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귀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비도덕적 수단이 필요할 때, 올바른 정치가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기만과 폭력을 사용하는 사람이 안으로는 도덕적 고결함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소크라테스 이래 정치철학사의 가장 중요한 문제이자 가장 난해한 숙제다. 비록 한 명의 군주가 통치하던 시대에도, 그리고 민주주의가 보편화된 오늘날에도, 정치적 능력과 업적만큼이나 개인적 품성과 행동이 정치가를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지만, 일반적인 도덕률이 정치에도 적용되어야하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일반적 도덕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기만, 조종, 폭력과 같은 정치행위가 ‘공공선’ 또는 ‘정치적 이유’에서 용인될 수 있는 독립된 판단근거가 정치영역에는 존재한다고 봐야하는 것인지는 쉽게 속단하거나 답할 수 없는 문제다.    

아울러 ‘다수’의 의사가 곧 한 사회의 윤리적 기준이 될 수 있는지, 아니면 ‘다수’의 의사와는 독립된 항구적이고 영원한 규범적 또는 도덕적 기준이 존재하는지도 여전히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다. 특히 ‘공공선’의 내용을 민주적 심의로 구성해야한다는 원칙을 제도의 윤리적 근거로 삼는 민주주의에서는 ‘다수’의 의사와 윤리적 판단근거의 긴장은 철학적 영역에서 ‘상대주의’와 ‘정초주의’가 빚어내는 갈등을 훨씬 넘어서는 정치사회적 고민을 수반한다. ‘다수’의 의사로부터 보호받아야할 ‘소수’의 권리를 옹호하는 보편적 윤리는 항상 관철되어야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더라도, 공동체 구성원들 모두가 책임을 공유해야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보편적 윤리만큼이나 정치적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철학에서는 이 문제를 ‘정치와 도덕의 긴장,’ 또는 ‘정치와 윤리의 갈등’으로 표현해왔다. 그리고 정치철학자들은 이 문제를 크게 두 가지 범주에서 다루어왔다. 첫째는 정치에도 일반적 도덕률이 적용되어야한다는 입장이다. 노베르토 보비오(Noberto Bobbio)가 ‘엄격한 일원론’(monismo rigido)라고 분류한 견해들 중에 ‘도덕의 정치에 대한 우위,’ 또는 정치를 도덕적 이상의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하는 견해가 이러한 범주에 포함되겠다(Bobbio 1998, 52-54). 서양 정치철학의 전통에서 볼 때, 소크라테스 이후 지속적으로 발전된 ‘군주의 교본’(specula principum) 전통, 그리고 에라스무스의 『기독교 군주의 교육』(1516)에서 볼 수 있듯이, 정치의 행위 준칙은 오직 ‘올바름’에 대한 순수한 의무준칙에서 비롯되어야한다는 주장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고 하겠다. 

종종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그리고 아퀴나스로부터 도덕과 분리된 정치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연구들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이 제시하는 자료들은 대부분 보비오가 말하는 ‘유연한 일원론’(monismo flessibile), 즉 예외적인 위기 상황에서 일반적 도덕률의 수정을 용인하는 견해로도 보기 힘든 경우가 다반사다 (Bobbio 1998, 54-58). 비록 플라톤이 『국가』(Republic, 389c & 414c)에서 ‘고상한 거짓말’(gennaion pseudos), 즉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통치자에게 거짓말이 허용된다.’고 말했다는 식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에는 그가 정치와 도덕의 분리 또는 전자의 후자에 대한 우위를 주장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중함’(phronesis)이 이성뿐만 아니라 감성도 중시하는 철학적 태도에서 나온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공공선을 위해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행위라고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혼의 좋음’ 또는 ‘영혼의 탁월함’을 위해 행사되어야한다는 입장을 가졌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NE 1102a5-1102b29). 아울러 키케로의 ‘신과 인간의 법’(lex divina et humana)과 아퀴나스의 ‘자애로움’(caritas)이 그들의 ‘국가의 생존’과 ‘정치적 타협’에 대한 언술보다 우선된다는 사실을 누구도 쉽게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Officiis 3.28 & 3.49; ST 1.2.65.3).    

둘째는 정치와 도덕의 긴장에서 전자와 후자의 분리 또는 전자의 후자에 대한 우위를 앞세우는 입장이다. 칼 슈미트(Carl Schmitt)가 『정치적인 것에 대하여』(Der Begriff des Politischen, 1927)에서 ‘정치’에 대해 내린 정의가 이러한 입장을 대변한다. 그는 정치를 ‘친구와 적’의 관계로 규정되는 독특한 영역이라고 보았고(CP 26), 도덕적으로 좋은지 나쁜지와 관련된 윤리적인 영역과는 구별된 잣대가 있다고 주장했다(CP 25). 즉 도덕적으로 선하다고 판단되는 사람도 적대적인 집단의 구성원이면 적이 될 수 있고, 도덕적으로 나쁘다고 판단되더라도 연대할 수 있기에, 정치적인 영역에서는 도덕적 판단이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때 슈미트가 규정한 ‘정치인 것’은 사적인 차원이 아니라 집단 또는 공적 차원이기에 국제 관계에 국한된 ‘정치와 도덕의 분리’처럼 이해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잘못된 신념이나 어긋난 집단적 정체성이 어떤 정치 공동체의 정치적 견해로 고착된 이후에는 그 어떤 형태의 도덕적 간섭과 중재도 허락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볼 때, 그의 정치사상은 정치와 도덕에서 전자를 위한 후자의 배제 또는 규제를 인정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근대 국가(stato)의 출현 그 자체가 정치와 도덕의 분리를 요구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개개인의 계약이라는 추론적 역사로부터 근대 국가가 도덕으로부터의 상대적 자율성을 획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보테로(Giovanni Botero)가 군주의 권위가 인민의 동의로부터 비롯된다고 말한 것도(RS 1.14), 프랑스의 보댕(Jean Bodin)이 주권자의 절대적 권리의 근거 중 하나로 인민들이 권력을 양도했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도(Republique 1.8), 도덕 또는 신앙의 굴레 속에 정치를 가두어 두고자했지만 ‘국가이성’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시대사적 사고가 잉태되고 있었음을 숨길 수는 없다. 그리고 ‘자연법’과 ‘생존을 위한 권리’와 동일한 것으로 이해되고, 인간의 양심과 개인의 소유가 그 누구도 제한할 수 없는 하나의 권리로 제시된 자유주의의 등장 이후에는, 초인간적인 힘이나 보편적인 도덕률이 정치적 행위를 제한할 수 없다는 견해에 더 큰 힘이 실렸다. 예를 들자면, 홉스(Thomas Hobbes)에게서 우리는 더 이상 정부의 행위에 ‘좋음’과 ‘나쁨’이라는 도덕적 잣대가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고, 교회법조차도 국가의 법에 종속되어야만 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아울러 헤겔(G. W. F. Hegel)처럼 국가는 그 자체로 존재해야할 객관적 근거를 갖고 있고, 동일한 맥락에서 최소한 ‘개개인의 안녕’을 위해서라도 정치가 도덕에 우선되어야한다는 주장을 접하게 된다(Philosophy of Rights, 337).         

물론 이러한 두 가지 극단적 입장들 사이에서 ‘정치’와 ‘도덕’의 긴장을 해소하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전개되었다. 때로는 ‘유연한 일원론’으로, 때로는 ‘예외적 이원론’으로, 정치와 도덕의 긴장을 해소하고 다수의 판단과 도덕적 잣대의 균형을 만들려는 시도는 지속되었던 것이다. 크게 두 가지 경우를 예로 들어볼 수 있다.   

첫째는 칸트다. 임마누엘 칸트는 어쩌면 도덕의 정치에 대한 우위를 주장한 사상가들 중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힐 것이다. 철학이나 윤리학 분야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도덕 형이상학』(Metaphysik der Sitten)의 내용을 살펴볼 때, 칸트에게서 정치의 행위원칙에 도덕 또는 윤리의 우위는 자명해 보인다. 그러나 정치철학 분야에서 필독서 중 하나인 「영구 평화론(Zum ewigen Frieden)」은 칸트도 정치와 도덕의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그가 제시한 ‘도덕적 정치인’(moralishen politiker), 즉 도덕을 정치에 이용하기보다 정치적 신중함과 도덕의 요구의 균형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정치가에 대한 서술들은 칸트의 입장을 정치에 대한 도덕의 우위로 단순화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우리를 이끈다(EF 372). 예를 들면, ‘정치와 도덕의 갈등은 단지 주관적으로 존재할 뿐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칸트의 정언명제에서(EF 370), 그가 말하는 도덕(Sitten)이 우리가 말하는 ‘윤리’(Ethik)나 ‘덕’(Moralitat)이 아니라 ‘법’(Recht)이라는 점을 주목한다면, 즉 의무자체가 목적이거나 내적 자유가 목적인 윤리적 의무가 아니라 외적 자유(다른 사람들의 의지에 의한 강제로부터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조건)를 확보하기 위한 순응과 강제가 허용되는 법적 의무를 정치적 행위와 결부시켜 말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는다면(EF 373), 칸트도 정치와 도덕의 긴장에서 후자의 전자에 대한 우위만을 고집한 사상가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둘째는 막스 베버다. 아마도 막스 베버는 정치와 도덕의 균형을 가장 설득력 있게 제시한 정치사상가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인간적 흠결이 만들어내는 세상사의 불합리성을 인정하고, 우연적 요소가 빚어내는 불확실성을 수용함으로써, 좋고 나쁜 의도와 무관하게 ‘행위의 결과’에 책임을 지는 ‘책임윤리’(Verantwortungsethik)를 통해 정치와 도덕의 긴장을 해소하려고 했다. 아울러 타협이 불가능한 신념에 사로잡혀 공적 영역에서 무기력하거나 종말론적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는 ‘신념윤리’(Gesinnungsethik)의 문제점에 대한 그의 지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정치의 본질은 권력이며 그 주요한 수단은 폭력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정치가를 ‘유아’라고 비난했던 점, ‘도덕이 좋은 정치적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나쁜 수단도 사용할 수 있어야한다.’고 가르쳤던 일, ‘책임윤리’와 ‘신념윤리’의 상보적 관계를 통해서만 정치가의 진정한 소명을 달성할 수 있다는 베버의 정치적 현실주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생명력을 갖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정치와 도덕의 긴장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함에 있어서 르네상스 정치철학자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의 정치적 현실주의를 재고하는 일은 실로 중요할 뿐만 아니라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민주주의를 가치의 체계 또는 가치가 창출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지금 우리가 운영하고 있는 민주주의에 어떤 측면을 보완해야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할 때, 마키아벨리가 의도했던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결합은 살펴볼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정치와 도덕의 긴장이 민주주의가 어떤 원칙에서 어떻게 운용될 때 해소될 수 있는지, 정치의 핵심적인 요소로 힘과 권력을 내세우면 그것이 곧바로 ‘보편적 가치의 부재’나 ‘정글의 법칙’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귀중한 성찰을 마키아벨리의 ‘약한’ 결과주의가 제공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다음 편에서는 마키아벨리의 정치와 도덕에 대한 언술이 갖는 당시 지배적 담론에 대한 저항적 성격을 살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