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기독교’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저항논리를 살펴보기 전에, 무엇이 그에게 기독교에 대한 반감 또는 비판적 태도를 조장했는지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와 <강의>에서 당시 기독교가 초래한 정치사회적 문제를 두 가지로 압축하고 있다. 하나는 기독교의 ‘반(反)정치적’ 태도다. 그는 <강의> 2권 2장에서 그리스와 로마의 경우와는 달리 기독교는 “세상의 명예”(l’onore del mondo)를 덜 지향하도록 가르쳤고(Discorsi 2.2.(26)-(27)), 그 결과 그리스와 로마에서 볼 수 있던 시민적 덕성은 사라지고 반(反)정치적 가치들 -‘겸손’(umilita), 비천함(abiezione), 그리고 세속적인 것에 대한 경멸(dispregio delle cose umane)-가 압도해 결국 ‘자유에 대한 사랑’(amore della liberta)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한탄한다(Discorsi 2.2.(32)). 그리고 그는 이 문제는 기독교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종교를 ‘비르투’(la virtu)가 아니라 ‘나태함’(l’ozio)을 따라 해석해온 사람들의 비겁함(vilta)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부언한다(Discorsi 2.2.(34)-(35)). 마치 니체(F. Nietzsche)가 구약성서의 가르침을 통해 신약성서의 교훈들을 거부하듯(BGE 47, 52, 55), 마키아벨리도 화려함과 장엄함으로 고양된 전투적 가치들이 기독교에 내재되어있고, 이러한 가치들을 잘못 해석하고 가르친 당시 로마 교회의 지배집단에게 비판의 화살을 겨눈 것이다다(Discorsi 2.2.(36)). 

또 다른 하나는 로마 교회가 이탈리아에 가져온 정치사회적 부패다. 흥미롭게도 마키아벨리는 로마 교회의 신성함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Principe 3.(37)). 당시 지식인들은 로마 교회가 14세기 초 세속 권력에 굴복한 이후 다른 세속 국가와 다를 바 없이 자기의 생존을 위해 투쟁해야하는 현실을 잘 알고 있었고, 교황 알렉산데르 6세 이후 로마 교회는 이탈리아 반도의 세력판도를 좌우하는 강대국 중 하나로 성장했기에 ‘신성함’을 비중 있게 다루지 않은 것은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세밀하게 표현들을 관찰해보면, 우리는 마키아벨리가 로마 교회의 ‘권위’(autorita), 즉 초인간적인 존재로부터 부여받은 힘의 실재보다 인민들에게 각인된 로마 교회의 힘을 매우 중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강의> 1권에서 종교에 대한 논의가 끝난 16장부터 ‘부패’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듯, 그는 로마 교회가 이탈리아 시민들을 ‘극심한 분열과 나약함’의 나락에 빠뜨린 원흉이며, 이탈리아가 ‘한 명의 우두머리’아래 있기보다 여러 군주들과 주인들의 폭정에 시달리게 한 이유이고, 동일한 이유에서 로마 교회는 이탈리아의 시민적 덕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주범이라고 말한다(Discorsi 1.12.(20)).

로마 교회가 초래한 이런 현상적인 문제는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서 일정 정도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을 것 같다. 귀치아르디니가 자기가 이탈리아인만 아니었다면 “마르틴 루터를 나만큼이나 사랑했을 것”이라고 고백하듯이(Ricordi 2.736), 당시 지식인들도 로마 교회의 부패가 초래한 정치사회적 문제에 고운 시선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당시 지식인들과 일반 시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심지어 종교개혁을 주장하던 사람들에게까지 적대적인 비판을 받았던 것은 바로 그가 가졌던 인식론적 태도 때문이었다. 

첫째, 마키아벨리는 신의 기획에 따라 결국에는 종말로 치닫게 되는 인간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물론 그는 퀸틸리아누스가 말하던 ‘이야기’(expositio rerum gestarum), 즉 인간들의 올망졸망한 삶의 이야기로 역사를 이해하던 그리스와 로마의 전통에 흠뻑 젖어든 인문주의의 전통에서 자란 르네상스 사람이었다(Quintilian 2.4.2). 그러나 <강의> 1권 서문에서 보듯, 마키아벨리는 일원론적 역사가 아니라 다양한 의견들이 충돌하고 갈등할 수 있는 여러 견해들이 종합된 역사를 응시하고 있다. 즉 ‘역사’가 아니라 ‘역사들의 진정한 지식’(vera congizione dell’istorie)의 부재가 로마 교회의 야심이 불러일으킨 나태함보다 더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Discorsi, 1.proemio.(7)).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느끼지도 또 맛보지도 못하고, 과거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독서가 한갓 유희와 지적 향연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일원론적 세계’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는 것이다. 

둘째, 마키아벨리는 다양한 역사에 대한 해석들이 갈등과 긴장을 통해 새로운 사고로 수렴될 수 없는 지식사회는 결국 ‘종파적 쟁투’로 귀결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마키아벨리는 정치철학사에서 최초로 ‘갈등’의 순기능을 적극적으로 옹호한 사상가다. 이런 마키아벨리가 ‘종파’(sette)에 대해 쏟아내는 비판은 단순히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위의 문장에서 마키아벨리는 로마 공화정과는 달리 피렌체에서의 갈등이 제도적 창출로 귀결되지 않고 추방과 폭력으로 얼룩진 이유를 무분별한 ‘중상’(le calunnie)에서 찾고 있다. 표면적인 내용은 상대를 비방하더라도 처벌받지 않는 피렌체의 제도적 결함이 야기한 정치사회적 문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견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인정할 수 없는 전면적인 투쟁, 그러기에 누구도 자기가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각인하지 못한 상태를 ‘종파’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즉 로마 공화정에서와는 달리, 개별적인 이익들의 충돌이 빚어낸 갈등이 제도적 합의로 귀결되지 않은 이유는 곧 일반적인 이익들의 긴장 속에 답을 찾지 못한 피렌체의 전면적인 투쟁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