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圖蘭道欄) [3]: 묵자의 기구한 운명

사고실험을 해보자. 천하가 십 수개의 나라로 나뉘어 저마다 최후의 승자가 되고자 노상 전쟁을 벌인다. 피를 보면 광기가 더 돋는다고, 전쟁의 양상은 갈수록 대형화되고 장기화된다. 급기야 대량학살을 자행하는 집단 광기에 빠진다. 영토를 넓히지 않으면 망한다면서 온 들판을 시체로 가득 채우고, 온 성을 시신으로 가득 채우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사람을 위해 땅을 차지하는 게 아니라 땅에게 사람고기를 먹이고 있다는 한탄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렇다고 전쟁을 안 할 수도 없는 일, 군림은커녕 망하지 않으려면 무력을 키워야 하는 상황이다.

작지만 강했던 묵자 공동체

그러나 이미 쓸 수 있는 힘은 거의 다 쓴 상태, 결국 백성들의 고혈이 빨리기 시작한다. 자, 이런 상황에서 백성이었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겠는가?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넘어갈 즈음, 묵자(墨子, 468?～376? BC)란 이가 선택한 길은 공동체를 만들어 그 피비린내 진한 세상과 멀찍이 떨어져 사는 방식이었다.

이름이 ‘적(翟)’이라고 알려진 그는 일찍이 공자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내 그곳을 떠나 훗날 ‘묵가(墨家)’라 불리는 학파를 창시한다. 그가 공자의 문하를 떠난 이유는 유가의 학문이 실용적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의전(義戰, 의로운 전쟁)’과 같은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우며 전쟁을 일으킨다거나, 백성을 교화한답시고 비용이 많이 드는 악단을 운영하는 것 등등,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일을 성인(聖人)의 이름으로 자행하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그 와중에서 손해보고 고통당하는 이들은 어김없이 평민이었다. 하여 그는 평민을 위한 사상과 삶의 방식을 제시한다. 그 대강은 다음과 같다.

우선 뜻을 같이 하는 이끼리 공동체를 만든다. 공동체 안에서는 ‘겸애(兼愛, 차별 없는 사랑)’를 한다. 내 부모 내 자식이라고 하여 다른 이보다 더 사랑한다거나, 혈연관계가 아니라고 하여 다른 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금기이다. 생활은 실질적이어야 하고 검소해야 한다. 부모의 은혜를 다 갚는다며 ‘삼년상’을 지낸다거나, 자기가 정당하게 번 것이라 하여 필요 이상으로 쓰는 것 역시 금기이다. 성원 모두가 자신에게 걸맞은 노동을 통해 생계를 도모하고 생산된 물품은 공동으로 관리하고 함께 나눠썼다. 이윤이 생겨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공동체에 들어온 이들은 저마다 기술을 익혀야 했다. 수레바퀴 제조의 달인으로 알려진 묵자만큼은 아닐지라도 묵가 공동체의 성원은 자신이 맡은 일에 열심을 내어야 했다.

다음으로 공동체 성원의 전투력을 막강하게 키운다. 아니, 피비린내 진동하는 세상과 등졌다면서 전투력 증진을 도모했다니? 분명 모순된 행동이다. 그러나 이는 ‘작은 규모’의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당시는 잦은 전쟁과 일상화된 국가 폭력 아래 평민 계층은 삶의 기반이 완전히 와해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평민들이 그래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리로 사람들이 몰려들 것은 빤한 일, 그렇게 징세와 부역의 원천인 백성이 빠져나가는데 그 모습을 보고 국가가 가만있을 리는 없을 터다. 하여 그들로부터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강력한 전투력을 갖추는 것은 신념의 차원이 아닌 생존의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한 조치였다. 후에 논자들은 이를 두고 묵가들은 공격용 전쟁에는 반대했지만, 수비용 전쟁에는 달인이었다고 평가한다.

끝으로 공동체 성원은 자신보다 나은 자[거자(鉅子)]를 믿고 따라야 한다. 저마다 기술을 지니고는 있지만, 지식을 실용적인 테두리 안에서 인정하였기에 자칫하면 공동체 전체가 ‘어리석은 대중[愚衆]’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현명한 이를 숭상해야 하고, 그들의 의견을 중심으로 성원의 뜻을 모아야 한다. 기존의 관습과 몸에 밴 습관에 의해 행동해서는 안 되고, 선한 존재인 하늘의 뜻을 기준 삼아 운명을 넘어 진취적이며 능동적으로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그랬을 때만이 ‘작지만 강한’ 공동체를 유지하며, 그나마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묵자의 이런 지향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그의 사후에도 묵가 공동체는 성장을 계속하였고, 그 대중적 영향력은 유가나 법가를 한참 상회하고도 남았다. 유학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맹자가, 묵자는 사람을 짐승으로 만든다며 인신공격을 퍼부은 것도 이해가 될 정도였다.

그런데 그렇게 번성했던 묵가 공동체가 일순간 역사의 전면에서 사라진다. 대충 제국 진(秦)의 시황이 나와 전국을 통일하던 즈음에 있었던 일이다. 진시황은 선대의 왕들이 잘 닦아놓은 국력을 바탕으로 다른 강대국들을 차례차례 합병한다. 학자들은 이 과정에서 진나라로 옮겨간 묵가 공동체가 큰 힘을 발휘했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한다.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묵가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온 일군의 세속 지향적 집단이 진시황에게 투항하여 그의 통일 사업을 도왔고, 그들의 위력을 본 진시황이 통일을 완수하자마자 가장 먼저 그들을 제거했다는 것이다.

묵가의 기구한 운명은 이렇게 시작된다. 진 제국을 이어 받은 한(漢) 제국도 묵가사상을 철저하게 배척한다. 그 이후 거의 이천 년 가까운 세월 동안 묵가사상은 금단의 영역에 갇혀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다. 그러다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잠자는 사자’ 아니 ‘깰 줄 몰랐던 사자’에 불과했던 중국은 서구 열강과 붙는 족족 깨진다. 이에 도깨비 취급을 하던 서양인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각성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서양문명을 배우자는 운동을 벌이게 된다. 그 와중에서 서양의 민주니 인권, 박애와 같은 이른바 근대 시민사회의 덕목이 소개되었는데 이때 묵가사상이 부활된다. 서양문명을 받아들이는 데에 자존심이 잔뜩 상해 있었던 중국인들의 귀에 박애니 휴머니즘이니 하는 단어가 들리는 순간 묵자의 겸애가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난 이천 년 가까운 시절 동안 이단이란 이름 아래 학대당했던 묵가사상이 선진적이고도 근대적인 사상으로 재평가됐던 것이다.

그러나 좋은 시절도 잠깐, 중국 대륙에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되고 대만엔 장개석 정부가 들어서자 묵가에 대한 얘기는 다시 싹 들어간다. 서구의 제국주의적 침탈에 맞서 혼란을 수습하는 데에는 쓸모가 있었지만, 막상 정국이 안정되자 그 옛날 진시황 시절처럼 다시 ‘팽’을 당하고 만 셈이었다. 왜 이런 일이 이천 여년의 시차가 남에도 반복되었을까? 혹 묵가사상에는 시대와 체제를 초월하여 권력을 쥔 자들이 꺼리는 그 무엇이 들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실이 그러했다. 묵가사상에는 기득권층의 심사를 거스르는 ‘엄청난 것’이 함께 있었다. 바로 ‘이익의 균등한 배분[교상리交相利]’이란 주장이었다. 공동으로 생산하고 공동으로 분배하며, 남는 재화는 공동체가 공적으로 소유한다는 원칙! 늘 ‘겸애’와 함께 언급되다보니 그것에 비해 별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실은 이 덕목을 고안하고 실천하였기에 묵가 공동체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폭 넓은 지역에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이는 기득권층을 건드리는 ‘역린(逆鱗)’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여 어떤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든, 난국만 수습되면, 묵가사상은 금지해야 할 영순위였던 것이다. 이익을 균등하게 배분한다? 이 어찌 기득권층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상이란 말인가!!!

【관련 원문과 해석】

 ❍ 땅을 차지하고자 전쟁을 하고는 사람을 죽여 온 들판에 가득 차게 하고, 성을 차지하고자 전쟁을 하고는 사람을 죽여 온 성에 가득 차게 한다. 이는 땅에게 사람 고기를 받친 셈이니, 그 죄는 죽음으로도 용서될 수 없다.(爭地以戰, 殺人盈野, 爭城以戰, 殺人盈城. 此所謂率土地而食人肉, 罪不容於死.)-<맹자(孟子)> ｢이루상(離婁上｣.

 ❍ 사람 한 명을 죽이면 불의라면서 반드시 한 명을 살인한 죗값을 치르게 한다. 동일한 맥락에서 계속 말하자면, 열 명을 죽이면 열 배나 불의한 것이기에 열 명을 죽인 죗값을 치르게 하며, 백 명을 죽이면 백 배나 불의한 것이기에 백 명을 죽인 죗값을 치르게 한다. 이런 일에 대해선 온 천하의 군자들이 다 비난할 줄 알아 불의라고들 말한다. 그런데 지금 큰 불의를 저질러 다른 나라를 공격해도 비난할 줄 모르고 오히려 이를 좇으며 명예로 여긴다.(殺一人, 謂之不義, 必有一死罪矣. 若以此說往殺十人, 十重不義, 必有十死罪矣. 殺百人百重不義, 必有百死罪矣. 當此天下之君子皆知而非之. 謂之不義 今至大爲不義. 攻國則弗知非, 從而譽之.)-<묵자(墨子)> ｢비공상(非攻上)｣.

❍ 묵자는 말한다. “지금 천하의 왕과 제후, 귀족, 사군자들이 진실로 자신들의 국가를 부유케 하고 인구를 늘게 하며, 형정을 바르게 행하고 사직을 안정시키고자 한다면 마땅히 거자(鉅子)를 숭상하고 그와 같이 되는 것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정치의 근본이기 때문이다.(子墨子曰. 今天下之王公大人士君子, 請將欲富其國家, 衆其人民, 治其刑政, 定其社稷, 當若尙同之不可不察, 此之本也.)-<묵자(墨子)> ｢상동중(尙同中)｣.

❍ 성왕이 나타나지 않자 제후는 방자해졌고, 처사들이 아무 의론이나 함부로 제기하다보니 양주와 묵자의 언설이 천하에 가득 차게 되었다. 하여 천하의 언설은 양주에 귀속되지 않으면 묵자에 귀속되었다. 양주의 나만을 위해야 한다는 설은 임금을 부정한 것이고, 묵자의 겸애는 부모를 부정한 것이다. 부모를 부정하고 임금을 부정하는 이것이 금수이다.(聖王不作, 諸侯放恣, 處士橫議, 楊朱墨翟之言盈天下. 天下之言, 不歸楊則歸墨, 楊氏爲我, 是無君也, 墨氏兼愛, 是無父也, 無父無君, 是禽獸也.)-<맹자(孟子)>｢등문공하(滕文公下｣.

 ❍ 다른 사람을 자신처럼 여기면 그 누가 타인을 해치겠는가? 따라서 도적이 사라질 것이다. … 다른 대부의 강역을 자신의 강역처럼 여기면 그 누가 혼란케 할 것이며, 다른 제후의 나라를 자신의 나라처럼 여기면 그 누가 공격하겠는가? 따라서 대부가 다른 대부의 강역을 어지럽히거나 제후가 다른 제후의 나라를 공격하는 일이 사라질 것이다. 만약 온 천하로 서로가 겸하여 사랑하게 하고 나라와 나라가 서로 침공치 않게 하며 대부와 대부가 서로를 어지럽히지 않게 한다면, 도적이 사라질 것이며 군신과 부자가 모두 효성스럽고 자애롭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된다면 천하는 태평해질 것이다.(視人身若其身, 誰賊, 故盜賊亡有. … 視人家若其家, 誰亂。視人國若其國, 誰攻, 故大夫之相亂家, 諸侯之相攻國者亡有. 若使天下兼相愛, 國與國不相攻, 家與家不相亂, 盜賊無有, 君臣父子皆能孝慈. 若此則天下治.)-<묵자(墨子)> ｢겸애상(兼愛上)｣.

 ❍ 하늘은 반드시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이롭게 하게끔 하고, 서로 미워하고 서로 해치지 않게끔 하고자 한다. 하늘이 사람들로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이롭게 하게 함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늘은 사람들을 두루 겸하여 사랑하고 두루 겸하여 이롭게 하기 때문이다. 하늘이 사람들을 두루 겸하여 사랑하고 두루 겸하여 이롭게 함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늘은 사람들을 두루 겸하여 보전해주고 두루 겸하여 먹여주기 때문이다.(天必欲人之相愛相利. 而不欲人之相惡相賊也. 奚以知天之欲人之相愛相利. 而不欲人之相惡相賊也. 以其兼而愛之. 兼而利之也. 奚以知天兼而愛之. 兼而利之也. 以其兼而有之. 兼而食之也.)-<묵자(墨子)> ｢법의(法儀)｣.

* 이 글은 동일한 제목으로 <사과나무> 2007년 5월호에 게재한 것을 수정한 것입니다. 이 저술에 대한 저작권은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도란도란] Aporia Review of Books, Vol.2, No.10, 2014년 10월,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