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자와 유키치는 곧잘 일본의 자유경쟁론 선구자라 일컬어진다. 특히 정치・법・경제철학 등의 각 분야에서 자유주의libertarianism가 활발히 논의되던 1990년대에 후쿠자와를 근대 일본에 자유주의libertatian 사상을 처음으로 도입한 사상가로서 언급한 몇몇 연구가 등장했다.(1) 이 연구들이 후쿠자와를 단순히 시장만능주의자라고 단정 지은 것은 아니었다. 비슷한 무렵 서구나 일본에서는 아담 스미스를 소박한 자유시장경제론자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도덕철학까지 파고들어 평가하는 연구가 성황을 이루었는데, 후쿠자와에 대해서도 똑같이 그러한 평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한 평가가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후쿠자와가 살았던 시대에 일본에선 사회주의에 관한 지식이 거의 알려진 바 없었고 전체주의 국가에 의한 통제경제 역시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야만 한다. 후쿠자와를 경제적 자유주의 체제의 옹호자로서만 여기는 것은 적절치 않다. 19세기 후반의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면서 후쿠자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을 신중히 살피고자 한다.
애초에 자유경쟁론자라는 이미지는 후쿠자와 자신이 만든 이미지이기도 하다. 이점이 후쿠자와 이해를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후쿠자와는 만년에 지은 『후쿠자와 유키치 자서전福翁自伝』(1899년)(2)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860년대 중반, 후쿠자와가 영국에서 귀국한 후 정권 붕괴를 목전에 두고 있던 도쿠가와 체제하에서 한 말이다.
내가 챔버스의 경제론(3) 한 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무언가를 이야기하던 끝에 고칸조우가타御勘定方[도쿠가와 막부의 재정담당직]인 유력자, 지금으로 치면 대장성의 주요직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그 책에 관해 언급하자, 몹시 기뻐하며 목차만이라도 좋으니 꼭 보고 싶다고 하여 곧장 번역을 했는데, [competition]이란 용어를 만나면서, 여러 가지로 궁리한 끝에 경쟁이란 번역어를 만들어 적용하였다.
‘경쟁’이란 개념을 도쿠가와 막부의 관료는 어쩐지 위험하고 피해야 할 사상으로 생각해 싫어했다는 에피소드를 후쿠자와는 기록하고 있다. 그의 회상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고갔다고 한다.
(막부의 관리) 여기에 쟁(爭)이란 자가 있는데 아무래도 이 글자는 불온해 보이오. 어떤 의미요?
(후쿠자와) 딱히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외다. 가령 어떤 상인이 있는데, 이웃 점포에서 물건을 싸게 판다고 한다면 자기 점포에서는 그보다 싸게 팔려 할 것이오. 또 상인 갑이 좋은 물건을 취급한다면 상인 을은 그것보다 더 좋은 물건을 취급해 호객하려 할 것이오. 또 어떤 돈놀이꾼이 이자를 내리면 옆집의 돈놀이꾼도 이자를 싸게 하여 자신의 점포를 번창케 하려 들 것이오. 이처럼 서로 간에 지지 않으려 다툼으로써, 물가도 정해지고 금리도 정해지지요. 이를 경쟁이라 하오.
(막부의 관리) 과연 그렇군. 서양 방식이란 빡빡한 (가차 없는) 것이로군.
(후쿠자와) 빡빡하다할 것도 없소. 그것으로 모든 장사의 근본이 정해질 따름이오.
(막부의 관리) 그렇군. 그러한 것이라면 이해는 가는데, 아무래도 ‘쟁’이란 글자는 불온해 보이오. 이렇게는 고로쥬가타御老中方[막부의 내각에 해당하는 지위가 높은 관료]께 보여드릴 수 없소.
이러한 대화를 소개한 후, 후쿠자와는 당시 막부 관리가 보여준 권위주의적이면서 위선적인 도덕론을 야유하며 다음과 같은 감상을 기록했다.
이런 식이라면 경제서책을 읽으면서도 사람들이 서로 사양한다든지 하는 표현이 나오는 걸 보고 싶어하지 않을까? 장사를 하면서도 충군애국하며, 국가를 위해서라면 무상헌납한다든지 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면 좋아하겠지. 나로서는 그러한 번역을 할 수는 없으니 ‘어떻게 해서도 쟁이란 글자가 문제가 된다면, 다르게 번역할 수는 없으니 아예 삭제해 버립시다.’라고 말해 경쟁이란 글자를 시커멓게 칠해 안 보이게 해서 목차의 번역을 건넨 적이 있다. 이러한 것만 보더라도 막부 전체의 분위기가 어떤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후쿠자와는 도쿠가와 막부의 관리가 가졌던 어리석고 소심한 권위주의를 비판하면서 그러한 분위기에 대항하기 위해 ‘경쟁’이란 자극적인 말을 자신이 만들어 냈다고 주장한다. 확실히 ‘경쟁’이란 당시의 유교적인 교양층에게 너무 자극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는 일본에서뿐만이 아니다. 유교적인 윤리관에서 ‘쟁’이란 글자를 혐오했던 예는 조선의 지식인들에서도 보인다. 일본에서 유학하여 게이오 의숙에서 공부한 유길준은 후쿠자와의 『서양사정』을 소개한 『서유견문』(1895년)에서 이 글자를 ‘상경상려相競相勵’라는 말로 바꾸었다.(4) 후쿠자와를 기가 막히게 만들었던 막부 관리는 유교적인 도덕을 신봉해서라기보다는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은 짓을 하고 싶지 않았을 뿐 유길준처럼 교양이 있어서 그렇게 했던 것은 아니다.
2. ‘경쟁’이란 개념이 내포하는 역동성dynamism
어휘의 성립 과정을 엄밀히 조사해 보면 ‘경쟁’이란 후쿠자와가 만들어 낸 말이 아니다. 『장자』(내편제이 「제물론」편)에는 ‘大道不称夫道未始有封、言未始有常、為是而有畛也。請言其畛、有左、有右、有倫、有義、有分、有弁、有競、有争、此之謂八徳(역자주: 大道는 헤아릴 수 없으며, 무릇 도는 한계가 없는 것이고, 말에는 정해진 내용이 없는 것이다. 자기주장을 함으로써 다툼이 생기는 법이다. 한 번 논쟁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왼쪽이 있으면 오른쪽이 있고, 倫이 있으면 義가 있고, 분별이 있으면 변론이 있고, 다툼이 있으면 경쟁이 있다. 이를 八徳이라 일컫는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본래의 ‘도’가 인위적인 분절에 의해 자연성을 잃어버린 것을 한탄한 구절이다. 『노자』에서 비판되었듯이 ‘팔덕’은 인위적인 범주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失道而後徳(역자주: 도를 잃은 후에 덕을 잃는다)’ 『노자』 제38장）, 이로부터 ‘競’(겨룸)과 ‘争’(다툼)의 태도가 생겨난다.
이후 중국에서 ‘경쟁’에 대한 생각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당나라 때 『역교易教』에 대한 주석서인 『주역주소周易註疏』(당, 공영달), 『주역집해周易集解』(당, 이정조) 정도로, 일반적으로 중국사상에서는 ‘경쟁’에 대한 논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경쟁’은 무시된 개념이다.
하지만 도쿠가와 시대의 일본에서는 많지는 않아도 ‘경쟁’을 논한 것이 있었다. 오규 소라이의 제자인 다자이 슌다이(1680∽1747)가 다음과 같이 썼다.
무릇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경쟁의 마음이 없는 자는 없다. 경쟁이란 다투고 겨루는 것이다. 겨룬다는 것은 남과 맞선다는 것이다. 남과 다툰다는 것은 남을 이기려고 하는 것이고, 남과 겨룬다는 것은 남에게 뒤처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어떤 것에 대해서도 저 하나만 훌륭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이익을 얻으려 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진짜 마음이다.(5)
다자이는 이런 ‘경쟁’이 학문의 동기가 되어도 이를 비난하지 않는다.
대체로 중화에는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학문재예로 입신하며, 서민의 자식이라도 작록[작위와 녹봉]을 얻어, 부귀한 신분이 되기 위해, 사람들이 다투어 학문에 힘쓰는 기풍이 있다.
다자이는 일본과 달리 중국에서 과거제도가 정착한 이유가 사람들의 욕망과 학문하기 위한 동기가 결합된 데 있다고 보았다.
‘다툰다’는 것이 토론을 활성화하고 통치자가 내리는 판단을 보다 현명케 만든다는 주장도 보인다. 나가오카번(현재 니가타현의 나가오카시)에서 번정부에 출사했던 고명한 학자, 다카노 츠네미치(1729∽1815)는 다음과 같이 썼다.
모든 관리들이 신분고하에 관계없이 공적인 문제에 대해 시비를 다투는 것은 당연하다. 다투더라도 사견[개인적인 이익이나 감정]이 거기에 끼어들게 하지만 않는다면 원망이나 유감없이 다양한 것들에 대해 깊이 담론할 수가 있다. 오히려 속으로는 이리저리 생각하는 바가 있지만, 이를 표면화하여 주장하고 시비를 토론하는 일 없이, 겉으로만 원만하게 보일 뿐 뒤에서는 서로의 그릇됨을 나열하며 비방하는 것은 더러운 마음을 가진 것 같아서, 무사다운 자의 마음가짐과 같지 않고, 군주에게는 커다란 불충이 된다. 적어도 충의를 위한다면, 서로 간에 마음 깊은 곳을 분명하게 드러내 말하며, 사물의 시비를 의논하여도 그것이 유감스러울 일은 없다. 같은 직무를 맡았다고 해서 똑같은 의견을 가지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서로 다른 의견을 조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지당한 도리에 이른 것이라 할 수 있다. 깊이 담론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게 주장하는 태도를 비난하고 같은 편에 대한 비판은 삼가면서 특정인을 편들려는 것이다. 이래서는 좀처럼 일이 매듭지어지지 못하고 나라의 통치가 사라져, 결국 정치의 커다란 손해를 낳는다고 할 수 있다.(6)
‘경쟁’이 동기가 된다는 것은 옳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경쟁’은 옳은 판단이나 행위에 도움을 준다는 생각이 아니었다. 오히려 ‘경쟁’이야말로 인간이 사회와 관계 맺게 하고 생기 넘치는 인격을 갖는다는 생각이 있었다.
오사카 상인들이 만든 학교인 카이도쿠도우懐徳堂의 교수였던 나카이 이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노자의 도는 이른바 여성적인 도이다. 여기에는 경쟁이란 것이 없다. 이런 경우, 자영自營의 마음이 승하여, 사심[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이 공公을 앞지르게 되는 잘못이 생겨난다. 처세에 능하고 위험을 피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장점이 될지도 모르지만, 사람을 교활하게 만드는 점은 미워해야할 일이다. (7)
여기서 경쟁은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자기만을 위한 태도를 갖는 데서 벗어나게 해서, ‘공公’ 즉 사회와의 관계를 고려하도록 만드는 동기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처럼 근대 사상가 가운데는 ‘경쟁’이 사람의 정신을 단련하고, 통치자로서 옳은 판단을 하는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어준다는 견해를 남긴 이들이 있다. 후쿠자와가 이러한 사례들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는 없지만, 이러한 생각들이 후쿠자와 사상의 역사적인 선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경쟁’과 ‘인심’
하지만 후쿠자와의 ‘경쟁’ 개념이 갖는 의의가 여기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경쟁’이 개인뿐 아니라 집단들 사이에서도 벌어진다는 사실을 논하며, ‘경쟁’에는 같은 집단의 사람들 마음을 한데 묶어주는 효용이 있다고 지적했다.
후쿠자와는 ‘보국심’(patriotism)이 왜 필요한지를 논하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일본의 인민은 박정하여 보국의 마음이 없다고 여겨지지만, 사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백성이 문벌의 우월함을 다투고, 전답이나 집과 대지의 경계를 다투고, 나아가 이웃 마을과 서로 자기네 신사나 절의 훌륭함을 겨루고, 스모나 연극의 성공을 겨루고, 또는 마을의 경계선을 다투고, 산림이나 벌초 장소의 입회[공동으로 산이나 들판의 산물을 채취하는 것]를 다투는 등, 이러저러한 일로 인한 경쟁들이 있다. 단지 이익만을 목적으로 하는 경쟁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체면을 중시하고 올바른 이치를 소중히 하는 경쟁도 있어서, 심한 경우에는 아주 작은 마을의 경계선을 다투다가 사람들이 가산과 목숨을 잃는 경우도 예로부터 드물지 않다. 모두가 보국심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스모, 연극, 제례가 있는 날에 마을의 인민이 집회를 열거나 서로 담론하면서 젊은이들이 서로 경쟁한다는 것은, 얼핏 무익한 오락인 것처럼 보여도 결코 그렇지 않다. 이는 인심을 결합하기 위한 유력한 방식이니 앞으로도 점점 이를 권하고, 사람들에게 자유로이 이를 행하도록 맡기고 싶은 것이다. … 인심을 결합하여 경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보국심의 원천이다. (8)
남들과 경쟁하려는 마음은 정신적인 활력의 원천이며, 나아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형편을 돌보기보다 정의의 실현을 우선하게 하고, 함께 이야기하며 공동체에 헌신하는 자세를 낳는 심리적인 메커니즘과 같다고 후쿠자와는 주장하는 셈이다. 이는 개인이 자유롭게 경쟁하도록 만들면 그것만으로도 사회 전반의 기풍으로서 ‘보국심’이 강해진다는, 자유주의liberalism와 애국주의patriotism를 결합한 논리이다. 권위주의로부터 거리를 둘수록 정치적 공동체에 대한 헌신은 강해진다는 것이다.
‘경쟁’이 개인의 인격을 고매하게 만들고, ‘공’에 헌신하는 자세를 낳는다는 논리는 얼핏 서양의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에서 빌려 온 논리처럼 보인다. 하지만 유교의 교육론에도 그와 같은 요소가 있다. 자신을 드높이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그들을 도덕적인 완성으로 이끄는 동기가 될 수 있다는 논리는 특히 주자학과 친연성을 갖는다. 후쿠자와의 주장은 이와 비슷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 앞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유교에서 말하는, 이러한 완성을 향한 의욕은 인간의 자연스런 모습에 반하는 것이라고 『장자』에서 비판받은 적이 있다. 이때의 비판에 동원된 말이 ‘경쟁’이었다. ‘경쟁’을 긍정적인 개념으로 전환하는 것은 아시아적이지 못한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사실 유교에 회귀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후쿠자와의 주장이 본인이 인정했던 것 이상으로 유교적이었다는 것은 오늘날 연구자들도 지적하는 바다. (9) 그래서 다음 회에서는 후쿠자와와 유교의 관계를 검토해보고자 한다.
<주>
1) 이러한 연구 가운데 대표적인 연구이면서 오늘날에도 배울 점이 많은 것으로는 坂本多加雄, 『市場・道徳・秩序』가 있다. (초판은 1991년. 현재는 ちくま学芸文庫, 2007년판으로 읽을 수 있다.)
2) 『후쿠자와 유키치 자서전福翁自伝』은 현재 마츠자와 히로아키 교수의 뛰어난 교정과 주석과 함께 읽을 수 있다. 松沢弘陽校注 『新日本古典文学大系 10 福沢諭吉集』 (岩波書店、2011年) 이하 인용문 중에서 밑줄에 의한 강조 또는 [ ]에 의한 보족은 모두 필자에 의함.
3)Chambers’s Educational Course, Political Economy for Use in Schools, and for Private Instruction, London and Edinburgh: William and Robert Chambers, 1852. 후쿠자와가 런던에서 이 책을 구입한 것은 1852년이다. 1864년에 후쿠자와는 도쿠가와 막부의 신하가 되어 외교문서의 번역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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