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의 침묵 (10): 정치와 도덕 (4)

1.인문주의를 넘어서: 마키아벨리의 정치심리학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마키아벨리의 ‘정치심리학’에 내재한 평등주의적인 사고다. 실제로 인문주의자들의 공화주의에는 소크라테스 이래 지속된 ‘좋은 삶’(eu zen)에 대한 존경이 담겨 있다. 세속적인 영광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기독교’와는 다른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궁극적으로 인문주의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탁월함’(arete)에 대한 가르침과 키케로가 말하는 ‘올바른 길(vera via)’을 추구할 수 있는 귀족적 품성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었다. 그러기에 인문주의자들은 키케로가 포에니 전쟁이후 시민적 덕성의 퇴락을 한탄한 것처럼(De Republica 1.25), 자기들도 로마의 영광을 가능하게 했었던 영웅들의 탁월함을 지금의 현실에서 목도하는 부패한 지도자들과 비교한다. 그리고 키케로와 마찬가지로 인민에 대한 견해는 그리 적극적이지 않다(Re Publica 1.51). 변덕스럽고 나태하며, 방탕하거나 배은망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생각 속에는 ‘군주정’과 ‘공화정’의 차이가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았던 것이다. 탁월한 한 사람에 의한 정치라면 그것이 더 좋을 수 있고, 인민을 무장시키기보다 제한적인 형태의 공화정이 더 안전할 수 있으며, 초기 로마 공화정과 같이 원로원이 중심이 된 ‘귀족적 심의’를 꿈꾸었습니다. 한마디로 ‘권력은 민중에게 있지만, 정치적 권위는 원로원에 있다.’는 귀족적 공화주의의 원칙을 전제했던 것이다(De Legibus 3.12.28).

이에 반해 마키아벨리는 탁월한 사람의 ‘고귀함’과 일반 시민의 ‘천박함’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에게 이들은 모두 ‘지배욕’에 이끌릴 수밖에 없는 인간에 불과하다. 일면 마치 아우구스티누스의 이야기를 옮겨놓은 것 같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에게는 신의 ‘은총’(grazia)을 통해 이러한 인간의 무기력함을 극복하려는 시도나 노력이 없다. 오히려 그는 ‘가지려는’(acquistare) 욕구를 긍정하고, 이러한 욕구에 있어서는 모두가 평등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정되는 개개인 또는 집단의 정치사회적 지향성의 차이는 바로 각자가 처한 상대적 위치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즉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사람은 가지기위해 ‘다스리려는 욕구’를 갖게 되고, 상대적으로 열세에 처한 사람은 ‘지배당하지 않으려는 욕구’를 갖게 된다고 믿는 것이다. 

모든 도시(citta)에는 이러한 두 개의 다른 기질들(umori)이 발견되는데, [이러한 기질들은] 이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인민은 귀족들에게 명령받거나 지배당하지 않기를 원하고, 귀족은 인민을 명령하고 지배하기를 원한다(che il populo desidera non essere comandato ne oppresso da’ grandi ed e’ grandi desiderano comandare e opprimere el populo)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다른 욕구들로부터 도시들에서 세 가지 결과들 중 하나가 발생한다. 군주정(principato), 또는 자유(liberta), 또는 방종(licenza)이다 (Principe, 9.(2)).

위에서 피력된 마키아벨리의 정치심리학은 ‘배은망덕’함에 대한 입장에서도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고귀함’과 ‘천박함’은 시민의 정치적 역량을 평가함에 있어서 큰 의미가 없으며, 인민도 귀족도 배은망덕하지만 ‘지배당하지 않기를 원하는’ 전자가 “각각이 삶을 영위하는 법을 조금이라도 더 존중”하기에 훨씬 낫다고 말하는 것이다(Discorsi 1.58.(19)). 다시 말하자면, 귀족들의 ‘지배하려는 욕망’은 어떤 규제 또는 ‘각각이 삶을 영위하는 법을 존중’하도록 견제를 받아야하는 반면, 인민들의 ‘지배당하지 않으려는’ 소극적 열망은 그 자체로 공화정의 운영에 큰 도움이 된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 15장과 16장에서 소위 ‘잘 사는 것’ 또는 ‘탁월함’의 표현으로서 ‘중용’ 또는 ‘절제’가 갖는 정치적 무용론을 역설한다. 우선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4권에 등장하고 있는 모든 덕성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표면적으로는 매우 엉성하고 잘 정리되지 못한 덕성들의 나열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엄밀하게 살펴보면 누구나 그의 수사학적 기술에 탄성을 지를 정도로 정교하다.

마키아벨리는 우선 아리스토텔레스가 두 가지 극단 중에서 탁월한 덕성으로 제시한 ‘중용’ 또는 ‘중간’(mesotes)을 누구나 받아들이는 덕성으로 기술한다. 그리고 여기에 대응하는 악덕들(vizi)을 하나씩 대응시킨다. 그런 연후에 미덕이 악덕이 되는 상황을 설명하고, ‘잘 사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될 때, 그리고 그것이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되었을 때, 도덕적 동기보다 정치적 결과가 행의의 최종 판단근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설득하려고 노력한다.

<군주> 15장과 16장에서 설명되고 있는 ‘관대함’(eleutheriotes)이 대표적인 경우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관대함’이란 경제적인 주고받는 행위에서 지나치게 후하거나 지나치게 인색하지 않는 것, 즉 줄 것을 주고 받아야할 사람에게 주는 미덕이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관대하게 보이려고’ 후한 것과 ‘결과를 예측해서’ 인색하다는 평판을 받는 것으로 완전히 방향을 선회한다. 그리고는 “악덕들 없이는 국가를 구하기가 어렵다면, 불명예가 초래되는 것을 상관해서는 안 될 것이다.”고 주문한다(Principe 15.(11)). 아울러 “그의 신민들을 수탈하지 않아도 되도록, 그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도록, 가난해서 경멸받지 않게 되도록, 어쩔 수 없이 탐욕스럽게 되지 않도록, 군주는 인색하다는 평판이 초래되는 것을 개의치 말아야 할 것이다.”라고 부언한다(Principe 16.(11)). 즉 공동체의 존속이라는 결과는 도덕적 동기와 도덕적 평판에 우선하며, 이러한 잣대에서 볼 때에는 ‘미덕’이 ‘악덕’이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정치적인 영역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2. 마키아벨리의 ‘약한’ 결과주의: ‘비(非)지배 자유’

마키아벨리가 이렇듯 당시 지배적인 담론을 구성했던 기독교와 인문주의의 틀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마키아벨리는 ‘힘’만 가지면 모든 것이 정당화되는 ‘역(力)만능주의’ 또는 힘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상대주의’자였을까? 아니면 마키아벨리는 비판만하고 대안이 없는 무책임한 사상가였을까?

누구든지 현재와 과거의 것들을 숙고해 본 사람이라면 모든 도시들과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열망들(desideri)과 동일한 경향들(omori)이 있다는 것, 그리고 항상 그러했다는 것을 쉽게 알 것이다. 그래서 누구든 과거의 것들을 면밀하게 검토한 사람에게는 모든 공화정에서의 미래의 일들을 예측하고 과거에 사용된 처방들을 취하기가 쉬운 일일 것이다. 만약 사용된 바 없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사건의 유사성으로부터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기가 쉬울 것이다(Discorsi 1.39.(2)-(3)).

위에서 보듯, 마키아벨리는 ‘모든 도시’와 ‘모든 사람’이라는 말을 거침없이 사용한다. 예외적인 경우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인간의 ‘가지려는 열망’과 그러한 열망이 빚어내는 정치심리학적 ‘경향들’은 언제나 동일하다는 견해를 견지한다. 그리고 모든 것은 변화하기에 영원히 존속될 수 있는 제도는 없지만, 인간의 ‘열망들’과 ‘경향들’을 주목한다면 시민적 자유를 획득하고 방법과 그 자유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몇 가지 원칙들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Discorsi 2.proemio.(12)).

첫째, 마키아벨리는 인민들의 소극적 속성, 즉 ‘비(非)지배’를 통해 군주 또는 귀족과 인민 또는 시민이 모두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다고 본다. 우선 그는 ‘명령하다(commandare)’와 ‘억압하다(opprimere)’라는 동사를 구별해, 후자는 ‘노예 상태’와 동일시하는 반면 전자는 공화정이 건설된 이후에는 ‘시민적 자유’와 충돌되지 않는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말하는 ‘비(非)지배’는 노예적인 상태로부터의 해방은 의미할 수 있어도 ‘무(無)정부’와는 구별되는 것으로 인식시키려고 노력한다. 설사 인민이 ‘지배하려는 욕구’가 노출되더라도, 그는 이런 욕구는 오직 ‘비(非)지배’가 보장된 ‘공화정’에서만 발견될 수 있는 부작용이고, 로마공화정의 몰락을 설명하면서도 그는 인민에게 ‘비(非)지배’가 아니라 ‘지배’에 대한 욕구를 심어준 정치 지도자들을 비판한다(Discorsi 1.37.(22)). 그리고 바로 이러한 ‘비(非)지배’가 보장된 정치체제만이 시민들의 애정과 헌신을 기대할 수 있다고까지 말한다(Discorsi 2.2.(43)-(47)).

동시에 마키아벨리는 ‘비(非)지배’가 보장되지 못한 정치체제는 내분과 외세에 휩싸여 오래 지속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강의>뿐만 아니라 <군주>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군주>에서도, 그는 한편으로는 귀족의 탐욕과 참주 살해를 불러온 경우를 통해 군주에게 인민과 연대해야하는 이유를 설명하고(Principe 9.(16)), 다른 한편으로는 신민들에게 자유를 보장하고 그들을 무장시키는 것만이 군주가 자신의 영토를 지켜내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설득한다(Principe 19.(61)-(62)). 그리고 <강의>에서는, 시민적 자유와 영토의 팽창간의 연관성을 설명함으로써 미래의 지도자들에게 조그마한 도시국가에서 지중해를 제패한 로마 공화정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다고 강변한다(Discorsi 3.19).

그리고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충고한다. ‘다수’가 비(非)지배를 꿈꿀 때 시민적 자유가 확보될 수 있고, ‘소수’가 비(非)지배를 위해 노력할 때 정치 공동체는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이다. 여기에는 ‘과두제의 철칙’과 같은 편견은 없다. 다만 냉혹하리만큼 차분한 정치적 현실주의, 그리고 욕망과 실수가 버무려진 인간 사회에 대한 통찰력만이 번득일 뿐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키케로로부터 16세기까지 지속되었던 ‘귀족적 공화주의,’ 즉 집단으로서 인민의 정치적 참여를 배제함으로써 귀족적 심의를 통한 계층 간의 조화를 이상으로 내세웠던 고전적 공화주의가 거부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가 꿈꾼 공화정은 ‘비(非)지배’의 실현을 통해 시민적 자유를 진작시키고, 인민들은 늘 자기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눈을 부라리며 감시하고 갈등을 통해 귀족들을 견제하고, 이들의 ‘지배받지 않고자 하는 열정’을 통해 절제된 통치자들의 ‘지배하고자 하는 열정’은 시민적 자유를 바탕으로 로마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헌신적인 노력으로 전환된다.

둘째, 마키아벨리는 ‘비(非)지배’가 다수의 의사와 구별된 정치적 ‘판단’의 근거가 되어야하고, ‘비(非)지배’를 통해 공동체의 존속이라는 대의가 군주나 통치자의 자의적 판단에 귀착되지 않는 정치제도가 구성될 수 있다고 본다. <군주> 7장에서 소개되는 ‘라미로(Ramiro de Lorqua)의 처형’은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잘 알려졌다시피, 체사레 보르지아는 자기의 심복들 중 가장 ‘잔인하고 재빠른 인물’이었던 라미로의 통치가 인민으로부터 증오를 불러일으키자, 인민들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들을 전적으로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라미로의 몸을 두 동강 내어 피 묻은 칼과 함께 광장에 보란 듯이 전시한다. 이때 마키아벨리가 사건을 서술하는 방식과 표현이 매우 흥미롭다. 체사레는 시민법정을 설치해서 라미로의 죄를 공개적으로 물음으로써 자신의 ‘제왕적 권위’가 공정하다는 인상을 가져다주었고, 그의 공적 권위의 사용은 인민들에게 만족을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그들을 “멍하게 만들었다”(stupidi). 는 것이다(Principe 7.(28)). 즉 마키아벨리는 ‘다수의 지지’가 군주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통치의 기반이라고 말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수의 지지’만이 정치적 판단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치가의 행위가 가져온 결과가 어떻게 인지되는지가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마키아벨리의 사보나롤라에 대한 평가는 체사레 보르자와는 정반대의 사례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1494년 ‘새로운 예루살렘’을 외치면서 혜성같이 등장했다가 1498년 시뇨리아 광장에서 이슬처럼 사라진 인물이다. 종종 <군주> 6장의 ‘무장하지 않은 예언가’의 전형으로 소개되기도 하지만, 마키아벨리의 진정한 평가는 <강의> 1권 45장에 등장하는 ‘자기가 만든 법을 어긴 지도자의 몰락’에서 비로소 발견된다. 여기에서 그는 사보나롤라의 몰락은 ‘통치’ 그 자체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그 내용은 이렇다. 사보나롤라의 권고로, 의회는 국사범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죄인들에게도 인민에게 호소할 수 있는 권리를 갖도록 하는 법안을 오랜 진통 끝에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 법이 승인되고 얼마 후, 사보나롤라의 정적들이 국사범으로 사형을 선고받았을 때, 그는 그를 따르던 발로리가 이들의 소청 권리를 박탈한 사실을 묵인하고 만다. 자기가 만든 법을 자기가 어겼다는 인상을 시민들에게 심어준 것이다. 이 지점에서 마키아벨리는 사보나롤라의 몰락은 인민들이 변덕스러워서가 아니라 인민들이 그를 신뢰할 수 있는 기반을 스스로가 훼손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보나롤라의 정치도 파당적 이익에 불과하다는 체념, 이로부터 ‘허영의 소각’으로 이미 소진된 정의감이 그에 대한 반감으로 증폭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Discorsi 1.45.(9)-(11)).

종합하면 마키아벨리는 ‘비(非)지배’를 자신이 충고한 ‘결과를 본다.’(si guarda al fine)의 잣대로 제시하고 있다. 지배받지 않고 안전하게 살기를 원하는 ‘다수’를 만족시키고, 이러한 만족을 유지시킴으로써 외세로부터 정치공동체를 지킬 수 있는 제도를 구상한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다수의 지지’만으로 ‘지배하고자하는 열정’을 충족시키려는 미래의 지도자들에게는 ‘비(非)지배’를 위해 헌신해야할 이유를 설명하고, 이미 권력을 쥐고 있던 군주와 지도자들에게는 ‘다수의 지지’가 아니라 ‘비(非)지배’의 보장만이 개인적인 목적과 공공의 이익을 동시에 실현시켜줄 수 있다고 설득하는 것이다.

3. 한국적 함의

이렇듯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말로 마키아벨리의 정치와 도덕에 대한 견해를 단순화할 수 없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마키아벨리는 도덕과 정치를 분리하고자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좋은 의도를 갖고 나쁜 수단을 사용했다고 누군가가 선한 사람으로 간주되어야 할 이유도 없고, 정치가에게 특정 행위를 함에 있어 동기와 목적이 개인적인 영달인지 공동체의 안녕인지를 캐물어 볼 필요도 없다. 단지 그는 당시 이탈리아 사람들을 매혹시키던 도덕적 가치들을 ‘비(非)지배’로 대체하고자 했고, 정치적 행위는 ‘비(非)지배’의 실현을 통해 성취할 그것만의 ‘영광’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영광’을 위해 전심과 전력을 다하는 것이 참으로 보람된다는 것을 설득하고 싶었던 것이다.

따라서 마키아벨리로부터 도덕과 정치의 구분을 찾거나 과학적 일관성이나 행동경제학적 원칙을 찾는 것도 낭패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의 ‘비(非)지배’에 기초한 약한 결과주의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재고할 수 있는 몇 가지 조언을 우리에게 제공해준다. 선험적이지는 않더라도 경험적 고찰로부터 ‘좋은 결과를 산출’하는 바를 공공선을 창출하기 위한 정치적 원칙, 그리고 민주적 심의에서 ‘공공선’에 대한 합의가 없더라도 적용될 수 있는 이른바 조정원칙으로 ‘비(非)지배’를 재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첫째, 마키아벨리의 ‘비(非)지배’에 기초한 ‘약한’ 결과주의는 ‘숨겨진 통치’(arcana imperii)에도 사전과 사후에 민주적 통제가 가능한 제도적 구상의 열쇠를 제공한다. 사실 예외적인 상황에서 ‘더러운 손’(dirty hand)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정치사회적 조건, 또는 ‘국가이성’이라는 명목 하에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통치행위가 아직까지 많은 나라에서 용인되고 있다. 그러나 ‘더러운 손’이라는 명제는 한 가지 도덕적 차원에서 논리적 모순을 안고 있다. 즉 이 명제는 ‘더럽다’는 가치판단이 존재할 수 없는 영역을 딜레마의 근거로 상정한다는 점이다. 만약 ‘더럽다.’는 가치판단이 도덕적으로 의미를 가지려면, 유사한 상황에서 정치가에게 동일한 결정을 내릴 수 없도록 요구할 수 있어야한다. 그러나 ‘더러운 손’이 요구되는 상황은 대부분 정치가에게 동일한 정치적 선택을 요구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더러운 손’은 정치가의 자의적 판단에 정당성을 부여해줄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키아벨리의 ‘비(非)지배’는 정치가의 판단과정과 행위결과에 모두 동일한 잣대를 적용함으로써, 민주적 심의를 통해 비공개적 결정이 필요했을 경우에도 일정한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석명성(accountability)이 민주주의의 실질적 운영을 시비를 가리는 주요한 요소라면, ‘비(非)지배’는 ‘숨겨진 통치’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구상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둘째, 마키아벨리의 ‘비(非)지배’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갈등을 조정하는 데에 필요한 제도적 장치가 추구해야할 목적을 설정해 줄 수 있다. 공공선을 놓고 벌어지는 갈등은 개별적인 것으로부터 일반적인 것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한 경우가 많다. 파당적 갈등과 종파적 대치를 현상적으로 구별하기도 쉽지 않고, 정치적 사안들을 놓고 벌어지는 분쟁은 첨예한 갈등을 불러일으킬 주제들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파당적 갈등이 종파적 대치로 치닫는 것을 막아야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민주적 심의를 가로막는 장애가 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가치의 체계 또는 가치가 창출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면, 그리고 이런 차원에서 민주주의의 어떤 측면을 보완해야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에 유리한지를 고려한다면, 마키아벨리의 ‘비(非)지배’는 민주적 심의에서 정치사회적 갈등들이 어떤 원칙에서 어떻게 운용될 때 해소될 수 있는지에 대한 혜안을 제공한다. ‘모든 것을 안다.’는 닫힌 마음보다 ‘모든 것을 한번 의심해 본다.’는 열린 마음, 하나의 잣대가 아니라 여러 잣대가 동일한 사안과 현상에 적용될 수 있다는 인식, 그리고 공존의 가능성을 파괴하기보다 그 가능성을 만드는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셋째, 마키아벨리의 ‘비(非)지배’는 민주적 심의를 통해 갈등을 조절하기 위해서라도 민주주의 사회가 불평등의 심화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해야할 이유를 가르쳐준다. 물론 그로부터 우리는 인류의 삶과 함께 시작한 ‘불평등’의 문제를 이상적으로 해결하자거나 감정적으로 다루자는 주장을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민주적 절차’를 통해 ‘민주적 심의’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시민적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불평등’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점을 그의 ‘약한’ 결과주의로부터 배우게 된다. 개개인의 이익 추구가 공공선을 위한 최선의 메커니즘을 제공한다는 자유주의의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서라도, ‘성공할 기회’뿐만 아니라 ‘비(非)지배’의 조건으로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균등하게 분배되는 사회를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의 ‘비(非)지배’에 대한 열정으로부터 알게 된다.

넷째, 마키아벨리의 ‘비(非)지배’에 기초한 팽창에 대한 열망은 너무나도 역설적으로 그의 공화주의가 결여했던 지구정의의 새로운 원칙을 가르쳐준다. 2014년 대한민국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1494년의 피렌체를 닮아있다. 중국의 부상, 일본의 우경화, 러시아의 견제, 미국의 전략이 동북아시아의 불확실성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 사회는 어느 때보다 ‘힘’에 대한 열망이 커지고 있다.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우경화에 자극을 받아, 폐쇄적이고 공격적인 민족주의와 전체주의적이고 폭압적인 집단주의의 위험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동북아 평화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키아벨리의 충고가 아니라 마키아벨리의 ‘비(非)지배’가 놓치고 있던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스스로의 자유를 지킬 수 있는 ‘힘’은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힘’의 역학만이 선택지로 주어졌을 때, ‘힘’의 목적이 비현실적이거나 존재하지 않을 때,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닥칠지도 고민해야 한다. 냉정한 ‘힘’에 대한 성찰을 통해 패권적 망상을 부추기는 선동을 억제하고, ‘비(非)지배’와 같은 새로운 국제사회의 규범을 주도적으로 주창함으로써 안팎으로 대한민국의 시민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 이 저술에 대한 저작권은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고전 다시읽기] Aporia Review of Books, Vol.2, No.8, 2014년 8월, 곽준혁, 숭실대 가치와윤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