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속에서 소크라테스는 묻고 또 묻는다. 그 질문은 진리를 향하며, 그의 태도에는 진리가 그의 삶을 값진 것으로 만들어 주리라는 신념으로 가득 차 있다. 『파이돈』은 감옥에서 동료와 제자들에 둘러싸인 채로 독배를 마시며 죽어가는 소크라테스의 최후 모습을 그려낸다. 죽음을 앞에 둔 그의 모습은 매우 평화롭다. 슬퍼하며 안타까워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그가 펼쳐내는 결론은 ‘앎에 대한 사랑’(philosophia)에 일생을 바치는 삶이 가장 값지다는 것. 그는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는 믿음으로 평온했다. 하지만 물음은 계속 이어진다. 그렇다면 무엇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가?
이에 대해 플라톤이 『국가』에서 소크라테스를 통해 제시하는 대답은 바로 ‘좋음’(agathon)이다. ‘좋음’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나 공적인 차원에서 실천적인 지혜, 곧 현명함(phronēsis)를 갖춘 사람은 반드시 좋음이 무엇인지, 무엇이 좋은 것인지를 알아야만 한다. 좋음은 모든 옳고 훌륭하며 아름다운 것들, 그리고 유용하고 유익한 것들의 근본적인 원인(aitia)이기 때문이다(517b~c, 505a).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지 않는다. 플라톤의 작품으로 알려진 『대(大)히피아스』에 나오는 소크라테스는 아름다움을 유용함(to kresimon)으로 보려고 한다. 유용함이란 목적(telos)을 달성하는 능력(dynamis)과 관련되며, 그 목적이란 결국 좋음이다. 따라서 좋음이 모든 것들의 원인이라고 했던, 『국가』에서 제시된 결론이 뒤집힌다. 아름다움은 유용함이며, 유용함이 좋음을 낳기 때문에 아름다움은 좋음의 원인이며 아버지고, 좋음은 아름다움의 결과며 아들이 된다는 것이다(295c~297e).
또한 『향연』에서 플라톤은 인간에게 삶이 살 만한 가치 가 있게 되는 것은 “아름다움 바로 그것 자체(auto to kalon)를 바라보면서(theōmenōi) 살 때”라는 말을 한다(211d).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를 알 때 비로소 인간의 삶은 훌륭하고 가치 있는 삶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참된 앎을 사랑하고 추구하는 철학자(philosophos)란 결국 아름다움을 알려고 하는 사람이다. 『파이드로스』에 나오는 말로 표현하면,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philokalos)이 곧 참된 철학자인 셈이다(248d). 철학자를 아름다움과 연결시키는 생각은 비단 철학자인 플라톤의 것만은 아니었다. 투퀴디데스의 기록에 따르면, 당대 유력한 정치인이었던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시민들이 “지혜를 사랑하며”(philosophein) 또한 “아름다움을 사랑하는”(philokalein) 사람들임을 자랑스럽게 역설하였다고 한다(『펠로폰네소스 전쟁사』 II, 40, 1). 플라톤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좋음과 아름다움. 이는 플라톤이 최상의 가치로 제시한 두 가지로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뿐 아니라 영원불멸하는 신조차도 이를 지향한다. 플라톤이 『티마이오스』에서 그려낸 우주의 창조자 ‘데미우르고스’(Dēmiourgos)는 인간들이 살아갈 우주 만물을 만들 때, “본성에서 가능한 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좋은 것이 되도록”(30b) 하여 우주 자체가 하나의 “행복한 신”으로 생겨나게 하였다고 한다(34b). 플라톤이 쓴 표현은 그의 독창적인 조어는 아니다. 그리스어에서 아름다움(kalos)은 좋음(agathos)과 흔히 짝을 이룬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최고 수준을 나타낼 때, “아름답고도 좋은”(kalos kai agathos = kalos kagathos)이라고 두 단어가 하나처럼 묶여 쓰이는 경우가 많다. “아름답고도 좋은 사람”(kalos kagathos anthropos)이라는 말은 가장 바람직한 인간형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표현이다.
플라톤은 이 낱말을 아테네인들을 가리 킬 때 사용하였다. 전쟁에서 가장 빼어나며, 가장 훌륭한 법 체제를 갖추었고, 가장 아름다운 행적들을(kallista erga) 이루었으며, 가장 아름다운 정체를(politeiai kallistai) 실현한 아테네인들이 “인류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도 가장 좋은 종족”(to kalliston kai ariston genos)이라고 표현했던 것이다(23b~d). 『국가』에서도 플라톤은 좋음을 지향하는 현명함(phronēsis agathou)을 “아름다움과 좋음에 대한 실천적 지혜가 있음” (kalon kai agathon phronein)과 연결시킨다(505b). 이렇게 아름다움과 좋음은 서로를 보증하며 서로 묶인다. 『향연』에서 표현되듯이, 좋은 것들에 대해서는 언제나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고(201c),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좋은 것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둘은 떼어 생각하기 힘든 관계에 있으며, 행복한 사람이 갖추어야 할 조건이기도 하다(202c).
행복이 가장 높은 가치이며, 여기에 좋음이, 그리고 좋음에 아름다움이 직결된다면, 아름다움은 플라톤의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행동의 아름다움을 궁리할 때 플라톤의 윤리학이 성립하며, 국가 체제와 법률의 아름다움을 추구할 때 플라톤의 정치학이 탄생할 것이다. 실제로 플라톤이 그리는 ‘이상국가’, 즉 훌륭한 나라 (agathē polis)는 “아름다운 나라”(kallipolis)로 개념화된다(『국가』 527c). 자연이 구현한 아름다움을 탐구할 때 물리학이 나오고, 천문학은 천체의 움직임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의 비밀을 캘 때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 자체를 바라보며 그 실체와 본질을 탐구하며, 그것이 원인이 되어 일으키는 다양한 아름다운 것들의 현상을 이해할 때, 그의 형이상학은 전모를 드러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아름다움은 플라톤 철학이 다루는 여러 주제들 가운데 하나라기보다는, 모든 주제를 두루 엮어내는 구심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아름다움에 관한 논의는 이른바 미학이나 예술의 지평을 훌쩍 뛰어넘어 플라톤 철학의 전 영역으로 확장된다. 플라톤의 철학은 곧 아름다움의 철학인 셈이다. ‘지혜사랑’으로서의 철학은 궁극적으로 아름다움(kalon)에 대한 사랑에 다름 아니며, 최고의 지혜는 ‘아름다움’을 아는 데에서 성립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알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 자신이 아름답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면 단순히 외모를 가꾸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궁극적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가면을 쓰고 이렇게 말한다. “이보게 친구, 가장 지혜로운 것(to sophôtaton)이 어떻게 더 아름다워(kallion) 보이지 않을 수 있겠나?”(『프로타고라스』 309a) (4)
4. 알키비아데스보다 아름다운 프로타고라스
‘가장 지혜로운 것이 더 아름답다.’ 이 말은 『프로타고라스』 편의 시작 부분에 나오는 말이다. 이 말은 ‘아름다움’에 관한 흥미로운 쟁점을 제공한다. 대화편의 첫 장면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온 소크라테스에게 한 친구가 묻는다. “소크라테스, 어디서 나타나는 거지? 한창 때인 알키비아데스를 쫓다가 오는 것이 틀림없어. 그렇지? 하긴 엊그제도 보니까 알키비아데스는 여전히 아름다운 남자던 걸.”(309a) 알키비아데스는 당시 아테네에서 이름이 나 있던 귀족 출신의 미소년이었다. 알키비아데스에 관해 소크라테스의 친구가 붙인 “아름다운 남자”(kalos anêr)라는 표현은, 소크라테스가 호메로스의 구절을 인용하며 맞장구쳤듯이, 16세가량의 소년이 뿜어내는 외모의 아름다움에서 비롯된 말이다. 호메로스는 제우스의 전령인 헤르메스가 인간들 앞에 나타날 때, ‘갓 수염이 나기 시작한 한창때의 젊은이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했는데(『일리아스』 24.346-8, 『오뒷세이아』 10.278-80), 소크라테스는 이와 같은 호메로스의 표현을 인용하여 알키비아데스의 ‘아름다움’이 탁월한 외모에서 나오는 것임을 인정하는 듯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소크라테스는 “아름다운 자들에 대한 사랑에 끌리는 성향이 있고, 늘 이런 자들 주변에 있으면서 매혹”되는 사람이었는데(『향연』 216d), 그렇게 멋있고 매력적인 소년을 옆에 두고 있던 소크라테스가 그에게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고, 심지어 그가 곁에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는 ‘아름다운 소년’ 알키비아데스를 잊고 다른 누군가에게 한눈을 판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눈길과 관심을 끌어간 것은 알키비아데스보다 ‘더 아름다운 남자’(kalliôn)였다. 누가 젊음의 절정에서 미모를 뽐내고 있는 알키비아데스보다 더 아름답다는 말인가? 그는 바로 압데라 출신의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였다. 알키비아데스(기원전 450~404년)가 16세라고 했을 때, 소크라테스(469~399년)는 35세고, 프로타고라스(490~420년)는 56세의 나이다. 16세의 소년보다 노년에 접어드는 56세의 중년 남성이 35세의 장년 남성을 매료시킬 수 있는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한다. “이보게 친구, 가장 지혜로운 것(to sophôtaton)이 어떻게 더 아름다워(kallion) 보이지 않을 수 있겠나?” (5)
그런데 ‘더 아름답다’는 말은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무엇과 비교하여 더 아름답다는 것일까? 가장 단순한 대답은 다음과 같은 분석에서 나온다.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의 외모가 갖는 ‘아름다움’과 프로타고라스의 지혜가, 더 정확하게 한다면 ‘가장 지혜로움’의 속성을 갖는 프로타고라스의 영혼의 ‘아름다움’을 비교하면서, 후자가 더 아름답다고 말한 것이다. 비교의 항목은 둘이다. 프로타고라스의 ‘지혜로움’과 알키비아데스의 ‘멋진 외모(또는 외모의 멋짐)’. 알키비아데스의 아름다움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각적 매력을 갖는 반면, 프로타고라스의 아름다움은 영혼에서 비롯되는 지성적이며 정신적인 매력을 갖는다. 이와 같은 비교를 통해 ‘소크라테스’, 그러니까 ‘소크라테스’라는 가면을 쓰고 철학적 연극을 벌이는 플라톤은 아름다움을 육체적인 것에서 영혼과 관련된 정신적인 것으로 확장하여 사용하면서, 영혼의 아름다움이 육체적인 아름다움을 압도한다고 주장한다.
이 비교는 언뜻 보았을 때, 영혼의 아름다움과 육체의 아름다움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언명을 좀 더 꼼꼼하게 따져 본다면, 이런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영혼의 아름다움 가운데, 지혜 이외의 훌륭함이 아름다움의 이름을 가질 수는 없는가? 예를 들어 정의로운 사람은 아름답지 않은가? 용기 있는 사람, 절제력이 뛰어난 사람은 어떤가? 만약 이들이 지혜로운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움’의 이름을 가질 수 있다면, 이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인가? 만약 지혜로운 사람이 정의로운 사람, 용기 있는 사람, 절제력이 뛰어난 사람보다 더 아름답다면, 지혜는 아름다움의 정점에 있다는 말이다. 영혼의 ‘아름다움’은 육체적인 아름다움을 능가하며, 영혼의 아름다움은 ‘지혜로움’에 의해 그 어떤 훌륭함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능가한다고 해석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지혜로움이 아름다움의 값을 매길 때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플라톤의 생각에 주목하여,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캐물어야만 한다.
그런데 『프로타고라스』의 구조와 이야기의 흐름을 보면, 소크라테스는 프로타고라스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뒤에 그 자리를 빠져 나온다. 그리고 친구를 만나서 프로타고라스와 만나 나누었던 대화 내용을 이야기 해준다. 이때 소크라테스는 프로타고라스가 가장 지혜로우면, 따라서 알키비아데스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했는데, 엄밀하게 말하자면, 소크라테스의 판단은 프로타고라스를 만나 그와 이야기를 나눈 뒤에 내린 결론이다. 이 판단이 진지한 것이라면, 소크라테스가 프로타고라스에게서 발견한 ‘지혜’와 ‘아름다움’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혜가 최상의 아름다움을 차지하는 것이라면, 그 지혜와 프로타고라스에서 소크라테스가 발견한 지혜는 최상의 것이며, 다른 모든 아름다움을 능가하고 아름다움의 정점을 차지하는 지혜일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결론은 우리가 소크라테스, 그리고 그 뒤를 잇는 (그리고 그 가면 뒤에 숨겨진) 플라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상식과 어긋난다. 그들은 프로타고라스를 비롯한 소피스트들과 적대적인 관계 속에서 철학적 투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그런 전력으로 유명한 철학자가 프로타고라스를 ‘가장 지혜롭다’고, 그래서 아름다운 청년 알키비아데스는 물론, 다른 어떤 아름다움도 능가한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가능하다면 그것은 진지하지 않은 농담이요 익살스런 역설일 것이다.
5. 알키비아데스를 매료시킨 소크라테스의 아름다움
한편 소크라테스의 태도를 보면, 그는 다른 사람의 겉모습의 아름다움에 일시적으로 우연히 매료될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속에 감춰진 영혼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맛보는 순간 외모의 아름다움에서 느낀 감동과 쾌감은 곧 잊고, 영혼의 아름다움에 자신을 내맡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알키비아데스와 소크라테스의 친분에 의해서도 확인된다. 사람들은 흔히 소크라테스가 알키비아데스를 아끼고 총애하였던 것에 대해 중장년 남성이 어린 사내아이들에게 갖는 ‘소년애’(paiderastia)라고 여기며, 알키비아데스가 소크라테스를 매료시킨 것은 육체적인 아름다움이라고들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은 부정확한 편견임엔 분명하다. 『향연』에서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 선생님은 아름다운 자들에 대한 사랑에 끌리는 성향이 있고, 늘 이런 자들 주변에 있으면서 매혹”되지만(216d) 외모의 아름다움에 매료되는 것은 아님을 분명하게 한다.
비극 경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 때는 기원전 416년 경이었다. 모인 사람들은 때마침 사랑과 애욕의 신 에로스를 찬양하는 말의 향연을 벌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술에 취한 알키비아데스가 난입한다. “가장 지혜롭고 가장 아름다운 자의 머리”에 머리띠를 둘러 주기 위해 왔다며 아가톤에게 덤벼들던 그가 소크라테스를 발견하고는 그와의 ‘부끄러운’ 경험담을 소개한다. “난 그분과 단둘이만 있었고, 곧 그분이 사랑하는 자가 소년 애인에게 내밀하게 나누는 바로 그 대화들을 나와 나눌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즐거워하고 있었네. 그러나 이 비슷한 어떤 일도 전혀 일어나지 않았네.”(217b)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의 설레는 기대감을 무시한 채로 평상적인 대화만을 나누고 떠났던 것이다. 알키비아데스는 이에 굴하지 않고 씨름도 함께 하고, “육탄으로 덮쳐 보고자 결심”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자가 소년 애인에게 일을 꾸미면서 하는 방식과 똑같이” 식사에도 초대하여 결국 같이 침상에 누워 외투로 둘러 덮은 후 두 팔로 둘러 온밤을 같이 누웠지만 허사였다.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가 자신만만해 하던 아름다운 외모와 꽃다운 청춘을 무시했고 비웃었기 때문이다. 알키비아데스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나는 아버지나 형과 함께 잤던 때에 비해 전혀 별스럽지 않는 밤을 소크라테스 선생님과 더불어 보낸 상태에서 아침에 일어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219c-d)
알키비아데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소크라테스가 알키비아데스의 젊음이나 외모의 아름다움에 취하거나 탐닉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사는 그런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키비아데스는 왜 소크라테스에 매료되었으며, 짙은 연정을 나누고 싶어 안달이 났던 것일까? 소크라테스의 외모가 아름다웠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알키비아데스는 그가 사튀로스인 마르쉬아스의 외모를 닮았다고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된 부분도 있는데, 『테아이테토스』 편에서 테오도로스는 소크라테스에게 눈여볼 만한 청년이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 아이는 못 생겼는데요, 들창코도 그렇고 퉁방울눈마저도 당신을 닮았습니다. 당신만큼 심한 편은 아니지만 말입니다.”(143e) 그렇다면 소크라테스의 무엇이 아름다운 청년 알키비아데스를 매료시켰던 것일까?
<주>
(1) A. N.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New York: The Macmillan Company, 1929, p. 63. “the safest general characterization of the European philosophical tradition is that it consists of a series of footnotes to Plato.” (2) 기원전 4세기 플라톤과 ‘철학’ 개념 싸움을 벌인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수사학자로 알려져 있는 이소크라테스(기원전 436-338년)다. 플라톤은 인식을 ‘의견’(doxa)과 ‘지식’(epistêmê)로 나누고, 이 가운데 지식이야말로 참된 ‘지혜’(sophia)며 이런 지혜를 추구하는 것이 ‘철학’(philosophia)이라고 주장하였던 반면, 이소크라테스는 인간은 결코 보편적이고 절대적이며 영원불변한 ‘진리’를 알 수 없으며, 따라서 그것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지식은 변화무쌍하고 급변하는 인간의 삶, 특히 정치적인 삶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비난했다. 그는 오히려 플라톤이 폄하했던 ‘의견’(doxa)의 개념을 참된 지혜의 반열로 올려놓았는데, 급변하는 정치적인 현실 속에서 시의적절한 의견을 구성하여 같은 시민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참된 지혜며, 그런 지혜를 추구하고 가르치는 행위가 바로 철학이라고 주장했다. 플라톤이 ‘에피스테메’ 중심의 철학이라면, 이소크라테스는 ‘독사’ 중심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의 개념 싸움에서 이소크라테스는 완패하였고, 플라톤이 제시한 정의가 서양 철학사의 주류를 형성함으로써 이소크라테스는 서양철학사에서 완전히 배제되고 말았다. “정의(definition)를 두고 벌이는 싸움에서 패배자는 그 여파 속에서 벌어지는 지성적 논의에서 종종 심각한 불이익을 당한다. 더 나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시간이 지나갈수록 패배한 정의와 전투 자체가 지성사의 기록에서 거의 삭제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승리자가 전부 다 가져간 경우도 있다! 기원전 4세기에 철학의 정의를 두고 이소크라테스가 플라톤과 벌인 싸움이 바로 그런 경우다. 이소크라테스가 철학의 한 개념(a conception of philosophy)을 밀고 나가는 데에 상당한 에너지를 쏟았다 해도, 그의 개념은 플라톤이 이 개념 싸움에서 승자였다는 이유로 플라톤의 개념의 그늘 속에서 시들어버린 상태다.” Timmerman, David M. (1998) “Isocrates' Competing Conceptualization of Philosophy”, Philosophy and Rhetoric, Vol. 31, No. 2, p. 145. (3) 튀빙겐 학파의 주장이 대표적인데, 이런 해석의 핵심을 잘 보여주는 주요 저술 세 편은 다음과 같다. Krämer H.J. (1959) Arete bei Platon und Aristoteles. Zum Wesen und zur Geschichte der platonischen Ontologie, Heidelberg. Gaiser K. (1959) Protreptik und Paränese bei Platon. Untersuchungen zur Form des platonischen Dialogs, Stuttgart. Gaiser K. (1963) Platons ungeschriebene Lehre. Studien zur systematischen und geschichtlichen Begründung der Wissenschaft in der Platonischen Schule, Stuttgart. Richard M.-D. (1986) L’enseignement oral de Plato, Paris도 참조할 만함. (4)박종현의 번역(서광사, 2010)과 강성훈의 번역(이제이북스, 2010)을 참조하였고, 최현의 중역본(범우사, 2002, 초판은 1989)도 부분적으로 참조하였다. (5) 『프로타고라스』 309
* 이 글의 저작권은 아포리아에 있음을 밝힙니다. copyrights@aporia.co.kr ([고전 다시읽기] Aporia Review of Books, Vol.2, No.4, 2014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