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樸(박)’은 아직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통나무를 뜻한다. 따라서 이는 참된 지도자란 인정이 많고 후하므로 마치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목재인 것처럼 순박하다는 뜻인데, 이제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기록을 살펴보자.
고요는 사(士)로서 백성을 다스렸다. 순임금이 조회하면 우, 백이, 고요는 순임금 앞에서 서로 더불어 임금 앞에서 의논하였다. 고요가 계책을 펴서 말했다: “정말로 덕을 따르면, 계책은 명확해지고 재상들은 화합할 것입니다.” 우가 말했다. “그렇소, 어떻게 해야 하오?” 고요가 말했다: “아! 몸 수양을 삼가고, 오랫동안 생각하며, 구족을 돈독하게 하고 차례를 매기면, 많은 현명한 이들이 보좌할 것이니, 가까운 데서부터 먼 곳에 이를 수 있을 따름입니다.” 우는 훌륭한 말에 절하여, 말했다: “그렇습니다.” 고요가 말했다: “아! 사람을 이해하는데 있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데 있습니다.” 우가 말했다: “아! 모두가 이와 같으니, 요임금도 그것을 어려워하셨습니다. 사람을 이해하면 곧 지혜로우니, 관리가 될 수 있고; 백성을 편안하게 할 수 있으면 은혜로우니, 일반백성들이 그를 그리워할 것입니다. 이해할 수 있고 은혜로울 수 있으면, 어찌 환두를 근심할 것이고, 어찌 유묘를 내쫓을 것이며, 어찌 교묘하게 말하고 얼굴빛을 꾸미는 간사하고도 아첨하는 사람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고요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아! 또한 아홉 가지 덕을 갖춰 행해야 하니, 그 덕을 갖춤에 대해 쉽게 말해보겠습니다.” 이에 말했다: “국가의 대사에 종사하기 시작하면, 관대하면서도 엄격하고, 온유하면서도 확고히 서며, 정중하면서도 함께 하고, 다스리면서도 공경하며, 길들이면서도 강인하고, 정직하면서도 부드러우며, 질박하면서도 청렴하고, 강직하면서도 정성스러우며, 굳세면서도 의로운 것이니, 항상 그러함을 밝히면, 길합니다. 날마다 세 가지 덕을 널리 펴고, 아침저녁으로 삼가 밝히면 가문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여섯 가지 덕을 엄격하게 떨치고 공경하며, 명확하게 분간하면, 나라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합해 거두어 널리 베풀어서, 아홉 가지 덕을 모두 섬기면, 뛰어난 인재가 관직에 있게 되어, 모든 관료들이 엄숙하고 삼갈 것입니다. 간사함과 음란함 기묘한 꾀를 본받지 마십시오. 그 사람이 아닌데 그 관직에 있으면, 이를 하늘의 대사를 어지럽히는 것이라 일컫습니다. (생략) [史記(사기)] <夏本紀(하본기)>
다시 말해서, 이 문장은 태평성대를 이룩한 옛 성군들은 이러한 질박함의 “덕치”로 나라를 다스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德(덕)에는 아홉 가지가 있고, 이것이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도리인데, 이제 이를 도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5: 見素抱樸,少私寡欲。絶學無憂。
수수함을 살피면 질박함을 유지하고, 사사로운 마음을 줄이면 욕망이 줄어든다. 학문을 버리면 근심이 없어진다.
수수함을 드러내면 질박함을 지키게 되고,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마음을 버리면 욕심이 사라지게 된다. 작은 꾀나 궁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오히려 근심이 사라지게 된다.
28-6: 為天下谷,常德乃足,復歸於樸。
세상의 계곡이 되면, 상덕이 이에 충족되어, 가공하지 않은 목재로 돌아가게 된다.
백성들이 모두 그를 자애롭다고 여겨 신뢰하고 지지하여 따르게 되면, 변치 않는 덕이 이에 조건을 만족하게 되어, 순수함의 질박한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사회가 실현되는 것이다.
32-1: 道常無名,樸雖小,天下莫能臣也。
도는 영원히 이름 지을 수 없으니, 질박하여 비록 미약하지만, 세상이 굴복시킬 수는 없다.
이러한 태평성대의 통치이념인 도라는 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정의할 수 없는데, 질박하여서 비록 작게 보이지만, 세상 그 어떤 것에도 종속되지 않는다.
그리고 노자는 여기서도 ‘도’라는 것이 약하지만 강하다고 말하고 있으니, 다름 아닌 자애로움(부드러움)과 포용을 뜻한다. 이는 이미 앞에서 설명한 바 있듯이, 물과 공기로 끊임없이 비유되는 메타포와 일치하는 개념이 된다.
37-2: 化而欲作,吾將鎮之以無名之樸。
변화하여 욕망이 생기면, 나는 장차 무명의 질박함으로 그것을 억누를 것이다.
지도자가 사리사욕을 탐하여 나라가 혼란해지면, 나는 태평성대를 이끈 지도자들처럼 순박함으로 지도자의 사리사욕이 다시 생기지 않게 할 것이다.
37-3: 無名之樸,夫亦將無欲。
무명의 질박함은, 무릇 또한 장차 탐욕을 없게 한다.
이처럼 명분을 구체화하고 세분화하여 통제하려들지 않는 순박함은 지도자의 사리사욕을 억누를 수 있으므로, 결국에는 나라를 평안하게 할 수 있다.
57-7: 故聖人云:我無為而民自化,我好靜而民自正,我無事而民自富,我無欲而民自樸。
그러므로 성인이 이르기를: 내가 작위함이 없으면 백성들이 스스로 교화되고,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면 백성들이 스스로 바로잡으며, 내가 일을 만들지 않으면 백성들이 스스로 풍요롭게 되고, 내게 욕망이 없으면 백성들이 스스로 질박해진다.
따라서 태평성대를 이끈 성인들은 말한다. “지도자가 억지로 작위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그 천성에 따라 스스로 그러하게 되고, 지도자가 말이나 명령을 함부로 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다른 마음을 품지 않게 되며, 지도자가 법률이나 제도로서 억지로 통제하지 않으면 백성들 스스로 해야 할 일을 하게 되어 삶이 넉넉해지게 되고, 지도자가 사리사욕을 탐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지도자를 본받아서 질박하게 지낸다.”
아울러서, 이 말은 다음의 기록을 살펴보면 그 뜻을 더욱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요순이 세상을 거느림에 인으로 하니, 백성들이 따르고; 걸주가 세상을 거느림에 포악함으로 하니, 백성들이 따랐다. 명령하는 바가 좋아하는 바에 반하면, 백성이 따르지 않는다. <大學, 傳(대학, 전)>
요임금과 순임금이 “덕”으로 다스리자 백성들이 “덕”을 갖췄고, 걸 임금과 주 임금이 포악함으로 다스리자 백성들이 포악해졌으니, 이는 즉 지도자의 인품이 그만큼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마치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또는 “풀은 바람의 방향에 따라 기우니, 백성은 지도자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서 기울어지는 민초(民草)다.”라는 표현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듯 사사로움을 탐하지 않는 질박함의 덕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노자는 이와 관련하여, 10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0-1: 載營魄抱一,能無離乎?
정신을 경영하여 하나로 파악함에 있어, 분리됨이 없을 수 있는가?
정신을 분산시키지 않고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덕을 이해함으로써, 지도자가 사리사욕을 탐하는 마음을 품지 않고 한결같게 태평성대의 통치이념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이제 이와 관련하여서는, 또 다음의 기록을 살펴보자.
아! 하늘을 믿기 어려운 것은, 천명이 항구하지 않기 때문이니, 그 덕이 항구하면, 그 지위를 보존하고, 그 덕이 항구하지 못하면, 구주가 망하게 됩니다. 하나라 왕이 덕을 능히 변치 않게 하지 못하여, 귀신을 업신여기고 백성들을 해치자, 황천이 보호하지 않고, 만방을 살펴보아, 천명이 있는 이를 가르쳐 길을 열었고, 순일한 덕이 있는 이를 찾아 돌보시니, 귀신을 받드는 주인이 되게 하였습니다. 저 이윤은 몸소 탕왕과 함께, 모두 순일한 덕을 갖춰서, 능히 천심을 누릴 수 있었으니, 하늘의 밝은 명을 받은 것입니다. (생략) 하늘이 우리 상나라에 사사로움이 있은 것이 아니라, 하늘이 순일한 덕을 도운 것이고, 상나라가 백성들에게 청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순일한 덕으로 귀속한 것입니다. 덕이 한결같으면, 움직여서 길하지 않은 것이 없고, 덕이 두셋으로 나뉘어 한결같지 않으면, 움직여서 흉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尙書(상서)] <咸有一德(함유일덕)>
위의 문장을 살펴보면 여기서 “하나”란 “순일한 덕”을 암시하는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순일한 덕”은 바로 하늘이 부여한 천성에 따라 두 마음을 품지 않고 한결같게 행하는 순수한 자애로움이다.
이 때문에 성인은 하나로 파악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규범으로 삼는다. 자기의 안목에만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명확하게 판단하고, 스스로 옳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에 분명히 하며, 스스로 자랑하지 않기 때문에 공로가 있고, 거만하지 않기 때문에 서열이 높아진다. 무릇 다투지 않기 때문에, 그러므로 세상은 그와 다툴 수가 없다.
이러한 도리를 깨달았기 때문에, 대동사회를 이끈 성인들은 순수한 덕을 명확하게 이해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규범으로 삼은 것이다. 자기의 안목에만 의지하지 않고 많은 이들에게 물어서 옳은지 그른지를 구별했기 때문에 명확하게 판단했고, 스스로 옳다고 여기지 않아서 항상 많은 이들에게 상의했기 때문에 시비를 분명히 가렸으며, 자기가 뛰어나다고 자랑하지 않고 항상 삼가여 노력했기 때문에 위대한 업적을 세울 수 있었고, 자신의 지위에 거만해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남들보다 더 두각을 나타나게 되었다. 이처럼 자기를 뒤로하고 백성들 아래에 두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그를 신뢰하고 지지하였으니, 세상 어느 누구하나 감히 그에게 시비를 걸지 못하고 따르게 되었던 것이다.
자고로 하나를 얻음에 있어, 하늘이 하나를 얻으면 청명하고, 땅이 하나를 얻으면 평온하며, 오묘함이 하나를 얻으면 영험해지고, 계곡이 하나를 얻으면 넉넉해지고, 만물이 하나를 얻으면 생동하고, 천자와 제후가 하나를 얻으면 세상의 충정이 된다.
옛날부터 두 마음을 품지 않는 순일한 덕을 얻음에 있어서, 하늘이 순일한 덕을 품으면 사념이 없이 맑고도 밝아지고, 땅이 순일한 덕을 품으면 고요하고 평안해지며, 오묘함이 순일한 덕을 품으면 거룩하고도 슬기로워지고, 자애로움이 순일한 덕을 품으면 충만해져 여유가 있게 되며, 만물이 순일한 덕을 품으면 생기가 감돌게 되고, 지도자가 순일한 덕을 품으면 세상이 충실하고 올바르게 된다.
따라서 노자가 말하는 樸(박)은 하나(一)로 일관하는 순수함을 뜻하니, 이는 지도자가 사리사욕을 탐하지 않고 오로지 나라와 백성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순일(純一)한 덕이 됨을 알 수 있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노자 다시보기] Aporia Review of Books, Vol.4, No.1, 2016년 1월, 안성재, 인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