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칼로스’란 ‘아름다움(kalos)을 사랑하는(philo-)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는 이 형용사를 플라톤에게 붙이고, 앞으로 몇 편의 글을 쓰려 한다. ‘아름다움을 사랑한 철학자 플라톤’. ‘필로칼로스’라는 말은 ‘필로소포스’, 즉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 곧 ‘철학자’라는 말의 플라톤적인 동의어라고 감히 말하려 한다. 플라톤 하면 ‘이데아’(Idea), ‘이데아’하면 ‘선’(善, to agathon)의 이데아, ‘좋음’의 이데아를 최상으로 꼽는 것이 전통적인 시각이다. 따라서 나의 글은 어쩌면 전통적인 시각에서 벗어난 눈으로 플라톤을 전혀 새롭게 바라보려는 시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좋음’보다도 ‘아름다움’을 더 높은 것으로 놓고 플라톤의 논의를 다시 해석해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갖게 된 최초의 의욕과 패기만큼 이 연구의 결론이 신통치 않을 수도 있다. ‘아름다움’으로 플라톤을 해석하는 것이 ‘좋음’을 최상으로 높고 플라톤을 해석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수도 있고, 딱히 더 좋은 시각을 제공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최악의 경우 ‘좋음’을 중심으로 놓고 플라톤을 해석하는 것보다 더 안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될지 아직 잘 모르겠다. 관건은 플라톤의 철학 안에서 ‘좋음’과 ‘아름다움’이 서로에 대해 갖는 관계에 달렸다. 분명히 ‘아름다움’은 플라톤의 철학적 탐구에서 중요한 개념이며, 아주 중요하다고까지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플라톤 철학의 본질이고 핵심이라고 주장하면, 그게 먹힐지는 아직 두고 봐야 한다. 내 탐구의 포인트는 거기에 있다. ‘플라톤은 아름다움을 구심점에 놓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설명하려고 했다’는 것이 내 연구가 시작 지점에서 내세우며 연구를 통해 입증하려고 하는 ‘가설’이다.   

플라톤을 제대로 읽은 것인지, 아니면 엉뚱하게 착각을 일으켜 오해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플라톤을 읽으면서 점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아름다움’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아름다움이야말로 가장 좋은 것이고 그것을 아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것이라는 생각에 가까이 가고 있는 것이다.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인간의 모든 선택과 행동, 기예와 탐구가 ‘좋음’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는데,(1) 가장 좋은 것이 ‘행복’이라고 했다.(2) 이어 『정치학』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사람은 잘 사는 것과 행복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3) 행복을 보장하는 가장 좋은 것은 그렇다면 무엇일까? 그 물음에 대해 플라톤이 던지는 해답이 바로 ‘아름다움’일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아니, 그가 명시적으로 그렇게 주장했는지는 더 따져봐야겠지만, 그를 읽으면서 내가 갖는 확신, 다시 말해서 플라톤의 작품이 내 마음에 떠오르게 만드는 대답은 그렇다. 플라톤을 읽으면서 내가 갖는 대답은, 아름다움이야말로 인생을 가장 행복하게 해준다는 것이다.(4) 

   

잠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으로 가서, ‘좋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뉠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 사람들은 좋은 것에 마음이 쏠리고 나쁜 것을 멀리하는 본성이 있으니,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자기 의견이 좋은 쪽으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야 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와 같은 설득의 맥락을 세 가지로 나누고 ‘대중연설’을 세 가지 장르로 나누었다. 첫째, 공동체의 미래와 관련하여 심의를 할 경우, 어떤 정책을 취하고 어떤 법안을 통과시킬 것이냐를 결정하는 정치적 맥락이다. 이때 중요한 기준은 근본적으로 ‘실리적인’(utilitarian) 가치다. 그에 맞추어 연설가는 자신의 주장대로 하면 ‘이익’(sumpheron)이 되며, 그렇지 않으면 ‘손해’(blaberon)가 된다는 주장을 해야 한다. 둘째, 과거의 사안과 관련해서 법정에 선 피고에 관해 판결을 내릴 경우, 그가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결정하는 ‘법리적’(judicial) 맥락이다. 피고 측은 자신이 ‘정당’(dikaion)하다고 변호를 하고, 원고 측은 피고가 ‘부정’(adikon)을 저질렀다고 공격할 것이다. 한편 누군가를 칭찬하거나 비난하는 자리도 있을 수 있는데, 이때 핵심은 그가 ‘아름다운’(kalon) 사람이며 ‘아름다운’ 행위를 했느냐, 아니면 ‘수치스럽고 추악한’(aiskhron) 행위를 한 그런 종류의 사람이냐는 것이다.(5)

 

이 세 가지 구분에서 실용적이며 공리주의적인 ‘이익’과 법과 규범, 더 나아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에서의 ‘정의로움’,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학적인 것일 수도 있으며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것일 수도 있는 ‘아름다움’, 이 세 가지 가치는 모두 인간에게 ‘좋은’(agathon) 것이다. 중국의 제자백가 가운데 ‘법가’를 제시했던 한비자는 인간의 본성을 ‘탐리적’(貪利的) 존재로 파악하였다. 안전하고 유리한 것을 가까이 하고 위험하고 해로운 것을 멀리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는 말이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며 나쁜 것은 아니다. 전태일의 노동운동에는 노동자의 ‘이익’을 더 크게 하려는 동기가 있다. 이 또한 좋을 것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이다. 기본적인 삶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삶이 행복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익을 추구하는 욕망은 행복을 위한 삶의 추진력이 된다. 하지만 이익만을 추구하는 삶은 탐욕에 휩싸이고 다른 사람의 몫을 부당하게 빼앗는 폭력을 낳는다. 이익을 추구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 이익을 최대화하면서도 분배의 정의를 고려해야 한다. 정의가 죽은 곳에서 이익을 위한 추구는 이익을 침해당하는 사람을 고통에 빠뜨릴 뿐만 아니라, 정작 이익을 얻은 사람 자신도 불행해질 수 있다. 고통 받는 사람의 미움과 증오를 피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전태일의 운동은 그와 같은 부당함에 대한 항거였으며, ‘정의로움’이라는 좋음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싸움이었다.

1995년 11월 18일, 전태일을 기리는 영화가 나왔다. “내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라!”고 외치며 불꽃으로 사라져간 22세의 청년. 그의 이글거리는 눈빛은 스크린의 한 가운데에서 폭발하며 관객의 가슴을 압도한다. 굶고 일하는 어린 여공들에게 자신의 버스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고 통행금지에 쫓기며 뛰어가는 청년. 그는 더 이상 ‘탐리적 존재’라 말하기 힘들다. ‘근로기준법’을 공부하며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싸우는 모습은 그들을 착취하여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악덕 기업주들의 탐리성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좋음에도 급이 있는 것이다. 전태일은 그런 점에서 ‘정의로운 청년’이다. 그는 단순히 이익을 공정하게 나누자는 탐리적인 욕망에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지 않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규칙을 위해, 사회 정의를 위해 싸웠기 때문이다. 자신을 그것에 모두 던졌다. 하지만 영화의 제목은 ‘정의로운 청년’이나 ‘훌륭한 청년’으로 전태일을 수식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그의 삶은 이익이나 정의라는 좋음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감동을 주며, 두 가지 가치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는 완결성의 경지를 보여주었음을 영화 제목은 우리에게 시사한다. 

3. 아름다움을 위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삶도 나쁘지 않고, 이익이 많을수록 좋다. “다다익선”(多多益善). 그러나 그것만으로 삶이 온통 꾸려진다면 부정한 짓에 손을 대기 십상이며, 추악한 모습으로 삶을 일그러뜨릴 수 있다. 행복? 그런 이름이 그런 추악한 모습에 붙을 수 없으며, 설령 당사자가 그런 느낌 속에서 죽을 때까지 산다고 해도, 그 천박한 만족은 행복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며, ‘천박한 행복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더 고결한 행복을 누리지 못한 삶은 그 자체로 처참하고 불행하다. 정의로움도 참 좋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라면 살만한 사회다. ‘탐리적 존재’라는 인간 본성을 두고 가장 좋은 사회를 꿈꾸던 한비자는 법이 확립되고 엄격하게 집행되는 사회, 즉 법이 올바로 작동하는 정의로운 사회를 그렸다. ‘신상필벌’(信賞必罰) 법대로 잘 따르는 사람에게는 절대 손해가 안 가도록 하며 그에 따라 좋은 성과를 낸 사람에겐 상까지 주어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킨다. 한편 사사로운 이익을 탐하여 법을 어겨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법을 무력화시키려던 사람에게는 따끔하게 벌을 줘서 큰 손해를 입게 만드는 사회 시스템을 구상했다. 정의로운 사회를 꿈꾼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에 산다면 행복할 것 같다. 내가 비록 가난하고 권력이 없다 하여도 법을 지키면서 살면 법이 나를 모든 부당한 폭력에서 지켜줄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든든한가? 아무리 권력이 있고 돈이 많아도 법대로 사는 나를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면 얼마나 안전한가? 법이 바로 서고 정의가 삶의 원리가 되는 사회. 플라톤도 『국가』, 『법률』 등의 작품을 통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답하면서 ‘정의로운 사회’를 그려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무심코 던진 듯한 한 마디에 주목한다. 그는 그런 정의로운 사회를 ‘아름다운 나라’(kallipolis)라고 했던 것이다. (6) ‘정의로운 국가’보다 더 살고 싶게 만드는 국가, 그 안에 있으면 더 행복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곳, ‘아름다운 나라’. 단 한 번밖에는 주어지지 않은 나의 삶을 행복하고 아름답게 살기 위해 나는 플라톤의 아름다움에, 그리고 아름다움을 구심점에 두고 세계와 삶을 바라보았던 플라톤의 철학에 깊은 애정을 느끼며, 그가 말하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찾아 가려고 한다.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품고서.  

플라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나는 좋음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구분을 플라톤에게 적용하여 플라톤은 ‘좋음’을 강조하였으되, 좋음 가운데에서도 ‘아름다움’을 최고의 위치에 놓았다고 읽을 것이다. 물론 플라톤은 ‘좋음 그 자체’(to agathon kath’ auto)라는 말을 썼으며, 아름다움이나 이로움, 옳음(또는 정의로움)과는 별개의, 그것들을 넘어서는 상위 개념으로 ‘좋음’을 두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리고 끝내 플라톤의 물음은 ‘좋음’을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그 자체로 파악하고 그에 이르려고 했다고 읽을 수도 있다. 그것이 올바른 독법일 수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존재’가 그렇듯이 ‘좋음’도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시킬 때, 그 내용을 구체화해야만 한다면, 좋음의 부분이나 요소들을 말할 수 있고, 그 가운데 무엇이 가장 상위의 것이냐고 할 때,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는 플라톤이 아름다움을 통해 좋음을 이해하려고 했고, 명시적으로는 ‘좋음’을 내세우고 탐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아름다움’을 최상의 가치로 보았다고 읽는 것이 더 ‘멋진’ 독법이라고 생각한다.(7) 

<주>

1) 『니코마코스 윤리학』 1094a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