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의 시대는 참혹했다. 시민의 자부심이 강대국의 말발굽에 짓밟히고, 학문과 종교의 사치가 부패와 독재를 부추기며, 젊은이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렸다. 로마 교회는 스스로의 존립을 위해 이탈리아를 분열시켰고, 국내정치조차 종파적 분쟁으로 전락했으며, 소득 없는 용병들의 전쟁과 권력만 다투는 정쟁은 시민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그러기에 시민적 자유에 대해 조금이라도 애착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탈리아가 당면한 절망적 상황을 타개할 새로운 변화를 열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치에 대한 식견이 있을수록, 공직에 직접 몸을 담았을수록, 권력의 실체와 인간의 흠결을 보다 냉정한 눈으로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도덕’과 ‘정치’의 일치는 곧 현상을 유지함으로써 이득을 취하려는 파렴치한 인물의 말장난으로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마키아벨리에게는 ‘더러운 손’(dirty hands)이라는 도덕적 딜레마조차 귀족들의 위선과 지식인들의 나태를 반영하는 정치적 수사일 뿐이었다. 실제로 ‘고귀한 목적을 달성하기위해 비도덕적 수단이 필요할 때 올바른 정치가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의 문제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동시에 그는 ‘어떻게 기만과 폭력을 사용하는 사람이 안으로는 도덕적 고결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런 식의 질문은 그 누구에게도 현상을 타개할 의지를 불러일으킬 수 없다고 믿는다. 따라서 그는 위대하고 화려한 업적이 반드시 고귀하고 거룩한 동기에서 시작되어야할 이유가 없다고 가르친다. 아울러 개개인의 인성과 정치적 위업은 무관하며, 행동이 필요한 시점에 도덕적 고민에 빠져있다면 ‘정치’를 할 자격조차 없다고 지적한다. 그는 고전이 가르치던 도덕적 요구뿐만 아니라 근대인의 도덕적 딜레마로부터도 자유로웠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말로 마키아벨리의 결과주의를 단순화시킬 수는 없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마키아벨리는 도덕과 정치를 분리하고자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좋은 의도를 갖고 나쁜 수단을 사용했다고 누군가가 선한 사람으로 간주되어야할 이유도 없고, 정치가에게 특정 행위를 함에 있어 동기와 목적이 개인적인 영달인지 공동체의 안녕인지를 캐물어볼 필요도 없다. 단지 그는 당시 이탈리아 사람들을 매혹시키던 도덕적 가치들을 이탈리아의 해방을 가져올 다른 것들로 대체하고자 했고, 정치적 행위는 그것 자체의 성공을 통해 성취할 ‘영광’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영광’을 위해 전심과 전력을 다하는 것이 참으로 보람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따라서 마키아벨리로부터 도덕과 정치의 구분을 찾거나 ‘더러운 손’의 도덕적 딜레마를 찾는 노력은 허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마키아벨리로부터 과학적 일관성이나 행동 경제학적 원칙을 찾는 것도 낭패를 볼 수 있다. 정치에 불확정성이 없다면 정치권력을 위한 처절한 싸움도 불필요할 것이고, 일관된 행동의 패턴이 정해져있다면 학자적 명료함만으로 이탈리아를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보듯, 마키아벨리는 정치적 행위의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한다. 확정된 미래도 보장된 성공도 없기에, 전심전력을 다해 ‘정치’에 몰두하라고 가르친다. 나쁜 수단도 ‘잘 사용’하기위해 노력하라고 다그친다. 그런 연후에 ‘국정을 운영함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과’라고 말하고, 정치의 잘하고 못한 바를 바로 이 결과(fine)를 ‘다수의 안전’이라고 가르친다. 군주에게는 ‘다수의 만족’이 자기의 국가를 유지하는 길이고, 공화정의 지도자들에게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안전이 당신들의 책무라고 충고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막스 베버(Max Weber)는 마키아벨리와 다른 입장에 서 있다. 베버는 ‘더러운 손’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정치가를 은연중에 불행한 사람으로 여긴다. 좋은 목적을 위해 나쁜 수단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영혼을 파는 행위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지침조차 정치가에게 부과하기를 꺼린다. 그로부터는 베버가 말하는 정치가의 세 가지 자질 중에서 오직 ‘열정’(Leidenschaft)만이 돌출한다. 책임이든 판단이든, 결국 ‘가지려고 하는’(acquistare)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몸부림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열정을 제어하는 방도를 ‘도덕’이나 ‘책임’에서 찾지 않는다. 동일한 형태의 ‘힘’과 ‘처절함’을 수반하는 또 다른 열정, 즉 다른 사람의 욕구로 정치적 욕망을 제어하고자 한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인민의 ‘타인의 자의적인 지배를 받지 않으려는 욕구’에 주목한다. 군주나 정치 지도자들의 지배욕을 시민들의 ‘비(非)지배 자유’에 대한 열망으로 제어하려고 한 것이다. 그에게 귀족들은 궁극적으로 군주와 동일한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시민들의 열망은 상실되었을 때에만 일어나는, 본질적으로 소극적인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늘 일깨워 주어야하고, 언제든지 원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정치적 제도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아울러 이런 제도가 없으면, 안으로는 부패가 만연하고 밖으로는 외세의 등쌀에 존립할 수가 없다. 여기에 마키아벨리의 ‘결과주의’가 갖는 제한적이지만 가치지향적인 방향성이 있다.  

‘보이는 것’과 ‘느끼는 것’     

이런 맥락에서, 마키아벨리는 ‘보이는 것’과 ‘느끼는 것’의 차이를 이야기한다. ‘보이는 것’은 그에겐 설득된 신념, 즉 그렇게 ‘여겨지는 것’(tenuto)이다. 

위에서 보듯, 그는 좋다고 ‘여겨지는 것’을 실제 삶으로부터 유리될 수 있는 상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이런 내용이다. 즉 ‘후함’(liberalita)이 인색함보다 좋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겠지만, 후하다는 평판을 유지하기위해 스스로의 궁핍을 초래할 사람도 드물다는 것이다. 따라서 군주는 자기의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공화정의 정치 지도자들은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보이는 것’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에게는 당시 피렌체 시민들이 집착하는 ‘보이는 것,’ 그래서 피렌체의 시민적 자유를 송두리째 상실하도록 만든 것들이 있다. 바로 당시 지식인들을 사로잡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도덕과 당시 시민들의 생각을 지배했던 로마 교회의 가르침이다. 『군주』는 전자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강의』는 후자를 노골적으로 공격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도덕적 가치들은 마키아벨리에 의해 ‘보이는 것’ 또는 ‘여겨지는 것’ 정도로 추락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인색함’은 비난을 감수하면까지 ‘탐욕스러움’을 만족시키려는 사람들의 특성이라면, 마키아벨리에게 ‘인색함’은 ‘후하다는’ 평판을 유지하려다 오히려 ‘탐욕스럽다’는 비난을 받게 되는 세간의 평가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로마 교회의 가르침은 시민들의 자유에 대한 열정을 일깨워주기보다 노예적 삶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잘못된 교육’(falsa educazione)일 뿐이다.

그러기에 마키아벨리는 정치가에게 ‘느끼는 것’을 연구하라고 권한다. 특히 변화를 꿈꾸는 미래의 군주에게 정치는 ‘느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눈’(occhi)으로 보지 말고 ‘손’(mani)으로 만져보라고 권한다.    

 

위에서 말하는 ‘소수’는 바로 ‘지배하려는 열망’을 가진 인물들이다. 이들의 선택은 늘 ‘느끼는 것’에 기초한다. 다수의 평판보다 자기가 가지려고 하는 바를 가질 수 있는 실제적인 조건에 늘 주목하는 것이다.  

아울러 인민들도 실제 삶으로부터 유리되어 있는 ‘좋은 것’에 대해서는 기만당할 수 있지만, 자기들이 직면하고 있는 구체적인 삶의 조건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보다 정확하게 파악한다. 비록 집단의 움직임에 쏠렸더라도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는 곰곰이 자기의 필요를 돌아본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느끼는 것’은 ‘보이는 것’과는 다른 행동방식을 창출하는 것이다.   

특히 마키아벨리는 시민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체제의 지도자들에게 ‘느끼는 것’에 집중해야한다고 주문한다. 좋거나 후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무척 다행스럽지만, ‘느끼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충고하는 것이다. 거듭 대중이 좋아하는 모습을 갖추고 대중이 좋아하는 모습으로 스스로를 가꾸는 것은 중요하지만, ‘느끼는 것’의 성찰로부터 얻어진 바를 대중에게 설득하려고 관철시키려고 노력해야한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 이래 정치철학자들이 전했던 ‘좋은 것’이나, 로마 교회를 통해 전수된 ‘영원한 것’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도 덧붙인다. 이러한 것보다 ‘공동체의 존속’이라는 실제적인 것을 고민하고, 시민의 자유를 통해 얻게 될 ‘영광’을 상상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아울러 인민들은 이러한 ‘느끼는 것’에는 결코 기만되지 않는다고 첨언한다. ‘눈’으로 보는 인민의 습관도, 구체적인 삶의 부분에서는 자신들의 느낌으로 응답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인민과 반대되는 의견이라도 진심을 다해 설득하라고 가르친다.   

마키아벨리는 수 없이 많은 정치적 모순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유토피아적 상상에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흠결을 모두 치유할 신의 은총이 정치적 삶을 규정짓는다고 생각지도 않았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교본’(specula principum)의 전통적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 대신 군주의 지배욕을 자극하고, 인민의 ‘힘’을 보여줌으로써 군주가 지배하기 위해서 지향해야할 바를 ‘다수의 안전’으로 향하게 한다. 동시에 그는 공화주의의 전통적인 화두였던 ‘조화’를 버린다. 그에게 공존과 조화는 당시 피렌체 시민들의 절망적 삶을 지속시킬 귀족적 사탕발림에 불과하다. 대신 ‘갈등’과 ‘힘겨루기’를 공화주의의 새로운 전망으로 제시한다. 특히 인민들에게 ‘지배받지 않으려는 욕망’을 일깨워줄 제도적 장치를 제시하고, 지도자들에게는 이들의 욕망을 어떻게 충족시켜줄 수 있는지를 가르친다.

지금 우리는 마키아벨리의 ‘결과를 본다.’는 말을 통해 시민적 자유를 확보하고 유지하는 방도를 배워야한다. 정치 지도자들은 시민들의 ‘지배받지 않으려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최적의 제도를 고민하고 구상해야하고, 시민들은 자기들의 목표가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배받지 않으려는 것이 되도록 스스로 조심해야한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아는 사람이 마키아벨리가 기다리던 군주이고, 바로 여기에 그의 ‘올바른 상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