행’을 일치시켜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해되는 지행합일설은, 이런 입장에서 보면 “지와 행은 본래부터 하나였다”는 주장에 다름없다. 어떻게 함이 효인지를 훤히 알고 있다고 해도, 행하지 않으면 효성스럽다는 소리를 못 듣는다. 이처럼 앎은 머리의 능력하고만 관련되어 있는 듯하지만, 실은 몸의 능력도 그 만큼이나 연관되어 있다는 입장이다. 

물론 앎에 대한 이러한 입장은 자칫하면 ‘반지성주의적’인 편향에 빠질 수 있다. 공자의 연이은 경고에도, 행동이 지성을 압도한 자로가 결국 명분 없는 전쟁에 휘말려 제명에 못 죽었듯이 반지성주의의 폐해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지’와 ‘행’이 애초부터 하나였다는 견해는 그런 편향과는 무관하다. 그것은 앎에 간여하는 머리와 몸의 능력 중 어느 하나를 더 중시하는 입장이 아니라, 그 둘의 중용을 지향한다. 붙어있는 양 느껴지지만 실은 저만큼 떨어져 있고, 함께 작동되는 듯싶지만 따로 놀기 십상인 몸과 머리, 그 사이의 거리를 없앰으로써 어느 한 쪽에만 의지했을 때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또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 까닭에 공자는 머리로 이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몸으로 공명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는 전설적 성군인 순임금이 지었다는 <소韶>라는 음악을 들으며 참 좋다는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리고 그 음악세계에 몰입, 급기야 좋아하던 고기 맛을 삼 개월 동안이나 잊고 산다. 

과장이 아니다. 또한 성인이었기에 지녔던 남다른 풍모도 아니었다. 단지 머리로만 이해하고 마는 이들과 달리, 머리로 안 것을 토대로 몸으로 공명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는 저릿하게 울려오는 진동과 함께하며, 그것이 자아내는 지극한 경지를 온 몸으로 맛보았다. 그런 그에게 고기로 대변되는 통속적 즐거움은 너무나도 작기만 했다. 머리로 이해하고 몸으로 공명하는 구도의 실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가치 없다는 애기가 아니다. 공자는 뭔가에 이름을 붙였다면 반드시 조리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행할 줄 알게 되는 것은 그런 다음에야 가능하다고 보았다. 순임금이 지은 음악을 ‘소’라고 명명했다면 그것에 대해 지적 설명을 붙일 수 있어야 하며, 그래야만 그것과 공명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몸으로 공명하기 위해서는 지적인 이해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뭔가와 공명한다는 것은 그것과 소통했기에 가능한 일이며, 뭔가와 소통하기 위해선 먼저 이해의 과정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이해에서 소통을 거쳐 공명으로 나아가는 것은 성인이어야 비로소 도달 가능한 경지가 아니다. 설사 성인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왕양명은 길거리에 오가는 이 모두가 성인이라고 했다. 불가에서 모든 이는 저마다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했듯이, 성인은 하늘이 작심하고 만들어낸 그런 유별난 존재가 아님을 역설했다. 그가 보기에 사람은 누구나 머리로 이해하고 몸으로 공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은 동물과 다른 존재였다. 그것은 어떤 고도의 수련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체득할 수 있는 그런 높은 경지가 아니었다. 공자가 “인이 어디 저 멀리에 있던가? 인하고자 하는 순간 인과 함께 하게 된다”고 일갈했듯이, 내게 그런 능력이 있음을 인지하는 순간 그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 

오늘의 세계를 지식기반사회라고 한다.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얻는 일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갈수록 지식은 소통이나 이해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손만 뻗으면 얻을 수 있는 것이 됐기에, 굳이 힘들여 이해하고 소통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리라. 이제 앎은 머리를 떠나 인간 바깥에 따로 존재하는 세상이 됐다. 지식이 중시될수록 인간과 지식이 괴리되는 모순. 그 모순 속에서 편히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능력들을 아무렇지 않게 망각해버린다. 머리로 이해하고 몸으로 공명하는 앎의 능력도 그렇게 사라지고 있다.

앎의 힘은 단지 머리의 능력 신장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건 동시에 몸의 능력을 키워 대상과 공명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럼으로써 머리와 몸의 능력은 하나가 된다. 머리와 몸의 능력이 본래 하나였다는 말은 결국 앎과 삶은 애초부터 하나였다는 뜻이다. 그렇게 나와 타자도 이해와 소통을 거쳐 함께 울리는 하나 된 생명체였음이다. 

❍ 배우고 그때그때 익히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 <논어(論語)> ｢학이(學而)｣.

❍ 자로가 여쭸다. “들은 바를 바로 행해야 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아버지와 형이 계시는데 어찌 들은 바를 바로 행해야 하겠는가?” 염구가 여쭸다. “들은 바를 바로 행해야 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들은 즉 바로 행해야 한다.” 공서화가 여쭸다. “자로가 들은 바를 바로 행해야 하냐고 여쭸을 때 선생님께선 아버지와 형이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염구가 들은 바를 바로 행해야 하냐고 여쭸을 때엔 선생님께선 들은 즉 바로 행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어리둥절합니다. 감히 여쭙고자 합니다.” 공자가 말했다. “염구는 소극적이어서 진취적이게 한 것이고, 자로는 호승심이 강해서 물러서게 한 것이다.”(子路問, “聞斯行諸.” 子曰, “有父兄在, 如之何其聞斯行之.” 冉有問, “聞斯行諸.” 子曰, “聞斯行之.” 公西華曰, “由也問聞斯行諸, 子曰, ‘有父兄在’, 求也問聞斯行諸, 子曰, ‘聞斯行之’. 赤也惑, 敢問.” 子曰, “求也退, 故進之; 由也兼人, 故退之.”) - <논어> ｢선진(先進)｣.

❍ (왕양명의 제자) 서애가 아뢨다. “요새 사람들은 부모에게 마땅히 효성스러워야 하고 형에게 마땅히 공손해야 함을 알고 있어도 효를 행치 못하고 공손히 행할 수 없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앎과 행함은 분명히 분리된 것이지 않겠습니까?”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사사로운 욕망에 의해 절단되어 나뉜 것일 뿐 지행의 본체가 아니다. (…중략…) 어떤 이는 효를 알며 어떤 이는 공손함을 안다고 칭해지려면 반드시 그 사람이 이미 효를 행하고 공손함을 행했어야 비로소 그가 효를 알고 공손함을 안다고 칭해질 수 있게 된다.”(愛曰, “如今人儘有知得父當孝, 兄當弟者, 卻不能孝, 不能弟, 便是知與行分明是兩件.” 先生曰, “此已被私欲隔斷, 不是知行的本體了. (…中略…) 就如稱某人知孝, 某人知弟, 必是其人已曾行孝行弟, 方可稱他知孝知弟.”) - <전습록(傳習錄)> 권상(卷上).

❍ 공자가 제나라에서 순임금의 악곡인 <韶>를 듣고는 3개월 동안 고기 맛을 잊은 채로 “음악의 지극함이 이 정도에 이를 줄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子在齊聞韶, 三月不知肉味, 曰, ‘不圖爲樂之至於斯也.’” - <논어> ｢술이(述而)｣.

❍ 군자는 이름을 붙이면 반드시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말을 하면 반드시 행할 수 있어야 한다. 군자는 자신의 말에 대해 구차함이 없어야 할 따름이다.(君子名之必可言也, 言之必可行也. 君子於其言, 無所苟已矣.”) <논어> ｢자로(子路)｣.

❍ 하루는 왕녀지가 출타했다가 돌아오자 선생(왕양명)께서 물으셨다. “다니면서 무엇을 보았는가?” 대답하였다. “거리에 가득한 이들 모두가 성인임을 보았습니다.”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보기에는 거리에 가득한 이들이 성인이었지만, 거리에 가득한 이들은 역으로 너를 성인이라고 보았을 것이다.” 다른 날 동라가 출타했다가 돌아와 선생님을 뵙고는 여쭸다. “오늘 이상한 일을 보았습니다.”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이 이상하더냐?” 대답하여 아뢨다. “길거리에 가득한 이 모두가 성인임을 보았습니다.”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그 또한 일상적 일일 따름이니 이상할 바가 뭐 있겠는가?”(一日, 王汝止出遊歸, 先生問曰, “遊何見.” 對曰, “見滿街人都是聖人.” 先生曰, “你看滿街人是聖人, 滿街人倒看你是聖人哉.” 又一日, 董蘿石出遊而歸, 見先生曰, “今日見一異事.” 先生曰, “何異?” 對曰, “見滿街人都是聖人.” 先生曰, “此亦常事耳, 何足爲異?”

❍ 공자가 말했다. “인이 어디 저 멀리에 있던가? 인하고자 하는 순간 인과 함께 하게 된다.”(子曰, “仁遠乎哉. 我欲仁, 斯仁至矣.”) - <논어> ｢술이(述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