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여러 편에 걸쳐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와 그의 계승자인 최시형을 중심으로 19세기 동학사상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 중심 사상은 한마디로 말해 '하늘님 모심(侍天主)'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와 같은 동학의 중심사상이 20세기에 들어서면 인내천(人乃天)으로 바뀌는 한 차례의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이 중심 사상의 변화는 왜 일어났을까? 그 주된 이유는 20세기 초 조선의 사회 상황에 대한 심각한 인식과 그에 따른 노선 변경이 중심 교의에도 수정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20세기 초는 일제의 조선 침략이 더욱 노골화되고 망국이 현실화되는 시기이다. 이 무렵, 동학의 제3대 교조인 손병희는 1894년 동학민중항쟁으로 동학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극심해지자 일본으로 건너가는데, 일본의 서구화된 근대 물질문명과 그곳에 있던 개화파 인사들과 교유하면서 서구 근대문명에 대한 생각이 바뀐다. 개화, 자강을 통한 민족의 자주독립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손병희의 변화는 동학 전체의 노선 변경을 야기한다. 망국에 직면하여 동학은 사회적으로 구국의 차원에서 개화, 자강을 부르짖는 갑진개화운동을 주도하고, 그 과정에서 일진회와 협력하다가 어느덧 친일매국 단체로 지탄을 받는다. 1894년, 일제 침략에 반대해 제2차 봉기를 일으켰던 동학이 어느덧 친일단체로 전락한 것은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오명을 벗기 위해 손병희는 1905년,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고 교단 내 친일세력을 몰아냈으며, 천도교의 중심교의를 인내천으로 재정립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유의해야 할 것은 이 일시적 친일 행위에서의 탈피가 개화, 자강 노선마저 포기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조선은 국제사회에서 강자가 되지 못함으로 인해 망국이라는 비참한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으니, 민족 독립을 위해서 자강의 노력은 더욱 강조되었다. 이렇게 변화된 현실 인식은 노선의 수정을 가져왔는데, 개화, 자강으로의 사회운동 노선 변경은 '하늘님 모심'에서 '인내천'으로 중심 교의를 수정하는 원인이 되었다. 

'하늘님 모심'에서 '인내천'으로 중심 사상의 수정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 몇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본래 하늘님의 내재성에 대한 강조 역시 최제우로부터 시작되었다. 즉 그는 하늘님을 모신다는 첫 번째 의미가 하늘님이 모든 사람의 몸 안에 신령(神靈)으로 내재함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또 이 설명에 근거해 그는 모든 사람이 존재론적으로 하늘님을 모신 존귀한 존재라고도 했다. 최시형은 최제우의 이런 사상을 계승하여 하늘님을 모신 존귀한 존재이나, 역사적으로 존귀한 대우를 받지 못했던 민중, 여성, 어린이 등이 하늘님을 모시고 있음을 특별히 강조했다. 그런데 종교적 교의에서 사회적 평등의식으로 확대된 이 ‘시천주’의 교의를 위에서는 종교적 수행의 차원에서 재해석하고 있다. 시천주가 내 마음속 임(主)을 깨닫는 것이라는 설명까지는 그런대로 최제우, 최시형의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내 마음속 임을 깨달으면, 인격신도 대자연도, 나아가 모든 사물이 모두 내 마음일 뿐이라는 설명은 본래 동학에는 없던 것으로, 마음이 대상을 구성한다는 불교의 견해와 무척 유사하다.

둘째는 초월적 인격성의 약화와 내재성의 강화는 중심 교의에서 인간중심적 경향이 더욱 농후해짐을 뜻한다. 수행에서 한울과 인간의 힘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아래 주장을 음미해보면 이 점을 알 수 있다.

이 주장은 한울, 즉 신을 ‘내’ 마음 밖의 초월적 존재로 보아야 하느냐, 아니면 ‘내’ 마음 안에서 ‘나’와 일체를 이룬 내재적 존재로 보아야 하느냐 하는 물음에 대한 답변 내용이다. 동학 창도 시기부터 하늘님은 초월적인 동시에 내재적이라는 관념이 있었으므로, 이는 일단은 동학의 신 관념이 지닌 이중적 성격을 수행의 문제와 연결 지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위에서 손병희는 한울을 ‘내’ 밖에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하면 ‘나’는 늘 한울의 지배 아래에 있고, 반대로 내 마음속 한울을 깨달아 그것과 일체가 되면, ‘내’가 한울을 지배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전자는 한울을 이제 막 믿기 시작한 사람들이 갖는 신 관념이고 후자는 수행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여 ‘내’ 마음이 한울과 합일됨을 체험한 사람들이 갖는 신 관념이라는 점, 즉 수행에 단계가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천도교 수행 체계 안에서 양자는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수행의 수준에 따라 양자에 우열을 두고, 더 높은 수준을 ‘한울이 사람의 권능 아래 있는’ 상태로 보는 것에서 우리는 천도교의 근대적 지향성, 즉 인간중심적 경향을 농후하게 느낄 수 있다. 천도교가 중심 사상을 ‘시천주’에서 ‘인내천’으로 전환한 주된 목적은 바로 이 인간중심적 경향의 강화에 있었다.  

셋째는 하늘님 혹은 한울의 자연 내재성이 초기에는 여전히 인정되다가 점차 소홀히 다루어졌음을 뜻한다. 최시형 사망 직후인 1899년에 발표된 <각세진경(覺世眞經)>의 내용을 보면, 하늘님 혹은 한울은 최제우나 최시형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영역에서 생명운동의 기운으로 현현된다고 말하고 있다. 

최제우는 일찍이 하늘님이 인간의 몸 안에 신령으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몸 밖에서 기화(氣化)로도 존재한다고 했다. 이는 하늘님이 자연 내재적이기도 하다는 생각이었다. 최시형은 이런 최제우의 생각을 크게 발전시켰다. 그는 하늘님과 전통 유학적 개념인 천지를 일치시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연존재가 부모 같은 천지에 의해 생육되는 자식 같은 위치에 있음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손병희의 위 발언은 최시형의 천지부모(天地父母) 관념을 충실히 계승한 것이라 할 만하다. 높고 밝은(高明) 하늘과 넓고 두터운(博厚) 땅은 상호 의존적이며, 미미한 존재인 ‘나’는 천지라는 통일적 기운(一氣)의 생명운동 덕택에 생명을 유지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위 발언은 전통 유학적 관념인 동시에 최시형의 사상을 계승한 것이기 때문이다.  

손병희가 초기에는 최시형의 자연관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점은 그가 최시형과 마찬가지로 성리학적인 이기(理氣) 개념을 차용해 자연의 생명운동을 설명하면서도 기(氣) 일원론적인 입장에 서 있다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리와 기가 실재로는 ‘서로 분리될 수 없으나(不相離)’ 개념적으로는 ‘서로 뒤섞일 수 없음(不相雜)’을 동시에 강조하는 주자학적 관점에 서면, 위 대화는 후자의 측면을 망각한 잘못된 견해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손병희는 위 대화에서 리(理)는 정령, 곧 한 덩어리의 기운일 뿐인 것으로 간주한다. 이 우주에는 시작도 끝도 없이 끊임없이 운동하는 한 덩어리의 통일적 생명운동의 기운이 있을 뿐이다.

이렇게 손병희는 초기에는 한울님이 자연 안에서 기운으로 자신을 드러낸다는 최제우의 생각과 이를 다시 유학의 천지부모 관념과 결합시킨 최시형의 생각을 그대로 계승하였으나, 이러한 생각은 후에 점차 그의 논의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앞서 인용한 1909년의 <무체법경>에서는 ‘기화하는 한울님(氣化之神)’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 점을 뒷받침한다. 

3. 

동학의 중심 교의가 ‘시천주’에서 ‘인내천’으로 전환된 것이 갖는 위 세 가지 의미에 대한 검토 내용을 토대로, 이제 그것들이 자강·개화로 그 사회운동 노선을 수정한 것과 어떤 연관관계를 맺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자.

‘시천주’를 중심 교의로 확정한 최제우에게 하늘님은 초월적 인격신, 몸 안의 신령, 자연 안의 기운이라는 세 가지 형태로 존재하는 신으로 사유되었다. 이 중, 하늘님이 인간의 몸과 자연 안에 내재한다는 관념은 사회적으로 서학과 서구 근대문명에 대한 비판적 시각 또한 파생시켰다. 앞서 최제우의 서구 근대에 대한 비판 부분에서 상술했듯이, 제국주의적 침략을 일삼는 서구인들은 ‘자기 자신을 위한 계책만을 기원’하기 때문에 그들의 몸에는 ‘기화하는 하늘님(氣化之神)’이 없고, 따라서 서구 근대문명은 빈껍데기일 뿐이고, 서학 역시 천주의 가르침이 없는 허무한 설이라는 단언이 그것이다. 이러한 최제우의 서구 근대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는 최시형에게서도 대체로 똑같이 견지되었다. 국제사회에서 강자로 등극한 서구인들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최제우의 태도는 최시형에게서 민중, 여성,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를 존귀한 존재로 선언하는 자세로 계승되고, 일반적으로 인간에 비해 약자의 위치에 있는 자연 안의 생명을 경외하는 경물(敬物) 사상으로도 발전하였다. 

그러나 약소국, 사회적 약자, 인간보다 약한 자연 등이 존귀하게 대우 받는 세상을 꿈꾸기에는 조선의 상황은 너무도 엄혹했다. 사람들은 강대국에 약소국의 권리를 호소하는 것으로는 생존조차 보장받기 어렵다는 점을 점차 깨닫게 되었고, 이에 생존을 위해서는 스스로 강자가 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이런 개화, 자강으로의 사회운동 노선 수정은 필연적으로 종교적 교의의 변화 또한 요구한다. 조선인이 약자에서 강자가 되려면 조선사회가 서구적 근대로 무장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초월적 인격신 관념을 약화시키는 것은 근대정신에 부합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한울의 인간 내재적 측면을 일면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서구 근대의 인간중심주의에 가까워지는 길이었다. 당연히 이런 인간중심적 경향의 강화는 한울님이 자연에도 내재한다는 관념을 점차 희박하게 만들었고, 이는 날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적 수단으로 자연을 전면적으로 지배, 통제하려 했던 근대인들의 자연에 대한 태도와도 어느 정도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