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의 침묵(3): 갈등은 아름다운가?

1.

주지하다시피 정치사상사에서 ‘갈등’에 대해 긍정적 논의를 시작한 사람은 르네상스 정치철학자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 1469-1527)다. 마키아벨리 이전에도 ‘갈등’은 정치사상사에서 중요한 주제였지만, 늘 ‘문제’로 다루어졌지 ‘해법’으로 제시되지는 않았다. 아테네 민주정의 소용돌이를 경험했던 플라톤은 물론이고, 감정이 비이성적 충동이 아니라 이성적 판단을 돕는 것이라고 두둔했던 아리스토텔레스도 ‘조화’(homonoia)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전통은 ‘견제’와 ‘균형’을 정치제도의 운영원칙으로 갖고 있던 로마 공화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키케로의 저술에서 보듯, 정쟁도 전쟁도 결국 ‘신과 자연의 법’과 합일되는 ‘화합’(concordia)이 우선이다. 종종 살루스티우스(Sallustius)로부터 ‘갈등’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를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가 말하는 것은 ‘외적에 대한 공포’(metus hostilis)가 내적인 단합을 가져온다는 이야기 이상은 아니다.

반면 마키아벨리는 ‘갈등’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갈등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잘 제도화된다면 정치 공동체에 매우 유익할 것’이라고 하나의 주저함도 없이 말한다. 게다가 정치 지도자들은 어느 사회든 쉽게 부패할 수 있으니, 인민들은 늘 자기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눈을 부라리며 감시하고 갈등을 통해 귀족들을 견제해야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내분과 외침, 파당적 정쟁과 절망적 대치를 경험했던 16세기 피렌체의 암울한 현실에서 참으로 황당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당시는 귀족과 인민의 갈등이 제도화되었던 로마 공화정마저도 시끄러운 나라로 취급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모두가 죽은 듯 차분한 베네치아를 선호했던 시절이었다. 이런 시기에 ‘갈등은 아름답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그의 정치적 판단력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히려 ‘질서’와 ‘안정’을 강조하던 당시 정치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에게 순응이 주는 안락함에 젖어 ‘야심적인 게으름’(ambizioso ozio)만 남았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2.

물론 마키아벨리가 모든 종류의 ‘갈등’이 아름답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절제되고 조심스러운’ 갈등만 유익하다고 말한 것도 아니다. 또한 ‘법으로 묶여있는’ 갈등만을 아름답다고 말한 것도 아니다. 만약 그가 기존의 법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제한된 갈등만을 이야기하고자 했다면, 『강의』(Discorsi)의 1권 3장과 4장에서 로마 공화정이 ‘갈등’을 통해 새로운 ‘법’과 ‘제도’를 창출할 수 있었다는 말은 결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피렌체사』 5권 1장에서 왜 피렌체에서는 갈등이 파국을 초래하고, 왜 로마 공화정에서는 갈등이 새로운 법과 제도의 창출로 귀결되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불필요했을 것이다.

종종 마키아벨리의 ‘다수’ 또는 ‘인민’에 대한 비판적 서술을 ‘엘리트주의’ 또는 원로원 지배체제를 지향했던 ‘귀족적 공화주의’로 해석하려는 입장을 만나게 된다. 즉 『강의』 1권 44장의 ‘지도자 없는 군중은 무익하다.’와 같은 경구를 그의 리더십과 관련된 논의라고 단순화하거나, 키케로와 마찬가지로 그도 원로원이 중심이 된 귀족적 공화정체를 구상했었다고 주장하는 견해를 자주 보게 되는 것이다. 비록 이런 해석들이 제시하는 텍스트에 기초한 근거들이 모두 틀리지는 않았지만, 전자가 지나친 단순화라면 후자는 보수적 희망사항이다.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갈등’은 분노가 표출되고 대립이 격해져서 제도적 장치로는 도저히 규제할 수 없는 ‘소요’(tumulto)까지 포함한다. 과거로는 로마 공화정에서 인민들이 귀족에게 대항해서 시장의 좌판과 점포를 정리하고 군사적 의무를 거부한 채 신전으로 몰려가서 농성(secessio)한 것을 포함하고, 그의 시대로는 1378년 도시 빈민들과 하층 노동자들이 가담한 치옴피의 폭동(Il Tumulto dei Ciompi)까지 포괄한다. 즉 절제되거나 법으로 규제된 갈등만 아름답다고 말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마키아벨리에게 어떤 ‘갈등’은 아름답고, 어떤 갈등은 아름답지 않다는 것인가?

모든 도시(citta)에는 이러한 두 개의 다른 기질(umori)들이 발견되는데, [이러한 기질들은] 이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인민은 귀족들에게 명령받거나 지배당하지 않기를 원하고, 귀족은 인민을 명령하고 지배하기를 원한다(che il populo desidera non essere comandato ne oppresso da’ grandi ed e’ grandi desiderano comandare e opprimere el populo)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다른 욕구들로부터 도시들에서 세 가지 결과들 중 하나가 발생한다. 군주정(principato), 또는 자유(liberta), 또는 방종(licenza)이다 (Principe 9.(2)).

위에서 보듯, 마키아벨리는 사람들의 정치적 지향 또는 심리적 기질을 ‘지배하려는 욕구’와 ‘지배받지 않으려는 욕구’로 구별했다. 이때 ‘지향’ 또는 ‘기질’은 계층적이거나 계급적이지 않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귀족이든 인민이든, ‘지배하려고하는 욕구’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사회적 지위와 무관하게, 상대적인 약자는 ‘지배당하지 않으려는 욕구’를 가진다고 본다. 아울러 『강의』 1권 46장에서 보듯, 하나의 기질에서 다른 하나의 기질로 전이되거나 변화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런 전제에서 볼 때, 그가 ‘지배받지 않으려는 소극적 열망,’ 즉 ‘비(非)지배’를 대다수 인민의 기질로 규정한 것은 특별한 의도가 내재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우선 마키아벨리가 사용하는 ‘자유’(liberta)라는 단어가 로마 공화정에서 ‘노예가 아닌 시민’의 정치사회적 지위를 의미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즉 그에게 ‘자유’(libertas)란 시민이라면 모두가 향유해야할 조건이다. 따라서 어떤 정치공동체가 이러한 조건을 구축하려면, 밖으로는 독립적이고, 안으로는 타인의 자의적 의지에 종속되지 않는 시민적 권리를 모두가 향유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따라서 귀족이든 인민이든 '지배하고자하는 속성'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은 시민적 자유가 보장된 '공화정'에 국한된 설명이다. 모두에게 ‘자유’가 보장된 정치체제인 경우에만 인민의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를 발견할 수 있고, 다른 경우에 인민은 오직 ‘지배당하지 않으려는 욕구’만이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명령’과 ‘억압’의 구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위의 인용구에서 ‘명령하다’(comandare)와 ‘억압하다’(opprimere)라는 동사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전자는 자유와 충돌하지 않는다고 본 반면, 후자는 곧 ‘노예 상태’와 동일시하고 있다. 즉 그는 ‘비(非)지배 욕구’를 억압된 사람들의 기질로 정의하고, 이러한 기질을 정치권력으로부터 거리가 있는 대다수의 정치적 지향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정당한 명령’과 ‘법의 지배’까지 거부하면 ‘방종’으로 흐를 수 있다고 경고하지만, 그는 ‘억압’으로부터의 해방되려는 욕구가 법과 명령의 테두리를 벗어나 폭동에 이르는 경우에는 매우 관대하다.

다시 말하자면, 마키아벨리는 ‘지배받지 않으려는 욕구’가 불러일으키는 ‘갈등’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정치 공동체를 강하게 만든다고 믿었던 것이다. 대다수의 시민이 갖는 소극적인 속성, 즉 ‘지배받지 않으려는 열망’으로부터 ‘공공선’의 근거를 찾아내고, 이러한 ‘다수’의 열망을 충족할 수 있는 제도의 확립이 곧 강력한 나라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지배받지 않으려는 욕구’가 불러일으킨 ‘소요’가 부패와 나태를 방지한다고 말하고, 바로 이것이 강한 로마 공화정을 만든 초석이었다고까지 말한다.

3.

이런 맥락에서 마키아벨리는 ‘혁명’(rivoluzione)에 침묵한다. 마치 건강한 시민들의 '정의감'(thumos)을 불필요한 곳에 소진시킬 수 없다는 듯, 로마 공화정의 건설과 유지에 대해 논의하는『강의』에서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다. 자기의 비극적인 상황마저도 희화화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말 많던 사람이 ‘혁명’에 침묵하는 것이다. 대신 ‘지배받지 않으려는 열망’이 불러일으킨 ‘사건'(accidente), 그리고 참주를 살해하려는 ‘음모’(congiura)에 대해 너무나도 장황하게 듣게 된다. 마치 혁명은 수많은 예기치 않은 경로와 우연을 통해 ‘지배받지 않으려는 욕구’가 ‘지배하려는 욕구’로 전환된다고 생각한 듯, 그는 혁명보다 혁명적 대치를 계층 간의 공존으로 유도하는 지도자들을 부각시킨다.

바로 이 지점이 마키아벨리의 ‘기만’에 대한 충고와 그의 ‘다수’에 대한 견해가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다. 『강의』의 1권 47장에 등장하는 파쿠비우스(Pacuvius)처럼, 외적의 침입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분열 속에 있는 조국을 구하고자 한 경우에만 ‘다수’에 대한 기만을 용인한 것은 아니다. 바로 다음 장에서 마키아벨리는 마치 로마 공화정의 원로원이 평상시에 선거를 조작한 사실까지 허용될 수 있는 행동인 것처럼 말한다. 원로원 중심의 제정을 꿈꾸었던 리비우스조차도 『로마사』(Ab Urbe Condita)의 4권 56장에서 원로원의 행위가 부적절했다고 본 부분에서, 마키아벨리는 공화정의 유지를 위해서라면 인민을 대상으로 하는 ‘기만적 술수’도 용인된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면밀하게 살펴보면, 마키아벨리의 ‘기만’에 대한 논의와 그의 ‘다수’에 대한 논의는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비록 그가 『강의』 1권 53장과 54장에서 인민이 스스로의 파멸을 초래할 판단조차 서슴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는 로마 공화정을 실질적으로 통치하던 원로원도 몰락을 자초하는 잘못된 판단을 했다고 지적한다. 1권 37장의 결론에서 보듯, 그는 원로원도 로마 공화정의 몰락을 자초한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비록 그는 그라쿠스 형제의 혁명적 행보에 보다 비판적이지만, 그의 비난의 화살은 궁극적으로 당시 통령과 원로원을 향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조정자’(gubernator)의 역할을 방기한 정치 지도자들, 다른 한편으로는 원로원이 “선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질서를 파괴하는 선례(usanza)”를 남겼다고 탄식하는 것이다.

종합하면, 마키아벨리는 ‘지배받지 않으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인민을 싸잡아 비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사 잘못된 판단으로 인민이 소동을 일으켰더라도, 그는 인민이 아니라 인민에게 ‘비(非)지배’가 아니라 ‘지배’에 대한 욕구를 심어준 정치 지도자들을 비판한다. 그리고 그는 ‘다수’가 비(非)지배를 꿈꿀 때 시민적 자유와 시민적 품위가 함께 보장될 수 있고, ‘소수’가 비(非)지배를 위해 노력할 때 정치 공동체는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과두제의 철칙’과 같은 편견은 없다. 다만 냉혹하리만큼 차분한 정치적 현실주의, 그리고 욕망과 실수가 버무려진 인간 사회에 대한 통찰력만이 번득일 뿐이다. 그리고 ‘다수’가 정치에 참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지배받지 않고자 하는 것’이어야하고, ‘다수’가 지배를 꿈꿀 때에는 ‘다수’가 이미 ‘소수’의 선동과 야망에 사로잡혔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찰이 내재되었을 뿐이다. 

4.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이 폭증하고 있다. 세계 어디에서도 관공서나 공공장소를 점유하면서 자기들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전투적인 활동가들과 인터넷 매체가 형성하는 인상적인 주제에 대해서만 간헐적으로 반응하는 시민들의 무관심한 태도를 만나게 된다. 혹자는 지금은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를 통해 다양한 형태의 모바일 매체를 통해 분출되는 대중들의 요구를 수용해야할 시점이라고 말하기도하고, 혹자는 즉흥적으로 형성되는 집단의 의사가 초래할 위험을 방지할 보다 체계적인 규제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국사회도 마찬가지다. ‘정치’에 대한 불만이 이제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전환되고 있다. 스스로를 관리하기에 급급한 생활 속에서 점차 개인화되어 가는 시민, 무한경쟁 속에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절망만 안겨주는 시장, 시민들의 분노를 제도의 개혁이 아닌 다른 목적에 소진시켜 버리는 광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념적 도덕률만을 고집하며 회랑과 광장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대중 정치인, 이 모든 것이 ‘정치’도 ‘민주주의’도 일상에서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인식을 팽배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정치’가 필요한 국면이다. 생계의 어려움 속에 하루하루를 한숨 쉬며 살아가야하는 서민들, OECD 6번째로 빈곤층이 많은 나라에서 인간다운 삶의 조건마저 상실한 극빈자들, 빈곤의 대물림과 소득의 양극화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젊은이들, 이 모든 것들이 잠재되었던 계층적 갈등을 절망적 대립으로 이끌 여지를 갖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마키아벨리의 갈등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에 대한 논의로부터 어떻게 첨예한 갈등이 새로운 법과 질서로 귀결되는지에 대한 그의 충고로 우리의 관심을 옮겨야할 시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 어느 때보다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정치적 식견이 요구되는 시점인 것이다. 

* 이 저술에 대한 저작권은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고전 다시읽기] Aporia Reivew of Books, Vol.2, No.1, 2014년 1월, 곽준혁, 숭실대 가치와윤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