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3월 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고등법원에서는 피터 도와 샌프란시스코 교육청 간의 민사 소송이 시작되었다. 소송의 내용은 원고인 피터 도가 교육과정에서 읽기와 쓰기라는 기본적인 학습을 받을 교육 권리를 박탈당했다는 것이다. 피터 도는 샌프란시스코 교육청, 해당 교육청의 교육국과 학교 담당 장학관, 샌프란시스코 주 교육부, 해당 교육부의 교육국과 공교육 담당 장학관 등  총 100명을 피고로 내세웠다. 

 

당시 피터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남성으로 정상적인 IQ를 가지고 있었다. 13년의 전 교육과정 동안 보통 수준의 학력을 유지했고 단 한 번의 유급도 없었던 평범한 학생으로 학교에서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의 부모는 재학 기간 동안 수차례에 걸쳐 아들의 읽기 능력에 대한 우려를 학교측에 전달했다. 그 때마다 학교 당국은 피터의 읽기 능력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피터는 고등학교 졸업 직후 읽기 전문가 두 사람으로부터 평가를 받았고 ‘5학년 수준’의 읽기를 한다는 결과를 들었다. 이 결과를 기반으로 피터는 읽기와 쓰기라는 기본적인 교육을 받을 권리를 박탈당했다는 것에 대한 소송을 하게 된 것이다.(1) 

한국 공교육은 초중고를 합쳐 총 12년이다.  글을 읽지 못하는 상태로 12년 세월을 보낸다는 것은 ‘노예12년’과 다를 바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19세기 대부분의 노예들은 문맹 상태였다. 노예들에게는 글을 읽고 해독할 권리가 부여되지 않았다. 그리고 박탈된 권리에 대해 저항할 능력도 없었다. 읽기 쓰기가 당연히 학습되고 있는 걸로 알았던 한국 교육과정에 노예와 같이 학습의 권리를 박탈당한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학교 속의 문맹자들』은 말하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초등학생 2635명을 대상으로 초등 입학 직후 국어 능력 현황을 평가한 결과, 80% 이상이 19개 문항 중 16개를 맞혔다. 10명 중 8명의 아이들이 한글을 어느 정도 익히고 초등학교에 들어온다는 말이다.(구영산, ‘초등 입문기 학생들의 국어 능력 연구’, 2013, <교육과정평가연구> 16권 2호). 교과과정은 이런 추세에 맞춰 초등학교 1학년 입학 아동의 읽기 쓰기 기초가 학습돼 있다는 기준으로 행해진다. 

 

헌법 제3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정하고 있지만 한국 교육환경은 초등학교 1학년 과정부터 그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하지만 침해하는 쪽도, 침해당하는 쪽도 이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노예12년 시절을 보낸다.

사실 읽기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자연스럽게 문해력을 발달시킬 수 있는 환경을 해당 가정이 갖추지 못해서인 것으로 분석된다. 초등학교 입학 전 문해력을 학습 못하고 초등학교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이후 학습에서 악순환을 거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해가 동반되지 않는 읽기학습만 반복하면서 단어들 자체의 의미에만 집착해 시야가 점점 좁아져 이른바 ‘터널 비전’ 현상이 심화된다. 그리고 읽기 부진을 유발하는 요인들과 읽기 부진이라는 결과 사이에서 악순환을 거듭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아이들과 격차가 벌어진다.(2) 수많은 피터 도가 양산되는 과정이다. 

『학교 속의 문맹자들』의 저자 엄훈교수는 중학교 교사 출신이다. 강산중학교 재직 당시 3개 학급의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면서 20명의 ‘읽기 부진’ 학생들을 발견했다. 이 중 9명의 학생들을 보충학습반을 구성해 방과 후 수업을 했다. 교수보직으로 옮긴 후에는 초등학교 ‘읽기 부진’ 학생을 찾아 그에 맞는 맞춤형 수업을 했다.

이 두 사례를 바탕으로 읽기 부진 학생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강산중학교 창우의 사례는 읽기 부진 현상에 대해 적절한 교육적 지원을 받지 못할 경우에 나타나는 문제를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 준다. 창우는 문해 환경의 결핍으로 읽기가 어려운 학생이다. 창우는 발생적 문해력이 나타나는 일차 조건인 가정의 문해 환경이 거의 갖추어지지 않았으며, 그 결과 초등학교 입학 후 문자 해독에 대한 형식적인 교육을 받아들일 만한 학습 수준에 이르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엄훈교수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읽기부진 학생들의 문제를 표면화 시켰다. 읽기쓰기는 초등학교 교육과정에서  당연히 필수요소라고 생각하거나 취학전 반드시 학습해야 하는 선행학습과정이라고 치부해 왔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었다. 『학교 속의 문맹자들』를 통해 읽기교육의 부재와 더불어 누구나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되는 읽기교육이 가지는 중요성도 함께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학교 속의 문맹자들』5장에서 ‘학교 속 문맹의 유형과 원인’에 대해 10가지 원인과 3가지 유형을 제시하고 있다. 책에서 말하는 원인과 유형은 다양하지만 수업에 강한 염증을 느낀다는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들에게 수업 시간은 학습이 이루어지는 시간이 아니라 그저 시간을 때워야 하는 순간일 뿐이다. 지금까지의 문맹에 대한 인식은 표면적으로 읽기와 쓰기가 가능해지면 비문맹자로 분류되었다. 이 관점은 읽기를 포함한 국어과의 기본 학습 목표를 글자 읽기(decoding)와 같은 문자의 단순 번역 기능의 숙달에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정부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수학·읽기 등이 한국이 OECD 국가 가운데 1~2위라고 자랑한다. 그러나 의약품 설명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문해가 매우 취약한 수준’의 비율은 한국이 38%로 OECD 국가 중 하위권으로 나타났다(미국 23.7%, 핀란드 12.6%, 스웨덴 6.2%).(한겨레21 8월 15일자) 한국교육개발원이 2001년 실시한 ‘한국 성인의 비문해 실태조사 연구’에 따르면 19살 이상 우리나라 전체 성인 인구의 24.8%가 읽기·쓰기·셈하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구영산, ‘초등 입문기 학생들의 국어 능력 연구’, 2013, <교육과정평가연구> 16권 2호). 

읽기와 쓰기가 가능해지면 국어과목에 대한 이해가 끝난 것으로 인식하고 실질적으로 중요한 읽기의 궁극적인 학습효과를 간과해 왔다는 증거다. 

2장 안골초등학교의 예를 보면 관리자급 교원들은 각종 행사와 발표회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읽기 부진에 대해서는 매우 저급한 인식을 보여 주고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어 3장에서 교사의 하루 일과를 보여주면서 문제점을 시사한다.  이 책에서 밝히고 있는 첫 번째 문제는 학교행정상의 문제다. 학생들의 교육이 우선시 되어야 하지만 한국 학교의 현실은 행정적인 성과의 비중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교사들이 학생들의 수업준비보다는 행정상의 여러 업무강도가 더 높아지고 학생들의 수업의 질은 떨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교사는 학생들의 읽기 문제에 대하여 무관심한 상태에 있다. 학생들은 '당연히 읽을 수 있는 존재'여야 하므로 읽기부진 문제를 제대로 보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이미 초등학교 과정을 끝낸 학생들이 문맹일 수도 있다는 것은 조금의 가능성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읽기 부진에 대해 "읽기 부진이 뭐에요?"라고 되묻거나, 읽기 부진 정도의 학습능력을 가진 학생들은 특수교사가 담당해야 할 영역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고등교육으로 갈수록 강해지지만 읽기교육의 기초를 학습해야 할 초등학교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다. 아이들의 독서지원 활동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끝나자 해당 학교였던 안골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은 바로 일반교사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학교 평가가 학업 우수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한국교육 상황에서, 학교 평가를 책임지는 교장은 읽기 부진학생들의 존재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좋은 학교평가는 교육청이나 학부모 그리고 여론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데 이들은 문해 교육에 대한 인식자체가 없다. 영재교육이라면 모를까 우리 아이가, 우리 학교가, 우리 사회가 문해교육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아무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비문해는 특수교육을 받을 만큼의 저능아의 영역으로 인식하고 내가 속한 사회에 포함시키고 싶어 하지 않는다. 

또 다른 문제는 교육과정이다. 한국의 교육과정은 각급 학교에서 이수해야 할 교과목별 시수까지 정확하게 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르쳐야 할 내용과 교수 방법 및 평가 방법까지도 세밀하게 규정하고 있어서 교사들의 수업 방식에 대한 자율권이 없다는 것이다.(4)

문맹을 양산하고서도 외면할 수밖에 없는 교육환경의 일차적인 책임은 교육청의 교육체계에 있다. 학교 현장에서는 읽기부진 학생들을 우선 “60점을 넘기도록” 만드는 데 목표로 삼고 있다. 이것을 ‘구제’라고 부른다. 읽기부진 학생들이 입시를 치를 수 있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복 문제풀이를 통해 암기로 성적을 올린 읽기부진 학생들은 다음해 또 학력 부진아가 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되풀이 하면서 학력차이는 더 커지고 읽기부진 학생들의 수업에 대한 흥미는 크게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들을 학교에서 지향하는 성과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다. 

엄훈교수는 읽기부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근본 원인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큰 요인으로 ‘교사’를 꼽고 있다. 읽기 부진에 관한 교사들의 인식과 태도는 무지, 무력감, 책임 전가, 무시가 있다. 이들 개별 요인들은 서로간에 인과 관계를 이루면서 문제를 키웠다고 엄훈교수는 말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놓친 다른 큰 축이 되는 문제가 있다.  또 다른 ‘무시’다.  읽기 부진에 관한 무시가 아닌 교사가 학생의 인격과 인권을 무시하는 태도를 말한다. 학교 교육에서 읽기와 쓰기 교육이 무조건 포함되어 있다고 착각했듯, 우리는 교사가 학생들의 인격과 인권을 지켜주는 것에 대해서도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교사들의 수업에 대한 태도를 파악하기 위해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교사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주고 답을 얻었다. 질문은 다음과 같다.

위의 질문들이 주어졌을 때 1,2,3까지는 거의 비슷한 답이었지만 4번에서는 초등학교 교사와 고등학교 교사가 판이하게 다른 답이 나왔다. 고등학교에서는 입시와 무관한 교과는 거의 다 교과서를 재구성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수업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학생들의 시선이었다. 교과서 위주의 수업을 하게 되면 학생들이 수업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데 그 정도가 심할 때는 교사가 학생들로부터 인간적인 수모까지 겪는 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교사의 경우는 주로 1,2,3의 이유로 교과과정을 재구성하기는커녕 교과서에서 제시하는 내용을 따라가기에도 힘들다는 대답이 많았다. 

고등학교와 초등학교의 행정적인 업무비중의 차이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두 기관 모두 교사에게 분담된 행정업무가 많다는 것은 동일한 조건이다. 동일한 열악한 환경에서 수업준비의 차이는 학생들의 연령대별 지적수준에서 나온다. 초등학교 학생들은 고학년이라고 해도 교사의 수업방식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그에 대한 항의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경우는 드물다.

엄훈교수는 읽기 문제를 인권의 문제로 보고 있다. 하지만 내가 발견한 문제는 다른것이다. 교육현장에서 나타난 문제는 읽기쓰기라는 교육권리를 지켜줘야 하는 국가의 노력부재가 아니라 교사들이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교사들의 성과는 교장의 지시에 따른 행정업무가 아니라 학생들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 초등학생 아이들이 고등학생 정도의 의사표현만 가능해도 교사가 수업보다 행정업무를 더 중요시 할 수 없음은 위의 설문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학생들의 잃어버린 인권인 읽기와 쓰기 문제를 국가의 정책과 사회문제로만 보기에는 초등학교 교사들의 학생들에 대한 인권 인식 또한 너무 미비한 실정이다. 

『학교 속의 문맹자들』에서는 문맹 학생들을 세가지 유형으로 분석했다. 해독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 독해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5) 나쁜 읽기 태도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로(6) 분류했다. 학생들의 문맹 원인은 환경적, 인지적, 교육적 원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읽기 부진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환경 요인으로서 가정에 아이가 읽을 만한 책이 얼마나 구비되어 있는가, 성인과 아이 사이에 책을 매개로 한 상호작용이 얼마나 이루어지는가가 가정의 문해 환경을 결정하는 기준의 잣대가 된다.(7)

인지 요인으로는 음운론적 인식과 명명 속도가 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나타나면 난독증으로 발전한다고 한다. 하지만 대개 난독증은 집중적인 훈련을 통해 정상적인 수준으로 발달할 수 있다.(8) 

교육적 요인으로는 학생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교수법을 들 수 있다.(9) 이렇듯 문맹 학생들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한 가지 유형에만 집중한 치료 프로그램보다는 여러 유형을 균형 있게 다루는 통합 해결 프로그램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통합프로그램의 예로 뉴질랜드와 미국, 영국의 독서교육을 들었다. 그 중 영국의 독서교육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았다. 영국의 공교육은 책 읽기의 경험을 풍부하게 제공한다. 정해진 교과서 없이 교사와 학생들이 자율 선택한 도서들을 가지고 학습이 이루어진다. 이런 수업 방식이 유지되는 데는 독서 교육과 관련된 인프라가 잘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공공 도서관이 잘 구축되어 있고, 어린이와 책을 연결하는 적극적인 프로그램들이 자율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무엇보다 책읽기 경험이 문자로 끝나지 않고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로 재생산 돼 책 속의 등장인물을 아이들이 생활 속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다. 이런 영국의 독서 교육 환경은 책읽기가 학교 안의 교육으로 한정된 게 아니라 생활이자 문화가 될 수 있는 요소가 된다. 

엄훈교수는 영국이 가지고 있는 오랜 사립학교의 전통과 많은 문인들을 배출한 문화적인 요소들이 좋은 읽기교육의 근간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불과 십년 전인 1998년만 해도 영국 역시 우리와 같은 교육 문제를 안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초등 우리교육 17호 1998) 영국 챈들러스 필드 초등학교 교장 린다 호웰스의 인터뷰를 보면 당시 영국의 집권당인 노동당 정부는 ‘학력제고’를 교육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하지만 정부는 성명만 발표한 채 제도적인 지원이 없었다. 교사들 역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했다. 

영국 정부는 학교끼리 학력제고에 따른 경쟁을 하게 만들어 그 결과에 따라 재정을 재분배 하는 방식으로 학교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는 정책을 내놓았다. 이를 두고 호웰스 교장은 영국 사회는 여전히 계급이 존재하고 그 계급에 따라 학교가 처해 있는 사회경제적인 환경과 교사의 근무조건 등 많은 요소들이 다른데 일률적인 성적 대조표로 학교들을 평가하는 방식은 적합하지도 않고 그런 정책으로는 학교교육을 통해 계급을 해소할 수도 없다고 했다. 1988년 교육개혁법의 통과로 도입된 국정교과서과정에 대한 교사들의 입장도 들을 수 있었다. 교사들은 국정교과서과정을 ‘롤스로이스 모델’이라고 부른다. 공장에서 나온 부품과 매뉴얼을 그대로 적용한다는 의미다. 

저자는 영국을 자율적인 교과과정의 전통을 가진 나라로 보고 그에 따른 독서 교육 과정을 우리의 해법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호웰스 교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현재 우리가 가진 교육과정과 방법의 문제점들을 영국 공교육에서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런 문제점들을 영국은 어떤 방식으로 해소 했는가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교사들은 현행 방식의 가장 큰 맹점을 ‘위에서 아래로(top down model) 방식이라고 꼽았다. 아이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기술과 지식을 배우는가 하는 고려인데 그 요소가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 역할을 교사가 현장에서 해야 하고 그런 이유로 교사들에게 자율권이 부여되어야 한다는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요구했다. 

한국의 교육과정에서도 읽기 쓰기 부진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교과서 없는 독서교육을 제시하는 연구결과도 많이 나왔다. 두 나라의 해법과 문제를 가진 교육환경은 거의 유사하다. 한국이 영국보다 실행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를 한국 교사들의 인격과 인권을 대하는 태도하고 보고 있다. 교사들은 아이들의 인권과 인격을 존중해 주고 있을까?

지난 10월 6일에서 8일. 3일 동안 EBS에서 ‘슬로우리딩’이라는 프로를 방영했다. 이 프로그램은 용인 성서초등학교 5학년 3개 학급에서 ‘천천히 읽기’ 수업을 실험한 내용이다. 한 학기 동안 국어교과 시간에 교과서가 아닌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로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장면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책을 천천히 읽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책을 읽던 아이들이 12년이라는 시간 동안의 자신의 삶에 대한 연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책에서 내용으로 알 수 있는 박완서 작가의 연표를 만들었다. 작가의 연표를 만들면서 작가가 살았던 근대사와 현대사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유도했던 것이다. 또 다른 수업에서는 작품 속에 나오는 서울 사대문 안의 풍경을 보기 위해 직접 북촌으로 답사를 가기도 했다. 

책을 읽고 한 단락을 정해 삽화를 그려 넣는 활동이 있었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내용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게 되고 교사는 그림을 통해 아이들의 이해정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수업이 진행되면서 다른 방식의 체험 두 가지가 더 진행됐다. 책에 나왔던 피난음식을 직접 요리해 보는 것과 전쟁과 관련된 영화를 보는 것이다. 이 모든 체험학습을 통해 아이들은 책의 내용에 공감대를 형성하게 됐다. 낯선 내용을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체험 외에 또 다른 새로운 시도도 이어졌다. 우리는 주로 묵독을 하는데 이번 실험과정에서는 전통 서당의 방법을 차용해 훈독을 훈련시켰다. 소리 내어 읽게 되면 빨리 읽을 수가 없고 천천히 읽음으로서 그 문장을 곱씹게 되어 이해도와 집중력을 높인다는 이론이다. 물론 소리 내어 읽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소리 내어 읽을 때는 끊어 읽기가 제대로 학습되어야 한다. 제대로 끊어 읽을 때 문장의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단어와 문장구조 이해가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문장의 이해는 내용의 이해를 돕고 이 과정이 책을 완벽하게 소화하게 해주는 단계로 끌어주는 것이다. 

 

『학교 속의 문맹자들』에서 말해주는 책읽기 부진 학생이 생기는 원인은 다양했다. 우리 공교육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다른 기관과의 협약이나 전문교사 양성들 등의 좋은 해결방법들을 제시했다. 하지만 성서초등학교의 시범수업은 그 모든 문제들을 현재의 시스템안에서 해결하는 것을 보여줬다. 내용에 관련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입체적인 책읽기가 가능했다. 따로 다른 과외활동을 하지 않아도 수업시간 안에서 하는 내용으로도 충분히 배경지식들을 습득해 능률적이고 능동적인 학습이 된 것이다. 읽기부진 학생 역시 다양한 수업방식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수준의 학습을 교사로부터 지도받을 수 있었다. 한 시간 동안 얼마만큼의 교과서 분량을 나가는가 하는 진도빼기가 아니라 깊고 넓은 내용을 아이들에게 제공하고 그것을 아이들이 이해하고 소화해서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수업을 제공함으로서 읽기교육에 대한 해갈을 해소한 것이다. 

 “첫째는 아이들이다. 어떤 것이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가를 늘 먼저 판단하는 편이다.” - 호웰스 교장의 인터뷰 마지막 내용

한국의 공교육은 제도나 정책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지만 성서초등학교의 사례를 보면서 현재의 공교육 하에서 조금만 교사들이 노력한다면 최소한의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교사들이 자율적으로 수업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를 바라는 것은 학생들이 알아서 수업에 자율적으로 능동적인 참여를 하기를 바라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행동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고등학교 교사들이 초등학교 교사들보다 수업의 질에 더 많은 신경을 쓰는 이유는 학생들의 원성이었다. 고등학생들은 수업의 질이 떨어질 경우 그 수업에 대한 항의를 할 수 있는 단계의 지적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요소는 고등학교 교사들은 수업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강제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 초등학생들은 어떤 수업이 좋은 수업인지 경험 부족으로 알지 못한다. 또한 지적 능력도 성숙하지 못한 상태기 때문에 비판에 대한 능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저학년일수록 교사는 어떤 형태의 모습을 가지고 있더라도 아이들에게는 부모보다 더 절대적인 우상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이런 조건으로 인해 초등학교 학생들은 교사들에게 수업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지 못한다. 

나는 초등과정과 고등과정에서 교사들이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가 다름을 1차 인터뷰에서 발견하고 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자 2차 심층 인터뷰를 시도했다. 초등학교 교사들은 아이들보다는 교장이나 교감과 같은 학교간부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더 중요시 하고 있었다. 이 것은 그들이 부도덕하거나 비교육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교사들은 수업에 관한 내용은 이미 대학 4년 동안 학습했고 임용고시를 거치면서 자신의 학습지도능력은 검증됐다고 여긴다. 하지만 행정과 직장내에서의 대인 관계는 새로운 영역이기 때문에 새로운 학습이 필요해 진다. 무엇보다 이런 부분들이 교사라는 사회 생활을 하는데 더 중요한 요소들이 된다는 것을 체득함으로서 이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된다. 이런 교사들과 학교간부들간의 상황은 엄훈교수가 6장에서 보여준 마석초등학교에서의 교사와 교장의 대화에서 잘 볼 수 있다.

책 속에 나타난 사례 1),2)를 보면 교사들이 실질적으로 중요한 아이들에 대한 문제보다는 학교 행정과 간부들에게 더 무게의 중심을 두고 업무를 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례 3)에서는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의 원인을 보여준다.

엄훈교수를 앉혀 놓고 두 사람은 계속 공사 수주에 관한 이야기만 나눴다고 했다. 결국 엄훈교수는 읽기 수업에 관한 어떤 말도 듣지 못한 채 교장실을 나왔다. 

내가 인터뷰를 통해 접한 다른 초등학교의 상황도 위의 에피소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요즘은 학급에 다문화 가정 아이들까지 합세해서 읽기 부진에 대한 중요성이 더 높아지고 있지만 교사들은 수업환경을 저하시키는 요소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환경개선을 위한 노력으로 방과후 수업을 하는지 물었을 때 인터뷰에 응한 대부분의 초등학교 교사들은 “그런짓을 왜 해요? 퇴근 시간만 늦어지지. 그런 애들은 방과 후 수업으로 달라지지도 않아요” 라는 대답을 스스럼 없이 내놓았다. 나는 다시 야근에 대해 물었다. 수업에 대한 내용이 아니면 야근은 주로 어떤 내용의 업무를 하는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야근은 행정적인 업무나 교사들의 행사에 대한 내용이 주가 된다고 했다. 가령 교사워크샵이나 교장선생님의 워크샵에서 나온 사진으로 앨범만들기부터 학교행사 관련 현수막 걸기를 위해 구청에 전화하기와 같은 소소한 업무부터 방과후 수업에 관한 프로그램짜기까지 다양한 업무들로 야근을 한다고 했다. 내가 인터뷰한 학교의 경우는 교감 선생님이 방과후 수업에 대한 다양성을 추구해서 교사들이 더 힘들어 한다고 했다. 이미 다른 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프로그램 외에 것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많은 시간을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에 써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온 새로운 프로그램은 다른 학교에서 아직 시도하지 않은 ‘공기놀이’였다. 

고등학교 교사들에게서도 이와 비슷한 성격의 대답을 얻었다. 질문의 내용은 달랐지만 그들이 답하는 내용은 그들은 주어진 환경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교육환경에 대해 좀 더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현행입시제도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 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한국은 입시제도가 수시로 변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교육문제에 관심이 많지만 막상 현행 입시제도는 알지 못한다. 현행 입시제도를 정확히 알기 위해 고등학교 교사와도 2차 인터뷰를 했다. 내가 고등학교 교사들에게 준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이 물음들에 대한 교사들의 답은 내가 생각했던 바와 달랐다. (1)번 질문 자체를 부정하고 있었다. 현행 입시제도의 맹점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매우 자극적인 발언이라고 했다. 현행 입시제도는 나름 잘 갖추려고 애를 쓴 제도라는 것이다. 다만 너무 애를 쓰다보니 복잡해 졌다는 단점이 있다고 했다. (2)번 역시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교육의 정상화를 꾀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미 우리 교육은 ‘정상화’라는 것이다. 자신들의 일터가 비정상적인 적은 없다고 했다. 질문을 공교육의 정상화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공교육의 정상화란 공교육이 가지고 있는 학습시스템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말하는 공교육의 정상화는 특목고와 자사고를 없애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3),(4)에 대해서는 교사의 한계를 말했다. 주어진 시스템안에서 학생이나 학부모가 원하는 방향으로 입시를 끌어주는게 교사들의 역할이라고 한다. 입시제도를 바꿔준다면 좋겠지만 교사들이 그 변화를 주도할 수 없는게 현실이라고 했다.

우리는 교사들이 가져야 할 직업의식에 너무 높은 기대치를 두고 있는게 아닌가 한다. 교사들도 그저 직업인일 뿐이다. 도덕적 의식이나 아이들에 대한 교육열이 높아서 교사가 된 것이 아니라 직업으로 교사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교사들에게 자율적으로 교육환경이나 입시제도를 비판하고 바꾸라고 하는 것은 삼성직원들에게 이건희경영방식을 비판하고 재벌세습체제를 뒤엎으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이들은 만들어져 있는 체제를 충실하게 따르는 직업인일 뿐이다. 이들의 행동에 대해 더 좋은 교육환경을 비교해 가며 이들을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들 역시 더 좋은 교육환경이 그들의 체제였다면 그 속에서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아이들과 교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닌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아니라 제도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제도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호웰스 교장의 인터뷰 마지막 내용은 교장으로서 지방교육국, 학교운영위원회,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의 사업가, 중앙정부의 정책 등 여러 집단 사이에서 생겨나는 요구들 중 가장 중요한 점은 ‘아이들’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엄훈교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엄훈교수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문제의 당사자들이 그 문제점을 인식하는 것 이 첫걸음이고 한다. 읽기부진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한 사람들이 ‘읽기지원센터’와 같은 연구자 모임을 만들고 이런 모임들을 통해 읽기문제에 대한 인식확대와 문제해결방법을 모색해 가는 방법을 제시했다. 

문제 당사자들이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 단추인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나는 두 차례의 현직 교사들에 대한 인터뷰와 성서초등학교와 영국 교육의 성공사례를 조합해 보면 결국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입시제도라는 교육의 최종목적지를 주입식 교육을 통한 경쟁이 아니라 논리적인 사고와 성숙한 사고를 통한 공감과 소통이라는 목적지로 바꾼다면 교육 환경은 자연스럽게 최단 시간에 바꿀 수 있다. 행복해서 웃는게 아니라 억지로라도 웃다 보니 행복해 지더라는 맥락과도 같은 것이다. 

이에 상응하는 좋은 입시제도로 프랑스의 바깔로레아Baccalaureat가 있다. 객관식이 아닌 논술 문제다. 계열에 따라 차별적인 논술문제를 제시한다. 입시를 치르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프랑스 사회 전체가 바깔로레아에 출제된 문제를 함께 고민하기도 한다. 아래는 2014년 바깔로레아 에 출제된 문항이다.

현재의 한국 교육과정으로는 위의 문제를 제대로 풀어내기 어렵다. 이러한 유형의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사고력을 향상 시키는 교육방법이 필요하다. 우리가 이미 우리 교육환경의 해법으로 제시한 ‘속도가 아닌 방향’을 제시하는 수업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성서초등학교의 실시한 초등학교 5학년 국어교과의 실험 결과는 수업의 방향의 중요성을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다. 교육지침서에 따른 진도라는 속도전이 아닌 학생들에게 어떤 방향을 교사가 제시하고 방향에 따라 수업방법을 달리 함으로서 학생들이 많은 변화를 보여줬다. 이것이 우리 교육의 정상화이자 읽기부진의 해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수업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강제성이 필요하다. 이 강제성이 바로 입시제도의 변화다. 현직 교사들의 말처럼 우리는 최적화된 입시제도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그 결과 획일성을 벗어나기 위해 자사고, 특목고와 같은 교육기관이 생겼다. 입시제도 또한 수능위주가 아닌 다양한 학교생활을 반영하기 위해 미국제도를 도입해 수시를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자사고와 특목고는 공교육의 질을 떨어트리고  수능의 서열화라는 문제점을 야기시켰다.  미국식 전형인 수시(입학사정관제)는 주입식 교육을 받아온 우리나라 학생들에겐 맞지않은 체제로 여러 가지 부작용을 보이고 있다. 결국 학생들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수시 스펙 내신 수능 이 모든걸 다 준비해야만 하는 더욱 악화된 조건을 가지게 됐다. 

현직 교사들이 현재의 비정상적인 입시에 대한 대안으로 내놓은 것은 바로 학력고사의 부활 혹은 수능으로만 100% 비중을 둔 입시제도였다. 바깔로레아와 같은 제도를 물어봤을 때 대부분의 현직 교사들은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라는 답을 했다. 우리의 교육환경이 유럽과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바깔로레아와 같은 논리력과 사고력을 키우는 학습방식은 프랑스만의 것이 아니다. 불과 100년 우리의 교육이 그러했다. 식민사관으로 굳어진 우리 것에 대한 멸시와 현재 성행하는 한자암기교육의 온상인 21세기형 서당의 병폐로 우리 고유의 서원교육이 저평가 되고 있다. 

서원교육은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논리와 사고력을 길러주는 교육환경을 제공하고 있었다. 서원은 그 마을의 여론을 주도해 왔다. 이는 서원에서 각종 주제들을 가지고 문제의식들이 거론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히려 공론의 장으로서의 역할이 비대해져서 정쟁과 당쟁의 근원이 되는 부작용이 있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대원군이 전국의 서원을 철폐했다. 개화기를 맞은 조선은 서원은 철폐됐지만 근대적인 기초교육을 실시했다. 실학사상을 바탕으로 제도의 개혁, 학풍의 쇄신, 인간의 평등과 존엄성 인정, 생산 증가, 기술 개발 및 도입, 부국강병을 전제로 한 교육내용을 체제로 완비했다. 

교육체제는 달라졌지만 교육내용은 인간존엄을 가장 우선시 하는 홍익인간 정신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었다. 이런 우리의 교육에 대한 기본정서가 송두리째 바뀌것은 일본의 식민지 정책 이후다. 일본과의 한일협정서(1904)의 체결로 대한제국 각부에 일본 정부의 참여관이 배치됐다. 이로서 조선의 교육행정 주도권 역시 일본정부로 넘어가게 된다. 당시 학정참여관으로 부임한 사데하라는 한국 정부에 대해 학제의 정비를 제의했고, 일본인 교원을 다수 배치하였으며 교과서 편찬 사업도 추진하였다.(사회교육연구 제11집, 한국 개화기 초등교육의 역사적 고찰)

을사조약(1905) 이후 통감부가 조선에 설치됐다.(1906) 일본 통감부는 조선의 식민지화를 위한 기초작업으로 조선의 교육과정을 손봤다. 교육과정을 전면적으로 개편하여 조선인들을 신민화 하기 적합하게 만들었다. 소학교를 보통학교로 개칭하고 6년이던 학제를 4년으로 단축했다. 4년으로 단축된 학제를 가진 보통학교를 확대 보급했다. 교과과정을 사고력,분석력,비판력을 철저히 배재한 암기위주 즉 책에서 엄훈교수가 현행 교육제도를 비판하고 있는 일본식민지식 파이프식 방식을 이때부터 시행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식민교육의 잔재는 한국 교육과정에서 여전히 많은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읽기 쓰기라는 기초교육의 부재는 결국 학생들의 사고력 저하라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하지만 이런 큰 문제가 가려질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기초교육의 최종 목적지인 입시가 깊은 사고력을 필요로 하지 않아도 되는 암기 위주의 학력고사 방식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비문해 학생들의 문제가 ‘문제화’되지 않았고 암기위주라는 비판이 일자 문제의 핵심은 알지 못한 채 선진국으로 여기는 미국의 학제를 도입해서 문제에 또 다른 문제를 덧입히는 것을 해결방안으로 제시했다. 수능이 도입됐지만 암기위주의 내신과 병행되는 사고력 위주의 입시는 학생들에게 두가지 방식의 학습을 요구할 뿐이었다. 이런 문제가 또 제기되자 다시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명분으로 수시를 도입했고 학생들은 두가지 학습방식에 다시 과외활동으로(봉사,각종 경시대회등)스펙까지 쌓아야 하는 이중삼중고를 격고 있다.

우리는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정확히 진단하지 못한 채 해결책을 찾고 있었다. 엄훈교수가 그 문제점을 명확히 제시했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던 ‘읽고쓰기’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학교속의 문맹자들』을 통해 인지시켜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해준 셈이다. 

식민지 교육에서 바라는 인재상은 적당히 읽기쓰기가 되는 정도의 하급공무원을 배출하는 것이었다. 사고력, 분석력,통찰력이 깊고 사회에 대한 소통과 공감력은 무조건 복종을 미덕으로 하는 신민에게는 가져서는 안되는 능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능력들을 배양할 수 있는 교육은 실시하지 않았다.

21세기 한국사회도 19세기 식민지에서 신민들에게 원하는 인재상을 원하고 있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의 현재가 말하고 있다. 21세기의 한국사회는 건전하지 못하다. 엄훈교수는 문제해결의 첫 단추로 문제의 올바른 인식을 들었고  두 번째로 문제당사자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당부했다. 우리는 우리 교육의 문제를 알았다. 그리고 제도개선을 통해 제시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도 여러 현직교사들의 인터뷰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제도를 개선해 줄거라고 생각했던 정부기관(기득권)은 이 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할 의지가 없음을 알 수 있다. 교육문제의 해결은 우리 사회가 건전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열쇠다. 이 열쇠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엄훈교수가 끝으로 던진 질문을 스스로 해야 할 것이다. “먼저 문제를 인식한 당신은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