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솝우화 등의 수많은 교훈과 사례들을 통해서, 집착이 초래하는 결과를 잘 알고 있다. 여기 위의 그림처럼 동전이 가득 담겨진 유리병이 있고, 그 유리병의 주둥이는 겨우 손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크기에 불과하다. 그리고 누군가 우리에게 다가와서는, 유리병에 손을 집어넣어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동전을 꺼내가라고 한다. 과연 우리는 원하는 만큼의 동전을 움켜쥐고 손을 꺼낼 수 있을까? 빠지지 않는 손을 다시 유리병 주둥이 밖으로 꺼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므로 노자는 말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가 재물이나 희귀한 물건 또는 권력 등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되면 곧 자신의 자리를 오래할 수 없거니와 심지어 망국으로까지 치닫게 되기 때문에, 지도자는 결코 사리사욕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9-2: 揣而銳之,不可長保。
날카로운데도 그것을 날카롭게 하면, 오래 보존할 수 없다.
칼의 날이 이미 충분히 예리한데도 불구하고 계속 날카롭게 갈면, 결국 그 칼은 마모되어 오래 쓸 수가 없는 것처럼, 백성들을 억압하여 불만이 팽배한데도 그들을 누르기 위해 법률이나 형벌 등의 제도를 더욱 강화한다면, 그 정치는 오래 갈 수 없다. 이미 나라를 다스리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도를 더욱 강화하여 백성들을 탄압하게 되면, 결국에는 지도자의 자리에 오래 있을 수 없거니와 나아가 나라를 보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2.
주지하다시피 대한민국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적인 아동(해외 입양아) 수출국이었다. 그런데 이를 불명예라고 판단하여 2011년 기존의 입양특례법을 전면 개정하여 2012년부터 시행해왔고, 덕분에(?) 해외 입양율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입양특례법은 과연 우리에게 필요가 법률일까?
표면적으로 보면 그렇지만, 이 통계 뒤에는 우리가 모르는 진실이 숨어있다. 개정된 입양특례법의 주된 특징은 친부모가 의무적으로 출생신고 및 가족관계 등록을 해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해외 입양대상자들은 대부분 그들의 친부모가 자신의 신분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데 그 문제점이 있다. 바꿔 말해서 해외입양아들의 수치가 통계적으로는 감소했지만, 사실상 이들은 입양특례법으로 인해 해외에 나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조차도 놓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는 또 우유의 수급 불균형현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 역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가격을 낮추지 못한다. 왜 그럴까? 이 기회에 그동안 우유를 마음껏 접하지 못했던 아동들에게 원활하게 공급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이유는 2013년부터 ‘원유가격 연동제’를 시행하고 있어서, 원유의 기본가격을 낮추지 못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이러한 제도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9-3: 金玉滿堂,莫之能守。
금과 옥이 집에 가득하면, 그것을 지킬 수 없다.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재물을 늘리려 하면, 결국 원래 있었던 재물까지도 모두 잃게 되니, 지도자는 결코 재물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9-4: 富貴而驕,自遺其咎。
부귀하고도 교만하면, 스스로 그 재앙을 남기는 것이다.
충분히 재물을 보유하여 부귀한데도 겸손해하지 않고 오히려 교만하면, 이는 자기에게 재앙을 남기게 되는 것이니, 결국 지도자의 자리를 잃게 될 뿐만 아니라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9-5: 功遂身退,天之道。
공을 이루면 자신은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리이다.
이처럼 태평성대를 이끌었던 지도자들은 공로를 세워도 그 공로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겸손해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존경을 받고 있으니, 이는 지도자가 지켜야 할 하늘의 도리 즉 순리인 것이다.
3.
이제 이와 관련하여 중국 춘추시대 이야기 하나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보기로 하자. 남쪽에 위치해있던 오(吳)와 월(越)은 국경을 접하고 있어서, 끊임없이 영토분쟁을 해왔던 철천지원수지간의 나라였다. 오죽했으면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고사성어까지 등장했겠는가! 한 번은 오나라 왕 합려(闔閭)가 친히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나섰다가 큰 상처를 입고 돌아왔는데, 상처가 아물지 못해 끝내 목숨을 잃게 되었다. 죽을 때까지 편히 눈을 감지 못한 합려의 모습을 본 아들 부차(夫差)는 복수의 칼을 갈고, 수 년 후 부차는 드디어 원수인 월나라를 멸망시키고 또 임금 구천(句踐)을 생포했다.
당연히 부차는 구천의 목을 베어 부친의 원한을 풀었어야했지만, 구천의 모신(謀臣)이었던 범려(范蠡)의 치밀한 사전 로비와 부차의 안일한 생각(전승국 임금으로서 패전국 임금이 목숨을 구걸하는 걸 받아드리지 못했다는 후세의 비난을 염려)으로 인해서, 그만 구천을 귀양 보내고 만다. 그러고 나서 부차는 주색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게 된다.
구천과 범려는 감시를 피해 수년 간 와신상담(臥薪嘗膽: 이 성어는 바로 여기서 유래한다.)하여 복수의 칼을 갈고, 흩어졌던 월나라 유민들을 불러 모아서 드디어 역사적인 거사에 성공하게 된다. 범려는 임금 구천에게 부차의 목을 베어야 한다고 간언하지만 구천은 범려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고, 바로 그때 범려는 자신이 섬기던 임금 구천의 관상을 다시 한 번 살피게 되었다. 그랬더니 구천은 머리가 작고 목은 길며 어깨는 좁은 것이 마치 학의 형상과도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학의 관상은 어려움은 함께 할 수 있지만, 즐거움은 함께 나눌 수 없다고 했다. 범려는 그날 밤 필수품 몇 가지만 수레에 태운 채 월나라를 벗어났다. 그리고 가는 도중에 절친한 벗이었던 한 장군의 집에 잠시 들러, 자기와 함께 떠나자고 설득했다. 하지만 범려의 벗이었던 장군은 오히려 황당하다는 듯이 말한다. “아니 임금께서 크게 연회를 열어 우리의 공을 치하하신다고 했는데, 그 무슨 당치도 않은 소리요!”라고. 이에 범려는 미련 없이 홀로 월나라를 벗어나 초나라고 건너갔고, 월나라 임금 구천이 연 연회에 참석한 공신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결국 공수신퇴(功遂身退)는 “공을 이루면 자신은 물러난다.”는 도리이니, 태평성대를 이끈 지도자들은 눈앞의 것에 집착하지 않고 하늘의 뜻 즉 천성에 따랐기 때문에, 나라를 평안하게 할 수 있었고 또 자신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4.
노자의 집착에 대한 경고는 12장과 13장에서도 계속된다.
12-1: 五色令人目盲,五音令人耳聾,五味令人口爽,馳騁畋獵令人心發狂,難得之貨令人行妨。
화려한 색은 사람의 눈을 어지럽히고, 번잡한 소리는 사람의 귀를 영활하지 못하게 하며, 푸짐한 음식은 사람의 입을 어긋나게 하고, 질주하여 하는 사냥은 사람의 마음을 방탕하게 하며, 희소한 물건은 사람으로 하여금 순조롭지 못하게 한다.
화려한 색채는 사람의 눈을 현란하게 어지럽혀서 정확하게 보지 못하게 하고, 화려한 소리는 사람의 귀를 현란하게 어지럽혀 정확하게 듣지 못하게 하며, 지나치게 풍성한 음식은 사람의 미각을 상하게 하여 올바르게 음미하지 못하게 하고, 절제 없이 마음껏 하는 사냥은 사람의 마음을 방탕하게 하여 올바른 정치를 펴지 못하게 하며, 진귀한 보물은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혀 규칙을 어기게 한다.
12-2: 是以聖人為腹不為目,故去彼取此。
이 때문에 성인은 배부름에 종사하지 눈에 종사하지 않는데, 그러므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이 때문에 태평성대를 이끈 지도자들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배부름만을 해결하려고 하였지, 눈의 유혹 즉 화려하고 방탕한 생활과 재물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덕치에 방해가 되는 유혹들을 모두 버리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배부름만을 해결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13-1: 寵辱若驚,貴大患若身。
총애함과 모욕에 마치 놀란 듯 하는 것은, 자신을 중시하는 것처럼 큰 재앙을 중시하는 것이다.
총애를 얻기 위해 급급해하고 또 총애를 얻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고 실망하는 것은 자기에 대한 집착이다. 이렇듯 나라를 이끄는 일에 종사하는 자가 자기를 버리지 않고 오히려 그 자리에 너무 집착하게 되면, 결국에는 큰 불행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13-2: 何謂寵辱若驚,寵為下。
어떠한 것을 총애를 얻음과 굴욕을 받음에 놀란 듯하다고 일컫는가하니, 총애를 얻음은 아래에 있는 것이다.
총애를 얻기 위해 급급해하고 또 총애를 얻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고 실망하는 것은 자기에 대한 집착이다. 이렇듯 나라를 이끄는 일에 종사하는 자가 총애를 얻기 위해 급급해하고 자기에 대해 집착하는 것을 하등의 부류라고 일컫는 것이다.
13-3: 得之若驚,失之若驚,是謂寵辱若驚。
그것을 얻음에 놀라는 듯하고, 그것을 잃음에 놀라는 듯하니, 이를 총애를 얻음과 굴욕을 얻음에 놀라는 듯하다고 이른다.
총애를 받았다고 놀란 듯 크게 기뻐하고 총애를 받지 못했다고 놀란 듯 크게 실망하는 것을 일컬어, 총애를 얻기 위해 급급해하고 또 총애를 얻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고 실망한다고 하는 것이다.
13-4: 何謂貴大患若身?
어떠한 것을 자신을 중시하는 것처럼 큰 재앙을 중시한다고 이르는가?
무엇을 나라를 이끄는 일에 종사하는 자가 자기를 버리지 않고 오히려 너무 집착하게 되면, 결국에는 큰 불행을 당하게 되는 것이라고 일컫는가?
13-5: 吾所以有大患者,為吾有身。
내게 큰 화가 있는 것은, 나 자신을 돌보기 때문이다.
태평성대 특히 대동사회를 이끈 지도자들은 자기를 버리고 백성들 아래에 처함으로써 백성들의 신망과 지지를 받았는데, 그와 반대로 자기를 버리지 않고 집착하여 백성들 위에 군림하려 들어 덕치를 펴지 못하면, 결국 지도자의 자리를 지킬 수 없거니와 나아가 불행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13-6: 及吾無身,吾有何患?
이에 나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면, 내게 무슨 화가 있겠는가?
태평성대를 이끈 지도자들은 이처럼 자기를 버리고, 백성들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삼았다. 자기를 아래에 두어 항상 백성들을 두려워하고 공경하였기에, 그들의 신망과 지지를 한꺼번에 받을 수 있었으니, 지도자에게 어떠한 재앙이 닥칠 수 있었겠는가?
5.
우리는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서 13장과 직결되는 사례를 많이 접해왔지만, 필자는 이 13장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서 설명하곤 한다. “가령 대통령께서 ‘인천대 안성재 교수를 교육부장관에 임명한다!’고 하시면, 저는 만면에 희색을 띄면서 ‘아! 제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외치겠지요. 또 ‘역시 대통령께서는 사람 보는 안목이 탁월하셔!’라고 주변사람들에게 떠들고 다닐 겁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능력을 펼치지 못해 장관직에서 해임된다면, 곧 자세를 바꿔 ‘대통령이 사람 보는 안목이 없어!’라고 투덜대겠지요. 그리고 이것이 바로 총애를 얻음과 굴욕을 받음에 놀란 듯하다는 것이고, 자신을 중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참된 지도자라면 장관이 되건 아니면 다시 자기 본연의 자리로 돌아오건 간에 크게 연연치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사를 돌보는 자리에 나아가게 되면 오로지 나라와 백성의 안위만을 위해 일할 것이고, 물러나면 사심 없이 자기 본연의 자리로 돌아와서 역시 한결같은 마음으로 최선을 다할 따름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서 ‘충성(忠誠)’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여기서 잠시 짚고 넘어가기로 하자. 우리는 ‘충성을 다한다.’라는 표현을 참으로 많이 접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과연 ‘충성’이란 무엇일까? 충(忠)이란 ‘가운데 중(中)’과 ‘마음 심(心)’이 합해진 형성문자(形成文字: 하나는 소리를, 그리고 또 하나는 의미를 지니는 문자)이니, 바로 마음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공변되게 한다는 뜻이다. 또한 성(誠)이란 ‘말씀 언(言)’과 ‘이룰 성(成)’이 합해진 역시 형성문자이니, 다름 아닌 내뱉은 말은 반드시 이룬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므로 허신(許愼)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믿을 신(信)과 정성 성(誠)은 사실상 같은 의미를 지닌다.”라고도 설명한 바 있고.
13-7: 故貴以身為天下,若可寄天下; 愛以身為天下,若可託天下。
그러므로 귀히 여김이라 함은 자신을 돌보듯 세상을 귀히 여기는 것이니,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세상을 맡길 수 있다; 우러러 섬김이라 함은 자신을 돌보듯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니, 만일 그럴 수 있다면 세상을 부탁할 수 있다.
따라서 귀중하게 여긴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아끼는 마음으로 나라와 백성들을 아낀다는 뜻이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백성들이 그를 지도자로 추대하여 나라를 이끌게 할 것이다. 우러러 섬긴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라와 백성들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백성들이 그를 지도자로 추대하여 나라를 이끌게 할 것이다.
6.
이와 관련하여서는, [맹자(孟子)] <이루(離婁)>편에 나오는 한 구절 “禹稷顔子易地則皆然(우직안자역지즉개연)”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구절은 “우와 후직과 안회는 입장 바꿔도 곧 모두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라고 직역할 수 있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성어는 바로 이 구절에서 비롯된 것으로,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라.”라는 듯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하긴, 이렇듯 의미가 변용된 것이 어디 이뿐이겠는가? “사돈이 밭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격언 역시 본래는 “사돈이 밭을 사면 그 밭에 가서 배가 아플 정도로 대변을 보아 거름이 되도록 보태준다.”라는 의미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이기적인 뜻으로 변질되지 않았던가!
어쨌든 다시 돌아와서, 이제 이 구절을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아버지 곤(鯀)이 요(堯)임금의 명을 받아 치수를 시도했으나 성과가 없어서, 순(舜)임금 때 참형을 당하고(혹은 귀양을 가서 죽었다고도 함) 아들 우(禹)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으니, 우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우는 슬픔을 딛고 13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치수에 힘썼는데, 수차례 자기 집 앞을 지나면서도 단 한 차례도 들르지 않는 등의 노력 끝에 드디어 치수에 성공하게 된다. 그런 우가 치수의 명을 받아 전국을 도는 중, 하루는 홍수에 떠내려가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내 탓이다, 내 탓이다! 내가 일을 바로 하지 못해서 죄 없는 백성들이 그 피해를 입었다!”라고.
후직(后稷)은 순과 같은 시절 농업을 관장하던 인물이었는데, 하루는 기근으로 굶주리는 백성들을 보자, 역시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내 탓이다, 내 탓이다! 내가 일을 바로 하지 못해서 죄 없는 백성들이 굶주린다!”라고.
안자 즉 안회는 공자가 가장 아끼던 제자였는데, [논어(論語)] <옹야(雍也)>편을 보면 다음의 기록이 남아있다.
子曰: “賢哉,回也。一簞食,一瓢飮,在陋巷,人不堪其憂。回也,不改其樂。賢哉,回也。”
공자가 이르시기를: “현명하구나, 안회여. 대나무 그릇의 밥, 표주박의 물, 누추하고 좁은 마을에 기거함, 사람들은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한다. 안회는,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않으니, 현명하구나, 안회여.”
만약 우가 후직이었다면, 후직이 안회였다면, 그리고 안회가 우였다면 그들은 자세를 달리하였을까?
결국 노자는 다시 한 번 지도자의 자세를 언급하여, “백성들을 어려워하고 자신을 사랑하듯 그들을 사랑할 수 있다면, 만일 그럴 수 있다면 세상을 부탁할 수 있다.” 즉 백성들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노자 다시보기] Aporia Review of Books, Vol.3, No.8, 2015년 8월, 안성재, 인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