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토를] 획득하기를 열망하는 것은 분명 매우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일이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했을 때 그들은 항상 칭찬을 받지 비난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할 수 없을 때 어떤 방식으로든 그렇게 하려는데 실수와 비난이 있다. ― 『군주』 3장 (Principe 3.(40)).

누군가 자기 조국의 안전(la salute della patria)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경우, 정당한지 정당하지 않은지, 자비로운지 잔인한지, 칭송받을만한지 불명예스러운지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 당연히 다른 모든 측면을 제쳐두고, 조국을 구하고 그 자유를 유지하는 정책을 전적으로 따라야한다. - 『강의』 3권 41장 (Discorsi 3.41.(5)).  

1494년 프랑스 샤를 8세의 이탈리아 침공은 ‘자치’와 ‘문명’을 자랑하던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에게는 한 마디로 충격이었다. 우선 이 사건은 유럽대륙의 개별 국가들이 로마 교회의 정신적 굴레에서 벗어나 독자적 행보를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변화는 13세기 말에 아무런 소득도 없이 끝난 십자군 원정, 그리고 14세기 초 세속 권력에 굴복해서 교황청이 프랑스 아비뇽으로 옮겨졌을 때부터 서서히 노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독교는 여전히 유럽 각국들을 하나의 끈으로 엮어주고 있었고, 로마 교회는 부인할 수 없는 정신적 힘으로 존속했다. 반면 사를 8세의 이탈리아 침공은 바로 이러한 기독교적 유대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일반인들까지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기독교 가치관과 세속의 정치권력이 교황의 종교적 권위를 통해 더 이상 통합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린 상징적 사건이었던 것이다.   

동시에 샤를 8세의 이탈리아 침공은 봉건 제후들의 수평적 연대가 아니라 거대한 영토를 한 명의 왕이 다스리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가 등장했다는 시대사적 변화를 반영했다. 십자군 전쟁은 수많은 봉건 영주의 죽음을 가져왔고, 영주를 잃은 대부분의 봉토들이 국왕에게 귀속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이후 국왕을 중심으로 하는 수직적 연계, 즉 ‘절대 왕정’의 시대가 도래되었음을 알리는 서막에 불과했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백년 전쟁’(1337-1453)에서 보듯, 14세기 초부터 혈연적 유대와 봉건적 결속은 국왕의 영토적 경계 안에서 급격히 와해되고 있었다. 그 결과 영국은 ‘장미 전쟁’(1455-1485)이후 튜더왕조가 들어섰고, 프랑스는 1469년 루이 11세에 의해 절대왕정이 수립되었다. 그리고 스페인이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의 결혼으로 통합되었고, 1492년 그라나다 공략에 성공함으로써 스페인은 새로운 유럽의 강자로 등장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에서 말하는 이른바 ‘국가를 유지하는 일’이 군주의 최대 목표이자 개별 국가의 생존이 달린 문제로 대두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들은 결국 이탈리아 반도에서 더 이상 전통적인 방법으로 평화를 가져올 수 없는 시대가 왔음을 의미했다. 최초의 변화는 로마 교황의 정치적 행보와 신성 로마제국 황제의 무기력한 모습에서 일찌감치 감지되었다. 14세기부터 로마 교황은 생존을 위해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국가들과 함께 경쟁해야하는 처지에 놓였다. 때로는 베네치아, 때로는 나폴리, 동맹과 배반을 반복하며 스스로를 지켜야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은 신성로마제국이 더 이상 명목상의 권위조차 유지할 수 없는 상태에서 더욱 가속되었다. 즉 이탈리아 반도는 14세기부터 거대 도시국가들의 생존을 위한 전쟁터로 돌변했고, 이들 간의 평화는 ‘세력 균형’이라는 힘의 역학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력 균형마저도 유럽의 강대국들이 이탈리아 반도의 풍요와 번영을 나누어가지고자 할 때에는 더 이상 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베네치아를 제외하고,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은 스스로를 방어해낼 군사력조차 갖지 못했다. 상업을 통해 많은 부를 축적했지만, 강대국을 상대할만한 상비군도 민병대도 없었다. 그러기에 이탈리아의 거대 도시들은 ‘외교’를 통해 분쟁을 해소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막상 전쟁이 터지면, 지리멸렬해서 도망가는 용병들을 망연히 쳐다보며 항복하기가 일쑤였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1492년 로렌초 메디치(Lorenzo de Medici)의 죽음으로 세력 균형을 통한 이탈리아의 평화는 종말을 고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수완에 품위까지 곁들였던 로렌초가 나폴리와 밀라노를 엮어 베네치아와 로마 교황을 견제했던 시대는 더 이상 재연될 수 없었던 것이다. 눈앞의 이익에 눈이 먼 참주들과 귀족들이 강대국과 용병대장 사이에서 곡예를 하면 할수록, 이탈리아 반도는 더 많은 강대국들의 전쟁터로 변해버렸던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시대에 ‘힘’(forza)에 대해 눈을 뜬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많은 사상가들이 ‘힘’과 ‘권력’에 대해 주목했지만, 그는 ‘힘’과 ‘시민의 자유’(liberta)가 결코 상충되지 않는다는 신념을 누구보다 확고하게 가졌던 최초의 정치 철학자였다. 그러기에 세력 균형을 통해 이탈리아의 맹주로 군림했던 피렌체의 몰락도, 월등한 문명과 부를 가지고도 강대국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이탈리아의 운명도, 그는 ‘힘’에 대한 통찰력에 기초한 제도적 구상과 전략적 실천을 통해 충분히 극복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는 당시 정치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에게는 전혀 익숙하지 않은 충고를 한다. ‘외교’에 몰입했던 이탈리아 군주들에게 ‘힘’을 통한 평화를 가르치고, ‘용병’을 믿었던 귀족들에게 ‘인민’의 무장을 역설한다. 몰락한 비잔티움 제국으로부터 배운 ‘외교’를 버리고, 정체된 베네치아의 ‘안정’ 뒤에 도사린 귀족의 전횡을 비웃으며, 시민의 힘만으로 주변의 강력한 적들을 하나씩 굴복시킨 로마 공화정으로 돌아가고자 한 것이다. 

종종 ‘폭력의 경제학’(the economy of violence)이라는 말로 마키아벨리의 ‘힘’에 대한 통찰을 단순화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러나 만약 이 말이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폭력’의 제한적인 사용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 말은 마키아벨리의 ‘힘’에 대한 통찰력의 절반 정도만을 묘사한 것에 불과하다. 이 말을 만든 학자도 인정하듯, 마키아벨리는 ‘폭력’이 정치의 본질이며, 정치적 개연성 속에서 ‘힘’(potenza)이 가장 적나라하게 노출된 경우로 이해했다. 또한 ‘폭력’의 행사가 없이 정치 행위자의 뜻이 관철되더라도, 상대의 판단과 행동에 변화를 유발하는 것은 잠재적이든 실제적이든 ‘힘’의 행사가 가져온 결과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자면, 마키아벨리에게 ‘폭력’은 불가피한 상황에서만 허용되어야할 최후의 수단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에게 ‘폭력’은 가장 근원적이며 시원적인 정치적 행위이자, 정치적 관계의 내용을 결정짓는 ‘힘’의 극단적 표현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마키아벨리가 ‘힘’을 주목한 이유다. 정치는 결국 ‘힘’에 좌우된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보여주려 했던 것은 아니다. 일차적으로 그는 1494년 샤를 8세의 이탈리아 침공으로 드러난 세계사적 변화에 맞설 새로운 형태의 국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사실 1494년 샤를 8세의 나폴리 원정이 가져온 메디치 가문의 추방은 오랫동안 피렌체의 정치무대에서 사라졌던 공화주의의 부활을 가져왔다. 메디치 가문의 권력 독점, 군주정에 대한 지식인의 선호,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뒤집어엎은 것이다. 그러나 사보나롤라(Savonarola)의 후견을 등에 입은 공화파의 실정은 공화정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신념조차 뒤흔들어 놓았다. 그리고 피렌체는 공화파조차도 분열과 대립을 반복하는 정쟁에 빠져든다. 이렇듯 모두가 국내 정치에 몰입해서 권력의 분배와 제도적 장치를 구상하고 있을 때, 마키아벨리는 제 아무리 ‘자치’와 ‘문명’을 자랑하는 나라도 군사력이 없으면 존속할 수 없는 냉혹한 국제 관계를 직시한다. 그리고 피렌체의 독립과 번영을 가져다줄 ‘새로운 질서’(nuovi ordini)를 꿈꾸기 시작한다.  

이런 맥락에서, 마키아벨리는 로마 공화정의 ‘힘’에 주목한다. 무엇보다 그는 ‘외교’나 ‘협상’에 의존하기보다 ‘힘’에 의존했던 로마 공화정의 대외 관계를 여러 가지 각도에서 조명한다. 최초에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지만 결국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하기위해 상대를 완전히 파멸시킬 수밖에 없었던 로마인의 경험을 과장하고, 주변 나라를 지배하고 폭군처럼 다스리던 로마 공화정의 제국주의적 태도를 ‘위대함’(grandezza)으로 칭송한다. 개방정책을 써서 많은 사람들이 로마로 몰려오게 함으로써 다양한 인력을 확보하고, 주변 상황에 스스로를 맞추기보다 ‘힘’을 통해 자기에게 유리한 판세를 만들 수 있는, 강력한 군사력에 바탕을 둔 로마 공화정의 대외 관계가 당시 이탈리아의 절망적인 상황과 비교된다. ‘전쟁’과 ‘팽창’을 통해 자신들의 힘을 과시했던 이탈리아의 과거, 그리고 ‘평화’와 ‘안정’조차도 확보할 수 없는 이탈리아의 현재가 오롯이 나열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에 세워질 미래의 ‘로마 공화정’은 ‘인민’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설득하려고 노력한다. 『군주』를 바친 군주에게는 귀족이 아니라 인민이 당신의 조력자가 되어야한다고 역설하고, 『강의』의 내용을 함께 토론한 귀족의 자제들에게는 시민의 자유가 강력한 나라를 만드는 열쇠라고 충고한다.     

지금은 투르크와 술탄을 제외한 모든 군주들이 군인들보다 인민들을 만족시켜야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인민이 장병들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군주』 19장 (Principe, 19.(62)). 

만약 당신이 통치를 위해 소국으로 혹은 [인민을] 무장시키지 않고 내버려둔다면, 설사 당신이 [다른 나라를] 지배하게 되더라도 유지할 수 없을 것이고, 왜소해져 누구든지 당신을 공격하는 사람의 먹잇감이 될 것이다. - 『강의』 1권 6장 (Discorsi 1.6.(22))

 

그는 거듭 인민을 무장시켜야한다고 주장한다. 시민의 자유는 소란함과 불편함을 감수해서라도 반드시 제도적으로 보장해야할 필수적인 조건이며, 인민을 무장시키는 것만이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을 이겨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역설한다. 특히 당시 귀족들에게 인민의 변덕과 무지도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감수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군주는 자기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모든 사람들을 적대할 수 있지만, 인민은 오직 ‘자유’를 빼앗은 사람들에게만 잔인하다고 부연한다. 미래의 공화정은 원로원이 지배했던 로마 공화정이 아니라, 인민의 ‘힘’에 바탕을 둔 새로운 형태가 되어야한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권력정치에 내재된 애국적 호소가 제 빛을 발휘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인민의 ‘힘’에 대한 논의가 국내 정치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전쟁’과 ‘정쟁’을 동일한 잣대에서 이야기함으로써, 당시 도덕과 품위를 강조하던 귀족들과 기독교 신앙을 통해 정치를 바라보았던 지식인들에게는 불쾌감과 불편함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음모,’ ‘기만,’ ‘지연작전,’ 그리고 ‘급’(grado)과 같은 군사적 용어들이 국내정치를 묘사하는 부분에서 버젓이 등장하고, ‘신’마저도 ‘전투’에 이용하는 전쟁의 기술들이 군주와 미래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거침없이 제시된다. 한편으로는 국내적 정쟁이 곧 국제적 전쟁으로 비화되는 시대적 상황을 반영했을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힘’이라는 정치의 본질에 국내와 국제라는 경계가 있을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싸움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토론(disceptationem)을 통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힘(vim)을 통한 것이다. 전자는 전적으로 인간에게 속한 것이고, 후자는 짐승에게 속하는 것이다. 만약 전자를 활용할 기회가 없다면 후자에 호소해야 한다.― 『의무론』 (Cicero, De Officiis, 1.11.34). 

전투(combattere)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하나는 법(le leggi)으로, 다른 하나는 힘(la forza)으로 하는 것이다. 첫 번째는 인간에게 적합하고, 두 번째는 짐승에게 적절하다. 그러나 첫 번째가 종종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두 번째에 호소해야한다. ― 『군주』, 18장 (Principe 18,(2)-(3)).  

위에서 보듯, 마키아벨리는 키케로(Cicero)가 국제정치에 대해 언급하던 내용을 국내정치에 적용하고 있다. 정적이라고 할지라도 공동체 구성원에게는 전쟁에서나 볼 수 있는 폭력과 잔인함을 적용할 수 없다는 위선을 버린 것이다. 비록 ‘전투’라는 표현이 국제관계를 의미하는 것 같지만, 후술되는 내용에서 보듯 정쟁에 전쟁의 잣대를 적용한다. ‘폭군’이라는 대중의 자명한 합의가 없이도, 권력을 유지한다는 치졸한 목적을 위해서도, 잔혹한 살인이 용인된다. 권력에 대한 열망은 절제되기보다 무한정 확장되고,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지극히 당연한 행위방식으로 간주되며, 인간의 지배욕은 사적이든 공적이든 정치와 일상 속에 만연한다. 한 마디로 국내정치도 ‘전투’다. 특히 『군주』는 ‘말살하다’(spegnere), ‘제거하다’(disfare), ‘죽이다’(uccidere), ‘살해하다’(ammazzare)와 같은 단어가 넘친다. 

여기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국내정치를 ‘전투’로 바라본 이면에 존재하는 ‘시민적 자유’에 대한 열망이다. 마키아벨리는 매우 당파적이다. 그는 인민의 ‘힘’을 위축시키려는 주장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당시 귀족들이 자주 언급하던 그라쿠스 형제의 실패가 가져온 혼란에 대한 지적도 그가 꿈꾸는 인민의 힘에 기초한 공화정의 밑그림을 망가뜨릴 수 없다. 귀족의 태만과 오만은 인민의 ‘힘’이 아니고서는 결코 견제될 수 없고, 귀족과 인민의 ‘공존’이 아니라 후자의 전자에 대한 우위를 확보한 공화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귀족들과 결탁한 군주에게는 인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곧 죽음이라고 경고하고, 원로원의 품위를 동경하는 귀족에게는 인민의 자유가 곧 당신들의 생존과 직결된다고 충고한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전투로 묘사된 충고로부터 ‘시민적 자유’를 충분히 읽지 못했지만, 마키아벨리의 권력정치는 국내 정치에서조차 인민의 ‘힘’에 초점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2014년 대한민국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1494년의 피렌체를 닮아있다. 중국의 부상, 일본의 우경화, 러시아의 견제, 미국의 전략이 동북아시아의 불확실성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북한의 행동이 시민의 일상을 늘 위협한다. 마치 중국은 프랑스처럼 보이고, 북한은 참주아래 생기를 잃은 밀라노 같다. 일본은 옛 영화를 찾기에는 너무나 정체되어있는 베네치아 같고, 러시아는 이해관계는 있지만 여력이 없는 막시밀리안 1세의 신성로마제국처럼 보이며, 미국은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페르난도 2세가 다스리던 스페인의 모습을 연출한다.   

그래서인지 우리 사회는 어느 때보다 ‘힘’에 대한 열망이 커지고 있다.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우경화에 자극을 받아, 폐쇄적이고 공격적인 민족주의와 전체주의적이고 폭압적인 집단주의의 위험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그리고 1494년 메디치 가문이 추방된 이후 자기만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하던 대중 정치인들의 무능력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조소를 일반 시민들의 얼굴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힘’에 대한 열정은 있지만, ‘힘’이 필요한 이유와 ‘힘’을 갖출 방도를 알지 못했던 피렌체의 혼란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권력정치와 관련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키아벨리의 충고가 아니라 마키아벨리의 역설이 아닐까 생각한다. 1494년의 시대사적 변화와 2014년 오늘 우리의 세계가 동일할 수는 없다. 그리고 마키아벨리의 시대에 통일된 이탈리아가 맞설 강대국들과 지금 우리가 동북아시아에서 마주하는 강대국들이 그 규모와 성격에서 유사하지도 않다. 민족국가의 경계와 다문화적 공존이 대립과 융합을 반복하고, 분단된 한반도의 숨죽이던 냉전의 소용돌이가 동북아시아에 불어 닥친 민족주의와 결합해서 불안을 가중시킨다. 비록 ‘중(中)강국’이라는 말이 어느덧 익숙해졌지만, ‘힘’의 대결만을 내세운다면 우리에게는 생존조차 보장받지 못할 미래가 노정될 수도 있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때에 ‘힘’의 성찰을 통해 주어진 모든 것을 다시 검토했다. 그리고 모두가 시민의 ‘자유’를 억제함으로써 ‘안정’을 구할 때, 불편하고 혼란스럽더라도 시민적 자유가 보장되고 인민이 무장시켜야한다고 주장했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이런 역발상이  필요할지 모른다. 물론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스스로의 자유를 지킬 수 있는 ‘힘’은 반드시 갖추어야한다. 그러나 ‘힘’의 역학만이 선택지로 주어졌을 때, ‘힘’의 목적이 비현실적이거나 존재하지 않을 때,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닥칠지도 고민해야한다. 냉정한 ‘힘’에 대한 성찰을 통해 패권적 망상을 부추기는 선동을 억제하고, ‘비(非)지배’와 같은 새로운 국제사회의 규범을 주도적으로 주창함으로써 안팎으로 대한민국의 시민적 자유를 보장하기위해 노력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