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의 저술을 읽으면서 가끔 당황할 때가 있다.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역사적 사실이 과장이나 왜곡을 넘어 완전히 허구라는 것을 알게 된 경우다. 특히 그가 특정 인물의 행적을 모방해야한다고 주문할 때, 역사적 기록과는 전혀 다른 내용들이 사실처럼 기술되는 것을 우리는 자주 보게 된다. 『군주』 14장에 등장하는 키루스 2세가 좋은 예다.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에 의하면, 키루스(Cyrus)는 마사게타이의 여왕 토미리스(Tomyris)에게 붙잡혀 수치스럽고 처참하게 목숨을 잃는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의 키루스는 정복 가능한 모든 땅을 정복한 후에 평화롭게 눈을 감는다. 크세노폰(Xenophon)의 『키루스의 교육』에 등장하는 키루스의 생애가 역사적 사실처럼 기술된 것이다.
‘사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마키아벨리의 서술을 단순한 실수로 간주하거나 수사적 과장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의 ‘허구’는 ‘실수’나 ‘과장’이 아니라 기획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가 사용하거나 인용하는 ‘허구’는 의도된 것이고, 설득하려는 대상이 반드시 모방해야할 ‘행동’ 또는 이러한 행동을 유발하는 ‘판단 근거’를 담고 있다. 그리고 역사적 사실만큼이나 그가 윤색하거나 꾸며낸 ‘위대한 인물들’의 행적에 스스로가 전달하려했던 교훈이 담겨있다. 그러기에 『군주』 14장 말미에 그가 “크세노폰이 쓴 키루스의 삶”(la vita di Ciro scritta da Senofonte)을 스키피오(Scipio Africanus)가 모방했다고 말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단지 『군주』 6장에서 모방해야할 인물들 중 하나로 언급된 키루스가 실존했던 인물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가상의 인물인지가 혼동될 뿐이다.
‘사실’과 ‘허구’의 경계: ‘모방할 수 있는’ 위대함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우리가 주목해야할 두 명의 정치 지도자가 있다. 바로 ‘히에론’(Hieron II)과 ‘브루투스’(Lucius Junius Brutus)다. 마키아벨리는 전자를 『군주』에서, 후자를 『강론』에서 반드시 모방해야할 인물로 제시한다. 흥미로운 점은 두 인물 모두 ‘위대한 인물’의 반열에 오를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군주』 6장에 소개된 ‘가장 위대한 선례들’(grandissimi esempli)과 비교할 때, 두 사람은 위대한 행적이나 신화적 요소를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 비록 두 사람 모두 새로 나라를 세웠지만,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흉내를 낸 아킬레스와 같이 인간의 능력으로는 근접할 수 없는 위대함도, 스키피오가 모방한 키루스와 같이 범상치 않은 도덕성도, 그리고 모세나 로물루스처럼 신앙이나 신화로 채색된 이야기도 없다. 대신 누구나 모방할 수 있을 정도의 위대함만이 발견되는 것이다.
물론 마키아벨리는 『군주』 6장에서 ‘잠재적 군주’는 진심으로 신앙과 신화 속에 존재하는 인물을 닮으려고 노력해야한다고 말한다. 멀리 떨어져 있는 과녁을 조준하는 “신중한 궁수들”(gli arcieri prudenti)처럼, 일반적인 기대보다 더 높이 조준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살펴보면, 그는 ‘위대한 인물들’의 행적은 모방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러기에 그는 위대한 인물을 모방하라는 충고 속에 다음과 같은 당부도 함께 전달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자기가 건설한 제국을 지키기 위해 신의 아들인 아킬레스처럼 행동한 것 같이, 신화와 신앙도 ‘계획’과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이용할 줄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실제로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다름 아닌 히에론과 브루투스와 같은 인물들의 행동을 주목하라고 거듭 강조하는 것이다.
히에론 2세: ‘인민의 지지’로 군주가 된 참주
마키아벨리는 『군주』 6장에서 히에론을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례”(uno esemplo minore)의 하나로 소개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강론』의 헌정사에서 보듯, 그는 히에론을 왕이 되기 전부터 ‘권력을 제외하고는 군주로서 모든 자질을 갖추고 있었던’ 인물로 간주했다. 그리고 『군주』 13장에서 보듯, 그는 히에론을 인민들에 의해 왕이 된 후 막강한 로마 공화정을 상대로 시라쿠사를 지켜낸 탁월한 정치가로 묘사한다. 즉 잠재적 군주가 새로운 군주의 과거형이듯, 히에론은 새로운 군주가 되고자하는 잠재적 군주가 반드시 본받아야할 미래형이었던 셈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마키아벨리는 히에론을 자기가 꿈꾸던 ‘새로운 군주’의 전형으로 윤색한다. 신민에게는 자애롭고 전쟁에선 용맹한 ‘모범적 군주’가 아니라, ‘인민의 지지’를 통해 권력을 잡은 ‘새로운 군주’처럼 묘사하는 것이다.
실제로 히에론은 ‘인민의 지지’를 통해 왕이 되었다. 아가토클레스(Agathocles)가 한때 고용했던 캄파니아 출신의 마메르티니(Mamertini) 용병들이 그의 사후에 메시나를 장악해 시라쿠사를 위협하자, 두려움에 사로잡힌 시라쿠사인들은 히에론을 대장으로 메시나에 군대를 파견했다. 이 전쟁에서 히에론은 지금의 밀라초 부근 전투에서 용병들을 무찔렀고, 시라쿠사의 인민들은 이 전쟁 영웅을 왕으로 옹립한다. 따라서 마키아벨리가 『군주』 6장에서 강조하고 있는 ‘인민의 우두머리(capitano)’라는 표현은 특별한 것도 없다. 그러나 ‘인민의 지지’를 마치 운명의 여신이 부여한 “기회”(la occasione)라고 묘사한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표면적으로는 ‘인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외세의 위협’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명이지만, ‘인민의 지지’가 곧 새로운 군주가 갖추어야할 중요한 조건이라는 이야기도 되기 때문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히에론의 ‘잔인함’과 ‘기만’을 다룬 『군주』 13장이다. 마키아벨리는 폴리비오스(Polybios)의 『역사』 1권을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수정한다. 폴리비오스에 따르면, 히에론은 의도적으로 시라쿠사가 고용한 용병들이 마메르티니에게 도륙되도록 기만하고, 이후 시라쿠사 시민들과 새로 모집한 용병들을 가지고 전쟁을 치른다. 마키아벨리는 폴리비오스의 기록을 대부분 받아들이지만, 히에론이 새로 용병을 모집한 사실과 이들을 통해 도시를 통치했다는 사실은 철저하게 숨긴다. 히에론이 조직한 “자신의 군대”(le arme sua)가 용병이었다는 사실을 숨기고, 마치 시민들로 구성된 군대를 통해 도시를 통치한 것처럼 기술한 것이다. 결국 마키아벨리가 “획득하는 데는 극심한 어려움(durò)을 겪어야 했지만, 유지하는 데는 [어려움이] 거의 없었다”는 말은 ‘인민의 지지’를 강조하기 위한 의도적 왜곡인 것이다.
루키우스 브루투스: ‘거짓’과 ‘잔인함’으로 세운 공화정
마키아벨리는 『강론』 3권 2장에서 로마 공화정을 세운 브루투스를 ‘가장 신중한 사람’의 하나로 묘사한다. 특히 마키아벨리는 외숙부인 타르퀴니우스(Tarquinius Superbus)의 치하에서 브루투스가 멍청이처럼 행동한 것에 대해 그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는 지혜로운 처신이었다고 극찬한다. 그래서인지 마키아벨리의 브루투스는 리비우스(Livius)의 『로마사』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계획을 가진 주도면밀한 인물로 묘사된다. 마키아벨리는 브루투스가 스스로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멍청이로 위장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주위의 시선을 피해 불필요한 폭군의 견제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고, 이를 통해 보다 손쉽게 ‘폭군을 몰아내고 그의 조국을 해방시킬’ 기회를 노리던 인물로 브루투스를 그리는 것이다.
동일한 전제에서 마키아벨리는 브루투스를 ‘자기의 군주에게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반드시 모방해야할’ 인물로 제시한다. 동시에 브루투스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의도된 것으로 해석한다. 아폴로신전에서 넘어진 것도 자신의 계획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바란 행위이고, 타르퀴니우스의 아들로부터 정절을 잃고 자살한 루크레티아의 주검에서 그녀의 남편이나 가족보다 먼저 칼을 뽑아들 수 있었던 것도 치밀한 계산의 결과다. 여기에서 마키아벨리는 브루투스의 ‘위장술’을 마치 그람시(Antonio Gramsci)가 말하는 ‘진지전’(la guerra de posiciones)과 같은 의미로 설명한다. 그리고 군주와 ‘공개적인 전쟁’(guerra aperta)을 할 역량이 없는 경우, 브루투스와 같이 스스로의 힘을 키우면서 권력의 주변에서 기회를 엿봐야한다고 주문한다.
흥선대원군을 연상시키던 브루투스가 ‘공화주의’ 지도자의 전형으로 완전히 각색되는 부분은 『강론』 3권 3장이다. 여기에서 마키아벨리는 브루투스의 잔인하리만큼 철저한 ‘조국에 대한 사랑’을 자신이 보좌했던 피에로 소데리니(Piero Soderini)의 멍청하리만큼 ‘우유부단했던 소심함’과 비교하고 있다. 그는 특히 브루투스가 공화정에 반기를 든 자신의 두 아들을 처형한 사건을 부각시킨다. 공화정이 수립되자마자, 출세의 길이 막혔다고 생각한 귀족 자제들의 음모가 발생하고, 브루투스는 음모에 연루된 자기의 아들들을 처형하면서까지 철저하게 정치적 권위의 준엄함을 모두에게 각인시킨다. 마키아벨리는 이 사건을 ‘새롭게 획득된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했던’ 조치였다고 말한다. 반면 그는 소데리니가 불필요한 ‘인내’(pazienza)와 ‘선의’(bontà)로 메디치 가문의 귀환을 노리던 귀족들이 자유를 찬탈하도록 방치했다고 지적한다. 지도자의 무능이 피렌체 시민들을 노예상태로 이끌었다고 탄식하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와 ‘가능성’의 미학
아리스토텔레스도 ‘좋음’(agathon)만큼이나 ‘유용함’(chresimos)을 고려했고, ‘군사적 탁월함’과 정치적 탁월함을 정치체제가 지향해야할 목적들 중 하나로 보았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군사적인 요소와 정치적인 요소만 강조되면, 통치는 더 이상 ‘법’(nomoi)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단지 ‘지배’(to kratein)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사상을 충실히 따른다면, 누구도 “좋은 군대(buone arme)가 있으면 좋은 법체계(buone legge)가 반드시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군주』 12장에서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그렇게 말한다. ‘좋음’ 또는 ‘행복’을 ‘올바르게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과 연관시키고, 좋은 법체계의 기초를 ‘올바름’을 지향하는 ‘영혼의 요청’이 아니라 ‘전쟁’과 ‘갈등’을 통해 체득한 ‘필연성’에서 찾는 철학자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강론』 1권 3장에서 마키아벨리는 미래의 지도자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한다. 공화정을 세우거나 법을 제정할 때, 인간은 언제든지 ‘사악한 정신’(la malignità dello animo)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해야’(presupporre)한다고 말이다. 비록 인간이 악하다고 단정한 것은 아니지만, 시민적 자유를 되찾거나 지키려고 마음먹은 정치가는 무엇보다 ‘인간의 사악하고 게으른 속성’을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하다고 주문한 것이다. 그리고 마키아벨리는 1권 4장에서 이렇게 부언한다. 이런 통찰력이 없으면, 정치가는 ‘좋은 법’도 ‘좋은 군대’도 만들 수 없고, ‘갈등’을 통해 ‘좋은 법’이 만들어진다는 사려도 갖지 못하며, 결국 시민적 자유도 지킬 지혜도 갖지 못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에게도 공화주의 정치가의 전형은 ‘사는 것’에 대한 지식과 구별되는 시적 상상력 속에서 그려진다. 그도 ‘영원한 것’에 대한 철학적 고민과 ‘있었던 일’에 대한 역사적 기술을 시적 상상력이 중재할 수 있다고 믿었고, 시적 상상력만이 가능하게 해주는 ‘개연성’의 세계에 대한 기대를 걸었던 것이다. 스키피오가 헤로도투스의 키루스보다 크세노폰의 키루스를 모방했다고 말하고, 공식적인 보고서에서는 거만하고 잔인한 인간으로 묘사했던 체사레를 『군주』에서는 새로운 군주의 전형으로 전환시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시적 개연성이 만들어내는 가능성에 희망을 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그에게 본받아야할 위대한 인물의 행적은 숙련된 기술이나 확정된 지식이 아니라 구체적 상황에서 표출된 가능성의 미학, 즉 시적 구성으로 재탄생된 ‘신중함’의 역사여야 했던 것이다. 어쨌든 그가 기다리던 지도자는 시적 상상력이 아니고서는 동시대인들이 결코 꿈꿀 수 없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곽 준 혁 (숭실대 가치와윤리연구소장): copyrights@aporia, 이 저작을 인터넷 상에 게시할 수 있는 권한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이 게시물은 아포리아님에 의해 2013-09-01 18:32:00 아포리아 칼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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