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전통 사회에서 <논어>의 힘이란 무엇이었을까? 공자 스스로 말하고 있듯이 그는 분명 배움 속에서 재미를 느꼈고, 또한 그에게 수천 수만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제자들로 붐비지 않았던가? 공자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라는 말에 바로 이어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말한다. 공자는 그에게 기쁨을 주었던 그 공부로 인해 꽤 높은 벼슬을 했다고 하며, 또한 그의 주변에는 평생 3,000이 넘는 제자들로 붐볐다. 그가 기뻐하고 즐거워하지 못할 까닭이 없었던 것이다.

<논어>에 얼마나 심오한 형이상학이 담겨 있는가 또는 공자의 철학이 얼마나 체계적인가 하는 것은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공자가 누렸던 그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는, <논어>가 지닌 그 힘, 그의 주변이 3,000의 제자들로 붐비게 했던 그 힘과 매력을 찾아가는 것이 첩경이다. 우리는 이제 공자를 잠정적으로 ‘철학자’라고 생각하도록 하자. 그의 사상이나 철학이 서구의 그것과 얼마나 닮았는가 또는 얼마나 깊이가 있었는가 하는 점은 옆으로 잠시 비껴두자. 중요한 것은 그의 말이 우리의 삶과 얼마나 밀착되어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공자의 <논어>가 역사 속의 전통 사회에서 내내 가졌던 힘의 원천, 수 천 수 만의 ‘공자 추종자들’(Confucians)이 그를 닮고자 했던 매력의 근원을 회복하는 방법을 ‘철학 연습’ 혹은 ‘비판적 해석학’이라 불러보자. 여기서 연습이란 말은 서양의 닮고자 했던 그간의 노력에 대해, 우리의 현실의 삶과 문제를 직접 고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답을 맞출 수는 없겠지만, 늘 새롭게 일어나는 현실과 대면하려는 노력이라는 의미에서 그것은 연습이다.

하지만 전통 사회의 현실과 오늘날의 현실은 너무나 커다란 차이가 있다. 즉 우리가 전통이라 부르는 것은, 연속적이지 않고 불연속적이다. 우리는 서양의 근대를 삶의 양식으로 받아들였고, 현대의 최첨단 과학기술 문명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그래서 단지 고전을 다시 읽고 또 읽는다 해서 우리 삶의 문제가 그대로 해결될 수는 없다. 거기에서 우리는 역사를 초월하는 모험을 감행해야 하고, 우리의 삶에 맞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직시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날 고전을 재해석하는 것은 ‘비판적 해석학’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러한 ‘철학 연습’ 혹은 비판적 해석학의 모델 또한 옛 학자들의 사례를 길잡이로 삼을 수 있다.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원한을 샀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性情이 겪한 사람이라면 복수하겠다며 주먹을 불끈 쥘 수도 있고, 평생 원한을 갚는 일에 매달리기도 한다. 옛 역사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처럼 法 규범이 발달한 사회에서 원수를 갚기 위해 사적으로 복수하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한 사람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데 <노자>는 황당한 말을 한다. <노자> 63장에 보면 “원한을 갚기를 은혜로 하라”(報怨以德)는 말이 그것이다. 복수를 해도 모자랄 판인데 노자는 우리에게 聖人이 되기를 요구하는 것일까? 원한에 대해 오히려 은혜(德)를 베풀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진정으로 덕(德)을 얻은 사람이 되라고 하는 <도덕경>(道德經)의 가르침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일까?

공교롭게도 <논어>에도 이와 거의 동일한 이야기가 나온다. <논어> ‘헌문’(憲問)에서 공자는 어떤 사람에게 “은혜로 원한을 갚으면 어떻겠습니까?”(或曰: ‘以德報怨, 何如?’) 라는 질문을 받는다. <노자>는 당연히 “은혜로 갚아라”고 답했을 것이다. 공자라면 이 물음에 어떻게 답변했을까? 공자의 답변을 듣기 전에 먼저 우리의 상식을 생각해 보자. 과연 원수에게 우리 자신은 은혜를 베풀 수 있는가 하고 말이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을 외치는 공자도 마찬가지로 “은혜로 갚으라”고 했을까? 유향(劉向)의 <신서>(新書)에서는 실제 공자가 그렇게 대답했다는 식으로 나온다. 공자는 “성인은 화를 돌려 복으로 삼고, 은혜로 원한을 갚는다”고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시외전>(韓詩外傳)의 대화를 보면 조금 다른 대답을 생각할 수 있을 듯하다. <한시외전>에서는 공자의 뛰어난 제자, 자로(子路), 자공(子貢), 안회(顔回)가 나는 대화가 나온다.

여기서 자로, 자공, 안회는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해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두고 자신의 소신을 밝힌다. 이 대화 속의 주인공들은, 어떤 철학적 원리나 진리의 발견과 상관없이 자신의 원칙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서로 간에 견해의 차이가 좁아지지 않자, 공자에게 묻는다. 공자는 자로와 자공, 안회의 말에 대해 각각의 달리 평가한다.

자로가 말했다. “남이 나를 잘 대해주면 나도 잘 대해 줄 것이고, 남이 나를 잘 대해주지 않으면 나도 잘 대해주지 않을 것이다.” 자공이 말했다. “남이 나를 잘 대해주면 나도 잘 대해줄 것이고, 남이 나를 잘 대해주지 않으면 나는 그와 함께 상황에 따라 나아가기도 하고 물러서기도 할 것이다.” 안회가 말했다. “남이 나를 잘 대해주면 나도 잘 대해 줄 것이고, 남이 나를 잘 대해주지 않아도 나는 잘 대해 줄 것이다.”세 사람이 주장하는 바가 각기 달랐기 때문에 공자에게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자로의 주장은 야만인의 주장이고, 자공의 말은 친구 사이에서 있을 수 있는 말이며, 안회의 말은 친속 사이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자로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잘 대해주면 자신도 잘 해주겠지만, 다른 사람이 잘 해주지 않으면 자신도 그 사람에게 잘 해주지 않겠다고 해서 孔子에게 야만인들이 하는 짓이라고 핀잔을 받는다. 이와 달리 자공은 남이 나를 잘 대해주면 자신도 잘 해주겠지만, 상대방이 잘 해주지 않으면 그 때 그 때 상황을 봐서 달리 처신하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孔子는 그런 태도는 친구끼리나 가능하다고 말한다.

공자의 애제자였던 안회는 남이 잘 해 주든 그렇지 않든 자신은 그 사람에게 잘 해 주겠다고 하자, 공자는 그런 일은 친속끼리나 가능한 일이라고 말하여 안회를 긍정하지 않는다. 이 대화 속에서 객관성, 정확성과 같이 우리가 오늘날 고전을 대할 때 중시하는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어쩌면 우리가 20세기 배우고 추구했던 객관성과 정확성의 가장 좋은 모델은 정답이 있는 학교 시험문제일 것이다. <논어>를 읽든 <노자>를 읽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정답이 어떤 것이냐 하는 것이었고, 그 정답의 기준은 객관적이고 정확한 것이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언제나 모호하고 애매하다. 공자의 대답은, 정답은 아니지만 그러한 모호성과 애매성을 제거하며 생각하는 길을 열어주고 있을 뿐이다. 바로 이 점이 공자가 지닌 매력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공자에게 “은혜로 원한을 갚으면 어떻겠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그 대답이 어떠했을까? 분명 <노자>와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향의 <신서>에 나오는 이야기는 무언가 착오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논어>에서 공자는 혹자의 물음에 이렇게 되묻는다. “그러면 무엇으로 은혜를 갚겠느냐?” 참으로 뒤통수를 치는 물음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나서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공정함(直)으로 원한을 갚고, 은혜로 은혜를 갚는 것이다.” 참으로 생각을 되새기게 만드는 말이다. 공자는 원한에 대해 복수할 것을 권하지 않는다. 하지만 원수에게 은혜를 베풀라는 요구 또한 하지 않는다. 다만 공정하게 대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처리하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노자>에 뛰어난 주석을 낸 왕필은 주석에서 ‘원한을 은혜로 갚아라(報怨以德)’는 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사적인 원한은 갚고 말고 할 것이 못 된다. 그러나 [천하 만백성에게 피해를 준] 큰 원한의 경우에는 온 천하 모든 사람들이 죽이고 싶어 한다. 따라서 천하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바라는 바대로 따르는 것, 그것이 진정한 덕(德)이다.”

왕필의 주석은 <논어>의 공자의 말과 비슷하다. “원한을 덕으로 갚는다”는 말에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도 글자 그대로의 뜻을 전부 인정하고 있지 않다. 상황이 어떻든 나중의 호의적 결과를 위해 ‘원한을 덕으로 갚는’ 전략적 처방과는 거리가 있다. 이렇게 보면 분명 <노자>가 말하는 덕과 왕필이 말하는 덕은 그 의미 자체가 다른 것으로 생각된다.

이를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 <노자>의 말에 대한 다른 해석을 볼 필요가 있다. 과연 정치 세계에서 다투는 사람들에게 “원한을 덕으로 갚는다”는 논리의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송취의 경우 초나라 사람들이 자기 마을의 밭을 망쳐 놓은 것을 오히려 덕으로 갚아 초 나라와 양 나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결과를 낳았다. 국경의 현령인 그에게 이는 아주 최선의 결과이다. 마찬가지로 제 환공의 경우에도 관중의 조언에 따라 원한을 덕으로 갚자 다음 해에는 더 큰 도움을 받았다. 이것이 <한시외전>이 “화를 돌려 복으로 삼고, 원한을 은혜로 갚는다”는 말의 의미이다.

그런데 어쩌면 이러한 논리의 배후에 작동하는 논리는 <노자하상공주>에서 아주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도를 닦고 선을 행하되 화근은 생겨나기 전에 잘라 버려야 한다”(脩道行善, 絶禍於未生也.) 하상공주의 주석자는 원한과 덕(은혜)에 관한 이야기는 아예 생략해 버린다. 하상공은 아주 근원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평소에 도를 닦고 선을 행하며 아예 원한을 사지 말라! 좋은 말이다. 그러나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은 시퍼런 날이 서 있다. 혹 원한을 사게 된다면 아예 생겨나기도 전에 화근을 잘라 버려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정치의 세계에서는 사욕을 위해 술수를 부리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또 세상을 살면서 원한을 맺기도 한다. 그런데 왕필은 <노자>의 권고와 달리 원한을 은혜로 갚으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적으로 맺은 원한은 버려야 하고, 공공의 원한에 대해서는 단죄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쩌면 이것이 공자가 말하는 공정함(直)이다.

삼국 시대라는 난세(亂世)를 살았던 왕필의 시대에 충분히 나올 수 있는 그런 처방이다. 요즘 정치인이나 법을 집행하는 자 가운데에도 사적으로 맺은 작은 원한(小怨)은 다 앙갚음하면서 수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큰 원한(大怨)을 일으킨 사람에게는 모르는 척하며 봐 주는 사람이 있는지 모른다. 왕필의 해석은 바로 그러한 부조리와 불합리를 경계하는데 <노자>를 이용하고 있다. 사실상 전통 고전에 대한 전근대 세계에서의 주석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방식의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객관성, 보편성, 정확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다른 것, 바로 가치의 보전 또는 가치의 전도를 꿈꾸었던 언어의 세계인 것이다. 바로 그러한 가치의 추구나 혹은 전복적 독해는 전통을 살리는 유가의 유연성을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가 따라야 하는 길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그 학문이 얼마나 철학적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가치를 얼마나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가가 더욱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철학은 삶의 연습이 되고, 고전 읽기는 비판적 해석학이 되어야 한다. 이 작업은 예나 지금이나 늘 해 오던 동아시아 학문의 정체이며, 우리는 그 안에서 철학의 의미를 정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