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말은 곧 명령이자 규율이기에, 지도자가 덕을 닦지 않아서 함부로 말하거나 명령을 내리게 되면, 나라를 다스리는데 있어 항상 어려운 문제들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므로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이고도 공정한 태도를 유지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여기서 노자는 두 가지를 언급하고 있으니, 하나는 ‘불언(不言)’의 태도이고, 또 하나는 ‘중(中)’의 태도이다. 하지만 본 장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지도자의 자세는 불언(不言)이므로, ‘중(中)’이 지니는 함의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로 한다.
17-1: 太上,下知有之。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그가 존재함을 안다.
따라서 노자는 대동사회에서는 백성들이 지도자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뿐, 통치시기에는 그의 뛰어난 지도력에 대해서 절실하게 느끼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으니, 이제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기록을 살펴보면 그 의미를 보다 쉬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을 다스린 지 50년, 세상이 다스려지는지 다스려지지 않는지, 수많은 백성들이 자기를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었다. 좌우에 물었으나, 알지 못하고, 조정 바깥으로 물었으나, 알지 못했으며, 재야에 물었으나, 알지 못했다. 이에 미복하고, 큰 거리로 나아가니, 동요가 들렸는데 이르기를: 우리 많은 백성을 일으킴에, 그대의 지극함이 아닌 것이 없네.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임금의 법을 따른다고 하였다. 한 노인이 있어, 입에 음식을 잔뜩 물고 배를 두드리며, 땅을 치며 노래하기를: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며. 우물을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서 먹으니, 임금의 힘이, 어찌 나에게 있을까라고 하였다. [十八史略(십팔사략)] <五帝篇(오제편)>
위의 기록은 오늘날 “고복격양가(鼓腹擊壤歌: 배를 두드리고 땅을 치며 부른 노래)”로 더 유명한데, 이처럼 요 임금이 통치하던 태평성대에는 백성들이 “임금이 자기를 위해서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며 불만을 표출했다고 하니, 이는 바로 그러한 상황을 표현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이 생기지 않을 수 없으니, 그렇다면 과연 백성들은 정말로 이러한 지도자의 노고를 몰라주는 우매한 존재인가? 이와 관련하여 또 다음의 기록을 살펴보자.
28년이 지나고, 요임금이 죽었다. 귀족들이 마치 부모상을 하는 것과 같았고, 3년 동안, 사방에서 팔음을 끊고 삼갔다. [尙書(상서)] <堯典(요전)>
따라서 우리는 백성이란 존재가 잠시 지도자의 노력을 인지하지 못할 수는 있으나, 그 숨겨진 덕을 언제까지고 몰라주지는 않는 존재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7-2: 其次,親而譽之。其次,畏之。其次,侮之。
그 다음가는 지도자는 그와 친근하고 그를 칭찬한다. 그 다음가는 지도자는 그를 두려워한다. 그 다음가는 지도자는 그를 경멸한다.
그보다 못한 지도자는 백성들이 그를 친하다고 여기고 가까이하여 칭찬한다. 또 그보다 못한 지도자는 엄격한 법률과 형벌로 억압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그를 두려워하고 피한다. 가장 하등의 지도자는 백성들이 그를 깔보아 업신여긴다.
17-3: 信不足焉,有不信焉。
신용이 부족하면, 불신이 생긴다.
이미 앞에서 한 번 언급했던 것처럼, ‘믿을 신(信)’은 ‘사람 인(人)’과 ‘말씀 언(言)’이 합쳐져서 이뤄진 회의문자(會意文字)이니, 사람이 말하는 것은 모두 믿음이 되는 것이다. 아울러서 ‘정성 성(誠)’은 ‘말씀 언(言)’과 ‘이룰 성(成)’이 합해진 형성문자(形聲文字)이니, 다름 아닌 내뱉은 말은 반드시 이룬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므로 허신(許愼)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믿을 신(信)’과 ‘정성 성(誠)’은 사실상 같은 의미를 지닌다.”라고도 설명한 바 있고. 더불어 이와 관련하여, [논어]에 기록된 공자의 관점을 잠시 짚고 넘어가기로 하자.
5-9: 子曰: "始吾於人也,聽其言而信其行。今吾於人也,聽其言而觀其行。於予與改是。"
공자가 이르시기를: “당초에 나는 다른 사람에게 있어, 그 말을 들으면 그 행실을 믿었다. 이제 나는 다른 사람에게 있어, 그 말을 듣고 그 행실을 본다. 재아로부터 쫓아서 이를 고치게 된 것이다.”
이 말을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당초에 나는 다른 사람이 말을 하면 반드시 그가 그대로 실천할 것이라고 믿어왔다. 그 이유는 믿음(信)과 성실함(誠)이 본디 사람이 말하는 것은 모두 믿을 수 있다는 뜻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사람이 말을 하면 그가 실천하는지를 반드시 확인하는데, 바로 재아가 나에게 불신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자는 말한다. 지도자가 가장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미덕이 신뢰인데, 그러한 지도자가 백성들에게 믿음을 보이지 못하면, 백성들은 지도자를 믿고 따르지 않게 된다고.
17-4: 悠兮,其貴言。功成事遂,百姓皆謂我自然。
유유하여, 말을 귀히 여긴다. 일이 완성되어도, 백성들은 모두 우리가 본래 이러한 것이라고 말한다.
태평성대를 이끌었던 지도자들은 침착하고 여유가 있어, 말이나 명령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이러한 태평성대의 백성들은 지도자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뿐, 그의 뛰어난 지도력에 대해서는 절실하게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지도자가 삼가 노력하여 일을 완성하여도 백성들 스스로 그러한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노자는 불언(不言)의 가르침을 중시하여 여기에서도 다시 한 번 말이나 명령을 함부로 하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기록을 음미해보면 노자의 생각을 더욱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순임금이 말했다: “오시오, 우여! 홍수가 발생하여 나를 주의시켰는데, 믿음을 이루고 공을 이루었으니, 그대의 어질음 때문이오. 나라에 능히 부지런하고, 집안에 능히 검소하며, 스스로 만족하여 위대한 체하지 않으니, 그대의 어질음 때문이오. 그대는 자랑하지 않기에, 세상은 그대와 기량을 다툴 수 없고, 그대가 드러내지 않기에, 세상은 그대와 공을 겨룰 수가 없소. 나는 그대의 덕을 독려하고, 그대의 큰 공을 기리니, 하늘의 헤아림이 그대 몸에 있어서, 그대가 결국에는 임금에 오를 것이오. 사람의 마음은 위태롭고, 도의 마음은 희미하니, 정성스럽고도 한결같이, 그 중을 진실로 잡아야 하오. 상의하지 않은 말은 듣지 말고, 상의하지 않은 계책은 쓰지 마시오. 사랑할 만한 것이 임금이 아니겠소? 두려워할 만한 것이 백성이 아니겠소? 백성들은 임금이 아니면 누구를 받들겠소? 임금은 백성이 아니면, 더불어 나라를 지킬 사람이 없소. 공경하시오! 삼가면 이에 자리가 있게 되고, 공경하여 베풀면 바랄 수 있으니, 온 나라가 곤궁해지면, 하늘이 준 복록도 영영 끝나게 되오. 입에서 나는 말은 곧잘 전쟁을 일으키니, 나는 다시 말하지 않겠소.” [尙書(상서)] <大禹謨(대우모)>
노자는 23장에서도 계속해서 같은 논조로 불언(不言)의 중요성을 피력하고 있는데,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바로 비유법의 레토릭(rhetoric)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23-1: 希言自然, 故飄風不終朝,驟雨不終日。
말을 드물게 하는 것이 스스로 그러하게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광풍은 아침까지 불 수 없고, 폭우는 온종일 내릴 수 없다.
말이나 명령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 바로 하늘이 부여한 천성에 따르는 것이다. 광풍이나 폭우 같은 자연의 난폭함조차도 오래 지속될 수는 없는데, 하물며 사람이 만든 법률과 제도로 누르면 오래갈 수 있겠는가? 즉 억지로 작위하면 일시적으로 작용할 뿐, 지속될 수는 없는 것이다.
23-2: 孰為此者? 天地。
누가 이렇게 하는가? 바로 천지이다.
어떤 존재가 이처럼 억지로 작위하지 말고, 천성에 따라 스스로 그러하도록 시키는가? 바로 천지이다.
23-3: 天地尚不能久,而況於人乎!
천지의 난폭함조차도 오래갈 수 없거늘,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야!
이처럼 사람의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광풍과 폭우조차도 오래갈 수 없는 법인데, 하물며 일개 사람이 만든 법률과 제도로 통제하는 것이야 굳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도를 따르는 사람은 도에 부합되고, 덕을 따르는 자는 덕에 부합되며, 잃음을 구하는 자는 실에 부합된다. 도에 부합되는 사람은, 도 역시 기꺼이 그를 얻으려 하고; 덕에 부합되는 사람은 덕 역시 기꺼이 그를 얻으려 하며; 실에 부합되는 사람은, 실 역시 기꺼이 그를 얻으려 한다.
따라서 삼가여 도를 이해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지도자는 결국 그렇게 된다. 덕치를 이해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지도자는 결국 그렇게 된다. 억지로 작위하여 천성에 따르지 않는 지도자는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삼가여 도를 실천하는 지도자는 결국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게 되고, 삼가여 덕치를 실천하는 지도자는 결국 백성들에게 덕을 베풀게 되며, 억지로 작위하여 천성에 따르지 않는 지도자는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이다.
23-5: 信不足焉,有不信焉。
믿음이 부족하면, 불신이 생긴다.
이미 17-3에서 나왔던 표현이 여기서 다시 나오니, 노자가 얼마나 지도자의 신뢰를 강조했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다. 그러므로 노자는 말한다. 지도자가 가장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미덕이 신뢰인데, 그러한 지도자가 백성들에게 믿음을 보이지 못하면, 백성들 역시 지도자를 믿지 못해서 따르지 않게 된다고.
34-2: 以其終不為大,故能成其大。
시종 위대하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에, 그러므로 위대함을 이룰 수 있다.
항상 자만하지 않고 삼가여 노력하는 겸손한 자세를 취하기 때문에, 오히려 세상이 믿고 따르는 위대함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43-4: 不言之教,無為之益,天下希及之。
불언의 가르침, 무위의 이로움, 세상에는 이에 미치는 것이 드물다.
사관(史官)의 신분으로 역사적 고증을 통해 깨달은 참된 지도자의 통치이념인 도(道)는, 말이나 명령을 함부로 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에는 이러한 태평성대를 이끌었던 참된 지도자들의 통치이념과 견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이제 노자는 56장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함으로써, 지도자가 어떠한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56-1: 知者不言,言者不知。
아는 이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이는 알지 못한다.
도를 이해하고 묵묵히 실천하는 지도자는 함부로 말하거나 명령을 내리지 않고, 함부로 말하거나 명령을 내리는 지도자는 태평성대를 이끌었던 지도자들의 참된 통치이념인 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이라고 말이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노자 다시보기] Aporia Review of Books, Vol.3, No.11, 2015년 11월, 안성재, 인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