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을 보면 수차례에 걸쳐 “谷(곡: 계곡)”이라는 단어가 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자는 과연 “谷(곡: 계곡)”으로 어떠한 개념을 설명하고자 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 먼저 6장을 살펴보기로 하자.
6-1: 谷神不死，是謂玄牝，玄牝之門，是謂天地根。
계곡의 오묘함은 그침이 없으니(영원하니), 이를 심오한 모성(생명의 발단, 부드러움)이라고 일컫고, 심오한 모성(부드러움)의 문, 이를 천지의 근원이라고 일컫는다.
주지하다시피 계곡의 특징은 튀어나온 “陽(양)”의 산과 달리 움푹 들어갔다는 점이다. 따라서 노자에게 있어서 “谷(곡)”은 “계곡” 즉 “陰(음)”을 일컫고, 이는 “모성, 여성, 부드러움”과 같은 의미로 쓰인 것이다. 특히 계곡이 천지의 근원이라고 하였으니, 노자는 1장 1-2에서 “無名(무명)은 천지의 시작이고, 有名(유명)은 만물의 근원이다.”라고 언급했다시피, “부드러움(모성)”을 “무명 = 도”와 같은 개념으로까지 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장의 의미를 풀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자애로움의 오묘함은 백성들의 끊임없는 지지와 신망을 얻게 되어서 영원하다는 것이니, 이를 심오한 모성 즉 부드러움이라고 일컫는다. 부드럽고도 자애로운 덕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덕치를 일컬어 세상을 다스리는 근본이라고 한다.
6-2: 綿綿若存，用之不勤。
끊이지 않고 존재하는 듯하니, 작용에 다함이 없다.
이처럼 자애로움의 “덕치”는 백성들의 끊임없는 지지와 신망을 얻게 되어서 영원하기 때문에, 아무리 그 자애로움의 덕치를 마음껏 베풀더라도 결코 바닥이 나지 않아 변치 않을 수 있는 것이다.
15-8: 曠兮其若谷。
깊고 넓으니 그것은 마치 깊은 계곡과도 같다.
따라서 노자는 참된 지도자의 통치이념[道]이라는 것은 이처럼 넓고 탁 트여있으니, 마치 깊은 계곡과도 같이 포용과 자애로움을 갖췄다.”고 직유법을 써서 설명하기도 한 바 있으니, “谷(곡)”은 다름 아닌 “포용과 자애로움”의 메타포(metaphor)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자는 22장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22-1: 曲則全，枉則直，窪則盈，敝則新，少則得，多則惑。
굽히면 도리어 온전할 수 있고, 휘면 도리어 곧을 수 있으며, 움푹 파이면 도리어 가득 찰 수 있고, 낡고 해지면(쇠락하면) 도리어 참신할 수 있으며, 적으면(적게 취하면) 도리어 얻을 수 있고, 많으면(많이 취하면) 도리어 홀린다(현혹시킨다).
이 문장을 좀 더 구체적으로 풀이하자면 다음과 같다. 참된 지도자의 통치이념[道]을 따르게 되어 덕치를 행하면, 성기고 불완전해 보여서 불합리한 것 같지만 오히려 흠이 없이 나라를 온전히 다스릴 수 있다. 참된 지도자의 통치이념을 따르게 되면, 오히려 세상을 대함에 굳세고 당당해져 몸을 펼 수 있다. 움푹 파여서 빈 공간이 생기면, 오히려 가득 담을 수 있다. 쇠락하면 오히려 새로워지는 기회를 갖게 된다. 지도자가 자신을 버려서 적게 취하면,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다. 지도자가 사리사욕을 탐하여 많이 취하면, 오히려 그 마음이 현혹되어 결국 다 잃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노자는 여기서 “谷(곡: 계곡)”의 특징인 움푹 파임으로 陰(음)=모성=부드러움=자애로움을 빗대어 표현함으로써, 자애로운 지도자는 백성들을 포용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자는 40장의 40-1에서 “反者，道之動；弱者，道之用。반대(대립면)는, 도의 움직임이다.”라고 말하고, 65장의 65-5에서는 “玄德深矣，遠矣，與物反矣，然後乃至大順。현덕은 심오하고, 아득하여, 사물과 반대된다.”라고 표현한 바 있듯이, 참된 도리는 항상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반대되는 차원에서 그 본질을 찾아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마치 그간 우리가 늘 들어왔던 “남을 밟고 올라서야, 성공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논리와는 정반대인 “약자를 배려하고 이끌어 함께 감으로써 행복할 수 있다.”는 도리의 실천을 통해서 참된 행복을 찾을 수 있듯이 말이다.
특히 이러한 개념은 9장 9-1의 “持而盈之，不如其已。그것을 가득 움켜지는 것은, 그것을 멈추느니만 못하다.” 및 15장 15-11의 “保此道者不欲盈，夫唯不盈，故能蔽不新成。이러한 도리를 견지하는 자는 가득 채우려 하지 않고, 무릇 가득 채우지 않으므로, 그러므로 능히 포괄하여 새로이 만들지 않는다.”는 가치관과도 연결됨에 유의하기로 한다.
계속해서 이제 또 다음의 구절을 살펴보자.
28-5: 知其榮，守其辱，為天下谷。
그 영화로움을 알고, 그 치욕(아래에 처함)을 지키면, 세상의 계곡이 된다(세상이 모두 귀속된다).
이 구절의 大義(대의)는 최고지도자의 지위에 올랐지만 그 지위나 부귀영화에 집착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낮추고 백성들을 공경하게 되면, 백성들이 모두 그를 자애롭다고 여겨서 신뢰하고 지지하여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자는 여기서 “참된 지도자의 통치이념[道]이라는 것이 움푹 들어간 계곡과도 같이 아래에 처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하기도 하는 있으니, “谷(곡)”은 또 하나의 “겸손함”의 메타포(metaphor)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28-6: 為天下谷，常德乃足，復歸於樸。
세상의 계곡이 되면, 상덕이 이에 충족되어, 가공하지 않은 목재로 돌아가게 된다.
따라서 백성들이 자신의 지도자가 자애롭다고 여겨 신뢰하고 지지하여 따르게 되면, 영원한 덕이 이에 조건을 만족하게 되어, 순수한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세상이 실현된다고까지 말한다.
자고로 하나를 얻음에 있어, 하늘이 하나를 얻으면 청명하고, 땅이 하나를 얻으면 평온하며, 오묘함이 하나를 얻으면 영험해지고, 계곡이 하나를 얻으면 넉넉해지고, 만물이 하나를 얻으면 생동하고, 천자와 제후가 하나를 얻으면 세상의 충정(곧음)이 된다.
그러므로 옛날부터 두 마음(사리사욕을 탐하는 마음)을 품지 않는 순일한 덕(오로지 나라와 백성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마음)을 얻음에 있어서, 하늘이 순일한 덕을 품으면 사념이 없이 맑고도 밝아지고, 땅이 순일한 덕을 품으면 고요하고 평안해지며, 오묘함이 순일한 덕을 품으면 거룩하고도 슬기로워지고, 자애로움이 순일한 덕을 품으면 충만해져 여유가 있게 되며, 만물이 순일한 덕을 품으면 생기가 감돌게 되고, 지도자가 순일한 덕을 품으면 세상이 충실하고 올바르게 된다.
그것(위에서 설명한 내용)을 그만두게 되어, 하늘이 청명하지 않으면 무너질 것이고, 땅이 평온하지 않으면 흩어질 것이며, 오묘함이 영험하지 않으면 멈출 것이고, 계곡이 넉넉하지 않으면 사라질 것이며, 만물이 생동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고, 천자와 제왕이 (백성들을) 귀히 여기고 숭상하지 고상하지 않으면, 와해될 것이다.
하지만 두 마음을 품지 않는 순일한 덕을 얻지 못하여, 하늘이 맑고도 밝지 않으면 무너질 것이고, 땅이 고요하고 평안하지 않으면 흩어질 것이며, 오묘함은 거룩하고 슬기롭지 않으면 멈출 것이고, 자애로움은 충만하여 여유가 있지 않으면 사라질 것이며, 만물에 생기가 감돌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고, 지도자가 백성들을 귀히 여기고 숭상하지 않으면 나라가 와해될 것이다.
그러므로 노자는 41장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41-6: 上德若谷，大白若辱。
높은 덕은 마치 계곡(밑에 있는 것)과 같고, 대단히 깨끗한(순결한) 것은 마치 더러운(수치스러운) 듯하다.
고상한 덕을 지닌 지도자는 밑에 처해있는 계곡과도 같이 자신을 백성들 아래에 놓고, 때 묻지 않고 순박한 지도자는 욕보이는 듯이 백성들을 위해 수치스러움을 감수한다고 말이다.
이 문장은 39장 39-3의 “故貴以賤為本，高以下為基。따라서 귀함은 비천함을 근본으로 삼고, 높음은 낮음을 기반으로 삼는다.”라는 말과 맥락을 같이 하는데,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기록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고공단보는 후직과 공류의 공적을 다시 닦아, 덕을 쌓고 의를 행하자, 나라 사람들이 모두 그를 받들었다. 훈육과 융적이 그를 공격하여, 재물을 얻으려고 하자, 재물을 주었다. 얼마 되지 않아 다시 공격하여, 땅과 백성을 얻고자 했다. 백성들이 모두 노하여, 싸우려 했다. 고공이 말했다: 백성들이 있어 임금을 세우는 것은, 장차 그들을 이롭게 하려는 것이다. 지금 융적이 공격하는 바는, 나의 땅과 백성 때문이다. 백성들이 나에게 있는 것이, 저들에게 있는 것과, 어찌 다르겠는가? 백성들이 나 때문에 고로 싸우면, 사람들의 부자를 죽여 임금이 되는 것이니, 나는 차마 못하겠다.” 이에 고공은 가신들과 더불어 마침내 빈 지역을 떠나, 칠수와 저수를 건너, 양산을 넘어, 기산 아래에 머물렀다. 빈 지역 사람 전부 노인을 부축하고 어린이의 손을 이끌어, 모두 다시 기산 아래의 고공에게 귀속했다. 더불어 다른 이웃나라에서, 고공의 어질음을 듣고, 역시 많은 이들이 그에게 귀속했다. [史記(사기)] <周本紀(주본기)>
大旱七年，太史占之曰: 當以人禱。湯曰: 吾所爲請者，民也，若必以人禱，吾請自當。
큰 가뭄이 칠년이라, 태사가 점을 쳐 말했다: 마땅히 사람으로서(사람을 제물로 바쳐서) 기도를 해야 합니다. 탕이 말했다: “내가 바라는 바는 백성을 위해서이니, 만약 반드시 사람으로서 기도해야 한다면, 나는 스스로 담당하기를(제물이 되기를) 청한다. [十八史略(십팔사략)] <殷王朝篇(은왕조편)>
이처럼 고공단보나 탕임금과 같은 성인들은 자신을 백성들 아래에 두고 그들을 위해서 수치스러움을 감수하였으니, 오히려 그로 인해 그들의 덕은 더욱 높아지고 그들의 정신은 더욱 순결해진 것이 아니겠는가?
45-2: 大盈若沖，其用不窮。
아주 가득 찬 것은 마치 비어있는 듯하지만, 그 쓰임에는 다함이 없다.
따라서 자애로움의 덕으로 충만하여 아낌없이 백성들에게 베푸는 것은, 굳이 채우려고 하지 않아서 언뜻 보기에는 비어있는 듯하지만, 베풀수록 더 끊임없이 용솟음치므로 오히려 다 쓸 수가 없는 것이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노자 다시보기] Aporia Review of Books, Vol.4, No.5, 2015년 5월, 안성재, 인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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