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필자는 노자의 道(도)가 무형(無形)과 무명(無名)의 다른 이름이라고 정의하고, 나아가 노자는 자신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道(도) 즉 “참된 지도자의 통치이념”이라는 것이 삼가고도 변치 않는 자세로 노력하여 몸소 실천하는 내적인 모습을 통해서 구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외적인 모습을 묘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노자에게 있어서 명(名)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무명(無名)이 지니는 함의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태평성대를 이끈 참된 지도자의 통치이념 즉 도라는 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정의할 수 없는데, 소박하여서 비록 작게 보이지만, 세상 그 어떤 것에도 종속되지 않는다. 

통제하기 시작하면 이름이 생긴다는 것은 통제의 ‘명분’을 뜻하니, 이는 다름 아닌 ‘법’과 ‘제도’를 일컫는다. 그러므로 노자는 말한다. “백성들의 천성을 따르지 않고 억지로 통제하려 하니 법과 제도들이 생기게 되고, 자꾸 법과 제도들을 만들어 통제하면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세분화된 법과 제도들을 만들어 통제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처럼 세분화된 법과 제도를 만들어 백성들을 통제하지 않고 그들의 천성에 따라 다스리게 되면, 백성들이 지도자를 따르게 되어서 나라를 오랫동안 평안하게 유지할 수 있다.”라고. 

지도자가 자꾸 법률과 제도를 만들어 통제를 강화하게 되면, 백성들은 오히려 이를 교묘하게 피해서 더 많은 부정을 저지르게 된다.  

2014년도 한 언론매체에 “현재 한국의 미성년자 중에서 27,000여명이 건강 보험료를 납부하고, 이중에서 한 초등학생의 월 소득이 1,500만원이다.”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것이 과연 어떻게 가능할까? 

공자 역시 이와 관련하여 언급한 바 있으니, 다음 [논어]의 한 구절을 살펴보면 그 의미를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로부터 전해지는 법도로 백성들을 다스려야 하는 것이 도리인데, 이제 그 법도를 버리고 형벌로 다스리려하면, 백성들이 오로지 그 형벌에만 마음을 둘 것이니, 어찌 윗사람을 공경하고 자신의 본업을 지키겠는가? 형벌이라는 것은 당시 나라의 혼란스러움을 제압하는 임시방편일 따름이다. 따라서 그들을 다스림에 온갖 세납 즉 조세와 노역 및 부역으로 하고, 그들을 다스림에 형벌로 하면, 백성들이 조세와 형벌을 피하려고만 들지 부끄럼은 없어지는 것이니, 세분화된 제도와 형벌로 통제하기 보다는, 오히려 원리와 원칙을 중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성인이 이르기를: 내가 작위함이 없으면 백성들이 스스로 교화되고,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면 백성들이 스스로 바로잡으며, 내가 일을 만들지 않으면 백성들이 스스로 풍요롭게 되고, 내게 욕망이 없으면 백성들이 스스로 소박해진다. 

따라서 태평성대를 이끌었던 지도자들은 말한다. “지도자가 억지로 작위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그 천성에 따라 스스로 그러하게 되고, 지도자가 말이나 명령을 함부로 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다른 마음을 품지 않게 되며, 지도자가 법률이나 제도로서 억지로 통제하지 않으면 백성들 스스로 해야 할 일을 하게 되어 삶이 넉넉해지게 되고, 지도자가 사리사욕을 탐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지도자를 본받아서 소박하게 지낸다.” 

참된 지도자의 통치이념은 백성들이 원하는 바대로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억지로 그 천성을 거스르지 않는 “무위”로 다스리는 것이다. 따라서 언뜻 보았을 때 특별히 하는 것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 그 천성을 이해하고 삼가여 겸손하게 노력하는 것이니 최선을 다 하는 것이다. 지도자가 만약 이러한 대동의 통치이념을 실천할 수 있다면, 세상의 모든 백성들이 지도자를 믿고 따르게 되어 순박해질 것이다.     

이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설명하면서 이미 제시했던 구절이니, 사실상 무명(無名)은 지도자의 솔선수범(率先垂範)과 억지로 법과 제도를 세분화하여 통제하지 않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전제로 해야 가능한 성질의 것이 되는 것이다. 

지도자가 사리사욕을 탐하여 나라가 혼란해지면, 나는 성인들과 같은 순박함으로 지도자의 사리사욕이 다시 생기지 않게 할 것이다. 

32-1과 57-7에도 등장하는 ‘박(樸)’은 ‘손이 가지 않은 상태’ 즉 억지로 다듬지 않음을 뜻하는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노자는 결코 무법(無法)주의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최소한의 누구나 공감하고 따라야 하는 기본적인 원칙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이러한 원칙을 자꾸 세분화하고 정형화하는 것을 반대할 뿐인 것이니, 그는 작은 범주의 법치(法治)주의보다 더 큰 포괄적 개념인 덕치(德治)주의를 지향했다. 이와 관련하여 ‘박(樸)’의 구체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바로 다음 장에서 설명하기로 한다.

태평성대를 이끈 성인들은 신중하게 덕치로 나라를 다스렸기 때문에 백성을 억압하는 제도들을 새로이 만들지 않았고, 재물을 탐하지 않고 베풀었기 때문에 백성들 역시 사리사욕이 없어져 다른 이들의 것을 탐하지 않았으며, 어느 누구하나 버리지 않고 함께 하려 했기 때문에 백성들이 조화로이 단결하게 되었다.   

이 구절 역시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설명하면서 이미 제시했던 구절인데, 특히 마지막의 “매듭을 잘 짓는 이는 밧줄이 없어도 풀 수 없도록 한다.”는 부분이 의미는, 현재 한국의 해외 이민 율이 아시아 최고수준인 하루 평균 55명 년 평균 20,000여명임을 감안한다면, 이해가 비교적 용이할 것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의견을 제시한다. 밝은 도 즉 참된 지도자의 통치이념은 언뜻 보기에 어두운 듯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도는 언뜻 보기에 뒤로 물러서는 듯하며, 위와 아래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는 도는 언뜻 보기에 부족해 보이는 듯하다.

소박하고도 진실한 것은 언뜻 보기에 소홀한 면이 있어 보이는데, 그렇기 때문에 순일한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면 엉성하여 부족한 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복잡한 법률과 제도들로 통제하는 세상에서 도로 백성들을 다스렸던 시절을 상상해보면, 상당히 엉성하고 소홀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백성들을 공경하고 삼가여 그들의 뜻에 따라서 다스리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법률이나 제도로 통제하는 것보다 더 백성들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무나도 큰 사각형은 그 모퉁이를 볼 수 없고, 너무나도 큰 기구는 만들 수 없으며, 너무나도 큰 소리는 들을 수 없고, 너무나도 큰 형상은 형체가 없듯이, 태평성대를 이끈 지도자들의 통치이념인 도는 너무나도 큰 것이어서 뭐라고 이름 지을 수 없는 것이다.

세세한 법률과 제도로 백성들을 통제하지 않고, 천성에 따라 스스로 그러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무위의 대동 통치이념은 언뜻 보기에는 엉성하고 부족한 듯하지만, 실제로는 백성들의 뜻에 따라 다스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원망이나 불만을 사지 않게 되어 나라를 오랫동안 평안하게 유지할 수 있다.

여기서 고조선의 8조법(八條法)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고조선의 법률제도인 팔조법은 여덟 가지의 금지령으로, 현재는 세 가지만이 전해진다: 1. 살인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 2. 남의 신체를 상해한 자는 곡물로 보상한다. 3. 남의 물건을 도둑질한 자는 소유주의 집에 잡혀 들어가 노예가 됨이 원칙이나, 자속(自贖:배상)하려는 자는 50만 전을 내놓아야 한다.  

이 팔조법은 위만조선을 거쳐 그 내용이 더욱 복잡해져 60여 조로 늘어났다고 하는데, 이제 한 가지 문제점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보자. 고조선을 다스리는데 필요한 법이 고작 여덟 가지였다는 사실은, 과연 당시 사회가 지금보다 훨씬 단순했음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누구나 공감하고 따를 수 있는 대원칙으로서의 도를 행했음을 의미하는 것일까? 특히나 같은 살인죄를 저지르고도, 범법자의 국적과 배경 그리고 그 신분 등에 따라서 달리 판결이 내려지는 오늘날의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자애로운 덕으로 충만하여 아낌없이 백성들에게 베푸는 참된 지도자의 통치이념은, 굳이 채우려고 하지 않아서 언뜻 보기에는 비어있는 듯하지만, 베풀수록 더 끊임없이 용솟음치므로 오히려 다 쓸 수가 없다.

굳세고 당당하여 세상에 몸을 펴는 것은 참된 지도자의 통치이념인 도를 따르기 때문이니 언뜻 보기에 굴복한 듯하고, 천성에 따라 자애로움의 덕으로 무위의 통치를 펴는 것은 언뜻 보기에 엉성하고 빈틈이 많은 듯하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충언으로 간하는 것은 언뜻 보기에 말을 더듬는 듯하다. 이처럼 “무위”의 사회는 언뜻 보기에는 엉성한 듯하지만, 실제로는 지나치게 엄격한 법률이나 제도로 통제하는 것보다 더 곧고 정교하며 폐해가 없다.

이제 상술한 내용을 근거로 하여, 무명(無名)의 함의에 대해서 정리해보도록하자.

참된 지도자의 통치이념인 도는 만물을 낳고, 순일한 덕은 만물을 기르지만, 외부환경은 만물의 틀을 억지로 만들어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하고, 정세나 동향은 만물의 성격을 억지로 고정지어서 결정한다. 

따라서 바로 여기서도 노자는 법과 제도를 보다 구체적으로 정형화시키고 보다 세분화하여 통제하는 통제의 정치를 거듭 반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위 구절만 보고서는 나열한 도와 덕 그리고 외부환경과 정세의 상관관계가 단술나열이나 대구 관계인지, 아니면 그 정반대인 대조 관계인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이제 이 구절 이하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노자는 그저 도와 덕에 대해서만 언급할 뿐, 정형화와 정세에 대해서는 전혀 논하지 않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마땅히 다음과 같이 풀이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까닭으로, 만물은 참지도자의 통치이념을 숭상하고 순일한 덕을 중시하지만, 외부환경이나 정세를 중시하지는 않는 것이다.”

이처럼 참지도자의 통치이념이 숭상을 받고 순일한 덕이 중시되니, 성인들은 함부로 말이나 명령을 하지 않고, 만물이 항상 타고난 천성에 따라 스스로 그러하도록 한 것이다.

따라서 참지도자의 통치이념은 만물을 낳고, 자애로움의 순일한 덕이 만물을 기르며, 자라게 하고, 배양하며,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하고, 강인하게 하며, 키우고, 보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