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체(Benedetto Croce)가 ‘아마도 풀리지 않을 문제(una questione che forse non si chiuderà mai)’라고 고백한 것처럼, 마키아벨리의 정치철학은 많은 수수께끼를 담고 있다.  기독교적 윤리를 바탕으로 마키아벨리를 악마라고 지칭한 프리드리히(Friedrich II) 대왕의 비난처럼 ‘악의 교사’로 평가받기도 하고, 이탈리아의 민족적 열망에 사로잡힌 스피나찌(Innocenzo Spinazzi)가 마키아벨리의 무덤에 새겨놓은 ‘어떤 찬사도 그의 이름에 걸맞지 않다’(Tanto nomini nullum par elogium)와 같은 말을 듣기도 한다. 우리에게 그의 정치철학은 악마의 분장을 한 모사꾼으로부터 피렌체의 미래를 한탄하는 애국지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생애를 두고도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끊이지 않는다. 20세기 중반 그의 아버지 베르나르도의 일기가 발견되기 전까지, 마키아벨리의 어린 시절은 그가 쓴 편지와 회고에 의존했다. 마키아벨리가 남긴 글들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었던 그의 어린 시절은 한마디로 가난이었다. 그는 자신의 친구인 프란체스코 베토리(Francesco Vettori)에게보낸 편지에서 “나는 가난하게 태어났고, 아주 어릴 적 나는 어떻게 쓰느냐보다 어떻게 아끼느냐를 배웠다”고 회고하고 있다(Marzo 18, 1513). 학자들 중에는 이 표현이 지나친 과장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첫 번째 이유는 그의 집안이 한때 피렌체에서 매우 유력한 가문이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 이전에 13명이나 피렌체 고위직에 봉직했으며, 단테와 동시대 사람이었던 죠반니 마키아벨리(Giovanni Machiavelli)는 살인과 강간으로 기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 고위직에 선출되었을 정도였다. 또 다른 이유는특정한 직업도 없이 공증인 자격증만 가지고 있던 아버지가 큰 집에 농장을 건사할 수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29세라는 젊은 나이에 제 2 정무국 서기장으로 선출되었다는 사실이다. 24세까지 부모의 후견을 받는 피렌체의 일반적 관례에서 볼 때, 피선거권을 겨우 갖는 나이에 요직을 차지한 것을 단순히 개인의 능력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1469년 5월 3일 마키아벨리가 태어났을 때 그의 집안은 이미 기울어 있었다. 궁핍한 것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부유하지는 않았다. 집안의 농장은 매우 작고 소출도적었으며, 그의 아버지는 세금 보고서에 “일정한 직업”이 없다고 썼다. 다만 마키아벨리의 인문학적 교양을 위한 아버지의 투자는 지속되었던 것 같다. 그의 아버지는 무척이나 좋은 책을 얻거나 사는 데 열중했다. 출판사의 지명 색인을 도와줘서 리비우스의 『로마사』(Ab Urbe Condita)를 얻은 일화가 있을 정도다. 이러한 아버지의 인문학적 열정과 인문학자들과의 교분은 마키아벨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7살 때부터 마테오(Maestro Matteo)에게 라틴어를 배웠고, 이듬해 포피(Battista da Poppi)로부터 문법을 배웠으며, 몇 년 후 당대의 석학이었던 란디노(Cristoforo Landino)의 동료로서 명망을 누리고 있던 론칠리오네(Paolo da Ronciglione)로부터 인문학적 교육을 받게 된다. 그의 대학교육에 대해서는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1487년까지 기록된 그의 아버지의 일기에는 그가 대학교육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고, 그의 문체와 형식이 당시 대학교육을 받은 인문주의자들의 것과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마키아벨리 연구자들은 두 가지 정도 추측을 하고 있다. 피렌체 대학의 전신인 피렌체 학당(the Studio Fiorentino)에 출석했지만, 정규대학교육을 받은 사람들과는 달리 그리스어를 읽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젊은 나이에 정계에 입문한 것은 큰 수수께끼 중 하나지만, 1490년대 후반부터 그의 행적은 상대적으로 풍부한 기록들을 갖고 있다. 특히 그의 어머니 바르톨레메아가 죽은 1496년부터 그의 행적은 여러 기록들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이 시기 마키아벨리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매우 우울했고, 정치적으로는 변화에 대한 열망이 싹트고 있던 시기였다. 특히 1494년 메디치 가문이 시민봉기로 추방되고 난 뒤 정권을 잡은 수도사 사보나롤라(Savonarola)에 대한 비판이 두드러진다. 1494년 프랑스 샤를 8세에게 힘없이 길을 열어준 피에로 데 메디치(Piero de Medici)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사보나롤라 정권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입장은 매우 냉정했다. 그는 사보나롤라의 보다 민중적인 정치개혁은 적절하다고 보았지만, 그의 선동적 연설과 전횡적이고 지나치게 종교적인 통치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발했다. 이런 사보나롤라에 대한 비판적 태도 때문에 그의 첫 번째 공직선거출마는 실패를 가져왔다. 그러나 사보나롤라와 교황과의 대립이 가져온 피렌체의 외교적 고립과 지나친 금욕적 통치가 불러일으킨 시민들의 반감은 마키아벨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1498년 사보나롤라가 실각한 후, 마키아벨리가 새로 수립된 공화정에서 제 2 정무국 서기장으로 선출된 것이다.

 

1437년 설립된 제 2 정무국은 주로 최고 행정체계인 시뇨리아(Signoria)의 예산집행을 비롯한 국내 문제를 담당했지만, 용병대장의 임금 지급이나 몇 달 후에 임명된 10인 위원회의 서기장이라는 직분을 통해 전쟁업무에도 관여했다. 실제로 마키아벨리의 활약은 외교 분야에서 돋보였다. 특히 샤를 8세의 이탈리아 침공이라는 혼란을 틈타 독립한 피사를 회복하려는 외교업무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피사와의 전쟁은 항구가 없는 피렌체가 생명줄을 회복하려는 몸부림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런 때에 그의 냉정하고 신중한 판단을 담은 보고서가 피렌체 공화국의 수반이었던 피에로 소데리니(Piero Soderini)의 큰 신뢰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용병대장들의 잦은 배신, 프랑스를 비롯한 강대국들의 이해타산으로 인해 그의 활약은 늘 빛을 바랬다. 이런 와중에 그는 스스로가 이탈리아를 구제할 인물로 칭송했던 체자레 보르지아(Cesare Borgia)를 만나게 된다. 교황 알렉산드로 6세의 아들로, 프랑스 루이 12세의 지원을 등에 업고 이탈리아의 중부를 휩쓸고 있던 보르지아가 피렌체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파견된 것이다. 그는 보르지아로부터 잔인하고 무분별한 용병대장들과는 다른 품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인함을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써 목적을 달성하는 무서우리만큼 냉정한 태도에 감탄을 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사람이라면 이탈리아의 분열만을 가져온 교회 세력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그러나 1503년 교황 알렉산드로 6세의 갑작스러운 사망, 두 차례의 교황 선거를 통해 등장한 율리우스 2세의 번득이는 교활함을 묵인할 수밖에 없었던 보르지아의 몰락이 마키아벨리의 기대를 앗아가게 된다. 이 때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민병대의 필요성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되고, 그의 노력으로 1506년 창설된 민병대가 주축이 된 피렌체군이 1509년 마침내 피사를 회복하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

 

그러나 이후 그의 생애는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주저앉은 피렌체 공화국과 함께 서서히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 새로 교황이 된 율리우스 2세는 거침없이 세력을 넓혀갔고, 이에 위협을 느낀 프랑스 루이 12세와 교황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이탈리아에는 전운이 감돌게 된다. 마침내 1512년 프랑스와 교황과 동맹한 베네치아·스페인의 연합군 사이의 전쟁이 발발하고, 4월 11일 라벤나 전쟁에서 총사령관을 잃은 프랑스군이 철수하자 지금까지 프랑스에 의지했던 피렌체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이미 피렌체에는 메디치 복구의 움직임이일어났고, 8월에 피렌체령인 프라토(Prato)가 스페인 군의 손에 유린되었다. 교황의 지시와 스페인 군의 지원 속에 메디치의 군대는 피렌체 민병대를 연파했고, 9월 피렌체 공화정은 친메디치 쿠데타로 사실상 붕괴하게 된다. 피에로 소데리니는 사임과 동시에 망명 길에 올랐고, 마키아벨리는 11월 파직됨과 동시에 피렌체 외곽으로 추방당하는 수모를 당하게 된다. 그의 처지는 1513년 미수에 그친 반메디치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아 더욱 만신창이가 된다. 이때 그의 나이 43세였고, 그 이후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정치적 삶으로부터 완전히 배제된 채 살아가게 된다. 비록 망명해 있던 피에로 소데리니가 라구사(Ragusa) 공화국의 서기장을 제의하기도 했고, 1521년 정무국 서기장의 봉급보다 훨씬 많은 돈으로 용병대장 콜론나(Prospero Colonna)의 서기장 직을 제의받기도 했지만, 그는 피렌체를 제외한 다른 지역의 공직을 모두 거절했다. 대신 그는 이후 교황 클레멘스 7세로 즉위한 줄리오 메디치(Giulio de' Medici) 추기경의 제의를 받아들여 피렌체의 역사를 집필했고, 피렌체의 성벽방어를 위해 만들어진 아무 보잘 것 없는 위원회의 서기장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마키아벨리의 이러한 조국애는 1527년 스페인 군에 의해 로마가 함락되면서 들어선 피렌체 공화정이 그를 불신하는 계기가 된다. 결국 새로운 공화정이 그를 메디치 가문의 인사라는 이유로 공직선출에서 배제하자, 마키아벨리는 갑자기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때 그의 나이는 58세였다.

 

산티 디 티토(Santi di Tito)가 그린 마키아벨리의 그림은 맑고 기대에 찬 눈망울에 야릇한 미소가 가득하다. 이 초상화는 그가 살아있을 때 그려진 것이 아니다. 따라서 산티가 그린 야릇한 미소는 화가의 마키아벨리에 대한 느낌이 들어가 있다. 우리가 그리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그림도 산티의 것과 마찬가지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마키아벨리의 얼굴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모습을 갖고 그려진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재치와 진지함, 다른 한편으로는 음모와 슬픔이 함께 공존한다. 최근 몇몇 학자들은 마키아벨리의 철학에 대한 다양한 해설들 중 일부는 전혀 근거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렇게 단정을 짓는 것이 무리일 수 있겠지만, 모든 해석들이 적절하다고 말하는 것은 더 큰 무리일 수 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몇 가지는 지나치거나 부적절하다는 정도의 주장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세 가지 논쟁거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논쟁거리는 이른바 마키아벨리의 정치철학이 갖는 탈규범적 성격과 관련된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결과론적 현실주의를 대표하는 것으로 알려진 마키아벨리의 평판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피력하는 학자들은 무엇보다 마키아벨리 스스로가 이러한 말을 한 적이 없고, 정치권력의 장악과 유지를 위해 기만과 잔인함이 정당화된다고 말한 적도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 이면에는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현실주의를 소크라테스로부터 내려오는 고전적 정치철학으로부터 이탈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입장에 대한 반발이 스며들어있다. 다시 말하자면 마키아벨리는 고전 철학의 회복을 꿈꾼 시민적 인문주의(civic humanism)의 전통에 서 있고, 그의 저술들은 기만과 잔인함으로 묘사되는 권력정치가 아니라 보다 좋은 정치질서를 수립함으로써 시민적 자유와 번영을 획득할 수 있는 진정한 영광(gloria)을 가르치고자 집필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이른바 낭만적 민족주의자들이 마키아벨리에 대한 기독교적 비난에 대해 반발했을 때 이미 태동되었고, 최근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가 학계의 관심을 끌면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물론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현실주의를 몰도덕적이라고 규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의 정치철학에도 덕성과 좋음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의 정치철학이 고전 철학이 전달하고자했던 올바름(dikaiosyne)이나 좋은 삶(eu zen)을 계승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스트라우스(Leo Strauss)가 그를 ‘악의 교사’(a teacher of evil)라고 평가한 것처럼, 기독교적 도덕의 잣대를 버린 것뿐만 아니라 그의 근대성은 충분히 고전적 정치철학의 전제들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마키아벨리는 고전 철학의 형이상학적 태도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군주』(Il Principe)에서 플라톤으로부터 내려오는 좋은 정치체제에 대한 구상들을 ‘잘못된 환상’(falsa immaginazione)이라고 폄하한다(Principe 15). 비록 그가 점성술을 믿었다거나 하늘(cielo)과 같은 초자연적 힘을 이야기 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자연이 부여한 인간의 한계를 성찰함으로써 획득되는 규범적 절제와 도덕적 조화가 그에게 절실했다고는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그가 말하는 ‘자유로운 삶’(vivere libero)에서 고전 철학이 전달하고자 했던 도덕적 지침과 형이상학적 성찰이 부재한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욕망이 갖는 자연성, 그리고 이러한 자연성이 만들어 내는 질서로부터 좋은 정치체제에 대한 구상을 시작하는 것, 바로 이것이 초인간적 힘을 거부함으로써 얻고자했던 마키아벨리의 ‘실제적 지식’(verità effettuale)이었던 것이다.

두 번째 논쟁거리는 마키아벨리의 정치이론이 얼마나 과학적이냐는 것이다. 그의 정치철학이 갖는 과학적 성격의 강조는 경험주의적 관찰에 대한 근대 정치 철학자들의 관심과 상당한 연관성이 있다. 근대 정치철학자들은 문화와 시대적 맥락으로부터 독립된 인간 행동의 공통된 특징들을 찾아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가를 예측할 수 있는 법칙을 마키아벨리로부터 발견하려했다. 실제로 마키아벨리의 사회심리학적 요소에 대한 경험적 관찰은 이런 징후들을 갖고 있다. 죽음에 대한 공포, 부를 향한 욕망, 지배하고자하는 욕구, 인정받고자하는 욕구로부터 자유로운 인간들은 없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인간들 사이의 차이가 있다면, 두뇌와 상상력, 욕망의 정도, 세대 간 시각의 차이, 상대적 사회적 지위에 따른 지배욕의 관철 가능성으로 국한한다. 이러한 상태에서 인간의 이성은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적 성격 이상이 될 수 없다. 즉 이성은 객관적인 도덕적 진리를 찾고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욕망의 충족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마키아벨리의 정치이론은 이른바 사회적 효율의 극대화를 통해 정치사회적 판단을 유도했던 공리주의의 선구자처럼 보일 수도 있고, 홉스(Thomas Hobbes)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서 이기적 인간이 열망하는 안전한 삶이 곧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삶’(vivere politico)과 동일시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꿈꾼 정치적 삶을 이기적 인간의 욕구의 충족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그의 정치철학을 왜곡할 위험이 크고, 동일한 이유에서 마키아벨리의 정치이론을 인간 행위의 과학적 분석으로 국한시키는 것도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마키아벨리가 이기적 인간의 욕망을 충족하는 것만으로 정치적 삶을 이해했다고 단정한다면, 그의 시민적 헌신과 조국에 대한 사랑을 해석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앞서 기술했듯이, 그의 정치적 삶에 대한 열정은 이기심이나 힘의 철학과는 배반되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그가 철저한 계산속에서 정치적 야망을 충족시키려했다면, 피에로 소데리니가 제안한 서기장 직분들을 받아들여야 했다. 아울러 인간의 이기심을 마키아벨리의 정치이론이 지닌 과학성의 특징으로 제시하는 것도 곤란하다. 사실 르네상스 시대의 지식인들의 공통된 관심사가 인간의 이기적 속성이었고, 실질적이고 물리적인 힘을 가지고 정치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태도도 대부분의 동시대 지식인들의 저술들 속에서 발견된다. 즉 권력을 향한 욕망(libido dominandi)의 인정, 그리고 이러한 욕망을 조국의 영광(gloria)이나 개인적 명예(onore)로, 아니면 용기(valore)와 경쟁(concorrenza)으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을 다른 인문주의자들의 글 속에서도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키아벨리가 이기적 욕망을 통해 투영한 인간의 본성이 곧 시민적 공공성을 상상할 수 없는 비관주의를 낳았다고 단정할 근거도 없고, 그가 생각한 이기적 인간들의 정치적 삶이 곧 수학적 과학성에 토대를 둔 사회계약의 패턴으로 귀결된다고 볼 수도 없다. 오히려 마키아벨리는 최소한의 시민적 덕성과 인간성(humanità에 기대를 걸고 있었고, 정치적 삶 속에서 인간의 이기적 비사회성이 설득과 심의라는 비과학적 과정을 통해 사회성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마지막으로 검토해야할 논쟁거리는 바로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다. 오래 전부터 그가 군주정을 옹호했었는지, 아니면 공화정을 옹호했었는지가 논쟁거리였다. 이러한 논쟁은 마키아벨리의 대표적인 두 저서의 저술 시기와 관련된 논란까지 일으켰다. 그러나 지금 학계에서 그가 군주정을 옹호했었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거의 없다. 대신 그가 구상한 공화정이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의 공화주의는 어떤 정치적 원칙들을 대변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예를 들면, 『군주』(De Principatibus)의 마키아벨리가 군주정을 꿈꾸었느냐 아니면 공화정을 염두에 둔 것이냐는 더 이상 관심거리가 아니다. 대신 군주에게 공화정을 수립함으로써 진정한 영광을 차지하라고 충고를 하는 것이냐, 아니면 전제군주나 로마 교회의 수장을 제거하라는 지시를 담은 음모냐, 아니면 절대 권력을 행사할 필요에 있어서는 공화정도 군주정과 동일하다는 것을 담은 책이냐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군주에게 바쳐진 책에서까지 이런 모습을 찾는다면, 자신을 따르던 젊은이들에게 바친 『리비우스 로마사 첫 10권에 대한 강의』(Discorsi sopra la prima deca di Tito Livio, 이하 『강의』)에서 공화주의자로서 마키아벨리의 얼굴을 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일인 지도 모른다. 특히 그 대상이 소크라테스를 찾아온 글라우콘과 같이 권력의 손짓을 기다리던 야심찬 젊은이라면, 로마 공화정의 회복을 위해 시민의 이름으로 부르짖던 그라쿠스 형제와 같이 열정을 가진 유력자 가문의 자제였다면, 그리고 시대와 운명의 장난으로 스스로가 못한 일을 젊은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선량한 사람의 의무(offizio di uomo buono)라고 마키아벨리가 진정 믿고 있었다면(Discorsi 2.proemio), 공화주의자로서 마키아벨리의 말에 새삼 귀를 기울이는 것이 그리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야심만만하고 젊은 귀족 자제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는가에 주목하면 흥미로운 결과를 얻게 된다. 예를 들면, 인민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제국으로 성장한 로마 공화정을 귀족들이 꿈꾸게 만들었다거나, 유력자들에게 인민의 자유를 빼앗았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가르침으로써 인민의 폭넓은 정치 참여를 보장하는 정치 질서(governo largo)를 실현하려고 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그의 야릇한 미소도 가끔 솔직함에 파묻혀 버린다. 군주에게 바치는 책에서조차 자신이군주의 특성도 알고 백성의 속성도 아는 그 누구보다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을 헌사에서 숨기지 못했던 사람이고, 초대 로마 황제의 별칭인 원로원의 수장(princeps senatus)을 『군주』의 라틴어 제목으로 사용함으로써 공화주의자로서의 자부심을 과시했던 마키아벨리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할 위인이라면, 그의 두뇌는 어디에도 쓸모없다고 경고했던 마키아벨리다(Principe 22). 이런 그가 말하는 시민적 자유(libertà는 ‘타인의 자의적 의지로부터의 자유’로 구체화된다. 즉 타인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게 선택하거나 행동하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시민으로서의 삶을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향유할수 있는 조건으로 확대되어 있는 것이다. 비지배 자유로 표현되는 공화적 자유가 바로 그가 말하고자했던 정치적 삶의 본질이고, 이것이 바로 이탈리아의 주권적 자유뿐만 아니라 전제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시민적 힘의 동력이며, 이것이 마키아벨리가 기대했던 시민들의 애국심(amore della patria)을 배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