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리만큼 역사는 반복된다. 임진년에도 그랬다. 양반놈들은 위기를 통해 권력다툼을 하고, 평민들은 목숨을 내던지고 싸웠다. 권력으로부터 자의반 타의반 벗어나서 고향으로 낙향한 서생이나 잔반, 그리고 뭣하나 나라로부터 얻은 것이 없었을 것 같은 사람들이 싸웠다. 이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 조금 서글프다. 선거와 역병이 겹치니 더욱 그렇다. 그래도 십시일반이 만드는 기적을 또 본다.
2.
이번 COVID 19 방역과 관련해서 몇 가지 추려서 이야기해야할 것 같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한국의 방역모델이 매우 중요하다.
첫째, 한국은 중국이나 이탈리아처럼 권위주의적 봉쇄를 한 적이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중국인들이 발끈하는데, 후베이와 대구를 비교하면 간단하다. 봉쇄와 자율이 핵심이다. 여전히 젊은이들이 홍대와 강남의 클럽에서 흥청거리고, 교회들이 예배를 드리겠다고 고집하지만, 정부는 '권고'하거나 '구상권'을 이야기할 뿐이다.
둘째, 지연작전이니 박멸작전이니하는 것과도 거리가 멀다. 집단면역, 즉 인구의 80%이상이 면역이면 감염원이 꼼짝도 못한다는 전략을 쓰던 영국, 그리고 병상확보가 힘들다는 이유에서 감염테스트도 안하는 일본과 같이 지연작전을 쓰지 않았다. 동시에 최초에는 방치하다가 군사작전을 방불케하는 봉쇄로 전환한 중국, 어설픈 봉쇄로 지연작전을 수행하다가 최악의 경우를 맞이한 이탈리아와도 다르다. 신속하기로는 박멸에 가깝고, 환자처리하는 건 지연에 가깝다. 영국과 미국도 모두 한국 모델을 적용한 공격적 조사와 적극적 추적, 그리고 중증중심의 병상확보로 돌아선 이유가 이것이다.
셋째, 팬데믹이 장기화될 경우를 대비한 정책이다. 싱가포르와 홍콩이 좋은 모델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미국 잡지(뉴요커)를 보면 황당하다. 의료전문가라는데 마치 보리스 존슨을 연상시키는 망상가다. 싱가포르나 홍콩은 경제적으로 비중있는 도시지만,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유럽 국가들과 미국이 준거의 틀로 삼을 표본이 될 수 없다. 인구나 영토의 규모는 고려조차되지 않았다. 의학적 지식은 있지만, 사태를 파악하진 못했다. 마카오는 물론이고, 타이완도 마찬가지다. 주지하듯이, 이 국가들은 곧 유럽과 미국발 제 2의 팬데믹을 경험할 가능성이 있다. 즉 국경을 걸어잠그고 자기들끼리 잘 지내는 걸로는 곤란하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들이 18개월 동안 국경을 걸어잠그는 것이 가능할까? 백신? 적지않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한 이후일 것이다.
넷째,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인지시켰다. 이번 팬데믹은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취약한 계층의 의료지원과 사회적 인프라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잘 사는 사람도 이제 이들이 바이러스에 취약하면 자기들도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들이 앞으로 감세보다 취약계층에 대한 지지를 선호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이들도 무시할 수 없는 사례들이 발생했다. 영국과 이탈리아는 국가에 의존하는 정도가 심해서, 미국과 캐나다는 부자에게 집중된 선진의료 덕분에, 그리고 가난한 나라들은 방역에 필요한 의료 인프라가 전혀 준비되지않아서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볼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의 신속한 테스트 전략은 기존 의료에 도움받지 못하던 취약계층까지 '역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도운 하나의 전례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파시즘의 준동을 예방할 수 있는 정책이다.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한국 모델은 팬데믹 이후 닥칠 거센 반민주주의 또는 파시즘적 독재에 대한 사회적 열망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방어해 줄 것이다. 많은 나라들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들을 남발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방종이나 사회적 혼란을 기다렸다는듯이 예외적인 위기 권력을 강화하는 나라들이 하나 둘 등장하고, 시민사회에서는 안전에 대한 요구가 자유에 대한 열망을 잠식할 충분한 조건이 완성되었다. 마치 이차대전 전에 파시즘이 등장한 시점과 유사하다. 그러나 한국 모델의 성공은 이러한 추세에 반대되는 대안을 제시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할 것이다.
3.
이상한 나라의 도전이 반드시 성공하길 바란다. 이상한 나라의 성공은 손쉬운 봉쇄에 의지하는 많은 나라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것이다. 아울러 이 이상한 나라의 새로운 방역 모델은 지연과 봉쇄에서 우물쭈물하는 많은 나라들의 지도자들에게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방역 모델도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각인시킬 것이다. 그래서 이 이상한 나라의 모델은 팬데믹 이후 파시즘의 출현에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백신이 될 것이다. 끝까지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된다. 한국 모델의 실패를 고대하는 사람들의 주문에 발목이 잡히면 안된다. 이것을 우리는 뼛속 깊이 밖힌 저항의 정신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