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편에서 필자는 이돈화의 인간관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는데, 거기서 특별히 기억해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이돈화가 인간을 우주대생명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존재로 간주했으며, 우주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위상을 부각시키기 위해 인간격(人間格) 개념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이와 흡사한 관점의 제시와 개념화 작업이 그의 사회관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본 편에서는 이돈화의 사회관이 지니는 특징과 의의를 이야기하겠다. 그의 사회에 관한 논의는 노동 개념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고, 그로 인해 인간과 자연 혹은 인간과 사회의 유기적 관계 규명에 치중되어 있으며, 사회의 진보를 긍정하면서도 그 기형적 발전의 문제를 심각하게 지적하고 있는 점 등이 특징임을 미리 밝혀둔다.  

이돈화의 사회관 역시 우선은 동학사상을 근간으로 한다. 개벽(開闢)사상을 비롯해 최제우의 자연(自然) 개념, 최시형의 이천식천(以天食天)설 등이 그의 사회사상의 기본 뼈대이다. 이돈화는 이 뼈대에 다윈의 진화론, 크로포트킨의 사회부조론, 마르크스의 노동에 관한 사유 내용 등을 흡수해 동학의 사회사상을 더욱 충실하게 만들려고 했다. 앞선 우주관과 인간관에서와 마찬가지로 그의 사회관은 동서철학 융합적 특징을 지닌다는 점 또한 아래 서술을 통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돈화의 사회관을 이해하는 데 가장 관건이 되는 것은 노동 개념이다. 그의 노동 개념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은 최제우와 최시형이 말한 기화(氣化)에 노동의 함의를 부여하였다는 것이다. 기화를 노동으로 해석하면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 또한 넓은 의미의 노동을 한다고 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그는 꿀벌이 꿀을 제조하는 예를 여러 차례 들며 동물 또한 노동을 한다고 명확히 밝힌 바 있다. 단 “동물의 노동은 자연을 직접적으로 취하는 반면, 인간의 노동은 자연을 간접적으로 이용하여 생산하는 것”(『신인철학』, 182쪽. 이하에서는 쪽수만 표시함)이 커다란 차이라고 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또 이렇게 인간이든 동물이든 넓은 의미의 노동을 하는 일차적인 이유는 생명체로서의 기본적 욕구 충족을 위한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개체는 오직 두 가지 본능을 가지고 있으니, 하나는 개체를 살리는 식(食)의 본능, 하나는 종속(種屬)을 영생케 하는 성(性)의 본능이다.”(178쪽) 뱀이 살기 위해 개구리를 잡아먹고, 까치가 새끼를 위해 둥지를 틀며, 인간이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것 등은 모두 다른 자연물을 대상으로 삼아 그것을 자신에게 유용한 형태로 변형, 가공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모두 넓은 의미의 노동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화를 노동으로 해석한 이상, 최시형이 ‘하늘로 하늘을 먹이는(以天食天)’ 총체적 기화의 두 가지 방식으로 제시한 이질적 기화와 동질적 기화 또한 이돈화는 노동론적으로 재해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시형이 말한 ‘이질적(異質的) 기화’, 즉 이종 간의 먹고 먹히는 운동은 이돈화에게는 이종을 대상으로 하는 노동을 뜻한다. 그리고 ‘동질적(同質的) 기화’, 즉 동종 간의 협력적인 운동은 이돈화에게는 동종간의 협동노동을 뜻한다. 그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이 두 형태의 노동이 부단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자신의 주장이 타당함은 다윈의 진화론과 크로포트킨의 사회부조론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고 여겼다. 그는 “다윈이 자연 안에서의 생존경쟁은 개체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집단 사이에도 적용된다”(100쪽)고 했으되, “집단을 조직한 개체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상호부조가 행해져, 희생, 헌신, 단결의 아름다운 도덕이 행해진다”(100쪽)고 한 점을 지적했다. 또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의 다음과 같은 견해를 자주 인용하기도 했다. “비록 여러 동물들 사이에 엄청나게 많은 투쟁과 살상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동종 간, 혹은 적어도 하나의 무리를 이룬 동물 사이에는 서로 보호해주고 서로 도와주며 서로 막아주는 일이 그것들만큼 혹은 그것들보다 더 많이 존재한다.”(크로포트킨, 『상호부조론』) 그가 이렇게 전 지구적 차원의 생명노동에서 생존경쟁보다 상호부조가, 다시 말해 대상 파괴적 노동보다 협동노동이 더욱 근본적임을 강조한 까닭은 뒤에 이야기하겠지만 인간사회 또한 그러해야 함을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아무튼 최시형의 이천식천(以天食天)설을 골간으로 하고 당시 서구의 자연 질서에 관한 견해들을 종합해 이돈화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두 가지 노동방식을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위와 같이 이돈화가 자연 안에서 일어나는 생존경쟁 혹은 상호부조의 질서를 노동론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마르크스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가 기화를 노동으로 재해석할 수 있었던 것도 꿀벌의 벌집 짓기를 정교한 노동이라고 찬탄한 마르크스에게서 적지 않은 시사점을 얻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며, 인간의 노동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 또한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그는 마르크스의 노동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술을 인용했다. “노동은 우선 인간과 자연 사이의 과정으로, 인간이 자신의 활동으로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적 교환을 매개하고 조정하며 통제하는 과정이다. 인간 자신은 일종의 자연력으로 자연의 물질과 서로 대립한다. 자신의 삶에서 유용한 형식으로 자연의 물질을 점유하기 위해 인간은 자신의 몸에 속한 자연력, 즉 팔다리, 머리, 손을 움직이게 한다. 그가 이 운동을 자신 밖의 자연에 적용시켜 자연을 개조할 때 그는 동시에 그 자신의 자연 또한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마르크스, 『자본론』) 이 인용문과 인간의 노동에 관한 이돈화 자신의 다음과 같은 간명한 서술을 비교해보자. “노동은 자연계의 에너지를 사회에 주입하여 인간의 삶을 성장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과 자연 사이의 기화작용이 의식적으로 생겨난다.”(180쪽) ‘물질적 교환’과 ‘기화작용’이라는 표현만 다를 뿐, 인간이 인간 자신을 위해 의식적으로 자연과 물질적 교환을 하거나 혹은 에너지를 사회로 끌어들여 자연을 개조하는 것이 노동이라는 생각은 같다. 

이돈화가 자연 또한 넓은 의미의 노동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인간과 자연의 노동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 점 또한 마르크스의 영향이다. 예컨대 그는 인간의 노동은 그것이 흔히 말하는 육체노동이라 하더라도 거기에는 “노동하는 자의 사상과 감정과 노동 대상에의 주의 등 여러 가지 정신적 방면의 행위도 병행하게 된다”(148쪽)고 하면서, 늘 정신노동이 수반되는 인간의 노동을 예컨대 꿀벌의 노동과 다음과 같이 구별했다. “꿀벌은 벌집을 제작함에 정교한 일을 한다. 그러나 꿀벌이 사람과 다른 점은 꿀벌은 오직 본능적 노동임에 반해, 사람은 육체적 노동 이전에 먼저 관념적으로 도안을 요구하게 된다. 즉 도안과 설계가 실제 노작보다 앞서게 된다.”(148쪽) 우리는 인간이 일종의 목적의식적 노동을 한다는 점에서 동물의 본능적 노동과는 구별된다는 이돈화의 이러한 발언 역시 마르크스의 견해를 따른 것임을 안다. 그러나 이렇게 인간과 동물의 노동에 대한 구별에서 두 인물이 나아간 사유의 방향에는 크게 다른 점이 있다. 마르크스가 우월한 인간 노동에 관심을 집중시켜 사회의 계층적 노동 분업이 야기한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 노동의 소외 문제 등을 해결하려 한 것과는 달리, 이돈화의 관심은 자연에 대한 적극적 이용과 동시에 자연에 대한 인간의 윤리적 책임 문제로 뻗어나간다. 

인간은 ‘이질적 기화’, 즉 자연 이용을 의식적으로 하고, 자연을 개조하는 기화, 즉 노동의 방법을 과학적으로 연구해 지식을 축적하고 기술을 발전시켜왔는데, 이돈화는 이 지식과 기술, 그리고 노동양식이 한편으로는 인간을 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을 배려하는 것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자연을 배려하지 않는 지식, 기술, 노동양식으로는 사람을 키울 수도, 우주전체를 키울 수도 없다고 말한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최시형의 생명사상을 계승한 것이며, 바로 이 점에서 이돈화와 마르크스의 노동에 관한 사유의 방향에는 커다란 차이점 또한 존재하는 것이다. 

기화(氣化), 즉 노동에 관한 위와 같은 사유 내용을 바탕으로 이돈화는 노동하는 개인과 노동조직으로서의 사회의 관계를 규명하여 인간사회의 진보가 어떻게 가능한지, 그러면서도 그것이 야기한 심각한 문제는 무엇인지 탐색했다. 

이돈화는 인간사회의 진보가 이른바 ‘사람성 자연’에 의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성 자연’이란 간단히 말하면 사람의 자연 상태를 뜻한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사람의 자연 상태란 홉스가 말하듯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상태도 아니고, 루소가 말하듯 자유, 평등, 행복만이 있었던 상태도 아니다. 이돈화는 인간에게 자기중심성과 타자를 위하는 성향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인간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사회 역시 “홉스가 주장한 것처럼 비참한 아수라장도 아니고, 루소의 눈에 비친 것처럼 사랑과 평화의 낙원도 아니며, 사실은 그 양면을 함께 지닌 것”(100쪽)이라고 보았다. 나아가 진화론의 영향을 받아 인간의 자연 상태는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개선된다고 여겼으며, 사회부조론의 영향으로 인간의 자연 상태는 끊임없이 상호부조적 조화를 지향한다고 여겼다. 

이돈화의 ‘사람성 자연’ 개념에 관한 이해와 관련하여 더욱 중요한 것은 앞서 우리가 다룬 그것과 노동 개념과의 관련성이다. 이돈화는 ‘사람성 자연’이 사회적 노동을 통해 부단히 재구성된다고 했으며, 그 구성방식을 아래와 같이 공식화했다. 

이돈화는 위 세 공식 중에서 앞의 두 공식은 넓은 의미의 사회적 노동을 하는 꿀벌에게도 적용된다고 하며 그 두 공식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개체 꿀벌은 꿀을 제조할 수 있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꿀이 제조되지는 않는다. 그 꿀벌의 능력은 반드시 외부에 있는 꽃의 에너지와 결합되어야 실제 꿀 제조 기능으로 발휘될 수 있다.(제1공식) 이러한 개체 꿀벌의 꿀 제조 기능의 총화가 곧 꿀벌사회의 기능이다.(제2공식) 인간 또한 꿀벌과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노동의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그 능력은 반드시 자연의 에너지와 결합되어야만 실제 노동행위로 발휘될 수 있다.(제1공식) 이러한 개별 인간의 노동 기능의 유기적 총화가 곧 노동조직으로서의 인간사회의 기능이다.(제2공식)

위와 같이 앞의 두 공식은 개체의 노동 능력과 자연력이 결합하여 노동행위가 일어나고, 이 개체의 노동행위가 유기적으로 결합되는 데서 노동조직으로서의 사회의 기능이 생겨남을 뜻한다. 그런데 이돈화는 세 번째 공식은 인간에게만 적용될 수 있다고 했다. 세 번째 공식은 유기적 노동조직으로서의 사회가 발휘하는 기능이 다시 개별 인간에게 흡수되어 사람의 자연 상태를 재구성한다는 의미이고,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회화된 지식과 기술 등을 개별 인간이 습득하여 사람이 부단히 자신을 새롭게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당연히 인간은 그럴 수 있는 이성적 능력을 지닌 반면, 예컨대 벌은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벌이 수 천 수 만 년 동안 진화가 없는 까닭은 무엇인가? 외적인 사회적 기능이 벌의 개인 능력에 반영이 되어 그것을 자신이 소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112쪽) 바꿔 말하자면 인간은 사회적 기능을 반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인간사회는 진보할 수 있었다고 하겠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인간사회의 진보가 인간의 이성적 능력 덕분이었다고 하면 될 터인데, 이돈화는 무엇 때문에 사회진보의 동력은 ‘사람성 자연’이라 했던 것일까? 그의 다음과 같은 말을 주의 깊게 보자. 

이돈화는 인용문에서 자연의 에너지가 개별 인간의 노동을 통해 사회 안으로 끊임없이 유입되되, 그 자연을 이용하는 개별 인간의 노동의 총화는 특정한 사회적 생산관계에 의해 수행되며, 그렇게 수행되는 사회적 노동의 양식은 다시 개별 인간의 능력 속에 반영됨으로써 특정 시대마다의 ‘사람성 자연’이 구성된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위 우리의 물음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것은 사람성 자연을 구성한다고 하는 인용문 서두의 세 요소이다. 이 세 요소에 주목한다면, 우리는 왜 그가 사람성 자연을 사회 진보의 동력이라고 했는지 비로소 이해가 된다. 사회의 진보는 자연의 에너지가 사회로 유입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회의 진보는 개별 인간이 노동을 하지 않고 사회화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지 않아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회의 진보는 사회적 생산 혹은 노동이 짜임새 있게 조직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마디로 말해 자연, 사회, 개별 인간, 세 요소 중 어느 하나가 결여되어도 사회의 진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회의 진보가 단순히 인간의 이성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견해보다 그 원인을 좀 더 전면적으로 파악한 견해라 하겠다.

 이돈화는 인간이 사회적 노동을 통해 역사적으로 형성하고 발전시켜온 특수한 사회형태가 각기 어느 정도는 필연적이고 합리적이라고 했다. 예컨대 고대의 노예제사회, 중세의 농노제사회, 근대의 자본주의사회 등의 출현과 발전은 어느 정도는 필연적이고 합리적이라 했다. 그러면서 이 역사적 필연성과 과도적 합리성 또한 사람성 자연으로 귀결시켰다. 또 그는 자신이 말하는 ‘사람성 자연’의 ‘자연’이 “최제우가 늘 말하던 무위이화라는 교훈에 뿌리를 두고 있다”(109쪽)고 했다. 그리하여 최제우가 자연의 무위이화의 원칙을 사람이 따라야 한다고 했듯이, 이돈화 역시 사람성 자연은 우선은 자연계의 자연과 합일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다만 그는 이 합일을 주로 미적 판단에 제한해 이야기했다. 즉 사람이 자연이 아름답다고 판단할 때 사람성 자연과 자연계의 자연은 합일된다는 것이다. 또 그는 사람성 자연은 그러한 인간과 자연의 조화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회의 조화가 이루어짐으로써 최종적으로 완성된다고 했다. 인간은 “최종적으로는 내외의 조화를 얻음으로써 심리상태의 조화는 그 완성을 보게 된다.”(110쪽) 여기서 그가 말하는 인간과 사회의 조화, 혹은 내외의 조화란 이돈화가 양자의 관계를 주로 노동의 측면에서 규명했음을 생각할 때 노동하는 개인과 노동조직으로서 사회의 조화를 뜻할 것이다. 과연 이돈화는 인간과 사회의 그런 조화를 꿈꾸며, 그렇지 못한 현실을 아래와 같이 비판한다.

이돈화는 당시 사회가 기형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고 했지만, 사실상 동서고금에 걸쳐 사회는 대부분 그런 기형적 발전을 해왔다. 사회가 자애로운 어머니 역할을 해온 적은 별로 없다. 그런 점에서 사회가 자모(慈母)의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은 이상적이지만, 이돈화에게 그 이상은 앞서 언급한 상호부조가 주(主)가 되고 생존경쟁은 종(從)이 되는 자연 혹은 우주의 섭리를 사회에서도 실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회가 어째서 자모의 역할을 못 하고 그럼으로 인해 사회에서 개인은 소외되고 사회는 기형적으로 발전해왔는지 이돈화는 비록 충분히 그 원인을 규명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그의 사회비판 정신은 도덕과 종교의 정신으로 무장한 새로운 인간(新人)이 출현해야 한다는 논의로 이어진다. 다음 편에서는 마지막으로 이돈화의 도덕과 종교에 관한 견해를 소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